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39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39화
#2대2 서열전
단도직입적인 칼라반의 말에 에르텔로가 눈을 빛냈다.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은 두 가지 중 한 가지 서열전을 택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대일 대결로써…….”
“페어 경기를 선택하겠다.”
“……!?”
의외의 답에 에르텔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당연히 칼라반이 일대일 대결을 택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 있나?”
“아,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이곳에 페어 경기를 치를 후보님들이 모두 와 계시니 바로 준비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다.”
“다른 사항들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에르텔로가 뒤에 있는 헤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그녀에게서 어느 정도 다 전해들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에르텔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헤이나님은 이번 서열전에 참여하지 못하십니다. 헤이나님은 싱글 넘버에 계신 분이기 때문ㅇ…….”
“알고 있어.”
“예.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그럼 공민님은 이쪽으로.”
에르텔로가 공손히 그를 안내했다.
칼라반이 에르텔로를 따라나서자 헤이나는 복잡한 시선을 하면서도 이내 경기장 안쪽으로 발을 돌렸다.
칼라반이 대기실로 가는 동안 에르텔로는 여러 가지 사항들을 다시 한 번 얘기해주었다.
혹시나 전달받지 못한 것들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는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2대2 서열전은 둘 모두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기권이 불가능합니다.”
에르텔로는 내심 미소를 지으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동안 칼라반에 대한 많은 소문들을 들어왔기 때문에 에르텔로 또한 그에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훗. 내 말을 안 끊고 계속 들었더라면 미리 알려줄 수 있었을 텐데. 한 방 먹였네.’
나름 고소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칼라반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그러자 오히려 에르텔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권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얘기 제대로 들으신 것 맞습니까?”
“들었다.”
“아… 뭐, 그렇다면 할 말 없군요. 그럼 천천히 준비해주시길.”
에르텔로는 괜히 입맛을 다시며 문을 열어주었다.
안에는 칼라반과 함께 서열전을 치를 사내가 앉아 있었다.
긴 장발로 얼굴을 반쯤 가린 사내가 칼라반을 한 번 쳐다보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칼라반도 굳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진 않았다.
그는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때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뮤러다.”
“공민이다.”
“워낙 유명한 이름이니 들어서 알고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에게 큰 도움을 바라진 마라.”
자신을 뮤러라 소개한 사내는 본인의 할 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문을 나서기 전 한 번 더 칼라반을 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이 페어를 이루긴 했지만 착각하지 마라. 나도 너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 헤이나로도 모자라 아라카인님까지 등에 업으려 하는 너를. 지금껏 서열전에 진심으로 임한 적 없는 너를 달가워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은 칭찬해주지. 하지만 이번에도 기권하며 도망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마라. 그럴 수 있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뮤러는 이만 대기실을 나섰다.
한순간이었지만 그에게선 살기가 느껴졌다.
“후우…….”
칼라반이 한 차례 호흡을 고르자 엄청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억눌러왔던 살기를 방출하니 대기실의 공기가 삽시간에 무거워졌다.
달칵.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문이 열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 헙!”
문을 열고 들어서던 시모로프는 숨을 콱 막는 무거운 공기에 절로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홀로 앉아 있는 칼라반을 보며 그는 절로 식은땀을 흘렸다.
“고…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이 맞으십니까?”
“오랜만이군.”
“아… 예에… 근데… 못 보던 사이 부, 분위기가 많이 바뀌신 것 같습니다. 하하…….”
칼라반은 말없이 시모로프가 건넨 서류를 작성해주었다.
그동안 시모로프는 전신이 쭈뼛 서는 느낌에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여기 있다.”
“가, 감사합니다! 혹시 뮤러님은…….”
“밖으로 나갔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시모로프는 안에 있는 것이 힘들어 황급히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이…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블레이드 후보를 만나면서 이렇게 본능이 경고를 보내온 적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하이데님이 공민님이 있었던 아라곤 지부를 습격했다던 소문이 있던데 혹시 그것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나신 건가? 아니 근데… 사람이 화를 좀 내기로서니 저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나?”
시모로프는 바짝 마른 목을 물로 축이며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칼라반과 뮤러는 나란히 서열전 경기장 앞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뮤러는 무심코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먼저 어떤 말이라도 꺼낼 줄 알았건만 칼라반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겁을 집어먹거나 긴장한 얼굴도 아니었다.
“뭔가 다른 수가 있는 건가.”
일부러 흘리듯 얘기했지만 이번에도 칼라반은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질 않았다.
철커덩―! 철그럭!
마침내 그들의 앞을 막고 있던 철창이 열렸다.
칼라반과 뮤러는 천천히 경기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맞은편에선 하이데와 루체스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하이데와 루체스…….”
두 사람을 보며 뮤러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반면 칼라반의 시선은 하이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에 하이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후. 아무래도 네놈을 자극한 미끼가 제법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지?”
“음…….”
하이데와 다르게 루체스는 차분히 칼라반을 살피고 있었다.
자신들을 눈앞에 두고도 칼라반은 긴장한 내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깊게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가 루체스로 하여금 괜히 신경 쓰이게 했다.
“우우우―――!”
“하이데! 저놈에게 블레이드 후보가 어떤 자리인지 제대로 보여줘라!”
“그래! 저딴 겁쟁이가 더 이상 우리들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 못하도록 제대로 보여줘!”
“힘내십시오 하이데님!”
관중들의 소리가 여기저기 빗발쳤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읽으며 하이데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큭큭 이제 알겠나? 이곳에 네놈 편은 없다. 아무리 다른 자들의 힘을 뒤집어쓰고 설쳐봤자 결국 스스로의 힘이 강하지 않으면 아무 짝에 쓸모없다는 얘기다.”
그때 그들의 사이로 간부인 레오르닉이 다가왔다.
그는 네 명의 선수 모두를 살피곤 이내 손을 들었다.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2대2 서열전은 두 사람 모두 전투불능 상태가 되거나 둘 모두 기권해야 끝이 납니다.”
“레오르닉.”
“예. 말씀하십시오 하이데님.”
“서열전에서 블레이드 후보가 죽더라도 아무 문제될 것 없겠지?”
“물론입니다.”
“크큭 좋네.”
하이데가 두 눈을 빛내며 칼라반 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도 칼라반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레오르닉도 그런 칼라반의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그저 안쓰럽다는 듯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안타깝지만 어차피 그가 칼라반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라그나로크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곳. 순리에 맡길 뿐입니다.”
레오르닉은 괜히 말 한마디를 더 붙였다.
이어 그가 들었던 손을 내림으로써 서열전의 시작을 알렸다.
“공민…….”
서열전이 시작되자 한쪽에 앉아 있던 헤이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일단의 무리가 다가왔다.
“대체 저딴 녀석한테 왜 그리 신경 쓰는 거냐?”
“그러니까 너답지 않아 헤이나. 그동안은 그냥 심심풀이 수준인 것 같아 그러려니 했는데 이건 정도가 지나쳐. 너 최근 임무에도 저 녀석이 껴 있었다며? 네가 구설수에 오르면서 우리들까지 수준이 낮아지는 것 같잖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놈인데… 뭐 약점이라도 잡힌 거냐!?”
곁에 앉은 이들은 모두 블레이드 후보 서열의 순위권에 있는 자들이었다.
누군가 헤이나의 옆에 살며시 다가가 앉았다.
“루시엔? 네가 왜 여기에.”
“그냥. 궁금해서.”
“궁금하다니 뭐가?”
“네가 그토록 관심 있어 하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지켜보려고.”
“아…….”
“그런데 이번에도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다면. 다음은 내가 먼저 저 남자를 죽이겠어.”
“뭐? 야 그건…….”
“알아. 너랑 싸우게 되더라도 상관없어. 너만 정신 차릴 수 있다면.”
“내가 그동안 가만히 있었더니 내 성격 잊었나본데, 웃기지 마. 너희들이 뭘 어떻게 하든 공민은 내가 지켜.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가만 안 둬. 나랑 전쟁이라도 치르고 싶으면 어디 한번 그렇게 해보든지.”
후우웅――!
헤이나가 경고를 가하듯 작정하고 기운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이들 또한 헤이나와 비슷하거나 좀 더 우위의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겨우 이런 정도로 물러서거나 겁을 집어먹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그들이 지금까지도 헤이나를 껄끄러워 하는 이유는 특유의 집요함 때문이었다.
특히나 그녀를 닮은 그녀의 수하들도 독하기로 유명했다.
“시작한다.”
루시엔이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녀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서열전 경기장으로 향했다.
레오르닉이 물러나자 루체스가 먼저 검을 뽑았다.
하이데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서 칼라반을 바라볼 뿐이었다.
문제는 뮤러의 다음 행동이었다.
챙―!
그는 하이데나 루체스가 아닌 칼라반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이에 칼라반의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다.
“이게 무슨 짓이지?”
“훗. 미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가망 없는 승리에 뛰어들기보다 차라리 빨리 너를 처리하고 기권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이데냐.”
“음?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러나 뮤러는 대놓고 하이데와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하이데는 이에 만족한다는 얼굴을 지어보였다.
그가 앞으로 나서려는데 루체스가 그를 돌아보았다.
“하이데. 네가 손을 쓴 거냐?”
“잠자코 있어라 루체스. 굳이 네가 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다. 가만히 있어도 승리를 거머쥐게 해주마.”
“아니. 나는 그런 것에 관심 없다. 만약 네가 뮤러를 매수한 것이라면 이 승부는 애초에…….”
“정당하지 못하다 말하고 싶은 거냐? 아둔하긴. 애초에 우리들이 저놈의 상대가 된 것에서부터 이미 균형은 무너진 거다.”
“너… 모르고 있는 거냐? 공민은 아라카인님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블레이드 후보다. 때문에 나는 충분히 나와 겨룰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더더욱 문제될게 없겠군. 너와 겨룰 수 있는 실력의 상대라면 뮤러 정도는 가볍게 이기지 않겠나?”
하이데의 미소에 루체스가 인상을 구겼다.
이번엔 어쩔 수 없이 페어로 나서긴 했지만 굳이 같이 있고 싶진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건 말건 하이데는 칼라반을 향해 입을 열고 있었다.
“자아, 어떻게 하면 네게 치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을 줄 수 있을까 했는데 떠오르는 것이 이 방법밖엔 없더라고. 그나마도 너와 함께 나선 동료의 배신! 이랄까 후후. 마음에 들었나 모르겠어. 안됐지만 뮤러는 오래전부터 나를 따르던 녀석이다.”
“…….”
“이제 알았겠지? 너는 나의 농간에 당한 거라고.”
칼라반은 우두커니 서서 하이데를 응시했다.
그 모습이 적지 않은 충격에 빠진 것 같아 하이데는 물론 뮤러까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하이데가 모두 말해버린 이상 하는 수 없지. 미안하게 되었다. 그래도 하이데보다 내가 너를 처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묻겠다. 하이데를 따르는 것이 확실한가?”
“크큭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너를 배신할 일이 있겠냐!?”
뮤러는 검을 들어 올리며 칼라반을 향해 내달렸다.
“배신이라…….”
혼잣말을 중얼거린 칼라반이 조용히 손을 검으로 가져갔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헤이나가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위험해…….”
그녀는 칼라반이 아닌 뮤러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리링―! 카앙!
스각!
한 수였다.
칼라반이 단 한 번 휘두른 검에 뮤러의 검이 부러져나갔다.
이어 그의 목에 붉은 실핏줄이 생겼다.
“크… 크억.”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뮤러가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카학!”
피를 한 움큼 뱉어낸 뮤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칼라반을 올려다보았다.
“하이데를 따르는 자라면. 죽어줘야겠다.”
칼라반의 차가운 말과 함께 서늘한 검신이 그대로 뮤러의 목을 잘라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