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1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12화
#시험의 시작
중년인의 말은 다른 어느 때보다 살기가 묻어났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였고 또 그만큼 칼라반을 죽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할 거란 얘기였다.
이는 다른 어쌔신들도 마찬가지인 듯 여기저기 들끓는 살기에 온 피부가 저릿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정도에 움츠러들거나 할 칼라반이 아니었다.
그는 어나니머스 어쌔신들과 당당히 마주했다.
“시험은 언제부터 시작이지?”
“일주일 뒤. 괜찮겠나?”
“아니,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겠다. 가능한가?”
“호오…? 이곳꺼정 오는데 힘들었을 텐데. 좀 휴식을 취하다 시작하지 그려? 굳이 죽을 날을 앞당길 필요는 없지 않나?”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칼라반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의 주인이 될 날을 앞당기려는 거다.”
“이것 참 기대되는군 그려. 알겠네. 굳이 말리진 않을겨. 편한 대로 하시게.”
“그러고 보니 이름조차 모르는군. 이름이 뭐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어쌔신에게 이름이 중요하겠냐마는… 그래도 물어봤으니 알려주겠네. 내 이름은 오만이여.”
“오만이라… 기억해두지.”
“기억하는 것도 살아남아야 가능한겨.”
오만이 돌아서기 전 다시 한 번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가락 끝은 칼라반이 아닌 레기온을 향하고 있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네가 죽는 순간 그 옆에 있는 친구도 함께 죽는 것이여. 어나니머스의 무대 뒤편을 본 이상 선택은 단 두 가지. 죽거나 이곳에서 살아가느냐니까 말이여.”
“명심하도록 하지.”
“껄껄! 그럼 재주껏 살아남아보더라고.”
오만은 이제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가 떠나가고 남아 있는 어쌔신들은 한동안 칼라반과 레기온을 주시했다.
“우릴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네.”
“어떻게 죽여주지? 어떻게 죽여야 만족스러울까?”
“크흐흐… 어차피 저 자는 1관문도 통과하지 못할 거다.”
“시작부터 울며불며 다시 꺼내달라 비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제발 1관문 정도는 통과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오래간만인데 우리도 유흥은 맛봐야지.”
“어차피 우리들 무대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쌔신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이미 저질러버렸다는 생각에 한니발의 얼굴도 긴장이 가득했다.
어나니머스의 실력이라면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니발이었기에 더욱 굳은 얼굴이었는지도 몰랐다.
특히나 이번처럼 어나니머스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무대라면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 오만이 한니발을 향해 물었다.
“아들내미. 너는 어디 입장에 설 생각이여?”
“저야 당연히…….”
한니발의 시선이 칼라반에게로 향했다.
그의 시선을 읽은 오만이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 네가 편한대로 해야지.”
그리곤 뒷짐을 지며 물었다.
“어떠냐. 네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자로 보이더냐?”
“공민님 말씀이십니까?”
“이름이 공민이여?”
“그렇습니다.”
“근데 뭣 허는 놈이여?”
“아버지께서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제국 심연에 존재하는 라그나로크에 대해서요.”
“라그나로크라면… 제국에 반하는 자들 아녀? 거기에 속한 자더냐?”
“예. 그곳의 블레이드가 되실 분입니다.”
“호오… 블레이드라… 그 말은 제국을 겨눌 칼이 되겠다는 말인데…….”
오만은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그렇지 않아도 아크로이어 황제를 죽이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정체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 예상하긴 했었다.
그런데 막상 상대가 라그나로크에 속해 있는 자라는 얘기를 들으니 더더욱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내심 씁쓸해지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말하는 새로운 바람이… 우리 어나니머스가 결국 제국을 겨눌 비도가 되는 것이더냐?”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예. 그러나 제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아버지께서 공민님을 직접 경험해보시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제가 공민님에게서 본 것을 아버지께서도 함께 보실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흐음… 그려. 백 번 듣는 것보다야 한 번 보는 것이 낫겠지. 어디 한 번 내 아들내미의 눈썰미 좀 봐야겠네.”
“얼마든지요. 주군이시라면 분명 모든 관문을 통과해내실 겁니다.”
“껄껄! 그거 재밌는 얘기로구만. 지금까지 시험을 치렀던 사람들 중 저 사내보다 강한 자가 없었을 것 같으냐?”
“있었겠죠.”
“그렇지. 근데도 그렇게 생각 하는 겨?”
오만이 눈매를 좁혔다.
그의 물음에도 한니발은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물론입니다. 아버지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단순히 강하다고 해서 어나니머스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순 없다는 것.”
“그건 그렇제. 하지만 너는 모른다. 그곳의 진정한 무서움을 말이여. 물론 모르는 것은 저 치도 마찬가지고…….”
“아버지께서도 아직 저 분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결과는 모르는 겁니다.”
“그려, 그려. 그런데… 아직도 이 아비를 원망하고 있느냐?”
“…….”
한니발은 오만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이내 오만의 시선을 피했다.
“네 마음은 이해혀. 그렇지만… 기회가 왔다고 해서 무작정 달려들기만 해선 안 되는 겨.”
“아뇨… 아버지와 다른 분들의 말씀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때 함께 나섰어야 했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아요. 세상에 좀 더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 어나니머스의 힘을 알렸더라면… 이런 땅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진 않았을 테죠. 저희보다 못한 놈들조차 시시껄렁한 암살 의뢰를 받아가며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어째서 그들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 우리가 이렇게 지내야 합니까!?”
“그렇구먼…….”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다른 삼촌들의 결정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네가 죄송할 필요가 뭐 있더냐. 오히려 우리들이 미안해해야지. 아들내미 너뿐만이 아녀. 이곳에 살아가고 있는 젊은 어쌔신들은 다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겨. 다만 우리들의 뜻이 워낙 강경해 따를 뿐…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여. 그러니 그런 생각할 것 없어.”
“…감사합니다, 아버지.”
“재밌겠구먼. 이번 시험은…….”
오만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그는 이만 발걸음을 돌렸다.
칼라반이 어나니머스의 마스터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결정 나자, 이곳으로 모인 어쌔신들도 하나둘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니발은 아버지인 오만과 함께 가지 않고 칼라반의 곁에 남았다.
그는 칼라반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자신이 머물던 집으로 안내했다.
“어머니!”
오만과 다르게 세월을 빗겨간 모습의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한니발을 반겨주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하고 정갈한 차림을 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한니발은 성큼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너무 오랜만에 들린 것 아니니?”
“죄송해요.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네 아버지가 이곳의 정리를 부탁했단다. 그래도 오랜만에 아들이 돌아왔는데 먼지 쌓인 집에서 재울 순 없다면서.”
“아아…….”
“너랑 그렇게 말다툼하긴 했어도 아버지는 계속해서 네가 언제 돌아오나 기다리고 계셨어. 혹시나 네가 돌아오진 않았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네가 머물던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단다.”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니야. 나는 네가 이렇게 몸 성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쁘단다.”
한니발의 손등을 쓰다듬던 여인이 칼라반과 레기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두 분이 소문의 손님들이신가 보군요. 처음 뵙겠어요. 저는 아르사라고 합니다.”
“공민입니다.”
“부족한 제 아들이 두 분께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만… 모쪼록 제 아들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칼라반과 레기온도 덩달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르사는 처소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남기고 금방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녀가 깔끔히 정리해준 덕에 칼라반과 레기온도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공민님.”
한니발의 부름에 칼라반이 그를 돌아보았다.
“어나니머스의 마스터 시험은 공민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혹독할 겁니다. 물론 저는 공민님께서 무사히 시험을 통과해내실거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고맙다.”
“그렇지만 걱정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말씀드립니다. 어나니머스의 마스터 시험이 치러지는 무대는… 그러니까 그 탑은 다른 경우와 차원이 다릅니다. 보통 바깥에서 무대를 꾸리는 것과 다르게 그곳은 어나니머스의 어쌔신들이 오랫동안 길들여온 무대입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장소인만큼 어디서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릅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말이 있다.”
“예…? 그게 무슨…….”
“나 자신을 믿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만에 하나―”
“걱정마라 한니발. 나는 내 모든 것을 다해 시험에 통과할 것이다. 그럴 만큼 어나니머스의 힘은 매력적이니까. 설사 내가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겨우 그런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니까. 어나니머스조차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제국의 황제인 그 녀석에겐 나의 손길조차 미치지 못할 거다. 그러니 나는 이번 일에 사활을 걸고 나선 것이다.”
“…알겠습니다. 저는 주군을 믿습니다!”
“저도 주군을 믿습니다. 게다가… 이제야 생각났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주군께 암살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죠. 물론 어나니머스를 다른 어쌔신들과 비교할 순 없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기회라 생각되는군요.”
레기온의 말에 이번엔 한니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이 선뜻 이해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불쾌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 또한 어나니머스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던 까닭이다.
“레기온님 암살이 불가능하다니…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글쎄… 과연 그럴까.”
레기온은 혼자 의미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칼라반이 믿는 구석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을 터였다.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독이나 다른 종류의 것들에는 취약하시질 않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문제없을 거다.”
칼라반이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함께 있으면서도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한니발은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게도 설명을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궁금합니다.”
“말해주마.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후 어나니머스가 나의 그림자가 되었을 때, 그때 얘기해주겠다.”
“아…….”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칼라반은 홀로 명상에 잠겼고 다른 두 사람은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거대한 철문 앞에서 칼라반은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탑이 그의 눈앞에 태산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곁으로 오만이 다가섰다.
“보아하니 밤잠을 설친 것 같은데… 어째, 자신 있는 겨?”
“자신 없다.”
“음……?”
“시험을 통과해내지 못할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칼라반은 거침없이 거대한 철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런 칼라반의 뒷모습을 보며 오만은 그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나니머스의 시험을 눈앞에 두고 저런 여유를 부리는 겨…? 껄껄! 재밌는 친구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