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6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62화
#로엔의 실력
“달란!!”
“이, 이봐!”
그들이 놀라 달려갔지만 이미 달란이란 사내는 절명한 상태였다.
이를 목격한 여인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주변의 물건들을 챙길 겨를도 없이 부리나케 몸을 내달렸다.
“모두 서둘러요!”
“제기랄. 투에스트 저길 봐! 놈들이다!”
투에스트는 친구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벌써 열댓 명의 라파엘 병사들이 마을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뒤에는 말을 탄 기사들도 함께였다.
“신을 믿지 않는 이교도들이다! 모두 죽여 버려!”
“신께 바치는 재물들만 두고 모두 불태워버려라!”
라파엘의 병사들과 기사들은 주변에 보이는 집들에 다가갔다.
닫혀 있는 문은 발로 박차거나 검으로 부숴버렸으며, 안에 숨어 있던 사람들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뿐만 아니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제법 값이 나가는 물건들부터 찾기에 바빴다.
자신들의 상관이 신에게 바치는 재물이라 했지만 우선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먼저였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도망가야 합니다!”
그들의 만행을 우두커니 지켜보던 로엔의 곁으로 투에스트가 달려왔다.
그는 로엔의 하얀 손목을 빠르게 낚아채었다.
그러나 투에스트의 재촉에도 로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놈들이 여기까지 오기 전에……!”
“하지만… 하지만 아직 저기엔 아이들과 다른 분들이…….”
로엔의 눈동자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힘없고 약한 어린 아이들이었다.
라파엘 군사들은 그런 아이들을 이교도의 아이라며 무자비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는 이가 있는가 하면, 검으로 귀를 잘라내 버리는 병사가 눈에 보이기도 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날리는 부모들에겐 가차 없이 검을 휘두르며 장난감 부리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저런 찢어죽일 놈들……!”
투에스트는 이 같은 광경에 분노했으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저들은 갑옷과 함께 병장기들을 들고 있었으나 이쪽은 변변찮은 무기 한 자루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대로 그냥 달려드는 것은 개죽음을 자초하는 일임을 투에스트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래… 저 야만인 같은 놈들… 분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손으로……!”
그들은 하나둘 물러서기 시작했다.
로엔은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표정.
숨길 수 없는 감정들이 그들의 얼굴에 교차하고 있었다.
“투에스트. 당신은 제국의 기사가 되려한 것 아니었나요?”
“그건 맞습니다… 언젠가 제국의 기사가 되면 저 야만스런 놈들을 모조리 죽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어째서죠?”
“어째서라뇨? 저희는 아직 정식으로 기사의 직위를 임명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굳이…….”
“기사가 되려한 이유가 무엇인데요? 같은 제국민들을 지키고자 한 것이 아니었나요?”
“그것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제가 살아야 나중 일을 도모하고 뭐 그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투에스트는 당황스러움에 눈동자를 굴렸다.
그동안 로엔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사가 될 자신의 미래를 숱하게 그려왔다.
그런데 늘 자신이 말해왔던 미래에 이런 그림은 전혀 속해 있지 않았다.
기사가 되면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 다음은 이곳저곳에서 공훈을 얻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렇군요…….”
그때 투에스트의 귓가에 실망 섞인 로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뭔가 알 수 없는 창피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자신의 행동이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 생각하면서도 가슴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와중 그의 가슴에 커다란 한 방을 먹이는 말이 들려왔다.
“제가 늘 말씀드렸을 거예요. 저는 이미 다른 사람을 마음속에 두고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죽었다면서요?”
“맞아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요즘 저는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마치 그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 같거든요.”
“로엔 그게 무슨…….”
“어쩌면 제가 그 사람의 죽음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믿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몰라요. 이렇게 들려오는 작은 소문에도 한 줄기 희망을 걸어볼 만큼.”
“아… 그… 그런데 그 얘기를 지금 왜…….”
“그 사람이 바로 이 제국을 참 좋아했거든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제국민들을 지키고 싶어 할 만큼이나. 그러니 아마 그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아직 기사의 직위를 받지 않았더라도, 형편없는 수준의 장비들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눈앞에 죽어가는 저 제국민들을 외면하진 않았을 거예요. 아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하려 들었겠죠.”
로엔의 말에 투에스트의 가슴이 괜히 먹먹해졌다.
그러다 우습게도 지금의 상황에 비교를 당한 것이 기분 나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짐작일 뿐 막상 그 사내도 이 상황이 닥쳐오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우선 살 길을 도모하고…….”
“아뇨. 그 사람이라면 분명 조금 무모하더라도 저 사람들을 구할 방법을 택했을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는 겁니까!”
“그게 바로 제가 그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니까요. 거기다 그 사람은 이미 제 눈앞에서 숱하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거든요.”
“이익!”
분하지만 저렇게 말하니 아무런 대꾸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 사람들을 두고 자리를 벗어날 생각부터 한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로엔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어요. 그렇다고 투에스트 당신을 비난할 생각도 아니었어요.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는 법이니까요. 경우에 따라서, 그리고 주관에 따라서 당신의 판단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많을 거예요.”
로엔은 라파엘의 병사들에게 붙잡혀 있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투에스트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때 로엔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의 차이가 바로 제가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임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완곡하면서도 단호한 거절이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거절보다도 단호했다.
덕분에 투에스트는 다시 로엔의 마음을 두드려보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순간 그들을 발견한 기사 두 명이 말을 타고 이쪽으로 내달려왔다.
정신이 번쩍 든 투에스트가 이만 로엔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 당신 말대로 사람은 저마다의 방법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제 방식에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투에스트가 로엔을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늦어버렸다.
그녀는 기사들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이고 로엔씨! 어딜 가는 거야!”
“로엔!! 돌아와! 그쪽으로 가면 큰일 난다고!”
“뭘 하고 있는 거야!”
멀리서 지켜보던 여인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모두 로엔과 함께 일을 한 여인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로엔을 향해 뛰어들었다.
기사들이 당도하기 전에 그녀를 말려 달아날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유 이 기지배야!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말릴 새도 없이 로엔의 근처로 다가갔다.
로엔은 그런 여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어머? 지금 상황에 웃음이 나와!? 뭐해 빨리 안 달아나고오―!! 완전 제정신이 아니야… 하긴 제정신이었으면 저쪽으로 걸어갈 생각을 못하지!”
“감사해요. 이렇게 저를 걱정해주셔서. 하지만 괜찮아요.”
눈앞에 있는 이는 그동안 자신을 친딸처럼 대해준 노파였다.
로엔은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곤 곧바로 그녀의 품을 벗어났다.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지근거리로 다가온 기사들을 향해 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죽어라 이교도 놈들!”
기사 두 명이 검을 들어올렸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로엔을 죽일 것처럼 매섭게 달려들고 있었다.
“아우 난 모르겠다!”
이대로 몸을 돌리려던 투에스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로엔이 있는 곳으로 발을 박찼다.
그러나 이 다음 벌어진 상황에 그는 발걸음을 우뚝 멈춰버리고 말았다.
휘리릭!
팡! 파방!
말을 타고 있던 기사 두 명이 바닥을 뒹굴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투에스트는 물론 먼발치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마저 놀란 얼굴들을 했다.
“어떻게…….”
“허어…….”
기사 두 명을 가볍게 제압해낸 것은 다름 아닌 로엔이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워낙 빠르게 지나간 상황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로엔이 가볍게 움직이니 기사 두 명이 그대로 말에서 고꾸라진 것처럼 보였다.
당황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말에서 떨어져내려 한바탕 바닥을 구른 기사들도 마찬가지로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새 로엔의 손엔 그들의 검이 들려 있었다.
스각―! 촤륵!
촤라락!
검끝이 움직이자 그대로 기사들의 목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투에스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뭐야… 당신 대체 정체가…….”
투에스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로엔은 다른 마을 사람들이 붙잡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침 먼발치서 아군이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라파엘 군사들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십 수 명의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음에도 로엔은 망설임 없이 그들을 향해 달렸다.
스각! 스거걱―!
촤락!
순식간에 병사들 사이로 파고든 로엔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햇빛에 검신이 번뜩일 때마다 라파엘 병사들의 피가 대지를 적셨다.
빠르고 날렵한 로엔의 검 솜씨에 병사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급하게 그녀를 막아보려 했으나 그들의 실력으론 역부족이었다.
단숨에 병사들을 몰살시킨 로엔이 붙잡혀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서둘러 이곳에서 벗어나세요.”
“아… 아…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대체 당신은 누구신지…….”
“로엔… 이게 어떻게 된…….”
“죄송해요. 자세한 설명은 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냥 과거에 기사 생활을 했었던 정도로만 알아주세요.”
“아아…….”
로엔은 그들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인 자신에게도 서슴없이 잘 대해주었다.
몇몇 이들은 끼니를 거르지 말라며 한 번씩 먹을거리를 가져다주었고, 몇몇 이들은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 따뜻함을 가진 사람들임을 잘 알고 있기에 로엔은 이들이 라파엘 군사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허겁지겁 자리를 벗어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로엔은 묘한 표정을 보였다.
남아서 함께 싸우겠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로엔이 이를 말렸다.
그리곤 돌아서서 남은 라파엘 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조금 전 로엔의 실력을 엿보았기 때문에 쉽사리 다가서지 않고 있었다.
“제국의 일에 간섭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금껏 그녀를 잘 챙겨주고 대해준 마을 사람들을 마냥 외면할 수만도 없었다.
거기다 마을 사람들이 저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니 순간적으로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칼라반… 당신이 그려왔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저도 어렴풋이 깨달아가는 것 같군요.”
로엔의 시선이 싸늘한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과 몇몇 마을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자신이 좀 더 빨리 나서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많은 전쟁을 치러왔으면서도 이런 무거운 마음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