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13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13화
#어나니머스의 무대
쿠르릉―!!
콰앙!!
칼라반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활짝 열려 있던 철문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닫혔다.
시험에 관한 전반적인 얘기는 미리 전해 들어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시작이로군.”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쿵쾅거리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는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었다.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성장하던 때와는 달랐다.
이곳은 어나니머스가 만들어놓은 무대.
어나니머스가 누구인가.
한때 제국 황실이 극비리에 키운 나이트워커와 함께 최강의 암살 집단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그런 어나니머스의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런 위험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칼라반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공포나 두려움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기대와 흥분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제정신은 아닌가보군.”
칼라반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지어보였다.
근래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진 자신을 느낄 때가 많았다.
“무공을 배웠기 때문인가, 아니면 오로라 시스템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한 번의 죽음을 겪어봤기 때문일까.”
그는 손아귀를 쥐었다 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무렴 어떠랴. 이렇게 바뀐 것 또한 결국 자신의 모습이었다.
“계속해서 나아가면 그뿐이다.”
가볍게 생각을 정리한 칼라반은 커다란 석문 앞에 섰다.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석문 이외에 별다른 것이 보이진 않았다.
그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조심스레 석문을 밀어보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석문은 조용히 열렸다.
“뻔한 것은 안한다는 건가?”
함정이라도 있을 줄 알았건만 석문은 순순히 밀려났다. 그리고 석문 너머에 드러난 광경은 양쪽 벽면이 막힌 길이었다.
그는 천천히 문 안으로 들어섰다.
덜컥!
순간 오른쪽 발을 디딘 부분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밑으로 꺼졌다.
슈웅!
후우웅!!
그와 동시에 날아든 암기가 칼라반의 목을 노렸다.
칼라반은 재빨리 몸을 비틀어 날아드는 단검들을 피해내었다.
철컥!
그가 상체를 비틀자마자 땅에서 한 자루의 창이 솟아올랐다.
“헙!”
날카롭게 벼려진 창날이 칼라반의 머리칼을 스쳤다. 잘려진 몇 가닥의 머리칼이 허공을 날았다.
순간적인 위험에 칼라반도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다시 한 발자국 내밀었다. 이번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다시 몇 걸음. 그러나 주위는 고요했다.
그가 안심하고 벽에 손을 짚자 이번에도 무언가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슈슝―!
슝!!
어김없이 날아든 암기가 칼라반을 노렸다.
그나마 이번엔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었다.
“이런 거였군…….”
무협지에서 읽었던 것으로 떠올리면 이곳에 있는 것들은 기관진식.
즉, 이 길 곳곳에 자신을 죽일 수 있는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눈앞엔 갈림길까지 보였다.
“설마 이곳은 미로인건가……?”
당장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다.
만약 이곳이 미로로 되어 있는데다 곳곳에 이런 살상용 함정들까지 설치되어 있는 것이라면 상당히 고약한 일이었다.
“미로 때문에 길을 헤매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런 함정들까지 계속해서 마주하게 된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 일이겠어. 그렇지만…….”
칼라반이 슬쩍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발밑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 눈동자들이 드러났다.
[최하급 어둠의 정령 둠(까망이)이 소환되었습니다.] [최하급 어둠의 정령 둠(까망이)이 소환되었습니다.]…….
그의 부름에 응한 까망이들이 칼라반의 발밑으로 모여들었다.
어떤 녀석은 어느새 칼라반의 어깨에 올라타 아양을 부리고 있었다.
“상대를 잘못 골랐군. 까망이들아 이번에도 부탁한다.”
―끼루!!
―끼룩!
칼라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까망이들이 어둠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주변에 번져있는 어둠을 타고 빠르게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까망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수라윤회심공을 운기하고 있어볼까.”
칼라반은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함정들도 발동하진 않을 터였다.
그는 곧바로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명상 상태에 접어듭니다.] [스킬 수라윤회심공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마령환의 흡수율이 빨라집니다.] [내공의 증진이 이루어집니다.]까망이들을 기다리는 이 잠깐의 시간조차 허투루 보내기엔 아까웠다.
생사가 달린 일이니만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태에서 시험을 치러내고 싶었다.
이곳 1관문 외에 또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아야 했다.
한편 멀리서 이런 칼라반을 지켜보고 있던 인영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그대로 바깥의 오만과 다른 이들에게 이 같은 상황을 전해주었다.
“뭐여? 미로에 들어갈 생각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이나 하고 있다고?”
“예. 입구에 설치된 함정들을 맛본 뒤론… 앉아서 두 눈을 감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허어? 이것 참 종잡을 수 없는 사내로구먼… 하긴, 뭐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니 상관은 없지만은… 시간이 길어지면 불리한 것은 오히려 본인일 텐데.”
상황을 전해들은 오만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어쌔신들도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겁을 집어먹기라도 한 건가?”
“멍청하긴. 겁을 집어먹었으면 그곳에서 꺼내달라고 소리라도 쳤겠지. 그냥 1관문의 파훼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가만히 앉아서?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미로에 대해 아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우리가 지켜볼 수 있는 곳도 1관문까지니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자고.”
“어차피 시험은 돌이킬 수 없다. 이제와 후회해봤자 늦었지.”
몇몇 어쌔신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면 칼라반이 보인 행동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레기온과 한니발은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오만이 눈매를 좁혔다. 그러나 이후의 상황은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별다른 보고 없이 흘러가는 시간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일각에선 곧 칼라반이 포기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괜히 복잡하게 이루어진 미로에 발을 디디며 함정들을 마주하는 것보다 결국 파훼법을 찾지 못해 스스로 나올 것이란 얘기였다.
그러나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칼라반이 안으로 들어서기 전 그만한 자신감을 보였던 만큼 뭐라도 해볼 것이란 의견이 더 분분했다.
그리고 마침내 초입 부분에 있던 어쌔신 한 명이 다시 빠르게 이곳으로 다가왔다.
“오… 이제 결과를 알 수 있겠구먼.”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오만도 몸을 일으켰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레기온과 오만도 어쌔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곳으로 급하게 날아온 어쌔신은 상급 어쌔신으로 어나니머스에서도 제법 실력 있는 사내였다.
그는 단숨에 오만의 앞까지 다가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 사내는 무얼 하고 있던가?”
“마침내 움직였습니다.”
“움직였다? 앞으로 간 것이여. 아니면 끝내 돌아선 것이여?”
“앞으로 향했습니다.”
“호오… 그래도 배포는 있는 친구였나. 생각을 마친 모양이로군? 그런데 너는 표정이 왜 그런 것이여?”
오만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눈앞에 있는 어쌔신은 마치 귀신이라도 보고 온 것처럼 동그란 눈을 하고 있었다.
“그…그게…….”
상급 어쌔신은 당황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 생각해봐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졌었기 때문이다.
“뭔데 그러는 겨? 뜸들이지 말고 말을 혀.”
“지금 그 자가 미친놈처럼 미로를 휘젓고 있습니다.”
“으음…? 뭐…뭔 놈처럼?”
오만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나 사내는 자신의 말을 번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번뜩 떠오르는 단어는 그것밖엔 없었다.
두 눈을 감고 오랫동안 기묘한 자세로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던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한 시간쯤 전이었다.
반나절가까이 생각에 잠겨 있었던 그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니, 사실 발걸음을 내딛는 정도가 아니었다.
분명 미로 안에 수많은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 그 자는 빠르게 몸을 날려 이동 중이었다.
그의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과감하다면 과감하다 말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겐 그저 미련한 행동으로 보일 뿐이었다.
반면 레기온은 역시 그가 알고 있는 칼라반 다운 행동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거 진짜 미친놈을 들인 것 아녀…? 수많은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는 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빠르게 몸을 날리고 있다는 말이여? 거기다 그곳이 미로인 것은 그 자도 잘 알고 있을 것 아녀. 이거야 원… 그래서 그 자가 어디까지 간 거여?”
“그게… 벌써 사분의 일을 넘어섰다고…….”
“뭐여!?”
사내의 말에 이번엔 오만마저도 놀라고 말았다. 그가 이렇게 언성을 높이긴 처음이었다.
첫 번째 관문은 자신도 도전해 본적이 있었기에 그곳이 얼마나 어려운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설사 길을 외우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곳은 곳곳에 설치된 함정들 때문에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지금껏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인 이도 그곳을 그렇게 빠르게 주파하진 못했었다.
“미쳤구만… 다른 의미로 미친겨…….”
오만이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그의 뒤편에 서 있던 젊은 어쌔신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신흥 세력을 이끌어가고 있는 상급 어쌔신 중 한 명이었다.
“대장님.”
“뭐여?”
“혹시 미로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미리 정보를 넘겨준 것은 아닐까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어라. 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겨?”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저 자가 왜 이렇게 자신만만해 했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혹시 들어가자마자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것도 사실은 미리 전해 들었던 내용들을 상기해내기 위한…….”
“클클, 그려. 네 말대로 백번 양보해서 미로와 함정을 설치한 이들 중 누군가가 아주 따끈한 최근 정보를 넘겨주었다 치자. 그래서 저렇게 빠르게 1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해보자고. 저 엄청나게 큰 미로에 관한 방대한 정보들을 머릿속에 모두 박아둔 채로! 그런데 말이여, 그 다음 관문부터 그런 요행이 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건…….”
“나도 운 좋게 2관문을 들여다본 사람이여. 그리고 그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2관문부터는 차원이 달러.”
어느 누구도 오만의 말에 반박하고 나설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운 좋게 1관문에 대해 알아왔다 하더라도 2관문부터는 본인들조차 모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어나니머스 마스터에 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말끝을 흐린 오만이 한니발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애초에 이 시험은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여…….”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지……!?”
한니발의 물음에도 오만은 차가운 태도로 몸을 돌렸다.
돌아선 그의 눈빛은 차가운 암살자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걸어 나가자 나머지 어쌔신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당황한 한니발이 곁에 있는 페브르를 붙잡았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우리는 가장 위층으로 갈 거다.”
“그곳은 왜…….”
“시체가 되어 올라올 그 자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