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5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54화
#러메르프티스
제국과 여러 왕국이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디를렌 지방.
이곳은 제국뿐만 아니라 다른 왕국의 사람들도 많이 머무르는 장소였다.
그리고 이 디를렌 지방에서도 꽤나 유명한 곳이 바로 러메르프티스였다.
이곳은 특히나 화려한 장식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유명했는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러메르프티스의 장식물들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을 들르기도 했다.
러메르프티스는 총 8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고 지배인들이 머무는 8층을 제외한 모든 층들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가장 저렴한 1층부터 시작해 5층까지는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남은 6층과 7층은 숙박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러메르프티스의 화려한 문 앞에서 일단의 무리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머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갈한 차림의 사내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의 안내에 함께 서 있던 사람들이 러메르프티스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엄청나게 화려한 건물이로군.”
“러메르프티스는 이곳 디를렌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입니다. 층수도 높지만 건물의 넓이도 어마어마합니다.”
“돈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런 곳들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을까요 그 사람은.”
“족히 스무 곳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인의 물음에 답해준 하데르가 이곳까지 안내해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마치 답을 바라는 눈치라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러메르프티스만큼의 건물은 아니지만 라그나로크 내에서만도 크고 작게 스무 곳 정도는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라그나로크 밖에는?”
“예. 제국이나 이웃 왕국에도 많은 건물들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그곳에서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죠.”
“그렇군… 완전히 돈이 썩어나겠는걸.”
“하하하! 그게 또 그렇진 않습니다. 많이 벌어들이는 만큼 많이 나가기도 하니까요.”
“하긴. 당장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먹여 살리려 해도 여간 큰돈이 드는 것이 아니겠어.”
그들은 러메르프티스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이곳으로 안내해 온 사내, 브다드가 건물 안쪽으로 먼저 들어섰다.
그를 따라 칼라반 일행도 안쪽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식사하시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투숙?”
“루안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아, 혹시 루안님의 손님이신가요?”
“예. ‘골드버클’에서 온 손님이라고 하면 아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사내는 브다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속히 몸을 움직였다.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은 러메르프티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신속하게 브다드의 말을 전했다.
안에서도 빠른 회신을 통해 그들을 안쪽으로 안내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이에 사내는 공손한 태도로 그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안으로 드시지요.”
사내는 단숨에 5층까지 그들을 안내해주었다.
5층은 1층보다 더 화려한 장식들과 조각상들로 내부가 꾸며져 있었다.
거기다 층의 중앙에는 물이 흐르는 분수까지 있어, 흐르는 물소리를 안주삼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이어 갖가지 고급 음식들이 그들에게로 전해졌다.
음식들과 함께 찾아온 중년인이 사람 좋은 인상을 풍기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의 책임자인 라르엘로라고 합니다. 루안님께서 이곳으로 오시는 동안 우선 식사대접을 해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식사 중 혹시나 필요하신 것들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라르엘로는 더 이상 그들의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곧바로 자리를 피해주었다.
5층에는 그들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으나, 자리마다 거리가 멀고 벽도 쳐져 있어 서로를 알아보긴 힘들었다.
“블레이드 회의는 엘카이도에서 열릴 것 같습니다.”
“엘카이도면 중립 지역 아닌가?”
“예. 이곳 디를렌까지는 제국의 영향력이 크지만 엘카이도라면 제국의 감시에서 안심해도 좋을 겁니다.”
“어차피 제국놈들은 지금 다른 것들에 정신 팔려서 이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을 걸요?”
“그렇지 않아도 이곳을 통치하고 있는 왕이 바로 논란 속의 카르마제 왕입니다.”
카르마제라는 이름에 조용히 식사를 하던 칼라반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다른 대기사장들보다 유난히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 탓이다.
‘예전부터 욕심이 많은 인사였지. 때로는 그것이 자신의 그릇을 뛰어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쟁취하고자 했던… 아크로이어 황자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과거의 일이 떠오르자 그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굳히고 말았다.
칼라반의 반응에 곁에서 식사를 하던 하데르가 그의 안색을 살폈다.
“카르마제 때문에 그러십니까?”
“잠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다.”
“카르마제 왕과 안 좋은 기억으로 연관되어 있는 모양이로군요.”
“뭐… 그다지 썩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
칼라반의 답에 한쪽에 앉아 있던 브다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현재 카르마제 왕이 통치하고 있는 이곳 크린도 왕국은 이미 썩을 대로 썩은 곳입니다.”
“썩을 대로 썩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귀족들 하나하나가 왕을 닮아 가는지 아니면 왕이 귀족들을 닮아 가는 건지… 어쨌든 다른 왕국들과 비교했을 때 일반 시민들과의 빈부격차가 가장 큰 왕국이 바로 이곳 크린도 왕국입니다. 귀족들은 갖가지의 명목으로 시민들에게서 세금을 걷어가고 있거든요.”
“세금을?”
“예. 그 세금을 내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노예로 팔려나가기도 합니다. 삶이 빈곤한 이들이 워낙 많아서 어떤 이들은 차라리 노예가 되는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배를 곯을 일은 없으니까요.”
“허어… 그런 일이.”
“인간이 살기 위해 자유를 포기한다는 말입니까?”
다인의 물음에 브다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이어가는 그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자유를 갖는다는 것은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카르마제 왕은 그 책임의 무게를 돈 즉, 세금으로 책정한 것이지요. 하지만 세금을 걷는 일도 워낙 빈번한데다 명목도 갖가지라…….”
“그럼 그렇게 걷은 세금들은 어떻게 쓰고 있는 거지?”
“전쟁을 핑계로 세금을 걷어간 귀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일어날 시 자신들이 도망갈 자금으로 빼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명목으로 세금을 걷어간 귀족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윗줄에 돈을 대고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돈으로?”
“카르마제 왕이 돈과 여자를 밝히다 보니… 많은 돈을 바치거나 아름다운 여인을 보내온 귀족들에게는 요직들을 주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요직에 앉은 귀족들도 그동안 카르마제 왕에게 바친 재물들을 복구하기 위해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합니다.”
“말도 안 돼. 그런 작자가 어떻게 왕을 하고 있는 거지? 제국 황실에선 이런 행태들을 모르고 있는 겁니까?”
브다드가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반응에 운량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카르마제는 아크로이어 황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공신이기에 어느 정도 모른 척 넘어가주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 카르마제뿐만 아니라 다른 왕들이 있는 곳에서도 문제는 일어나고 있겠지. 때문에 카르마제에게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고.”
조용히 끼어든 칼라반의 말에 브다드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카르마제가 두드러지긴 했지만, 카르마제를 비롯한 몇몇 대기사장들은 본래 나라나 영지를 운영하는 것보다 전투에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왕의 자리에 있으니 나라가 썩 원활하게 돌아가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계속해서 보고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아크로이어 황제도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아크로이어 황제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군요.”
“음? 운량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부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곧 공동의 적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잠시나마 갈등을 접어두고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손을 잡게 되니까요.”
“아… 설마 그것이 신성 교단 라파엘.”
“그렇습니다. 라파엘을 상대하기 위해 제국 황실은 병력을 소집하고 있습니다. 다른 왕들을 비롯한 주요 귀족들도 우선은 이에 집중하게 되겠지요. 제국민들의 시선도 당장은 바깥으로 향할 겁니다.”
“그건 겨우 급한 불만 끄는 수준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는 거잖아?”
“그래도 괜찮습니다. 신성 교단 라파엘을 상대로 승전보를 이어간다면 제국의 사기는 드높아질 것이고. 아크로이어 황제는 신성 교단 라파엘과 이를 국교로 하고 있는 왕국을 무너트리면 제국민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 다독이면 되니까요. 일단 시선을 외부로 돌린 이상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어차피 제국민들에게 흘러들어가는 정보는… 귀족들의 손에 놀아날 테니까요.”
운량이 앉은 자리에서 꿰뚫어보듯 말하자 브다드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시선이 곧 칼라반에게로 향했다.
“내부에서의 일이 마무리 되고나면 우선적으로 카르마제 왕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내 생각 또한 그렇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만.”
운량의 말에 하데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에선 딱히 자신들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보이진 않았다.
“오다니 누가?”
“이곳에서 합류하기로 한 분들이 있거든요.”
운량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했다.
때마침 3층에서 4층으로 올라오고 있는 일행이 보였다.
그들은 우두커니 서서 4층을 슬쩍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 없다.”
“아아 내 눈에도 그래 보이네.”
“너. 거짓말. 죽는다.”
“거짓말 아니라니까 그러네. 대체 몇 번씩이나 말해야 하나?”
“보고. 싶다. 대장.”
후줄근하고 추레한 몰골의 두 사람이 4층 안쪽을 뒤지고 다니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냄새마저 풍겨오는 그들의 존재에 몇몇 이들은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러메르프티스도 한물 간 건가? 어떻게 여기에 저런 놈들이 올라와?”
“그러게 말이에요… 어우 냄새 나. 잘못 올라온 것 같은데 누가 안 데리고 나가나?”
“아으… 보기에도 역겨운데 냄새는 또… 음식 맛 뚝뚝 떨어지네.”
특히나 한쪽 벽면에 자리 잡은 일행이 두 사람을 보며 대놓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못 들은 것처럼 누군가를 찾기에 바빴다.
“도저히 안 되겠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어머? 야인드 기사님 위험해요.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시면 어쩌시려고…….”
“하하하! 걱정 마라. 이래봬도 여러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몸이야. 겨우 저런 녀석들한테는 끄떡도 없지.”
그는 옆에 세워둔 검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190이 넘는 키에 제법 다부진 몸을 한 그가 두 사람 앞에 서자 한눈에 두드러졌다.
몇몇 이들은 이 금발의 기사를 알아보기도 했다.
“야인드가 아닌가?”
“야인드라면 케스트라 기사단의 그 야인드?”
“성질 안 좋기로도 유명하지 않나?”
“저놈들도 잘못 걸렸군… 야인드가 결코 곱게 보내줄 사내는 아닌데…….”
지켜보던 이들 중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한껏 느끼며 야인드가 어깨를 으스대었다.
“여기 잘못 온 것 같은데 돌아가라. 너희 같이 돈 없는 거지들이 올 곳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