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14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4화
지독한 냄새에 금방이라도 헛구역질을 할 것 같았지만, 아직 명상 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칼라반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공의 양이 증진되었습니다.] [마령환의 기운이 흡수되어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마령환 흡수율이 52%를 달성했습니다!] [칼라반 님의 전투력이 상승합니다.]다시 메시지가 뜨고 나서야 그는 명상을 끝낼 수 있었다.
[스킬을 배웠습니다.] [만독지체(萬毒之體). LV1수라윤회심공의 내공이 독 기운을 밀어내면서 독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칼라반 님에게 독의 효과는 반감되게 됩니다. 만독지체를 마스터하게 될 경우 어떤 독도 칼라반 님의 몸에 위해를 가할 수 없을 것 입니다.]
“만독지체라면…….”
스킬 이름을 보자마자 칼라반은 그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만독지체는 무협 소설에 꼭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이거… 정말 무섭도록 대단한 걸……?”
칼라반은 그제야 시스템의 무서움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만독지체라도 된 것처럼 몸 안에 있던 모든 독 기운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몸은 이전보다 훨씬 개운한 상태였다.
칼라반은 다시금 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지력이 향상되고 이런 효과도 얻을 수 있었으니, 더욱 올려두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전처럼 지력이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 권만 읽어도 지력이 올라갔는데 나중에는 두 세권을 읽었음에도 지력이 안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독서와 명상을 번갈아 진행하며 나름의 감금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헤이홀즈가 그를 다시 찾아왔다.
“당분간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한 얼굴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는 칼라반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너… 나와 내 동생 이레아는… 다른 누구보다 헤이홀즈 너만큼은 믿었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는 것이냐……!”
자신에게 독을 먹인 헤이홀즈를 보자마자 칼라반의 두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헤이홀즈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칼라반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군요.”
그는 칼라반을 구속하고 있는 수갑을 만져보았다.
“당신이 정말 칼라반 형님이라면… 어째서 이곳을 탈출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이곳에 작은 마법진이 깔려 있긴 하지만… 그것은 책을 무단으로 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용일뿐… 그런 미약한 마법진으로 칼라반 형님의 힘을 막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헤이홀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
칼라반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역시 그렇게 된 거 였군요…….”
헤이홀즈는 무언가 이해했다는 듯 홀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에서 열쇠를 꺼내었다.
달칵!
그리곤 칼라반을 구속하고 있던 수갑들을 풀어주었다.
“독까지 먹여서 감금해 둘 땐 언제고 어째서 날 풀어주는 거지?”
“그야… 당신이 바로 진짜 칼라반 형님이시니까요.”
헤이홀즈는 조용히 칼라반을 안아주었다.
“그 동안 당신이 진짜 제가 아는 칼라반 형님임을 알아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머리로는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 마음은 당신이 계속해서 칼라반 형님일거라고 말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헤이홀즈는 이제야 비로소 칼라반을 똑바로 응시해보았다.
“형님의 이 눈빛 때문에… 이 눈빛을 잊을 수 없어서…….”
헤이홀즈의 눈에 작은 눈물이 맺혔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우리 가문을 의심한 아크로이어 황제가 몇 번씩이나 형님, 혹은 이레아의 지인들로 분장해 저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나…….”
칼라반도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처음 형님의 등에 새겨진 흑염의 문장을 보고 혹시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크로이어 황제가 보낸 사람이 찾아와 형님인 척 연기를 하더군요. 벌써 10년이 흘렀건만 아크로이어 황제가 왜 굳이 두번씩이나 사람을 보낸 것인가 의구심이 드는 순간… 형님의 주변을 맴돌던 어둠의 정령을 보았습니다.”
“아…….”
까망이들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책을 읽느라 까망이들을 소환해 두었으니 말이다.
“다른 것은 다 흡사하게 따라할 수 있으나 그것만큼은 절대 따라하지 못 하겠죠… 어둠의 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니까요…….”
헤이홀즈가 칼라반을 향해 고개를 푹 숙여보였다.
그리곤 다시 한번 뜨겁게 칼라반을 껴안았다.
“살아 있어주셔서… 살아 있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헤이홀즈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숨죽여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의 진실된 모습에 칼라반도 결국 팔을 올려 헤이홀즈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진실과 마주하다
멈출 줄 모르던 눈물을 진정시키고 칼라반과 헤이홀즈는 함께 건물 안쪽의 뜰로 들어섰다.
“잠시나마 거칠게 대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다. 너도 조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아크로이어가 너까지 감시하고 있었다니…….”
“후후. 이레아의 약혼자였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레아를 언급하는 헤이홀즈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런데 이레아는… 이레아는 어디에 있는 거냐?”
쿵!
칼라반의 물음에 헤이홀즈가 다짜고짜 바닥에 머리부터 찍었다.
“갑자기 뭐하는 행동이…….”
연신 바닥에 머리를 찍는 헤이홀즈의 모습에 칼라반도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눈앞에 있는 비석을 보고나서 그의 몸은 완전히 얼어붙어버렸다.
띠링!
[무덤을 발견했습니다.]―로스카일드 이레아
비석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보자마자 칼라반의 사고도 정지해버리고 말았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
헤이홀즈는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새어나오려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아…….”
털썩.
칼라반은 그대로 바닥에 몸을 쓰러트리고 말았다.
“헤이홀즈… 내게 죄송하다고 하지마라… 내게 죄송하다고 하지 말란 말이야…! 네놈이 그러면 꼭…꼭 이레아가 죽은 것 같잖나……!!”
그는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흔들어 대었다.
“형님…….”
헤이홀즈는 차마 그런 칼라반과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눈앞에 그의 얼굴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칼라반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칼라반의 슬픔과 마주하기가 너무도 두려웠던 탓이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제가… 제가 이레아를 지켜내지 못 했습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저를 패버리십시오…! 아니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자신의 여자 하나도 지켜내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저를… 저를 벌해주십시오 형님…….”
감정이 격해진 헤이홀즈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10년 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애써 참아왔던 감정들이 칼라반 앞에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
칼라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았던 불안과 불신이 마침내 승리했다는 듯 칼라반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이레아…….”
칼라반은 말없이 이레아의 이름이 적힌 비석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환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이 자꾸만 눈가에 아른거렸다.
자신을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으…으흑…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 못난 오빠 때문에…….”
결국 칼라반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둠의 정령들이 당신의 감정을 깊게 공유합니다.]―끼루루…….
―끼루…….
어둠 속에서 나온 까망이들이 칼라반의 곁에서 그를 위로해주었다.
“으아아!!”
칼라반은 터져버린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부르짖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헤이홀즈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슬퍼하고 나서야 칼라반이 눈물을 멈추었다.
“누구냐…….”
“예……?”
“내 동생을 이렇게 만든 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아니… 내 동생을 이렇게 만든 새끼… 아크로이어 그 자냐?”
한 차례의 폭풍 같은 슬픔이 몰아치고 간 뒤 칼라반의 눈동자는 한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형님이 전쟁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황군들이 이곳에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로스카일드 가가 반역을 도모했기 때문에 모두 잡아들이겠다는 황명을 받아왔습니다. 레오르담 시민들은 그럴 리 없다며 황군들에게 설명했지만 놈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심지어 로스카일드 가문을 변호했던 사람들마저 닥치는 대로 잡아갔으니까요… 솔직히 말해 저는 어떻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레아는 끝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 오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면서…….”
그때의 그 모습을 떠올린 헤이홀즈가 씁쓸함을 곱씹었다.
“그들에게 이레아를 잃어버릴까 두려웠던 저는… 그녀를 제가 아는 가장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켰습니다. 다행이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누군가 미리 귀띔해주었거든요. 그래서 황군이 들이닥치기도 전에 이레아를 그곳으로 피신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왜 이레아가 죽은 거냐…….”
칼라반은 감정이 메마른 것처럼 바짝 말라붙은 목소리로 물었다.
헤이홀즈는 사람의 목소리에 느낌이 있다면 이토록 차갑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레아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뒤… 저희를 도와주기로 한 사람들이 있어 그들을 통해 다른 도시로 벗어나려 했습니다. 저 또한 이레아를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구요… 그런데… 출발하기 바로 전날 밤, 그곳에 황군이 들이닥친 겁니다.”
“누가… 배신이라도 한 것인가…….”
칼라반이 치를 떨며 말했다.
헤이홀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누군가 황군에게 이레아의 위치를 말해주고만 겁니다.”
“대체 누가… 누가 그랬는지 알고 있나?”
칼라반의 말에 헤이홀즈가 차마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말았다.
“제 아버지셨습니다…….”
그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칼라반의 앞에서 엄청난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이미 죄인이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더 저지른 느낌이었다.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헤이홀즈의 가슴이 쿵쾅거리게 뛰었다.
“그랬나…….”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칼라반은 말없이 비석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화를 내시지 않는 겁니까……?”
“너는 최선을 다했다. 헤이홀즈.”
“아뇨… 아닙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겨우 이 개 같은 결말을 맞이하고 만 겁니다! 그러니 화를 내 주십시오… 소리를 지르시고 저를 노려보시고 윽박질러주십시오!! 어째서… 어째서 이레아의 죽음에…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는데 그리도 담담하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