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5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15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5화
헤이홀즈는 고해성사하듯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헤이홀즈… 너는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겁이 많은 녀석이었다. 밝고 쾌활했지만 두려움이 많아 또래 친구들에게 자주 놀림 받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래서 이레아가 줄곧 제 옆에서 힘이 되 주었죠…….”
“그래. 너는 그런 녀석이었다. 하지만 나서야 하는 순간에는 주저 없이 나서는 녀석이기도 했지. 나는 너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던 거고.”
칼라반이 헤이홀즈의 손을 붙잡아주었다.
“그런 네가 도망치지 않고 거기까지 움직였다면 정말로 잘 한 거다. 최선을 다한 거야… 목숨이 달린 그 위태로운 순간에도 너는 이레아의 곁에 있어주었으니까… 외면하지 않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거다…….”
“혀…형님… 하지만 전… 저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아버지가 그랬다는 것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고… 수치스럽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습니다…….”
이제야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듯 헤이홀즈는 마음속에 감춰왔던 말들을 토해내었다.
칼라반을 보니 절로 이레아 생각이 나 마음은 한없이 약해지고 있었다.
“네 아버지도 너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일 거다… 이레아와 함께 휘말리면 너도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까…….”
“아니요. 제 아버지는… 아니, 그 사람은…! 제가 아닌 자신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 영지의 이름이 아더만으로 바뀐 것은 형님도 잘 알고 계시지요? 제 아버지란 사람이 그들과 한 거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레아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대가로 이 영지를 온전히 아버지의 손에 쥐어주기로 한 것… 고작 그것 때문에 이레아를…….”
“…그럼에도 네 아버지이질 않느냐. 너도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곁에 머물러 온 것이겠지.”
칼라반의 말에 헤이홀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토록 원망하고 미워했던 아버지였지만… 어쩐지 그의 곁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칼라반은 단번에 꿰뚫어 본 것이다.
덥석.
칼라반의 손이 헤이홀즈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쁜 것은 너희들이 아니다. 내가 증오할 대상도 너와 네 아버지가 아니야.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아크로이어 그 자이지…….”
그의 두 눈동자엔 이미 싸늘한 분노가 자리 잡아 있었다.
“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던 헤이홀즈는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해 준 칼라반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신 겁니까? 오랫동안 연락 한번 없으셔서 정말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혹시 칼라반 형님도 그들에게 쫓기신 겁니까?”
칼라반이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정을 말하자면 좀 길다. 그냥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는 정도로만 알아 뒀음 좋겠구나.”
“지금 와서 새삼 느끼는 겁니다만… 형님의 지금 모습은 10년 전보다도 더 젊어 보이십니다.”
“그런 가…….”
그때 헤이홀즈가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이었다.
“아… 그런데 제 짐작이 맞다면… 형님은 지금… 예전의 힘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맞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전에 그 방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형님에게서 예전과 같은 기운은 느껴지질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어둠이 형님의 곁에 자리해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조금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집니다. 미약하긴 하지만… 게다가 그 방에서도 하급이나 중급 정령 정도만 소환해도 바로 빠져나가실 수 있었을 텐데 그리 하지 않으셨구요. 아니… 그리 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군요.”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한 헤이홀즈의 말에 칼라반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지금 힘을 잃은 상태다. 예전과 같은 힘은 발휘할 수 없어.”
“역시… 혹시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으로 찾아오길 주저하신 겁니까……?”
“뭐……?”
“저는 형님께서 모든 힘을 잃어버린 탓에 이곳으로 쉽게 찾아오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함부로 찾아왔다간 위험만 몰고 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대 기사장이라는 정점에 섰던 기사가 모든 힘을 잃어버리면… 그 상실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아마 그 상실감과 절망감부터 견뎌냈어야 했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헤이홀즈가 안쓰러운 눈으로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실례지만… 혹시 전쟁에서 부상당한 탓에 힘을 잃어버리신 겁니까?”
“비슷하다.”
사실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해 힘을 잃어버린 것이지만, 헤이홀즈에게 모든 것을 말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부상은 배신자들 때문에 생긴 것이겠지요…….”
칼라반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헤이홀즈의 말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님이 이 나라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리고 그건 이곳 레오르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겁니다.”
“그런가…….”
그는 헤이홀즈의 말에 작은 위로를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형님께서 누구보다 이 나라를 위해 앞장서왔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형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후후. 고맙다.”
“그러니 기운을 내십시오! 형님은 그들이 말하는 반역자나 배신자가 아닌 위대한 영웅이자 승리자이십니다……!”
헤이홀즈는 일부러 더 밝게 외쳤다.
칼라반은 그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워 살며시 미소를 보였다.
“저… 그런데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뭐지?”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칼라반에 대한 헤이홀즈의 궁금증은 끊이질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헤이홀즈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한다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헤이홀즈의 시선은 칼라반의 입에서 떠날 줄 몰랐다.
“당연한 걸 뭘 묻는 거냐.”
칼라반의 말에 헤이홀즈의 얼굴에도 화색(和色)이 돌았다.
“그럼…….”
“내 동생 이레아의 복수를 할 거다. 이레아 뿐만이 아니야… 아크로이어 놈의 손에 죽어간 나의 수많은 동료들과 수하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피의 길을 걸을 생각이다. 아크로이어는… 나의 마지막 신뢰마저 저버렸다. 결코 가만둘 수 없어.”
“하지만… 형님은 이미 모든 힘을 잃어버리시질 않았습니까?”
“헤이홀즈. 비록 내가 예전의 힘을 잃어버렸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숨 쉬는 한 희망은 얼마든지 있다.”
“아아…….”
칼라반의 말에 헤이홀즈가 또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또 왜 우는 건가?”
“이번엔 기뻐서 그렇습니다. 기뻐서…….”
“뭐가 그렇게 기쁘길래 눈물까지 보이는 거냐.”
칼라반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속으로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혹시나 그동안 형님의 마음이 약해지셔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하시는 것은 아닐지… 물론 그것도 형님의 선택이니 저는 최대한 존중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아쉬움과 원망 어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들어왔는지 형님은 정말 모르실겁니다…….”
헤이홀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하소연 하듯 말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그럴 리가 없질 않느냐. 이 세상에 동생의 죽음을 나 몰라라 할 오빠가 어디 있겠나. 거기다 아크로이어의 배신으로 인해 내 동료들과 수하들까지 잃었다. 나는 놈을 결코 용서할 수 없어.”
“맞습니다… 맞습니다. 형님. 다만…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그 말씀이 너무도 와 닿아서… 그래서 울컥했던 것 같습니다.”
칼라반은 손을 들어 헤이홀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행이다. 너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이로구나.”
“형님도 10년 전 그때의 모습 그대로이십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놓여, 이토록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헤이홀즈는 진심으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곤 이내 지금껏 생각해왔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냉정하게 얘기해서 지금의 형님은 저조차도 이기기 힘들 것이라 판단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그렇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까?”
헤이홀즈의 조심스런 물음에 칼라반은 솔직하게 답했다.
“맞는 말이다. 작금의 나는 너조차도 당해내기 힘들 거다.”
헤이홀즈도 나름 귀족가의 자식으로써 기사 수업을 받아온 사내였다.
애석하게도 지금 칼라반의 상태로는 헤이홀즈 조차 버거운 상대임엔 틀림없었다.
“그래서 제가 형님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드리려 합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예.”
헤이홀즈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주변을 경계하는 그의 모습에 칼라반도 그가 심상치 않은 얘기를 꺼내려는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사실 저는 지금 어느 집단에 몸을 담고 있는 중입니다. 이 사실은 아버님조차도 모르는 사실이구요.”
“집단?”
헤이홀즈가 칼라반의 귓가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대었다.
“예. 제가 있는 집단에 대해 지금 여기선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을 것 같습니다만…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크로이어 황제와 휘하 여섯 왕들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입니다.”
수군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칼라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헤이홀즈가 그런 집단에 몸을 담고 있는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던 탓이다.
“너… 그래도 괜찮은 건가? 너의 아버지가 알게 된다면… 아니, 그보다 아크로이어나 다른 황궁의 인사가 네 정체를 알았다간…….”
“제 목숨도 끝장나겠지요.”
“그런데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칼라반이 조금은 발끈한 모습으로 물었다.
그러자 헤이홀즈의 꽉 말아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분했습니다… 이레아를 그렇게 떠나보낸 것이 너무도 분하고 억울해서…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이레아를 위해…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형님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랬나…….”
칼라반은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
사실 헤이홀즈 나름대로 노력한 일들을 자신이 감히 무어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것이 그 나름대로의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했던 방법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그곳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형님께 추천해드릴 생각입니다. 아직 그 친구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진 않습니다만 어떻게 해서든 끌어들일 생각입니다.”
“그게 누군지 물어도 되겠나?”
“아마 형님께서는 모르는 사람일 겁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연화 님처럼 동방에서 온 인사거든요.”
“연화…….”
칼라반은 스쳐지나간 연화라는 이름에 씁쓸함을 머금었다.
헤이홀즈는 얘기를 이어가느라 칼라반의 얼굴에 지나간 씁쓸함을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형님께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가까이서 그를 지켜봐온 제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습니다.”
“흐음… 동방에서 온 사람이라니… 특이하군…….”
“누구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건너왔다고 하는데. 다행이 아직까지도 만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가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그를 낚아채가려 했지만… 워낙 쉽지가 않아서… 본인이 뜻하질 않으면 좀처럼 움직이질 않는 친구입니다.”
“그런 사람을 내가 만난다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그 친구에게 가장 친한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이곳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이자 유일한 말 상대가 저라고 했으니 확실 할 겁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헤이홀즈를 보며 칼라반이 실소를 머금었다.
“지금은 제가 왜 이렇게까지 그 친구를 추천해드리는지 잘 이해가 안 되실 테지만… 나중에 직접 그를 만나보게 되거든 아마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