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0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02화
#그들의 존재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수준으로 당신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당신도 잘 알다시피 저는 이렇게 모습을 보인 전면전에 특화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한니발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얼굴로 두 손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레기온이 발산하던 살기도 한층 누그러졌다.
“그럼 이제 말해봐라. 어째서 주군의 곁에 있는 거지? 무슨 목적이냐?”
“목적이 있어서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미 그곳을 떠나온 사람이니까요.”
“거짓말마라. 그곳에서 떠나온다는 것이 불가능하단 것은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습니다만… 저는 아닙니다.”
“너는 아니다?”
“예. 거기엔 말 못 할 사정이 있습니다만… 아무튼 저는 이제 그쪽 세계와 관련이 없다는 것은 믿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제 목숨쯤은 아무렇지 않게 내놓을 수 있습니다.”
한니발은 레기온이 다시 한 번 물어볼까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레기온은 여전히 그를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이에 하는 수 없이 한니발이 말을 덧붙였다.
“…모두 겁쟁이들뿐입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당신은 예술가가 오랫동안 예술을 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레기온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는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그렇진 못할 것 같군.”
“맞습니다. 예술가는 예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오랫동안이나 예술을 하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말이죠.”
한니발은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건가? 한때는 공포의 대상으로 불렸던 곳인데……?”
“후후… 그것도 다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지금은 그저 바깥으로 나서길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에 불과하니까요.”
“아니, 그렇진 않을 거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한들 어나니머스는 어나니머스. 그들의 힘은 건재하겠지. 그런데 그 어나니머스가 설 자리를 찾지 못 한다라…….”
레기온이 슬며시 웃었다. 그가 갑자기 웃기 시작하자 한니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웃음이 터질만한 포인트가 어디인지 짐작되질 않아서였다.
그러건 말건 레기온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것은 악취미이십니다. 이제 그만 나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하… 눈치 채셨습니까.”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외곽진 곳에서 유운량이 유유히 걸어 나왔다.
그는 파초선을 살랑거리며 레기온과 한니발을 바라보았다.
“두 분이서 재밌는 담화를 나누시는 것 같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습니다.”
“재밌는 얘기라면 재밌는 얘기군요. 어나니머스가 설 자리를 못 찾고 있다니.”
“혹시 레기온님께서도 그 어나니머스라는 집단을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눈치가 빠르시군요. 그렇습니다. 그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면 이쪽에서 설 자리를 제공해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후후… 저와 생각이 이리도 맞으시다니… 이거 생각보다 마음이 맞는 벗이 생긴 기분이로군요.”
유운량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파초선을 흔드는 그의 손이 경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어나니머스는 가볍게 여길 집단이 아닙니다.”
“직접 어나니머스에 몸을 담고 있는 너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또한 어나니머스에 대해선 숱하게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 어나니머스를 가볍게 여길 리가 없지. 당장 주변에 그들의 예술을 경험해 본 사람도 있으니까.”
“그럼… 그들에게 제의라도 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마치 미리 말이라도 맞춘 것처럼 유운량과 레기온은 흥겨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이 어나니머스 출신이라는 것도 방금 알았을 텐데 저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일까.
더군다나 저들은 이미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눈짓만으로 대화를 끝마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한니발을 보며 레기온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군. 그대는 아직 모르고 있겠군. 우리 두 사람을 수하로 거느리고 있는 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분이신지 말이야.”
“예…? 그건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후후, 하지만 아직은 시기가 이른 것 같군요. 하다못해 당장 바로 앞의 일을 해결하고 움직이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때 주군께 말씀드려도 전혀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아직 급할 것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주군께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 지도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직접 그들을 겪어보셨으니 분명 그들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생각해보셨을 겁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이거 이렇게 생각이 잘 맞는 분을 마주하니 절로 흥에 겨워지는 군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있는 한니발과 다르게 유운량과 레기온의 대화는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되었다.
“저기… 죄송한데… 저도 이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두 분께서 나누시는 대화가 어나니머스와 관련된 일이라면, 저는 그다지 추천 드리고 싶진 않습니다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어나니머스가 동네 귀족 가문도 아니고 그들과 함부로 엮여선 좋을 것이 전혀 없습니다. 특히나 어나니머스의 원한이라도 샀다간…….”
“그럼 한 가지 묻겠습니다, 한니발님. 혹시나 우리 주군께서 어나니머스와 관련해 당신께 도움을 요청한다 해도 돕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예…? 아니, 그게…….”
머뭇거리는 한니발을 보며 레기온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는 한니발에게 다가가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잘 들어라.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다만… 나와 여기 있는 유운량 씨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이까짓 목숨쯤은 물론 다른 모든 것도 걸 수 있다. 이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아. 세상 모든 것을 등진다 해도 우리는 주군의 곁에 서 있을 거다. 그런데 지금 너의 각오는 어떠한가?”
레기온의 말에 한니발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자신이 했던 말을 되돌려 받은 셈이다.
어나니머스를 향해 퍼부었던 겁쟁이라는 말은 곧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는 잠깐의 순간에도 자신과 칼라반, 그 일행들에게 미칠 일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던 한니발은 이내 마음을 굳혔다.
“두 분께 못난 모습을 보여 버렸네요… 사실, 제가 어나니머스를 떠나온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가 정착했던 곳은 라그나로크였습니다. 제국을 향해 목소리를 내려 하는 그들이 멋있고 좋아서 어느 순간부터 저도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른 그들의 모습에 실망했고 또 야속한 마음이었습니다.”
“…….”
“그러던 중 이렇게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을 만나게 되었고, 저는 그 분을 한 번 겪어봤으면서도 따르겠다 맹세한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사람을 보는 제 눈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거기다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까지 들었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공민님께서 원하신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군.”
“후후, 좋습니다. 그 마음 늘 간직해주시길 바랍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고민하고 움직이는 레기온과 유운량을 보며 한니발은 신기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광경이기도 했다.
“이제 보니 두 분이 서로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음? 우리가?”
한니발의 말에 레기온이 유운량을 돌아보았다.
유운량은 기분 좋은 말이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레기온이 고개를 저어보였다.
“우리는 비슷한 듯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음? 저희가 달랐던가요? 무엇 때문에 그리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유운량 씨 당신은 주군께 있어서 ‘균형’입니다.”
“흐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궁금하군요.”
“주군의 곁에 당신이 있다면 주군께선 언제든지 제자리를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당신이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요. 아마 지금까지도 그래왔을 겁니다. 그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레기온님 당신은 주군께 무엇입니까?”
“저는 주군의 ‘분노’가 되겠습니다.”
“분노라… 어떤 의미에서 주군의 분노가 되시겠다는 말씀이신지…….”
유운량의 질문에 레기온은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했다.
그는 곧바로 답하지 않고 잠시간의 뜸을 들였다.
덕분에 그의 답이 궁금해진 한니발도 곁에 한 발짝 붙어 섰다.
그러나 레기온은 이내 답을 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자, 이제 알아내고 싶은 것은 알아내었으니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으음…….”
유운량은 무언가 짚이는 바가 있는 듯 했으나 굳이 입 밖으로 그 생각을 꺼내진 않았다.
한니발도 굳이 더 물으려 하지 않았다.
한편 멀리서부터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칼라반이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나의 분노라…….”
[이름 : 칼라반전투력 : 475800
LV : 160
직업 : 아수라 ―중급 무인 (패시브 직업 : 중상급 어둠의 정령술사.)
근력 : 248
민첩 : 204
지력 : 235
행운 : 148
미분배 스탯 : 0pt.
보유 스킬 ―수라윤회심공 / 수라마공 3성 / 금강지체(중급) / 만독지체 / 경공술 (중급)/ 심마안 / 여명의 검술 / 천리지청술
칭호 : 정령들의 축복을 받은 자 / 던전 슬레이어
마령환 흡수율 ―75%]
눈을 뜬 칼라반의 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그래도 꾸준한 노력 덕분에 어느덧 레벨은 160에 접어들었다. 게다가 어느덧 마령환의 반절 가까이를 흡수해 내공도 엄청나게 늘었다.
내공 1만이 무협에서 말하는 1년 치의 내공수준이라고 했는데, 그의 내공은 벌써 100만을 웃돌고 있었다.
이는 한 갑자(甲子)하고도 40년 치의 내공을 넘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마 마령환과 수라윤회심공 그리고 어둠 정령술사로서의 능력까지 더해진 덕분일 터였다.
게다가 이제는 상급 어둠 정령인 아페티를 소환할 수 있게 되면서 전투력도 훌쩍 뛰어버려 이제는 50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만큼이나 전투력이 높아지다니… 생각 이상이로군. 시스템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그들을 상대하려면 겨우 이 정도 힘으론 안 돼. 세력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나 또한 더욱 강해져야 한다.”
칼라반은 슬슬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문득 그는 일전에 아라카인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이클립스의 존재도 있었지만 사실 칼라반의 흥미를 더욱 끌었던 것은 바로 마검의 존재였다.
“마검이라… 그러고 보니 그 여자도 마검을 사용했었지 않나…? 하긴. 그것은 라카이 왕국의 보물이었으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아닐 테고… 하지만 만일 정말 마검이 존재한다면 쉽게 넘길 수는 없겠어.”
마검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경험해봤던 칼라반이기에 마검이 얼마나 강한 위력을 지닌 무기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만큼 이슈하르트라는 블레이드가 왜 마검을 탐내 했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나였다면 마검의 존재에 욕심내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찌할 것인가?”
아직 상황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은 이제 접어두기로 했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이 하나라도 보인다면 그것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질 않았는가.
만약 마검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칼라반은 망설임 없이 찾아 나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죄수호송차에 관한 일이 먼저다. 그것부터 빠르게 해결하면… 다음은 어나니머스가 되거나 트라이어던스 던전의 괴물 녀석이 되겠군.”
칼라반은 잠시나마 차후의 일들에 관해 어떻게 단계를 밟아나갈지 고민에 잠겼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험난한 길이 열릴 거라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