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6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64화
# 그녀들의 만남
“성주님!! 성주님!!”
“무슨 일인가!?”
바쁘게 성벽을 돌아다니던 파달로 백작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병사 한 명이 그의 앞에 부복했다.
“보…보고 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보고 할 것? 그게 뭔가?”
“적들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뭐라고? 적들이 물러나…? 아니 갑자기 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갑자기 병력을 물리고 있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이것 참 당황스럽군… 그렇지 않아도 금방 내성을 공략하지 않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성주님―!!!”
그때 다른 곳에서 누군가 파달로 백작을 불렀다. 이에 파달로 백작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번엔 또 뭔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외성 부근 마을에서 온 사내가 파달로 백작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흠…? 마을에서 온 사내가 나를?”
“예! 무언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어디 그럼 이쪽으로 불러오게. 시간이 없으니 빨리!”
“예!!”
파달로 백작의 말에 사내가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그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내 한 명을 데리고 파달로 백작 앞으로 왔다.
“마을에서 왔다고?”
“예, 그렇습니다.”
“이름이 뭔가?”
“투에스트라고 합니다. 장차 요트렌 성을 위해 기사가 될…….”
“아니, 긴 말은 됐고,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다고?”
“아… 예에… 그렇습니다!”
“그럼 서둘러 말해보게. 자네도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을 테니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것도 없네.”
요트렌 성이 작은 성인만큼 파달로 백작은 다른 귀족들에 비해 그 자부심이 덜했다.
때문에 그는 평민들이나 노예들의 말도 귀담아 들어 줄만큼 지혜로운 성주로도 유명했었다.
그런 파달로의 인품을 잘 알았기에 투에스트도 주저 없이 이런 상황에 파달로 백작을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그에게 로엔과 관련된 얘기를 하자니 문득 그녀가 자신을 거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뒤늦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원래 하려던 말과 다른 말을 밖으로 꺼내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마을에 적들과 관련된 첩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첩자가?”
“예! 그렇지 않아도 다른 일들로 바쁜 때에… 병사들이 자리를 비운 시기에 이곳으로 때마침 들이닥친 라파엘 군이 이상하다 여겨지진 않았습니까?”
“흐음… 그렇긴 하지… 다른 것보다 우리 요트렌 성은 다른 영지에 비해 함락해도 크게 득 될 것 없는 장소인데 저 많은 군세를 이끌고 왔으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적은 피해로 적의 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면……!”
투에스트는 자신의 생각과 달리 술술 나오는 말들에 내심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그는 로엔에게 거절당하면서 생긴 창피함과 복잡한 감정들을 이렇게 풀어내 버린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다.
‘아니… 사실일 수도 있잖아? 만약 그 죽었다는 남자의 복수를 하러 여기까지 온 것이라면? 거기다 이제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흘러들어온 로엔의 정체도 수상해… 게다가 그 실력이라니… 만약 그것이 연기를 한 것이라면?’
시작된 의심이 커져갈수록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거짓이 곧 사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는 다음 말들도 술술 내뱉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의심을 한 정황은 무엇인가?”
“그게 사실은…….”
투에스트는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말해주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생각을 끼워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 파달로 백작에게 털어 넣고 보니 로엔을 향한 의심스런 정황들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
“흐음… 확실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군… 그래서 지금 그 여인이 라파엘 진영 쪽으로 붙잡혀 갔다는 얘기인가?”
“붙잡혀갔다기보다… 마치 안내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정도라면…….”
“알겠다. 일단은 알겠어.”
“예? 예에…….”
당장 로엔을 붙잡으라고 할 줄 알았건만 파달로 백작은 의외로 침착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던 투에스트는 더더욱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황급히 달려와 파달로 백작에게 일러바친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파달로 백작이 왜 그렇게 침착한 모습을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보고 드리겠습니다, 성주님. 적들은 완전히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설치했던 막사 등을 모두 철거. 병력들은 회군하고 있는 중입니다. 거기에 더해 곧 이쪽으로 데포르님이 당도하신다고 합니다.”
“허어… 데포르님께서 직접 이곳까지 와주신 건가…….”
“예. 아무래도 여기에 주둔해 있는 병력이 많다 보니 직접 와주신 듯합니다.”
“거기다 마침 이곳 근처에 계셨던 것도 한 몫 했겠지. 여러모로 다행인 일이야.”
파달로 백작은 그때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 시작하자 절로 온 몸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아직 적들이 모두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지원군으로 데포르가 곧 도착한다는 소식만 해도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적들이 다시 공격을 재개한다고 해도 데포르와 함께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적들의 진영 안에서 나온 여인을 붙잡아왔습니다.”
“진영 안에서 나온 여인?”
“예. 아무래도 조금 수상쩍은 것 같아 붙잡아 들였습니다만… 이곳으로 데려올까요?”
“흐음… 아무래도 자네가 말한 여인이 아닐까 싶군.”
파달로 백작이 투에스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투에스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성주님. 당장 그 여자를 벌해야 합니다…….”
“음? 자네 말만 듣고 그럴 순 없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하지 않겠나? 물론 이 시기에 라파엘 진영으로 들어갔다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으로 봐선… 아마 이쪽에 대한 사실들을 밀고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정말 라파엘에서 심어둔 첩자일 수도 있고… 뭐, 어디까지나 나의 짐작일 뿐이니 자세한 것은 얘기를 들어봐야 알지 않겠나?”
파달로 백작의 말에 투에스트가 자신의 손톱을 질겅질겅 씹어대었다. 막상 저지르고 보니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지금은 우선 자신의 친구들도 설득시켜야 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여러 가지 입을 맞춰둬야 했다.
“그럼 저도 잠시…….”
투에스트가 자리를 비우자 파달로 백작이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자신에게 보고하면서도 유달리 불안해보였던 눈빛. 거기다 뒤로 감춘 손은 연신 파르르 떨고 있었다.
“뭐…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파헤치고 보면 알겠지.”
이후 라파엘 군이 물러나는 것을 직접 확인한 파달로 백작은 다시 본성의 중정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하니 주변에 서 있던 귀족들이 인사를 전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성주님!”
“오늘 이곳에서 라파엘 군을 막은 것은 역사에 새겨질 일입니다!”
“이곳으로 오고 계시는 데포르님도 오늘의 승전을 축하해주실 겁니다.”
그들의 인사치레를 뒤로 하고 파달로 백작은 붙잡았다는 여인을 바로 대령케 했다.
그러자 기사 두 명이 한 여인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대가 말한 여인이 저 여인이 맞는가?”
“아… 예에, 맞습니다……!”
파달로 백작이 투에스트에게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엔은 평소와 같은 복장으로 파달로 백작의 앞에 섰다.
“라파엘 군영에 있었다지?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않는 것이 좋다. 이미 목격한 사람들이 많으니.”
“맞습니다. 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라파엘 군영에는 왜 간 거지? 그곳에서 뭘 했나?”
“그들의 총사령관을 만났습니다.”
“총사령관을? …라미엘로를 만났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흐음… 그와는 무슨 얘기를 나눴지? 혹시 이쪽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것은 아닌가?”
“아닙니다. 그런 적은…….”
“거짓말! 아니면 당신은 이미 그쪽과 한패였던 것 아냐!?”
차분하게 답하는 로엔의 모습에 문득 불안함을 느낀 투에스트가 일부러 과장되게 소리쳤다.
로엔의 눈동자가 그에게로 향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시치미 떼지 마…! 당신은 우리 요트렌 영지에 숨어든 라파엘의 첩자잖아?”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지… 조금 불쾌하군요.”
“평범한 여인인척 하더니… 그런 귀신같은 검술 실력을 숨기고 있었잖아!? 거기다 갑자기 이런 촌구석의 시골로 너 같은 여자가 다가온 것도 이상해. 그리고…….”
“그만.”
누군가 투에스트의 말을 잘랐다.
그녀의 등장에 모든 귀족들이 몸을 일으켰다. 이는 파달로 백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후우웅―!!
한순간 좌중을 압도하는 기운이 퍼졌다. 그 강렬한 기운에 로엔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흑발의 여인이 화려한 갑옷을 입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데포르님.”
파달로 백작이 그녀의 앞에서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제국 내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권력자.
뿐만 아니라 제국 내에서도 상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강한 힘을 가진 기사이기도 했다.
실력은 물론 갖고 있는 미모 또한 뛰어나 수많은 귀족들의 우상이 되기도 한 그녀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다른 이들의 인사를 받은 데포르가 뒤쪽에 시립해 있는 수하에게 슬쩍 물었다.
“저 여인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 고개를 들어라.”
다른 이들을 따라 인사를 전한 로엔을 향해 데포르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로엔이 고개를 들었다.
“얘기는 이곳으로 오면서 들었다. 이번 전쟁을 멈추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자가 바로 그대라지?”
데포르의 말에 모두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귀족들이 술렁거리는 동안 투에스트의 얼굴만은 불안함에 휩싸여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간 탓이다.
“저는 그저 간곡한 부탁을 드렸을 뿐입니다.”
“어떻게 했는지 정말 궁금하구나. 라미엘로 성기사장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는데…….”
“다행이 말씀이 잘 통하는 분이셨을 뿐입니다.”
“그래…….”
데포르는 그녀가 무언가를 감추고 싶어 하는 듯하자 굳이 그것을 캐묻지 않았다.
이유야 어쨌건 그녀가 전쟁을 멈추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몰래 적진에 숨어들었던 수하들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혹시 몰라 여러 차례 확인했지만 하나 같이 똑같은 말을 전해왔다.
한 여인이 중앙 막사에 들어가고 곧 전군 퇴각 명령이 전해졌다는 얘기였다.
더군다나 여인은 그곳에서 라파엘 군사들이 요트렌에서 물러나주길 간곡히 부탁을 올렸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다만 그녀가 적진의 한가운데에서 정확히 어떤 말들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곳에 있던 자들이 라파엘 군의 중진들이라 비밀이 철저했던 데다 라미엘로까지 그곳에서의 일에 함구령을 내려 더 이상 알아낼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곳에선 여인의 말에 감동해 설득당한 라미엘로가 병력을 물렸다는 소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듣자하니 제법 쓸 만한 검 솜씨를 가졌다던데.”
“과거 잠깐 기사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랬었나… 그럼 어떤가? 이번 공로를 인정해 나의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나? 이쪽엔 여검사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기사단도 있다. 그대가 원한다면…….”
데포르의 파격적인 제안에 듣고 있던 귀족들의 두 눈이 커졌다.
데포르가 이끄는 기사단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제국 중심에 선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곧 출세의 지름길이기도 했다.
특히나 투에스트는 너무도 놀라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더더욱 그들을 대경실색하게 만들었다.
“죄송합니다, 데포르님. 저는…….”
“뭔가 사연이 있나보군… 하지만 정말로 이번 그대의 공로는 크다. 적군 5만의 병사를 물리게 했으니. 괜찮다면 그대 같은 인재는 나의 슬하에 두고 싶은데…….”
사실은 곁에 두고 그녀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처음 접했을 때부터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묘한 아우라가 데포르의 신경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러나 로엔은 이번에도 그녀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 대신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질문?”
“예.”
“그래, 얼마든지 물어봐라. 이번 일에 대한 보답이라면 뭣하지만 최대한 답해주겠다. 내게 무엇을 묻고 싶은 거지?”
“칼라반님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데포르의 얼굴이 순간 굳어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귀족들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