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50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50화
#체르피히
문이 열리고 작은 체구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부터 살폈다.
눈에 들어오는 특별한 장식이나 호화스런 물품들은 딱히 없었다.
이는 곧 이곳의 주인이 그다지 사치품을 즐기는 이는 아니란 뜻이었다.
그럼에도 상관없었다.
물론 사치 품목을 즐겨 사는 이라면 좀 더 상대하기 수월했을 테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넘기면 될 일이었다.
사내의 뒤를 따라 몇몇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운량이 먼저 그를 향해 인사했다.
그를 올려다본 작은 체구의 사내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정확히 칼라반이 있는 곳이었다.
사내는 칼라반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공민님. 체르피히라고 합니다.”
“어서오십시오.”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와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전에 체르피히님이 보내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낸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습니다.”
“호오, 그랬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이곳으로 찾아오길 더더욱 잘한 것 같군요.”
체르피히가 자신의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는 좁게 뜬 두 눈으로 벌써부터 상대인 칼라반을 살피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태도와 자세.
거기다 어물거림 없는 말투는 과연 그가 지금껏 소문으로 접해 온 이가 맞나 싶었다.
‘역시나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되는군.’
그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히 들어왔던 블레이드 후보 공민.
막상 그를 눈앞에서 마주하자 체르피히는 소문이 그를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접해온 자신의 직감이 그것을 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운량이 체르피히를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칼라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후후후 우선은 상인으로서의 호기심 때문입니다.”
“상인으로서의 호기심?”
“예. 현재 라그나로크 내에서 가장 회자되는 인물이 바로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이 아니십니까? 그래서 과연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이 어떤 분인지 문득 궁금해져 찾아와봤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체르피히님이 직접 이곳까지 찾아올 정도라고 생각하기엔 다소 약한 이유로군요.”
칼라반의 말에 체르피히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 아무런 속내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건만 마치 칼라반은 그 속내를 드러내보라는 듯 말문을 터주고 있었다.
“후후 맞습니다. 단순히 호기심 만이었다면 이렇게 직접 찾아오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른 찾아온 이유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제 방문에 그다지 놀라워하는 기색도 없는 것을 보니 무언가 짐작이라도 하고 있으신 듯합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두 눈은 웃지 않는다.
말투는 부드럽게 들렸으나 어딘가 날카로움이 묻어나 있었다.
칼라반은 이를 눈치챘으면서도 짐짓 모른 체했다.
그가 입을 열지 않으니 체르피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래 라그나로크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입니다.”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최근 들어… 정확히는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과 하이데 블레이드 후보님이 서열전을 치르고 난 뒤부터 입니다만… 하이데님을 따르는 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잦아졌습니다.”
“그렇군요.”
칼라반이 무미건조한 말투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체르피히는 여전히 날카로운 눈썰미로 칼라반의 태도 하나하나를 모두 살피고 있었다.
“이는 마치 천천히 피를 말리며 맹수를 사냥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참 공교롭지 않습니까? 공민님께서 하이데님을 이긴 그날부터라니.”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하이데님께 원한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암중에 움직이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흥미로운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이렇다 할 흔적이 나오질 않더군요. 더군다나 제 아무리 서열전에 패배했다 한들 하이데님은 명실상부 블레이드이신 하르스마이어님의 동생분이십니다. 겨우 서열전 한 번의 패배에 그들이 이빨을 드러내기엔… 뭔가 상황이 맞지 않는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제 생각이 이곳까지 미친 겁니다.”
“그렇군요.”
“저는 이 일의 뒤에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이 있으실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체르피히는 여전히 칼라반에게 시선을 머무르고 있었다.
최근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이 신예는 자신을 상대로 무서우리만치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이데의 수하들을 암살하는 괴인들.
그들은 암살 수법에 있어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질 않았다.
체르피히는 그 이유를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라고 확신했다.
하기야 하이데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하르스마이어의 화살도 덩달아 자신들에게 향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
그렇기 때문에 이번 계책의 핵심은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유추해낸 자신의 말에도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혹시나 내 짐작이 틀린 것인가…….’
체르피히는 속으로 낮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나 그의 직감은 계속해서 눈앞의 칼라반에게 무언가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체르피히를 바라보고 있던 칼라반이 입을 열었다.
“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서열전에서도 공민님은 하이데님을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단순 보여주기 위한 식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그 장면은 머릿속에 단단히 기억되었을 테니까요. 항상 자신만만해 하던 하이데님이 다른 누구도 아닌 라그나로크 원로들의 손에 구해지다니… 자존심 강한 그분에게도 그 기억은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겁니다.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 과연 어떤 것을 의도하고 그렇게 행동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어느 정도 의도하신 바를 이루었을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와 드는 생각입니다만… 그날 정말 하이데님을 죽이려고 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때 저는 진심으로 하이데를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둘렀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더더욱 현재의 사건들을 일으킬 만한 사람으로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만 아직까지 의문인 것은…….”
“의문인 것은?”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주도면밀하게 하이데님의 세력을 사방에서 옥죌 수 있는지…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의 뒤를 봐주고 계시는 아라카인님의 세력은 그렇게 일을 꾸밀 수 있을 만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이는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지요.”
체르피히의 시선이 슬쩍 유운량에게로 향했다.
그만큼 머리를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바로 저 사내가 아닌가 싶었다.
‘듣기로 공민 블레이드 후보의 곁에서 특이한 옷을 입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내가 있다 했는데 아무래도 저자인가보군.’
빠르게 스쳐 지나가듯 시선을 옮긴 체르피히가 다시금 눈앞의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칼라반은 체르피히의 시선을 받아내면서 슬쩍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그 미소의 의미가 궁금해졌으나 체르피히는 서두르지 않고 칼라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것에 대해 제가 대답할 이유가 있습니까?”
“흠… 글쎄요… 하지만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 어떤 대답을 해주심에 따라 저와의 좋은 거래가 생겨날 지도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체르피히님의 의문점을 해결해드리는 대신, 체르피히님께서도 제 부탁을 들어주시는 걸로.”
“호오.”
칼라반의 말을 들으며 체르피히가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눈앞의 상대가 생각보다 자신감 있는 태도로 일관하자 그에게도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함부로 속내를 비출 수는 없는 법이었다.
“말씀을 듣기에 앞서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선 이 체르피히가 누군지 잘 알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라그나로크 안에서 체르피히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하하 그것은 과찬이십니다. 단지 저는 돈을 벌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최전선에 나서는 블레이드님들에 비해 저는 그저 상인쯤에 지나지 않지요.”
“하지만 초창기 라그나로크에 많은 투자를 하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긴 하지만 덕분에 저 또한 많은 돈을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라그나로크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과 거래를 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지요. 그러니만큼 많은 블레이드 후보들, 더 나아가 라그나로크의 블레이드와 제국의 귀족들까지 저와 거래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군요.”
체르피히는 은근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조금 드러내며 상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보통의 블레이드 후보들은 이런 경우 한결 움츠러드는 태도를 보였다.
그게 아니면 자신의 가문이나 세력들을 떠올리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는 자들도 더러 존재했다.
때문에 체르피히는 칼라반의 경우는 어떠할지 내심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칼라반은 여전히 똑같은 태도를 유지할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은연중에 드러나는 그의 기세가 오히려 체르피히로 하여금 신경 쓰이게 했다.
‘뭔지 모르겠어…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홀로 떠 있는 기분이로로군… 너무도 고요해서 오히려 내가 더 말려드는 기분이야.’
하지만 체르피히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부디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 해주실 수 있는 말씀이 제 흥미를 끌 수 있을 만한 것이었으면 좋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우선 단편적으로 먼저 말씀드리자면, 하이데 수하들을 사냥하는 것. 그것은 체르피히님의 짐작대로 제가 시킨 일입니다.”
칼라반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자 듣고 있던 체르피히마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다.
조금 돌려 말하거나 할 줄 알았건만 시원하게 자신의 소행이라 밝혀버린 것이다.
덕분에 체르피히만 괜히 싱거워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것이 충분히 놀랄 만한 내용이기도 했기에 오묘한 표정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흐음… 이렇게 시원히 밝혀주시는데도 오히려 저는 찜찜한 기분이로군요. 이렇게 제게 쉽게 말해주어도 괜찮은 것입니까? 저는 이 내용을 좀 더 빌미로 삼아 제게 거래를 요구할 줄 알았습니다만… 솔직히 의외로군요.”
“사실 그다지 감출 만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이 아니더라도 체르피히님은 저와 거래를 하고 싶어지실 겁니다.”
“음? 좋은 자신감이로군요. 그런데 하이데님을 노린다는 것이 곧 무슨 의미인지는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허면… 역시 전쟁을 택하시려는 겁니까?”
체르피히가 돌연 목소리를 낮게 가라앉히며 물었다.
그의 두 눈은 어느새 빛이 나고 있었다.
어디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돈의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하는 듯했다.
“그렇습니다.”
“……! 하이데님을 건드리면 블레이드이신 하르스마이어님도 자연히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것까지 감당하실 자신이 있으신 겁니까?”
“그 형제는 저와 함께 걸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허어… 그렇군요. 그렇지 않아도 하이데님이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의 목숨을 몇 번씩 노렸다는 얘기는 주워들은 적이 있습니다. 두 분의 관계는 어느새 그렇게까지… 그렇다면 공민님께서 제게 하고자 하는 얘기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군요.”
체르피히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한쪽 입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전쟁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시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