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31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31화
#천외천
“부탁하신 대로 처리해 뒀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하이데님.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은 그저 내세워진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아라카인님의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그자는 그저 맹수의 보호를 받는 어린 양일 뿐입니다. 그런 자를 이렇게까지 무너트리려 하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노인의 물음에 하이데가 피식 웃었다.
사실 그도 한 번씩 자신에게 되묻곤 했다.
왜 이렇게까지 공민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지 말이다.
그러나 명쾌하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던 공민의 눈빛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본신의 실력 또한 뛰어나지 않은 그가 자신을 그런 눈으로 바라봤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형과 자신의 계획에 훼방을 놓았다는 것이 또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크게 놓고 보면 별것 아닌 일이라 말할 수 있었으나 어쨌거나 그런 보잘것없는 자에게 자신의 계획이 방해를 받았다는 것이 은근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이 이유가 가장 컸을지도 몰랐다.
“내 앞에서 설설 기었어야 할 놈이… 헤이나의 곁에서 마치 싱글넘버 랭커가 된 것처럼 행동하더니 이제는 아라카인을 등에 업어?”
그를 도와주려는 이가 아라카인이라는 것도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라카인과 하르스마이어의 전쟁을 눈앞에서 지켜봐왔던 하이데였기에 더더욱 분노가 끓어올랐다.
“예? 무슨 말씀을…….”
“아닙니다. 저는 단지 녀석에게 확실히 알려주려는 것뿐입니다.”
“확실히 알려준다라… 무엇을 말입니까?”
“그 녀석과 저와의 차이를 말입니다.”
“허나 하이데님,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군요. 하이데님께서는 이미 하르스마이어님이라는 거대한 존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거기다 이대로만 가면 하르스마이어님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나란히 블레이드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더욱 높게 보셔야 할 하이데님께서 저런 천한 블레이드 후보를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저는 조금 실망스럽군요.”
“나는 내게 거스르는 자를 결코 가만두지 않습니다. 내게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빛을 보였다면 철저히 짓밟을 겁니다. 그게 바로 저의 방식입니다.”
“그렇습니까.”
하이데와 대화를 나누던 노인의 얼굴엔 여전히 실망스런 눈빛이 어려 있었다.
그는 하이데가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성장하길 원했으나 당장 이런 모습을 보이니 적잖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하이데의 위치는 라그나로크 내에서도 상당히 굳건한 편이었다.
그를 따르는 라그나로크 일원들도 상당히 많았고, 하르스마이어의 몇몇 수하들도 하이데를 돕기 위해 나섰다.
거기다 하이데 자체도 하르스마이어와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블레이드 후보들보다 훨씬 더 유리한 위치와 나름의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서열 1000위에 머물고 있는 공민 블레이드를 향해 이런 집착을 내비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직 어리시군…….’
확실히 눈앞의 하이데는 하르스마이어와 달랐다.
하르스마이어의 무게감 앞에서 하이데는 가벼운 추에 불과했다.
나름대로 무게를 지닌 것처럼 행동하려 하지만 결국은 하르스마이어의 무게가 뒤에서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런 식이라면… 당신은 영원히 하르스마이어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말없이 하이데를 바라보던 노인은 이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이데의 부탁도 들어주었으니 더는 이곳에서 볼일이 없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두 번은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 자체도 워낙 규율을 깨는 일이라 다른 원로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좀 먹었습니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부탁이 아닌 성대한 대접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후후 그것 참 기대되는군요.”
“그럼 이번 공민의 상대는 누가 되는 겁니까?”
“아마 로체스 블레이드 후보님과 다른 한 명이 될 것입니다. 물론 미리 손을 써놓았으니 그 다른 한 명은 하이데님의 추천에 의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군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아시다시피 로체스님은 500위권을 지키는 수문장과도 같은 분입니다. 그런 분과 1000위에 랭크되어 있는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을 붙여놓았으니 주변에서도 여러 목소리들이 나올 겁니다. 뭐… 조금이라도 문제 될 여지를 줄이기 위해 2대2 대결을 준비하긴 했습니다만…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 다른 한 명의 블레이드 후보를 누굴 데리고 나올지 모르겠군요.”
“뭐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예상되는 분이 있나보군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이데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르스마이어보다야 가볍게 움직이긴 하지만 하이데도 맹수의 동생답게 나름대로의 준비를 갖추고 움직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그가 준비하는 일이니 알아서 잘할 것이라 여겼다.
돌아서려는 그가 다시 하이데를 바라보았다.
“헌데… 다른 무엇보다 이 제안을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이런 파격적인 자리를 만들어드릴 순 있으나 성사시키는 것은 하이데님의 몫일 겁니다. 아무리 다른 원로들을 설득해 그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하나 정작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이 이를 거절한다면… 라그나로크는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의 의사를 존중할 것입니다. 아무리 1000위에 랭크되어 있다곤 하나 그가 블레이드 후보의 지위를 갖추고 있음에는 부정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문제라면 걱정 마십시오. 저는 단지 놈이 아라카인이라는 뒷배를 얻어 짜고 치는 서열전이 이루어지지 않길 바랐을 뿐입니다.”
“후후 맞습니다. 그런 일이 이루어져선 안 되지요.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었기에 저 또한 이렇게 나서드린 것입니다.”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하르스마이어님을 모셔온 놈입니다. 이런 일이라도 도움이 되어드려야지요. 모쪼록 하르스마이어님께도 안부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곧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형이 준비한 제국 흔들기가… 곧 시작될 겁니다.”
“흘흘 그것참 기대되는군요. 한편으로는 아쉽습니다. 이 늙은이도 위치가 이러지만 않았으면 하르스마이어님을 따라 제국놈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건데…….”
“아닙니다. 이렇게 도움을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허허.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노인이 나가는 길에 하이데가 배웅을 나섰다.
이를 본 라그나로크 일원들이 노인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 * *
콰라랑!
콰르르릉!
지천을 울리는 커다란 굉음들이 칼라반의 귓전을 때렸다.
엄청난 굉음에 인상이라도 한 번 찌푸릴 법도 하건만 칼라반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앞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수라와 이슈하르트의 대결.
동서양의 절대자가 한 자리에 만나 검을 나누는 장면은 칼라반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대단하군.”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내뱉는 말이었다.
상상속의 장면들을 눈앞에서 실제로 보고 있으니 쉽사리 믿겨 지지가 않았다.
아수라의 검이 허공을 휘젓자 거대한 용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슈하르트를 향해 짓쳐들었다.
이슈하르트는 검을 겨누며 기수식을 취했다.
그가 수직으로 크게 검을 휘두르자 단숨에 용의 몸통이 두 동강 나버리고 말았다.
이어진 이슈하르트의 검날이 아수라의 목으로 돌진했다.
휘링―!
카앙!
아수라는 검등으로 이슈하르트의 검을 쳐내는 한편, 몸을 회전시키며 빠르게 파고들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아수라의 움직임에 칼라반은 절로 감탄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슈하르트 또한 만만치 않은 상대.
그는 재빠르게 검을 회수하면서도 아수라의 검을 피해내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아수라의 검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읍!?”
당장 바로 앞에서 검이 사라져버리니 이슈하르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휘익! 슉! 슈슉!
캉! 카강!
“속임수였나.”
아수라의 검이 허초였음을 파악한 이슈하르트가 절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검이 이슈하르트의 전신을 때리고 들어간 것이다.
갑옷에 막히긴 했지만 하나하나 급소를 노린 일격들이었다.
휘릭―!
카가각!
아수라의 검은 멈추지 않고 춤을 추듯 이어졌다.
그의 화려한 검법은 강하게 내리치다가도 때로는 부드럽게 상대의 검을 아우르며 반격을 이어나갔다.
아수라는 자신의 힘을 드러내다가도 필요에 따라 상대의 힘을 이용하며 정신없이 검격을 몰아치고 있었다.
이슈하르트는 살면서 이토록 화려한 검법을 접한 적이 없었기에 내심 놀라운 마음이었다.
그동안 만난 검술들은 눈앞의 사내처럼 검로의 굴곡이 많지 않았다.
이곳의 검들은 대부분 무게에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베지 못하면 부순다는 생각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아수라의 검법처럼 여러 검초들로 이루어진 검법은 처음 접해본 것이다.
“처음이야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군.”
수많은 허초 속에서 차차 실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슈하르트는 그의 마력을 이용해 주변으로 장막을 펼쳤다.
“자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휘리링―!
파콰아앙!!
섬전과도 같은 일격이 지나갔다.
그의 검이 내지른 직선은 한줄기 섬광으로 가득 찼다.
“호오…….”
가까스로 일격을 피해낸 아수라가 처음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그동안 제대로 실력을 드러내지 않아 알 수 없었는데 이번 일격으로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검 좀 상당히 휘둘러본 솜씨로군. 나와는 또 다른 검의 정수가 담겨있구려.”
“후후 나 또한 일평생 검에 모든 것을 바쳐온 검사다. 만만히 봐선 안 될 거다.”
휘잉―!
쿠르응! 쿠릉!
이슈하르트의 검은 우직했다.
화려한 아수라의 검과 다르게 이슈하르트의 검은 투박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일격일격이 강한 위력을 담고 있음에도 검의 속도 또한 아수라에 버금갈 정도로 빨랐다.
“크하하! 오랜만에 좋은 상대를 만난 듯싶소!”
아수라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었다.
이슈하르트 또한 아수라와 마음을 통했는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검으로 대화를 나누듯 계속해서 검술 대결을 이어갔다.
그들 사이에서 칼라반은 많은 것들을 두 눈에 담아둘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는 이들의 대결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아쉬워했다.
그들은 하나의 검법, 하나의 검술을 주고받으며 마치 비무를 펼치듯 대결했다.
마치 칼라반이 검술들을 살펴볼 수 있게끔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전에는 금방이라도 척을 질 것처럼 마주서시더니… 이렇게 보니 둘도 없는 친구들 같군.”
아수라와 이슈하르트는 한동안 검의 대결을 이어갔다.
서로를 죽이려 하기보다 실력을 알아보기 위한 대결이다 보니 살기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이미 그 위력은 어마어마한 장관을 연출케 했다.
그리고 이렇게 위력적인 검술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적으로 만나긴 했지만 그녀도 엄청난 검술 실력을 지녔었는데…….”
자신이 상대해 본 적들 중 가장 위협적이었던 존재.
그녀의 존재는 아직까지도 칼라반에게 강렬히 남아 있었다.
“당시의 전쟁만 아니었다면 굳이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여인이었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군.”
예전부터 머릿속에 맴도는 존재였으나 선뜻 찾아가긴 망설여지는 상대였다.
그러니 애써 외면하고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눈앞에서 천외천의 싸움을 보고 있으니 어째서인지 자꾸만 그녀가 머릿속에 맴돌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