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33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33화
#검강의 경지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만 답을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도 서열전을 준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도 답을 드리고 싶지만 아직 주군께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후우… 제발 저희도 좀 봐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계속 대답을 미루셔도 어차피 서열전은 치르셔야 합니다. 거기다 어차피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선…….”
말을 하던 사내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가 저도 모르게 하려 했던 말은 어차피 공민 블레이브 후보는 서열전에 나가봤자 포기할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틀림없는 사실일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막상 대놓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결과는 똑같을 텐데 뭘…! 혹시나 소문이 거짓으로 판명 날까봐 그러는 건가? 하긴… 조금이라도 사실임을 입증하려면 원로회에서 제안한 방식을 택해야 할 텐데 선뜻 나서기가 어렵겠지. 누가 공민님과 팀을 이루려 하겠어? 하아… 상황은 이해하지만…….’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다들 아라카인의 말을 반신반의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쨌건 공민 블레이드 후보 측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이렇게 답을 미뤘다간 결국 일에 대한 책임은 자신도 져야 했다.
그러니 절로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모쪼록… 빠른 시일 내로 답을 주시길 바랍니다! 정말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주군께서 도착하시면 바로 연락을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내는 예의바르게 인사를 건네곤 곧장 뒤돌아섰다.
아직 남은 일들이 많았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를 보며 운량이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군께서는 아직도 안 돌아오셨나?”
“금방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늦어지시는 모양입니다.”
“흠? 그곳에 그렇게나 강한 몬스터가 존재하는 건가? 주군께서 이렇게나 오래 걸릴 정도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다른 일들을 하고 계신 걸지도 모르지요. 저번처럼 그곳에서 수련을 하고 계신지도 모르고요.”
“그럴 수도 있겠군. 뭣하면 내가 주군을 찾아 나서볼까?”
“관두십시오. 어나니머스 분들도 주군의 행적을 추적하기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음? 그렇군…….”
레기온은 미련 없이 칼라반을 찾아 나서길 포기했다.
어나니머스의 어쌔신들이 어려울 정도라면 자신이 나서봤자였다.
“그나저나 미리 연락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걸.”
“후후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셨을 지도 모르지요. 저희는 그저 돌아오시고 바로 나서실 수 있도록 준비해두면 그만입니다.”
“그럼 나도 내 할 일을 해야겠군.”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주군의 옛 동료를 만나러 갈 생각이다.”
“아… 만인대장 중 한 명인 요쿠스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섣불리 접근했다간…….”
“후후 내가 누군지 잊었나보군. 나는 누구보다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날 먼저 찾으신 이유 중 하나도 아마 그것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주군께서 자리를 비우실 동안 나는 내 할 일을 하겠어.”
레기온은 이만 발걸음을 돌렸다.
운량은 옆에 놓아두었던 파초선을 들어올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편, 칼라반 쪽에서 아직도 대답을 미루고 있다는 소식은 곧 하이데의 귀에도 들어갔다.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도와주다니… 어떻게 말입니까?”
“우선 그 겁쟁이 녀석을 빼낸다. 그러기 위한 아주 간단한 방법은 녀석의 주변 인물부터 죽이면 돼.”
“예? 하지만 공민 블레이드 후보 일행이 머물고 있다는 곳은 괴상한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이데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섣불리 건드렸다간 오히려…….”
“머저리 같으니. 공민이 머물렀던 곳이 그곳만 있나?”
하이데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을 어렴풋이 눈치챈 수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공민에게 붙은 그 벌레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역시… 아라곤 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그곳에 누가 있지?”
“원래 있던 두 명이 끝입니다. 도박꾼 제르단과 이라벨이라는 꼬맹이가 있습니다.”
“잘됐군. 가서 둘 다 죽여라.”
“예? 굳이 죽일 필요까진…….”
“나는 그놈에게 많은 수하들을 잃었다. 놈도 똑같이 당해봐야지. 게다가 뭐든 확실한 것이 좋은 법이다. 후후 그 둘이 죽고도 과연 네놈이 지금처럼 흐지부지한 모습을 보일지 지켜보겠다, 공민.”
하이데가 두 눈을 빛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날 밤 하이데가 머물고 있는 성에선 암중을 틈타 은밀한 그림자들이 빠져나갔다.
* * *
쿠릉!!
콰라랑!!
“크읍……!”
수련의 공간 속 빗발치는 빛무리 속에서 칼라반은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가 움직임에 빠르기를 더할수록 날아드는 빛무리도 점점 수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칼라반의 앞으로 커다란 도가 날아들었다.
콰앙!
재빨리 공격을 방어해낸 칼라반이 인상을 찌푸렸다.
반면 도를 움켜쥔 아수라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어진 그의 도법은 화려한 춤사위와 같았다.
그러나 그 속에 드러나는 날카로운 공격들은 칼라반의 간담을 계속해서 서늘하게 만들었다.
촤락! 촤륵―!
도검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칼라반의 피부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칼라반의 두 눈에서 안광이 폭사되었다.
[스킬 수라파성무(修羅破星武)를 발동합니다.]그의 검에서 뻗어나간 한줄기 섬광이 아수라의 심장을 노리고 들었다.
아수라의 도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다가드는 섬광을 한쪽으로 흘려버렸다.
콰앙!
지면을 때린 섬광이 커다란 굉음을 일으켰다.
“호오…….”
이를 본 아수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섬광들에 그도 다시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칼라반의 검에 맺혀 있는 것은 검기가 아니었다.
강의 발현과 응집.
이를 완벽히 해내며 칼라반은 어느덧 완연한 검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아수라조차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속도였다.
아수라의 입장으로선 참으로 가르칠 맛 나는 제자였다.
그는 칼라반의 공격을 모두 흘려내며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카앙!!
큼직한 도신과 칼라반의 검이 부딪혔다.
“정말 대단하오! 크하하! 역시 빠르게 강해지는 데엔 생사결만큼 좋은 것이 없구려!”
“크윽…….”
느껴지는 엄청난 힘에 칼라반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수라의 도가 원을 그리는 듯하다 이내 수평으로 움직였다.
그의 변칙적인 공격에 칼라반은 황급히 보법을 펼쳐 몸을 빼내었다.
[스킬 수라월령보를 펼칩니다.]마치 잔상이 남는 듯 엄청난 빠르기의 움직임이었지만 아수라의 시선은 칼라반을 놓치지 않았다.
만족스런 미소를 띠고 있던 아수라가 칼라반을 도발하듯 손을 까딱거렸다.
“수라월령보도 이제 제법 훌륭히 펼칠 줄 아는구려. 이참에 모든 정수를 쏟아보는 것이 어떻겠소?”
아수라의 말에 칼라반은 기다렸다는 듯 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의 전신에서 기운이 폭사되기 시작하자 검 끝에 선명한 검강이 맺혔다.
[스킬 연환칠검을 펼칩니다.]칼라반의 검이 일곱 번의 변초를 그렸다.
지난날의 연환칠검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단순히 검로를 변환하는 것뿐 아니라 상대를 교란시키기 위한 허초가 녹아들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공격해올 것 같은 검격 속에서 날카로운 일곱 번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카강! 카앙!
“후후 훌륭하오! 하지만 명심하시오. 단순히 상대를 속이는 허초가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그 허초가 언제든 실초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오. 그렇게 된다면 진정한 연환칠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터요.”
다음으로 이어진 움직임은 반월참이었다.
칼라반의 검이 허리춤으로 향하자 아수라도 자세를 취했다.
지금껏 행해온 숱한 생사결속에서 유일하게 아수라 스스로 가르칠 것이 없다 말한 무공이 바로 이 반월참이었다.
칼라반은 본능적으로 반월참의 무공에 이슈하르트 특유의 호흡법과 기의 운용을 더했다.
그러자 탄생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각성 스킬 진(進)반월참을 시전합니다.]후웅―!
파콰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아수라의 도가 고통의 비명을 토해내었다.
공격을 받아낸 아수라뿐만 아니라 먼발치서 지켜보던 이슈하르트도 놀란 눈을 했다.
그만큼 칼라반이 펼쳐낸 무공이 엄청난 위력을 보였던 탓이다.
“볼 때마다 참으로 놀랍구려.”
아수라가 감탄할 새도 없이 칼라반의 무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의 무공이 새로 익히게 된 수라파천공의 4성까지 다 펼치고 나서야 비무를 끝마칠 수 있었다.
비무를 마친 칼라반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아수라에게 온갖 공격을 당하며 피투성이가 된 그가 신음을 토해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만 하는 것이 좋겠구려.”
“후우… 후욱… 감사…합니다.”
칼라반은 거친 숨소리를 고르며 말을 이었다.
이슈하르트와 다르게 아수라는 무섭도록 냉정했다.
그는 피하지 못하면, 막아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공격들을 퍼부어대었다.
그렇기에 칼라반은 매번 아수라와 마주설 때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했다.
아수라가 처음 말했던 각오의 의미를 생사결과 같은 비무를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아수라를 앞에 두고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틈 따윈 없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
머릿속엔 그것뿐이었다.
칼라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아수라는 수련의 강도를 높였다.
덕분에 칼라반은 많은 것들을 체득하며 빠른 속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기억해두시오. 처음 머리로 무공을 익혔다면 곧 마음으로, 몸으로 무공을 소화시키는 과정들이 필요하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끝났을 때 비로소 스스로의 새로운 인식과 관점으로 자신만의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될 것이오. 놀랍게도 그대는 이미 나의 무공들을 대부분 소화해 내기 시작하고 있소. 허니 이제는 더욱 정진하여 그대만의 무공을 만들어갈 차례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니 수련은 이것으로 끝내도 되겠구려. 본좌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기본을 다듬어주었으니 이제 그 길을 선택해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은 온전히 그대의 몫이오. 허니 더는 그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소. 이제는 그대가 직접 세상과 몸을 부딪치며 깨달아가야 할 때요.”
“아…….”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칼라반은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아수라의 얼굴엔 시원섭섭함이 묻어나 있었다.
아수라는 일부러 이슈하르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채워나가야 할 시기겠지. 게다가 이제 서서히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후후, 벌써 그렇게 된 것인가.”
아수라는 칼라반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어 이슈하르트도 다가와 칼라반의 어깨에 손을 올려두었다.
“고생하셨구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도 없어졌소. 그러니.”
아수라는 한쪽에 세워진 흑강석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하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칼라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서서히 흑강석으로 된 벽 앞에 다가갔다.
이미 그에게 흑강석을 부수는 것 따윈 일도 아니었다.
후우웅―
칼라반의 검 끝에 서서히 검강이 맺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