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51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51화
#체르피히와의 거래
“그렇습니다.”
칼라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반응에 체르피히도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화는 지금부터였다.
“이제 보니 제가 이곳으로 찾아온 것은 공민님에게도 아주 잘된 일인 것 같군요. 허나 저는 상단을 이끄는 상인입니다. 섣불리 제 돈을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물론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제공해주신 정보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치를 수 있습니다만…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과 저와의 거래를 이어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조금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제 쪽에서는 일개 블레이드 후보가 같은 블레이드 후보와 라그나로크의 블레이드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려는 것이니까요. 물론 다른 블레이드의 도움을 받는다면 또 모를까…….”
체르피히는 말을 하면서도 칼라반과 다른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몇몇 이들이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긴 했으나 따로 끼어들거나 하진 않았다.
특히나 이상한 옷차림에 부채를 들고 있는 사내는 한결같은 온화한 표정으로 자신의 얘기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칼라반의 뒤에 선 중년인이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자신이 누구던가.
아무리 상대가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고 불편한 태도를 보인다 한들 돈에 관해서라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인물이 바로 체르피히였다.
다만 의외인 것은 ‘일개 블레이드 후보’라 칭했건만 눈앞의 상대에게선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시 뭔가 있나보군.’
눈을 날카롭게 빛낸 체르피히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돈에 따라 움직이는 자입니다. 만약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 제안하는 것들이 상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저는 언제든지 제게 더 이익이 있는 쪽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물론 다른 이외의 것들, 고객과의 비밀스런 얘기 같은 것들은 어디에도 누설되지 않고 제가 무덤까지 가져갈 것이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체르피히의 명예와 돈을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체르피히 당신을 원합니다.”
“음!? 이것 참… 생각 이상의 말씀이시로군요. 저를 원하신다라… 정확히는 저의 재력 전부를 원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체르피히가 눈매를 좁히며 물었으나, 상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에 체르피히도 조금 여유를 가지며 물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조금은 불쾌한 기색이 묻어났다.
“라그나로크의 블레이드조차 감히 제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만…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선 과연 그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미리 말씀드리겠지만 이 자리에서 제 목숨을 담보로 겁박하실 생각은 마십시오. 그런 것쯤은 전혀 통하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자격이라… 지금부터 천천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판단해주면 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선 제가 당신에게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돈은 체르피히님께서 지원해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저를 원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한 바입니다. 그렇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리함으로써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그나로크.”
“예?”
“나아가 제국에서의 영향력도 손에 거머쥘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허어…….”
당치도 않은 말에 그 체르피히마저 순간 넋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헛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건만 상대는 여전히 진지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라그나로크를 준다는 말만 해도 믿기 어려울 지경인데 제국까지 거론하다니!
으레 신입 블레이드 후보들이 말하는 당찬 포부인지 희망사항인지 이딴 것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저 상대의 입에서 나온 이 황당무계한 말에 그만 실소를 금치 못할 뿐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제외하곤 칼라반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그 누구도 이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결코 농담은 아니란 얘기였다.
이에 체르피히도 마음을 다잡고 상체를 앞으로 가져갔다.
“좋습니다. 그 말씀에 책임을 지실 것이라 믿고… 정말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의 말씀대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으로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을 지원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선 공민님의 말씀이 그저 허황된 말로밖엔 안 들리는군요. 그러니 이만 갖고 계신 패를 알려주십시오. 혹시나 이곳에서의 일이 밖으로 누출되는 것을 염려하신다면 결코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사 제가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고객과의 신용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 그것이 지금껏 제가 살아온 길이기도 하고요.”
“그 점이 당신을 택한 이유입니다.”
“이것 참, 얼마나 기뻐해야 하는 일인지는 아직 감이 잡히질 않는군요. 마저 듣고 결정하겠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체르피히님께선 이것을 감당할 자신이 있습니까? 혹시나 지금이라도 돌이키고 싶다면 그리 하셔도 됩니다. 제 얘기를 듣고 나면 당신은 돌이킬 수 없게 될 테니까요.”
“하하하!! 위험이 없는 커다란 거래는 없습니다. 그러니 속 시원히 말씀해주십시오!”
체르피히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블레이드도 아닌 블레이드 후보와의 거래건만 이상하게도 온 몸이 저릿하니 소름이 끼쳤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패를 가지고 계신지 봐볼까.’
체르피히는 어느덧 냉철한 상인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이를 인지한 칼라반이 말문을 열었다.
“우선. 앞서 궁금해 하셨던 것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딱!
칼라반이 손가락을 튕기자 아무도 없던 곳에서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들의 존재에 체르피히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이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이 바로 하이데의 수하들을 사냥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허어… 과연 이자들이… 그런데 단순히 실력 있는 어쌔신들을 곁에 두었다는 말을 하시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직 눈치채지 못하셨나보군요. 이들이 누구인지를.”
“예?”
칼라반의 말에 체르피히가 다시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검붉은 색 무복을 입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쌔신들이었다.
그때 그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가면……?”
“이제 짐작이 가십니까?”
“가면에 흔적도 없는 암살행… 설마 이들이 어나니머스라도 된다는 말을 하고자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바로 맞추셨습니다.”
“……!”
칼라반의 말에 체르피히도 이번에는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평생을 돈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자신도 어나니머스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고객 중에는 자신의 돈을 이용해 어나니머스를 고용하고 싶어 하는 자들도 있었으니 체르피히가 이들을 결코 모를 리 없었다.
“어나니머스와도 거래를 하신 겁니까?”
“아니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설마 이들이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을 따르기라도 한다는 얘깁니까?”
체르피히의 질문에 어나니머스의 일원이 대신 입을 열었다.
“이분은 우리 어나니머스의 마스터이십니다.”
“어나니머스의 마스터라니… 돈으로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 어나니머스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칼라반의 말에 체르피히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쿵쾅거리는 심장은 그가 주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나니머스가 누구던가!
자신과 다르게 돈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명실상부 최고의 암살조직이 바로 어나니머스였다.
알려진 이름만큼이나 실력이 대단한 조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 저들이 정말 어나니머스라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되는군.’
눈앞의 사내가 그런 어나니머스의 마스터라니.
이것은 체르피히에게도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는 사실이었다.
‘과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구나… 어나니머스의 마스터라니… 이런 거물이 지금껏 그런 소문에 휩싸인 블레이드 후보로 살아왔다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뒤죽박죽 돼가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없었기에 체르피히가 흥분되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물었다.
“다음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나를 블레이드 후보쯤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곧 블레이드가 될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혹시 어나니머스를 이용해 하르스마이어님과의 전쟁에 승리해서 그 빈자리를 이어갈 생각이십니까? 어나니머스가 분명 대단한 집단인 것은 맞지만 단순히 이들로만 라그나로크의 블레이드를 상대하기엔…….”
체르피히가 말끝을 흐릴 때 지금껏 뒤에서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후에 블레이드 회의가 열리는 것은 알고 있나?”
“아, 물론입니다. 그것 때문에 각지에 흩어져 있던 블레이드들이 오랜 만에 한자리에 모인다는 얘기들로 가득하니까요.”
“그곳에 우리 주인께서도 참석하게 될 것이다.”
“예? 하지만 그 회의는 블레이드님들만 참석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공민님은 이미 블레이드급의 세력을 갖고 계시니 충분한 자격이 된다.”
“흠… 쉽게 이해되는 말은 아니로군요. 공민님께서 이미 블레이드에 준하는 세력을 갖고 계신다니, 그 말은 마치… 음!?”
그때서야 체르피히는 칼라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하르스마이어를 죽이지 않고도 충분히 라그나로크의 여덟 번째 블레이드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정도의 세력을…….”
“공민님은 이클립스의 주인이 되셨다.”
“이클립스… 이클립스라니… 초대 블레이드셨던 이슈하르트님의 그 이클립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대장이 공민님께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이클립스 제 1번대 대장 하데르다.”
하데르가 자신을 소개하자 체르피히는 그 자리에서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이슈하르트가 사라진 이후로 단 한 번도 바깥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인물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놀랍군요. 당신이 광전사 하데르님이셨다니… 비록 온전하진 않지만 광전사 하데르님을 비롯한 이클립스의 세력과 대륙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암살 조직 어나니머스까지… 과연 블레이드 준하는 세력이라 말할 수 있겠군요. 이제야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대단히 흥미롭군요.”
“아직 놀라시기엔 이릅니다. 여기에 그라다 산맥의 산악 민족도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유운량이 파초선을 펼쳐들며 말했다.
덕분에 체르피히는 허허로운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 흉포한 그라다 산맥의 산악 민족까지… 이것 참 이미 블레이드들에 손색없을 정도의 세력을 갖추고 계셨군요. 이렇게 세력을 갖추실 동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 더욱 놀라울 따름입니다…….”
체르피히는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이클립스와 어나니머스. 거기다 산악 민족까지.
결코 하르스마이어에 뒤지지 않는 전력이었다.
아니 그 어떤 블레이드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한 가지 더 있었군요.”
체르피히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감이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칼라반에 대해서 말할 차례라고.
따라서 지금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대단했지만 과연 이번에는 얼마나 저를 놀라게 할지 기대가 됩니다.”
체르피히는 두근거리는 마음에 떨리는 손을 마주 부여잡았다.
과연 마지막으로 상대가 보일 패는 무엇일까.
자신의 마음은 이미 이 사내에게 자신의 전력을 쏟아부어야 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궁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것은 그대들에게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칼라반이 하데르와 다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에게도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스륵.
칼라반의 발밑에서 어둠이 퍼져나갔다.
이어 어둠 속에서 등장한 존재에 하데르와 다인은 물론 체르피히까지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고 말았다.
털썩.
자리에 쓰러진 체르피히가 바다에 주저앉아 두 눈만 끔뻑거렸다.
“이…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