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5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52화
#동맹
“제, 제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이… 설마…….”
“어둠의 정령……?”
“이게 대체…….”
체르피히뿐만 아니었다.
하데르와 다인도 놀란 눈으로 칼라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나의 진짜 정체입니다.”
“정말… 정말 제 앞에 있는 것이 어둠의 정령이 맞는 겁니까?”
“보다시피.”
칼라반의 답에 체르피히는 아직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어둠의 정령.
이것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진짜 정체는 제국의 대기사장… 칼라반이었습니까.”
“이제는 대기사장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은 전장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크으음…….”
칼라반의 담담한 태도에도 불구 체르피히는 연신 무거운 침음성을 흘렸다.
그는 그때서야 칼라반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후우…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리는 사실이로군요.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제국의 대기사장이자 극한의 군주로 불렸던 칼라반의 생존.
이 사실은 당장이라도 제국을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어디 제국뿐일까.
라그나로크에도 이 사실이 퍼지기 시작한다면 당장 많은 동요가 일어날 것이 뻔했다.
“크하하하! 제국의 대기사장이라… 정말 당치도 않은 분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구만!”
돌연 하데르가 크게 웃어젖혔다.
다인은 아직까지 충격이 가시질 않은 건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진짜 이름은 칼라반. 과거 제국의 대기사장이었고 어둠의 정령술사로도 불렸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솔 기사단의 대장이기도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정말 칼라반님이 맞으시다면…….”
체르피히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곤 칼라반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은인께 감사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은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과거 데미른 왕국의 습격을 기억하십니까?”
“데미른 왕국이라면 기억합니다. 도시 두세 개가 순식간에 함락되어 불바다가 되었던…….”
“그렇습니다. 당시 데미른 왕국에 의해 점령되었던 도시 중 제 가문이 속해 있던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솔 기사단이 찾아왔고 곧 데미른 왕국군에게서 저희를 구해주었습니다.”
“기억납니다. 우리가 탈환했던 도시는 클레이든. 데미른 왕국의 군주 카이잭이 머물렀던 도시였죠.”
“맞습니다. 정확히 기억하시는군요. 당시 카이잭은 가차 없이 도시의 귀족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놈은 제 부모님마저도 무참히 살해 했고… 저 또한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때 그들이 찾아온 겁니다. 솔 기사단이 말이죠. 당시 저는 당신의 뒷모습밖에 보질 못했습니다만 그때 봤던 장면들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데미른 왕국의 병사들을 죽이던 솔 기사단과 어둠의 정령들을 부리며 카이잭을 죽였던 당신의 모습을요.”
“그랬군요. 그때 당신이 그곳에 있었다니.”
“하하하! 이건 어쩌면 운명인 것 같습니다.”
체르피히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칼라반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는 동경하는 대상을 만난 어린아이처럼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껏 보였던 인위적인 표정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표정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오늘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은 결코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미약한 힘이나마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칼라반님을 돕는 일이라면, 제 모든 돈을 드려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돈을 버는 재주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돈이 없어지면 다시 벌면 되니까요.”
“후후 말씀만으로도 감사하군요.”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하는 말씀도 낮춰주십시오.”
체르피히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그는 상대가 칼라반이라는 것을 알고 나선 행동에 조심성과 공손함을 더했다.
뒤바뀐 체르피히의 태도에 하데르마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천하의 체르피히가 저런 모습을 보인다니.
돈에 관해서는 가족도 소용없다는 체르피히가 아니던가!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가 냉혈한이라고 불리던 바로 그 사내가 맞나 싶었다.
그러건 말건 체르피히는 흥분되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럼 제가 뭐부터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우선 이클립스와 다른 이들을 수용할 만한 곳이 필요하다.”
“따로 봐두신 장소가 있으십니까?”
체르피히의 말에 칼라반이 운량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운량이 파초선을 접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후에 주군의 세력이 커질 것에 대비해 미리 봐둔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에 건물을 올리면 되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제가 준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상 인원은 얼마나 됩니까?”
“족히 만 명 이상은 될 것입니다.”
“만 명이라… 알겠습니다. 그들이 먹을 식량과 다른 것들도 준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병장기는 안 필요하십니까?”
“병장기 또한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함께 준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이 정도쯤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유운량의 감사인사에 체르피히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는 곧바로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을 불러들였다.
그가 무언가를 적어 내리며 지시하니, 수하들이 일사불란하게 바깥으로 나섰다.
“그나저나 아직까지도 믿겨 지지 않는군요. 칼라반님이 이렇게 살아계신다니. 그럼 이제부터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우선 라그나로크의 블레이드가 될 생각이다.”
“그건 좀 전의 말씀처럼 정말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나니머스와 이클립스, 그라다 산맥의 산악 민족과 이제는 저의 금력까지 더해졌으니. 칼라반님께서 블레이드에 오르시는데 이견은 없을 겁니다. 제가 좀 더 힘을 실어드리기 위해 대외적으로 저와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과의 동맹을 알리겠습니다.”
“동맹?”
“예.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에 조금 부끄럽긴 합니다만… 라그나로크 내에서도 손꼽히는 거상인 저와 동맹을 맺었다고 하면 다른 블레이드나 원로들에게도 쉽게 인정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결코 아무나와 거래를 트지 않으니까요.”
“그런가.”
“이 체르피히와의 동맹으로 금력을 도움 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시사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체르피히는 괜히 으스대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한층 자신감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블레이드가 된 이후에는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역시 제국에 복수를 가할 생각입니까?”
체르피히의 물음에 칼라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반응에 체르피히도 역시나 싶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체르피히도 대충의 사정은 들어 알고 있었다.
대기사장 칼라반과 솔 기사단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말이다.
제국 황실은 솔 기사단의 인원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라면 언제고 제국을 향해 검을 겨눠 올 수 있었다.
그런 불안 요소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제국 황실에서는 칼라반과 솔 기사단에 관련된 것들은 보고하기만 해도 이에 합당한 사례를 주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꽤나 흐른 만큼, 상대적으로 덜해지긴 했지만 초창기 때는 지독하리만치 솔 기사단의 생존자들을 쫓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체르피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이곳저곳에서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만.”
“들은 얘기?”
“암중에서 제국 황실 몰래 병력을 모으고 있는 이가 있다 들었습니다.”
“병력을 모으다니 누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대장으로 솔 기사단의 생존자를 짐작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자가 바로 심연의 폰투랑입니다.”
“폰투랑이?”
“예.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와 닮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자는 창을 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창이라면…….”
“신속의 창술사 레처드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체르피히의 말에 칼라반이 어두운 얼굴을 했다.
폰투랑과 레처드라면 둘 다 자신의 휘하에서 만인대장을 지냈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왕 라카르를 죽이려는 것 같습니다.”
“라카르를?”
“예. 병력이 운집하고 있는 장소가 그곳과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아니면 솔 기사단의 생존자들을 속이려는 제국의 농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폰투랑과 레처드라…….”
그리운 이름이었다.
칼라반이 잠시 회상에 젖어 있는 때 체르피히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다른 얘기를 꺼내었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흐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근래 신성 교단 라파엘에서 병장기를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신성 교단에서?”
“예. 아무래도 전쟁을 준비하는 듯 보입니다.”
“라파엘이라면 이바두스 왕국의 국교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상대는 바로 제국입니다.”
“제국을 상대로?”
“예.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일전에 아크로이어 황제가 이바두스 왕국에 방문하면서 일의 발단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러면서 아크로이어 황제 휘하 왕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쨌거나 현재 제국의 분위기도 상당히 뒤숭숭한 상태입니다.”
체르피히가 준비된 차를 한 모금 했다.
“이 와중에 카르마제 왕은 이웃 왕국의 공주에게 반해 구혼이나 해대고 있으니… 아크로이어 황제와 카르마제 왕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는 말도 있더군요. 아무튼 이번 블레이드 회의도 이 같은 제국의 분위기 때문에 열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체르피히는 슬쩍 하데르 쪽을 바라보았다.
하데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체르피히의 말에 동의했다.
“뭐 정확한 것은 회의를 하고 난 뒤에 알 수 있겠지. 그리고 이번 블레이드 회의를 통해 주군께서도 블레이드 자리에 오르실 테니 향후의 거취 문제도 거론될 거고.”
하데르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하데르뿐만 아니라 체르피히도 칼라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여덟 번째 블레이드의 탄생.
이것은 곧 라그나로크 내에서도 상당한 빅뉴스가 될 것이 뻔했다.
블레이드 후보 서열 꼴찌에서 단번에 블레이드가 되다니.
이는 라그나로크 역사상 단 한 번의 유례도 없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런 대단한 일을 눈앞의 칼라반이 해낸다고 생각하니 체르피히는 뭔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칼라반님. 정말 하르스마이어 형제와의 전쟁을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것이 내가 블레이드가 되고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그렇군요… 하지만 블레이드간의 싸움은 많은 위험을 동반합니다.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한다. 놈들은 살려두지 않아.”
“후후 알겠습니다. 그럼 저 또한 전폭적으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군.”
칼라반의 인사에 체르피히도 미소를 보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성사된 두 사람의 동맹 소식은 빠른 속도로 라그나로크 내에 퍼져나갔다.
이는 체르피히가 손을 쓴 것도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시켜 누구보다도 빠르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라그나로크의 사람들은 서열전에서 하이데를 완전히 무너뜨린데 이어 체르피히와도 동맹을 성사시킨 공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