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1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14화
#검사의 경지
한편, 빠른 속도로 미로를 통과하고 있는 칼라반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암기들은 엄청난 속도로 그를 위협했다.
암기들을 정신없이 피하고 있으면 갑자기 땅이 꺼져버리거나 벽이 밀려나는 등 다양한 함정이 동시에 발동되었다.
휘이잉!!
카앙!!! 카가강!!
칼라반은 날아오는 단검들을 검으로 쳐내면서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끼루룩!
―끼루끼루!
그의 앞에선 어둠에 몸을 맡긴 까망이들이 신나서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미로가 어찌나 넓은지 까망이들을 이용해 미리 길을 알아보는 것만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까망이들은 끝내 미로의 탈출구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 까망이가 돌아오자마자 칼라반도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곳에 어찌나 많은 함정들이 숨어 있는 것인지 그가 지나가는 통로마다 곳곳에 준비된 함정들이 그의 목숨을 노렸다.
“나름대로 수련이 되는 느낌이군.”
계속해서 함정들을 마주하다보니 칼라반은 어느새 이것도 수련의 일부라 여기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집중했다.
이미 심마안을 발동시킨 상태였고, 천리지청술과 새롭게 익힌 기감(氣感) 스킬까지도 활성화 시킨 상태였다.
그 덕분인지 암기가 여기저기서 날아듦에도 불구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미로 초입부분에선 갑자기 날아드는 암기들을 피하고 쳐내느라 진땀을 뺐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천리지청술 스킬의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암기가 발사되는 소리를 듣고 그 위치까지 어렴풋이 파악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암기가 발사되는 곳이 어디인지만 알아내도 이곳으로 날아오는 각도 같은 것을 예측해 피해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감 스킬 덕분인지 가끔씩 벽 너머나 발 아래로 텅 빈 공간이 있음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벽이 움직이거나 바닥이 내려앉는 등 여러 함정들이 발동되었다.
마치 본능처럼 익혀지는 스킬들에 칼라반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그렇게 차츰 스킬들의 숙련도가 높아지며 익숙해 지다보니 어느새 능숙한 대처들을 해내고 있었다.
타앙!!
“이번엔 오른편!”
그는 소리만 듣고도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움직였다.
그러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석궁 한 발이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덜커덩!!
“뒤쪽인가?”
빠르게 돌아서자 역시나 날카로운 송곳들로 도배된 철판이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를 가까스로 피해낸 칼라반이 다시 몸을 돌렸다.
함정이 발동되면서 또다시 미로의 길이 변형되고 말았다.
그러나 변형된 길에 맞게 까망이들이 다시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까망이들이 표시해주는 길로 발을 내딛었다.
난이도를 높이듯 점차 속도를 더해가다 보니 어느새 미로의 끝에 다다르게 되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이자 칼라반은 입맛을 다셨다.
“훈련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는데… 조금 아쉽군.”
아마 다른 어쌔신들이 이 말을 들었더라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을 것이 분명했다.
남들은 생사를 오가는 지옥 같은 미로 관문을 칼라반은 훈련장으로 여기고 있었으니.
게다가 그의 행색이 멀쩡한 것도 아니었다.
초반의 시행착오 때문에 여기저기 옷이 찢겨져나가고, 암기에 베인 상처들은 말라붙어 피딱지가 앉아 있는 상태였다.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가부좌를 틀며 잠시나마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소진한 내공을 조금이나마 보충해두기 위함이었다.
까망이들은 비장한 얼굴로 칼라반의 곁에 모여들었다.
칼라반의 운기행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그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별다른 위험에 노출될 일은 없었다.
짧게나마 운기행공을 마친 칼라반은 그대로 2관문을 향해 전진했다.
계단에 오르니 눈앞에 2관문으로 들어서는 철문이 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철문을 열어 2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음…….”
그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옅게나마 스며드는 빛조차 없어 말 그대로 사방이 칠흑이었다.
“그렇군… 이게 2관문인가.”
다른 이가 이곳으로 들어섰다면 그야말로 공황(恐惶)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라 한 치 앞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갑작스럽게 이런 상황을 맞이한다면 그 누구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칼라반이었다. 그에게 어둠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만드는 존재였다.
제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에 칼라반은 가볍게 호흡을 골랐다.
그는 천천히 내공을 운기해 두 눈에 집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히 보이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사위(四圍)를 분간할 정도는 되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그는 우선 주변에 손을 뻗어보았다.
혹시나 이곳도 미로처럼 통로로 된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딱히 그의 손에 짚이는 것은 없었다.
허공에 몇 차례 손을 휘젓던 칼라반은 이내 팔을 거두었다.
“넓은 공터 같은 느낌인데…….”
―왕이시여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가 다가옵니다.
그때 어둠속에 있던 어둠의 정령들이 칼라반에게 경고를 보내왔다.
이에 칼라반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그의 시선에 들어오는 붉은 눈동자들이 있었다.
“크르르르…….”
“크르릉…….”
낮게 울리는 울음소리에 칼라반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주 익숙한 울음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로울링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갑작스레 나타난 메시지에 칼라반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그로울링……?”
그가 당황하는 사이 피 냄새를 맡고 이곳으로 모여든 그로울링들이 붉은 눈동자로 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어둠을 이용해 철저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또록! 뚝!
그로울링의 울음소리와 함께 침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칼라반은 천천히 허리춤의 검을 빼들었다.
―저희를 불러주십시오.
―저희가 돕겠습니다.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한 탓인지 어둠 정령들의 힘이 강해져 연신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칼라반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내 시험이다. 편하자고 너희들에게만 맡길 순 없어. 성장하기 위해선 나도 직접 부딪히며 경험해야 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곳이 던전인 이상 그로울링들을 죽이면 그만큼 경험치가 오르기도 할 터였다.
과거의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어둠의 정령들이 몬스터를 죽일 때 안타깝게도 평소보다 훨씬 적은 경험치가 들어왔다.
이곳에 있는 그로울링들이 얼마나 많은 경험치를 줄진 모르겠지만, 최대한 자신이 녀석들을 죽여야 경험치를 온전히 획득할 수 있을 터였다.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비밀 던전을 발견한 기분이 이런 건가?”
굳이 따지자면 그런 격이었지만 어쨌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칼라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어나니머스를 취하러 왔다가 나 또한 많은 성장을 이루겠어… 이건 정말 뜻하지 않은 행운이로군.”
더는 기다려주지 않겠다는 듯 그로울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먹이를 노리는 녀석들의 움직임은 훨씬 기민하고 날렵했다.
“크릉!!”
“어디 한 번 덤벼봐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그로울링이 잽싸게 칼라반의 상단을 노리고 들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검날이 녀석의 목을 사정없이 베어버렸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일단 한 놈.”
이곳의 특수한 환경 탓에 상대하기 까다롭긴 했지만 다행이 강한 몬스터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목이 잘려나간 그로울링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늑대……?”
그로울링은 영락없는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아는 늑대들보단 조금 더 큰 덩치를 갖고 있었고 날카로운 송곳니도 오크들만큼이나 두드러져 있었다.
“크르릉―!!”
“컹!!”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그로울링이 더욱 흉포한 울음을 토해내며 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칼라반은 내공을 끌어올리며 검을 다시 한 번 꽉 쥐었다.
그러자 그의 검에서 새하얀 검기가 피어올랐다.
“연환칠검!”
[스킬 연환칠검을 발동합니다.]칼라반이 만들어낸 검기가 일곱 번의 환(環)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러자 그를 덮쳐오던 그로울링들이 거친 울음을 토해내며 우후죽순으로 쓰러져버렸다.
칼라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검기를 운용했다.
그로울링들도 계속해서 칼라반을 향해 달려들었다.
칼라반의 검기가 선을 그릴 때마다 그로울링들의 피가 함께 허공에 뿌려졌다.
검술의 태(態)를 유지하며 검기를 발산하던 그가 자연스레 검신을 허리선으로 당겼다.
“반월참!”
그의 검이 횡을 그리자 새하얀 검기가 반월 모양으로 뻗어나갔다.
“크웡!!”
“아우우―!!”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십 수 마리의 그로울링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붉은 눈동자들은 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쯤 되면 칼라반에 대한 공포를 느낄 법 하건만 녀석들은 오히려 사나운 본성을 드러내며 칼라반을 노리고 있었다.
“만만치 않겠군…….”
칼라반은 검술에 검기를 더하며 그로울링들을 사냥하다시피 했다.
그로울링들의 숫자가 워낙 많다보니 검을 휘두르는 것 또한 멈출 수 없었다.
콰득!!
[금강지체 스킬이 데미지를 완화시킵니다.]그로울링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갗을 파고들려 할 때마다 금강지체 스킬이 발동되었지만 고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들의 송곳니가 스치거나 살점을 물어뜯을 때마다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금강지체 스킬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치명적인 상처로 남을 뻔했다.
“후웁!!”
검을 휘두른 칼라반이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주먹을 내질렀다.
[스킬 질풍수라권을 시전 했습니다.]파앙!!!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그를 물어뜯었던 그로울링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그로울링들의 공격은 그에게 잠시의 틈도 주지 않았다.
덕분에 칼라반은 검술을 펼치면서도 권과 각(脚)까지 사용해야만 했다.
“후우… 후우…….”
수라파천공과 여명의 검술을 연달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천리지청술과 기감 스킬까지 활성화 시켜놓으니 칼라반도 점점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몇 차례나 허용한 그로울링들의 공격에 그의 몸에선 여기저기 붉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로울링들의 공격으로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한 몸은 칼라반으로 하여금 또 다른 성장에 들게 만들어주었다.
그동안 이렇게까지 극한의 상황 속에서 검을 휘두른 적이 없었기에 칼라반은 본능적으로 검술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내고 있었다.
어차피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그로울링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칼라반은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로울링과의 치열한 사투 속에서도 자신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칼라반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지없이 빈틈을 파고드는 그로울링들을 상대하며 자신의 검술을 차츰 가다듬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검은 무아의 경지로 빠지듯 본능에 맡겨졌다.
‘아직 부족하다……!’
손 마디마디가 저릴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금방이라도 검을 놓쳐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턴 마치 검과 손이 하나가 된 것처럼 자연스러워짐을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끝에서 뻗어 나오던 검기가 한층 얇아지며 가느다란 실선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슈콰아앙―!!!!
스가각!! 서걱!!
그 순간 그물처럼 퍼진 얇은 검기 다발이 사방에 있는 그로울링들을 단숨에 난자해버렸다.
칼라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수라에게 배웠던 검술을 펼쳤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실처럼 얇아진 검기 다발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동시에 그로울링들의 피가 허공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검기상인의 상승 경지인 검사(劍絲)를 익혔습니다.]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오른 줄도 모르고 칼라반은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 계속해서 검술을 펼쳐나갔다.
그런 칼라반의 모습은 마치 전장 속의 수라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멈춰 섰을 땐 더 이상 살아 숨 쉬는 그로울링은 단 한 마리도 남아 있질 않았다.
그가 서 있는 대지는 그로울링의 붉은 피로 흥건했고, 칼라반 또한 온 몸이 붉은 피로 뒤덮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