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46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46화
#루시엔의 초대
사락.
운량은 손에 받아든 종이를 펼쳐들었다.
그가 그것을 읽는 동안 칼라반은 근처에서 한쪽에 나열된 검을 고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아닙니다. 단지 거처에 손님이 다녀간 모양입니다.”
“손님?”
“예. 그렇습니다.”
“지난번처럼 블레이드 후보들이 보낸 사람인가?”
“아닙니다. ‘체르피히’라는 자가 보낸 사람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체르피히? 처음 듣는 이름인데.”
선뜻 생각나지 않아 칼라반이 인상을 찌푸렸다.
운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동안 저희들과는 접점이 없던 인물이니까요.”
“그런데 왜 우리를 찾아온 거지?”
“흐음… 그건 쉽게 짐작되지 않는군요. 다만.”
“다만?”
“체르피히는 라그나로크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거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자가 주군을 만나길 원한다니 무언가 이득이 될 만한 냄새를 맡았다거나… 그도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주군께선 라그나로크 내에서도 유명인이 되셨으니까요.”
“그런가.”
“허면 어떻게 할까요? 만나보시겠습니까?”
“아니. 우선은 이곳에서의 일이 먼저다. 게다가 상인과의 만남이라면 굳이 냉큼 받아들일 필요 없지.”
“호오, 대화를 미루어 조금 더 무게를 이쪽에 두실 생각입니까?”
“그렇다. 아쉬울 것 없는 우리가 뜸을 들이면, 거래를 원하는 상대는 오히려 애가 타겠지.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이쪽의 값어치는 더욱 상승해 있을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돈과 관련된 인물을 만나볼 생각이었는데 제 발로 찾아올 테니 찾을 수고는 덜겠군.”
“후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주군의 뜻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운량이 종이에 열심히 글을 적는 동안 칼라반은 계속해서 진열돼 있는 무기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관리가 잘 된 좋은 검들이었다.
그는 그중에서도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중검을 들어올렸다.
“이게 좋겠군.”
칼라반이 가볍게 검을 휘둘러보고 있을 때 그들이 있는 방으로 누군가 들어섰다.
중년인은 칼라반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간밤에 편안한 휴식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편히 쉬었습니다. 헤이번도님.”
“후후 검도 이미 고르신 모양이군요.”
헤이번도라 불린 중년인은 칼라반이 들고 있는 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칼라반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게 마음에 드는군요.”
“원하신다면 대련이 끝나고도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저희가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 드리는 선물로 하겠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후후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흔쾌히 초대에 응해주신데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사내의 정중한 말에 칼라반도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사내도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런데 정말 갑옷은 입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흐음… 크게 무리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군요. 저희 아가씨께선 매사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라 만에 하나라도…….”
“혹시나 염려하시는 일이 생기더라도 제 책임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공민님께선 저희들이 마련한 자리에 와주신 손님이신데… 그러면 만에 하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경우 저희 쪽에서 미리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이 점은 양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후후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이동하시겠습니까?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
칼라반은 검집에 검을 넣고 헤이번도의 뒤를 따라나섰다.
유운량도 조용히 칼라반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헤이번도가 그들을 안내한 곳은 커다란 연무장이었다.
탁 트인 공간에 덩그러니 마련되어 있는 연무장 위로 한 여인이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그리고 주변으론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연무장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많군요.”
“이클립스 전원이 모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대장부터 간부급까지 거의 다 모인 상태입니다.”
“대장이라니…….”
“이클립스는 모두 각 대장들이 이끄는 10개의 부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중 제가 이끄는 부대를 포함한 4개의 부대가 현재 루시엔님을 따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 이곳엔 그들 말고도 다른 부대의 대장들까지 모두 모여 있는 겁니까?”
“예. 과거 이슈하르트님이 모습을 감추시고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열 개 부대의 대장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것은…….”
헤이번도가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 마련된 상석에는 일단의 무리가 자리해 있었다.
그들은 공민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이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저자가 바로 소문의 그 블레이드 후보인가?”
“그런 것 같다.”
“흠… 생각보다 평범해 보이네요.”
곱슬머리의 사내가 칼라반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실망한 그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렇다 할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군.”
“애초에 1000위에 랭크되어 있던 자라며? 그런 자가 정말 우리 대장님의 검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건가? 아니 그 이전에 대체 언제…….”
“어림도 없는 소리지.”
머리를 곧게 올린 사내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칼라반을 노려보았다.
그는 단단한 주먹을 말아 쥐며 검집에 팔을 얹었다.
“만약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저놈은 내가 먼저 죽인다.”
“내기 할까? 누가 먼저 죽이는지.”
“후우… 나는 부디 이 자리가 루시엔님이 그동안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자랑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가 아니었으면 한다.”
“나도 분명 말했어. 루시엔님이 대장님의 따님이긴 하지만 나는 대장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이가 아니면 결코 따를 수 없다고.”
“그러지 말고 이번에 잘 봐두라고 가르시아. 루시엔님께서 그동안 얼마나 성장하셨는지 말이야.”
이곳에 모인 이클립스의 대장들은 어느덧 서로간의 신경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나 루시엔을 따르는 4명의 대장들과 남은 6명의 대장들 간의 대립구도가 확연히 보였다.
“다른 것보다 나는 1번대 대장인 하데르님의 뜻에 따를 거예요.”
“만약 하데르님이 생각을 바꾸시어 루시엔님을 인정하고 따르겠다고 한다면… 다인 너도 그렇게 하는 거냐?”
“물론이에요. 하데르님이 인정하신다면 저 또한 이의 없을 거예요. 반대로 하데르님이 저 공민이라는 자를 택한다면, 저 또한 저 블레이드 후보님을 따를 겁니다.”
“아무리 네 스승님이 하데르님이라지만…….”
“하데르님은 이슈하르트님의 둘도 없는 친구셨어요. 그런 하데르님의 선택이라면 저는 존중하고 따를 겁니다.”
“그래…….”
“너무 상심하지마라 샤푸아. 내가 생각했을 때 아무도 하데르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들이 뒤에서 한마디씩 하는 동안 좀 더 앞에서 홀로 서 있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굳게 다문 입술로 루시엔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오…….”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그의 시선이 이번엔 칼라반 쪽으로 향했다.
칼라반은 그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조용히 연무대 위로 올라갔다.
함께 칼라반을 바라보던 부대장 사이로스가 입을 열었다.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는군요. 정말 저 사내가 이슈하르트님의 후계자일까요? 듣기로는 이슈하르트님께 직접 검술을 배웠다고 하던데.”
“지나치게 평범해 보인다라… 역시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나?”
“예. 그동안 강자들을 접해봤기 때문에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저 사내는 전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냥 그저 그런 실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그렇단 말이지…….”
“혹시 대장님 눈엔 다르게 보이십니까?”
“아니. 내 눈에도 그저 평범한 사내로 보인다. 이렇다 할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느껴지는 기운은 루시엔 아가씨 쪽이 훨씬 강하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체 저자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이로스는 칼라반 쪽에 여전히 시선을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칼라반이 갑옷조차 입지 않은 모습에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실력 차이는 안 봐도 훤히 보이는데… 심지어 저 사내는 갑옷조차 입질 않았군요…….”
“큭큭 그래서 재밌구나.”
“예?”
“나는 검 한 자루로 이슈하르트님의 마누스식 검술을 보여주겠다는 저 사내의 기백으로 받아들이겠다.”
“대장님은 저자의 말을 믿고 계시는 겁니까? 저렇게 평범한 사내를…….”
“믿고 안 믿고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어차피 지켜보면 알게 될 일. 그리고 사이로스. 너는 평범한 자가 하르스마이어의 동생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네? 그건…….”
“그러니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사내는 뜨거운 시선으로 칼라반과 루시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어느덧 가까운 거리에 마주 서 있었다.
“어디 한 번 지켜봐볼까. 누가 이 하데르의… 아니 이클립스가 모실 주인으로 걸맞은지 말이야.”
“하데르님.”
하데르는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연무대 쪽에 시선을 두었다.
“저기 좋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서 지켜보시겠습니까?”
“나는 이곳이 편하다. 흙냄새가 좋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사이로스도 하는 수 없이 하데르의 뒤편에 자리했다.
하데르는 두 눈을 빛내며 여전히 연무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군.”
하데르가 손에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는 동안 칼라반과 루시엔도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준비는 다 되었겠지?”
“물론이다.”
“너의 말이 사실인지 지켜보기 위해 이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뱉은 말엔 책임을 지게 될 거야.”
“그건 저번에도 했던 말이로군.”
“좋아 그럼.”
루시엔이 칼라반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칼라반도 검을 들어올려 자세를 취했다.
서열전 때처럼 따로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짓을 신호로 여기듯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먼저 선공을 펼친 것은 루시엔 쪽이었다.
그녀는 검을 비스듬히 들어 올리며 처음부터 매서운 공격을 펼쳤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날이 무서운 속도로 칼라반의 품에 파고들었다.
칼라반도 검을 휘둘러 루시엔의 검격을 막아내었다.
카앙!!
두 검이 부딪히자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시엔은 멈추지 않고 몸을 회전시키며 공격을 이어갔다.
반면 칼라반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들어오는 공격들을 막아내었다.
휘릭.
루시엔이 발을 빠르게 내딛음과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칼라반도 루시엔과 같은 속도로 발을 움직이며 그녀의 검을 모두 피해내었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지?”
루시엔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으나 칼라반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루시엔의 검을 피하는데 집중했다.
“그래. 빠른 발이 네 장점인가 보구나. 그렇다면!”
루시엔의 검에서 환한 빛무리가 퍼져 나왔다.
빛무리는 일제히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한꺼번에 칼라반에게로 들이닥쳤다.
파콰과광!
콰과강―!!
강한 일격에 거친 충격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쏟아지는 공격들에 흙먼지가 자욱이 일어남과 동시에 칼라반의 형체가 점점 스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이클립스 인원들이 실망 섞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끝났나.”
“이거 뭐 괜히 시간만 뺏긴 것 같은데.”
“흐음, 루시엔님의 검술 실력이 나날이 좋아지고 계시네.”
“검의 위력도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어. 저런 일격이라면 저 블레이드 후보님도 무사하지 못하시겠지.”
그들이 저마다의 얘기를 꺼내며 수군거리고 있을 때, 이클립스의 각 대장들은 말없이 연무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