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2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24화
#그들의 참전
“취륵!”
“취에엑!!”
오크들이 더욱 포악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물러나는 인간들을 보며 본능적으로 자신들에게 승기가 기울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눈앞에는 잔뜩 겁에 질린 병사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들의 얼굴을 보며 오크들이 미소 짓기 시작했다.
이제부턴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파박!
스각―! 촤라악!
“크악!”
“끄억……!”
둔탁하거나 날카로운 소리가 울릴 때면 여지없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설상가상으로 뒤늦게 합류한 하이오크들도 서서히 무서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이오크들은 일반 오크들보다 훨씬 날렵하고 강인한 힘을 드러내며 기사들과 병사들을 짓이겨버렸다.
그들의 무기들이 갑옷에 부딪힐 때마다 거친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하… 하이오크들이다!”
“하이오크들이 다가온다!”
오크들을 상대하며 천천히 물러나던 용병들에게도 하이오크들이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눈앞의 오크들보다 먼발치서 차례차례 밀려오고 있는 하이오크들을 더욱 경계했다.
“조금만 더 버틴다!!”
“동료들이 무사히 물러날 수 있도록 버텨내는 거다!”
남아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의 수가 반절이나 줄었건만 힌드로케 백작군의 군사들은 여전히 악에 받힌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들은 두려움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가며 끝까지 오크들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이를 본 용병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저들은 여기서 개죽음이라도 당할 생각인가?”
“그래도 같은 제국 사람들인데… 여기서 저렇게 죽게 두기에는…….”
“지금 남 걱정할 때야? 당장 우리가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데? 사람 살리자고 몬스터들 죽이려는 것 아니야!?”
결국 망설이던 용병들은 하나둘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고 말았다.
이곳에 모인 용병들 상당수가 레비카얀에서 오래 머문 자들이다 보니 이곳 병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면 살 수 있소! 일단은 여기서 살아나가야 할 것 아니오!”
“저 말이 맞다! 이미 힌드로케 백작군은 안전거리까지 물러났어. 이제는 우리가 물러나야 할 차례야!”
백작군의 근처로 다가드는 오크들을 빠르게 베어낸 용병들이 오히려 백작군 군사들을 뒤쪽으로 물러나게 했다.
다리가 다쳤거나 부상이 심한 자들은 양쪽에서 부축하여 뒤쪽으로 옮겨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저희들까지 이렇게 챙겨주시고…….”
“여기 계시면 모두가 위험합니다. 저희는 어차피 목숨을 바치기로 한 자들입니다. 차라리 저희를 버리고 여러분들이라도 도망가시면…….”
목숨을 빚진 기사들과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 감사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꾸역꾸역 후방으로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연신 감사 인사를 표했다.
“같잖은 소리 마라.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제국민들이 저런 흉물스런 오크놈들에게 짓밟히고 유린당하는 꼴은 못 봐. 그래서 구해주는 거려는 거야. 가끔 동료나 수하들을 버리고 가는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이 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지 않겠나?”
푸른 연어 용병단의 대장 클라움이 커다란 오크를 한번에 베어내며 말했다.
그는 연이여 두세 마리의 오크들을 더 베어내며 다른 오크들이 동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래서 우리 대장이 좋다니까!”
“그럼그럼! 우리가 비록 돈 받고 용병질을 하긴 하지만…! 사람 죽이는 못된 몬스터들 죽이려고 하는 것도 있는데 당연히 이래야지!”
“좋아! 까짓 것 최대한 많이 구해보자고!”
푸른 연어 용병단의 단원들도 클라움을 따라 더욱 앞으로 나서며 오크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들의 날선 기세에 오크들의 맹공도 한풀 꺾이는 듯 했다.
“야 인마들아 푸른 연어 용병단만 멋진 일 하게 둘 거냐!?”
“아닙니다! 그건 우리 톡시 용병단에게 수치죠!”
곁에서 함께 싸우고 있던 톡시 용병단까지 푸른 연어 용병단을 거들고 나서자 남은 용병들도 하는 수 없이 그들의 행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힌드로케 백작군뿐만 아니라 다른 용병들까지 챙기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 오크들도 아니었다.
특히나 하이오크들이 괴성을 지르며 다잡은 인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맹렬히 뛰어들었다.
그들의 강공은 순식간에 용병들의 진영을 흩으려 놓기에 충분했다.
사자 갈기처럼 머리카락이 나있는 몇몇 하이오크들은 녀석들 중에서도 단연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막아서는 용병들을 무참히 도륙내고 있었다.
“녀석을 막아!”
“저놈들이 아마 하이오크 전사들일 거다!”
저들은 하이오크 중에서도 타고난 전투 실력을 갖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을 막아내기 위해 각기 다섯 명의 용병들이 과감히 뛰어들었다.
후우웅!
퍼억!!
하이오크 전사가 힘껏 휘두른 도끼에 두 명의 용병이 허리가 꺾여나가 버렸다.
다른 용병 한 명이 녀석의 허리춤을 노리며 창을 찔러 넣었지만 곧바로 내리쳐진 도끼에 두개골이 그대로 부서지고 말았다.
용병들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하이오크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그들의 고군분투에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비힐즈 용병단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나섰으나 오크들의 공격이 워낙 거세 버텨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도 다 죽겠어! 차라리 우리라도 빠져나가는 것은 어떻겠어?”
“솔직히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나도 같은 판단이다. 저기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까지 모두 구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야. 톡시 용병단과 푸른 연어 용병단이 무리하고 있을 때가 기회야. 이 틈을 타서 빠져나가자고.”
“뭐!? 그럼 저 사람들은 어쩌고!?”
“그렇다고 여기서 다 죽을 순 없잖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살아야지!”
비힐즈 용병단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의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마르카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좋다! 우리 비힐즈 용병단은 여기서 물러난다. 어차피 힌드로케 백작이 우리를 버리고 도망친 것에서부터 이번 임무는 실패야. 이번에 못 받게 될 보수 정도야 다른 임무에서 챙기면 되는 거고. 일단 우리들의 목숨이 먼저다!”
마르카의 말에 비힐즈 용병단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오크들의 공격에 수비적으로 임하며 바깥으로 빠져나기 위해 점차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비힐즈 용병단 속에서 헤이나와 몇몇 인원들은 우뚝 서서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봐 헤이나! 방금까지 한 말 못 들었어? 여기서 물러난다잖아. 거기서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움직여!”
“그래요 언니! 지금 이 전투는 가망이 없어요. 하이오크들까지 합친 저 정도 규모라면 골드 등급의 용병단이 적어도 일고여덟 곳 이상은 있어야 할 거에요. 그런데 여기 있는 골드 등급의 용병단은 겨우 3개밖에 안 된다고요. 백작군마저 돌아선 마당에 저희가 여기를 지키고 있을 의리는 없어요.”
마르카에 이어 다른 용병들도 헤이나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짜증이 치솟은 마르카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대체 뭐 때문에 그러고 있는 거야!? 너는 지금 우리 용병단 소속이야! 다른 것보다 우선 용병단 단장인 내 말에 따르라고!”
그는 자연스럽게 헤이나의 시선이 쫓는 곳을 향했다.
칼라반과 다른 일행들도 그녀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저자들은……!”
먼저 물러난 줄 알았던 병사들 백여 명이 전장으로 합류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칼라반 군단 출신 병사들이었다.
“모두 대형을 갖춰!”
“놈들은 그저 막무가내로 싸울 뿐이다! 그럴수록 진을 갖춰서 상대하면 돼!”
그들이 돌아오자 지금껏 하이오크들과 오크들에 맞서던 용병들과 다른 군사들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용병들과 병사들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들이었다.
“여긴 왜 돌아온 겁니까?”
“죽으러 온 거요?!”
“죽긴 뭘 죽어! 다 같이 살아서 나가야지. 동료들을 버릴 순 없잖아!?”
“그래! 이렇게 물러났다간 꿈에서도 너희들 얼굴이 나온다고. 그 못생긴 얼굴들 꿈에서까지 보고 싶진 않다!”
농담 아닌 농담까지 섞어가며 그들은 용병들과 남은 병사들을 돕기 위해 앞선으로 나섰다.
그들이 먼저 오크들의 공격을 버텨내주고 뒤로 물러섰던 병력들이 다시금 공격에 나서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협공을 시작했다.
“취에엑!!”
“취륵! 취리익!”
그러나 하이오크들의 거친 고성과 함께 오크들이 일제히 밀려들면서 그마저도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칼라반도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자 레기온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움직이시지 않은 이유는 한쪽에 남아 있던 저들의 행동을 지켜보기 위함이었습니까?”
“…….”
레기온의 질문에도 칼라반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조용히 전방의 오크들에게로 향했다.
“자아… 어쨌거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되는 거지?”
잠시 칼라반을 따라 상황을 지켜보던 헤이나도 슬슬 몸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곁에 선 운량의 한 손엔 파초선이 들려 있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비힐즈 용병단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보다 못한 마르카는 방방 뛰며 헤이나의 곁으로 달려갔다.
“뭐하는 거야 지금!? 이곳을 벗어날 절호의 찬스인데 저놈들을 따라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그래요 언니! 언니까지 왜 그래요? 어서 우리를 따라와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헤이나. 저기 병사들의 합류로 분위기가 조금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곧 사기는 꺾일 거다. 그래봤자 전황이 바뀌진 않았으니까. 그러니 우선 자리를 피하고…….”
“아으… 쫑알쫑알 시끄러워 죽겠네.”
헤이나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짜증 섞인 얼굴에 비힐즈 용병단원들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헤이나의 반응이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자신들은 헤이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만류하고 있는 것인데 저런 반응이라니!
용병단원들 중에는 헤이나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자도 있었다.
다만 마르카만 한 번 참아내기라도 하듯 숨을 크게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러지 말고 헤이나. 여기선 내 말을 듣고 일ㄷ…….”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해?”
“뭐……?”
“못 들었어?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냐고.”
“잊었나!? 네가 우리 용병단과 함께 하는 동안에는 우리들의 말에 따라주기로 했잖아! 설마 그런 간단한 것조차 잊어버린 건가?”
“나도 내 동료들이 오면 언제든 떠나겠다고 했을 텐데?”
“뭐…!? 그럼 지금 저놈들이 진짜 네 동료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냐?”
“이제껏 실컷 말했는데 뭘 물어?”
“잘 생각해라 헤이나…! 우리는 혼자인 널 서슴없이 받아줬고 네가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임무의 보상을 나눠받을 정도로 편의를 봐주었다. 그런 우리를 두고 저런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에게 다시 가겠다는 말이냐?”
“생각할 가치도 없겠네.”
헤이나는 더는 두고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녀의 세찬 반응에 마르카는 그만 그 자리에서 멍해지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고민해 볼 줄 알았건만 헤이나의 반응은 그야말로 단호함 그 자체였다.
“제기랄! 네깟 년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래봤자 반반한 얼굴 믿고 여기저기 남자나 홀ㄹ…….”
“그만해 단장.”
“보기 흉하다. 너무 갔어.”
잔뜩 흥분한 마르카의 입을 서둘러 동료들이 막아주었다.
덕분에 마르카는 헤이나의 뒤통수를 향해 옹알이 하듯 소리만 고래고래 질러대고 있었다.
칼라반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헤이나가 두 다리를 멈춰 세웠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두 눈동자가 마르카를 향했다.
“네 동료들에게 감사해. 안 그랬으면 넌 당장 내 손에 죽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