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6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67화
#현혹의 마녀
“벨제인을 보러 왔습니다.”
“호오, 벨제인님을… 알겠습니다. 제가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노파는 순순히 그들을 벨제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런 노파의 모습에 하데르가 의문을 드러내었다.
“지나치게 순순한 태도로군. 주군 저 자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헐헐… 이것은 단지 이 여인네의 역할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리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데르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으나 노파가 답을 해주듯 말했다.
이에 하데르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크흠. 다 들렸나…….”
“그토록 크게 말씀하시는데 안 들릴 리가 있겠습니까. 이래봬도 눈과 귀만큼은 어느 젊은이 못지않습니다.”
노파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반면 하데르는 괜히 멋쩍었는지 헛기침을 해대었다.
“저는 마녀들의 안내자일 뿐입니다.”
노파가 칼라반과 다른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곤 다신 입을 열지 않으며 조용히 길을 안내해주었다.
어지러이 나 있는 비탈길을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들의 앞에 커다란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파가 그 바위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러자 바위의 전체가 어스름한 빛을 띠더니 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파는 곧 바위 사이로 드러난 공간을 가리켰다.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러면 벨제인님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응? 행운을 빌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노파의 말에 하데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의미심장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녀와의 만남입니다. 그러니 행운을 빈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과 함께 노파는 자리를 벗어났다.
휘우웅―
칼라반은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거대한 마력을 느꼈다.
이는 칼라반뿐만이 아니었다.
하데르와 유운량도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녀라… 재밌겠군요.”
“호오… 이렇게 방대한 양의 마나라니. 과연 마녀는 다르다는 건가.”
“안으로 들어간다.”
칼라반은 어두운 공간 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안쪽 공간에는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때문에 길을 걷는데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안쪽 깊숙한 곳에 다다르자, 그들의 시선에 뒤돌아 있는 여인이 들어왔다.
당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허리까지 닿아 있는 새하얀 머리칼이었다.
여인은 칼라반 일행이 다가왔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벽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잘 지냈나?”
칼라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여인에게서도 미세한 떨림이 일어났다.
“이 목소리는… 칼라반 당신인가요?”
“오랜만이로군. 벨제인.”
“당신이 이곳까지는 무슨 일이죠?”
“너를 데리러 왔다.”
“카르마제의 동료인 당신이 저를요? 설마 그가 저를 다시 찾기라도 하는 건가요?”
“아니. 놈은 꼼짝없이 네가 죽은 줄 알고 있을 거다.”
“…….”
여인, 벨제인은 아무런 답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하데르와 유운량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려 했다.
일전에 칼라반이 한 경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허나 벨제인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벨제인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럼 당신이 절 찾아온 이유가 뭐죠?”
“네 힘이 필요하다.”
“우습군요. 카르마제처럼 저를 이용하려는 건가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군.”
“당신……!”
후웅―!
분노한 벨제인의 주위로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방대한 마나가 한번 들끓기 시작하자 주변의 공기가 삽시간에 변했다.
“나는 너를 이용해 복수를 꿈꿀 생각이다.”
“복수……?”
“그렇다. 나 또한 제국에 배신을 당했다.”
“하! 우습군요. 당신이 그토록 사랑한 제국한테서 배신을 당했다는 말입니까?”
“꼴이 우습게 되긴 했군.”
“그래서 당신의 복수라면 뭐 제국을 멸망시키기라도 할 생각인가요?”
“글쎄… 하지만 우선 나를 속인 자들부터 죽일 생각이다.”
“그게 누구죠?”
“아크로이어 황제.”
칼라반의 말에 벨제인이 흠칫했다.
그녀 또한 아크로이어 황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가 당신을 죽이려 했나보군요. 아크로이어 황제는 카르마제와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더러 있었죠.”
“그리고 카르마제와 테오스, 데포르도 있다.”
“누구라고요?”
벨제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데포르라고 했나요?”
“그렇다.”
“결국 그 여자도 그런 선택을 했나요. 당신이나 나나…….”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겠군.”
“둘 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처지라는 건가요.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데포르까지도 죽일 건가요? 그녀에게 당신이 모르는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유야 어쨌건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 또한 그때 당시 머리가 하얘지는 바람에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했다. 순간의 내 아둔한 생각으로 수많은 목숨을 헛되이 희생시키고 말았어.”
“그래서 그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있는 거로군요.”
벨제인은 두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칼라반 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칼라반의 전체를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칼라반 또한 자신의 무언가가 그녀에게 들여다보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그러니 나는 이제부터라도 바로잡으려 한다.”
“어찌 보면 저보다 당신이 더 가여운 사람처럼 느껴지는군요. 당신과 다르게 저는 짊어지고 있는 무게는 없으니까요.”
“오랜 세월 이렇게 살아온 그대 삶의 무게도 결코 가볍진 않을 것 같은데.”
휘우웅――!
콰랑!
순간적으로 폭주한 벨제인의 마력이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영향으로 거센 바람이 일었으나 칼라반은 미동조차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르마제… 저는 그 사람을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러니 나와 함께 가는 것은 어떻겠나? 그대가 카르마제에게 복수를 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제 힘을 원한다고요?”
“그래. 그러니 그대의 힘을 빌려다오.”
“……좋아요. 이미 카르마제를 죽일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 마음먹은 몸이에요. 제게 마법을 걸어 이 저주받은 몸이 되었을 때부터 말이에요.”
벨제인이 두 눈을 떴다.
그러자 푸르스름한 빛을 띤 눈동자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런!”
“흠……!”
유운량과 하데르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눈동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반면 칼라반은 그대로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보고 있었다.
[상태 이상이 감지되었습니다.] [상태 이상에 저항합니다.]칼라반은 차분히 숨을 골랐다.
전신에 흐르는 내기가 서서히 기운을 발산하며 그녀의 마법에 대항했다.
자신과 마주보고도 멀쩡한 칼라반의 모습에 벨제인도 조금은 당황한 눈치였다.
그녀의 눈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놀랍군요… 제 눈을 마주보고도 그토록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다니.”
“아름다운 눈이로군.”
“네? 아하하하! 못 보던 사이 그런 농담도 할 줄 알게 되셨군요.”
“아니 진심이다. 하지만.”
칼라반은 인벤토리 창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심연의 안대.과거 아수라가 스스로의 단련을 위해 만든 물건입니다. 안대를 착용하면 기감이 더욱 예민해집니다. 또한 심연의 안대는 착용자의 기운을 감춰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심연의 안대였다.
아이템 창에서 이것을 확인했을 때부터 사실 벨제인을 떠올렸었다.
다만 그가 곧바로 찾아오지 못한 이유는 역시 벨제인의 마법 때문이었다.
약한 자신이 그녀를 먼저 찾아와봤자 지금과 같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벨제인의 마법에 당해 잡아먹혀버렸을지 몰랐다.
칼라반은 지금처럼 벨제인의 마법에도 당당히 마주설 수 있는 위치를 원했다.
“밖으로 나서려면 이게 필요할 거다.”
“이게 무엇이죠?”
“너의 마력을 감출 수 있는 물건이다.”
“제 마력을요?”
“그리고 이 안대를 착용하면 좀 더 주위를 인지하는데 수월할거다.”
“흐음… 평범해 보이는 물건인데… 그런 힘을 지녔다고요? 그레이탈리스트의 마법사들이 만든 물건이라도 되는 건가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뭐 비슷한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해두지.”
“좋아요.”
벨제인은 칼라반의 손에 있는 심연의 안대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곧 안대를 착용해보았다.
“이제 그러고 있지 않아도 된다.”
칼라반은 시선을 돌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두 사람 다 시선을 돌려 벨제인을 바라보았다.
안대를 착용한 벨제인의 모습은 그저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의 모습 같았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공간을 가득 메울 정도로 방대하게 느껴지던 그녀의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마치… 평범한 맹인의 모습이로군요…….”
“호오,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 방대했던 마나가 느껴지지 않다니.”
두 사람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벨제인 또한 자신의 몸에 잠재되어 있는 마력을 함께 컨트롤 해주는 심연의 안대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 안대를 착용하고 있는 동안은 정체를 들킬 염려는 없을 거다.”
“정말 그렇겠군요. 제 마나조차 감춰줄 수 있는 마법 아이템이 있었다니…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이런 물건을…….”
“그냥 우연히 갖게 되었다.”
벨제인은 새로운 느낌에 연신 자신을 살펴보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런 벨제인의 모습에 하데르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저런 모습만 보면 정말 전혀 모르겠군. 저 여인이 현혹의 마녀라는 것을 말이야.”
“후후 덕분에 강력한 전력이 저희와 함께하게 되었군요.”
“아참. 그럼 지금 카르마제는 뭘 하고 있죠? 여전히 돈을 밝히고 있나요?”
벨제인의 물음에 칼라반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나 지금이나 돈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거기다 새로운 여인을 찾았더군.”
“새로운 여인을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이야기는 가면서 하도록 하지.”
“참 다른 의미로 여전한 사람이로군요 카르마제는.”
“그렇지. 쉽게 바뀌지 않는 인물이다.”
“그래서 다행이에요. 저도 마음 놓고 그를 죽일 수 있을 테니까요.”
벨제인이 섬뜩한 미소를 보였다.
그녀의 두 손에 푸른 마나가 맺혔다 사라졌다.
“이곳에 있는 마녀들 중 몇몇은 제국에 반감을 품은 자들도 있어요. 그들도 함께 데려가시겠어요?”
“좋다. 함께 하지.”
“역시.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멋대로 움직이는 자들이라면 곤란하다.”
“그건 걱정 마세요. 이곳에 오랫동안 숨어 있던 자들이에요. 제법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이니 충분히 칼라반 당신의 말에 잘 따라줄 거예요.”
“그대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더더욱 좋다.”
“그것도 염려할 필요 없을 겁니다.”
“좋다. 그럼 그렇게 하지.”
“이것 참 설레네요.”
벨제인이 가슴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한 번 올라간 그녀의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뭐가 설렌다는 거냐.”
“드디어 카르마제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진정되질 않네요.”
“그런가.”
칼라반은 이만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돌아섰다.
벨제인은 곧바로 자신이 얘기한 마녀들을 찾아다녔다.
그녀와 함께하기로 한 마녀는 총 다섯 명.
그녀들은 칼라반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벨제인도 그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우리 마녀들이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고맙다.”
칼라반이 돌아서자 마녀들이 벨제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벨제인님. 정말 저 사람을 믿어도 되는 것입니까?”
“맞아. 만약 우리들을 꾀어내기 위한 거짓말이라면…….”
“그건 걱정 마. 다른 건 몰라도 정령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벨제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어둠 속을 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칼라반이라는 사람 자체도 상당히 믿음직한 인물이고.”
“아… 저자가 바로 칼라반?”
“어둠의 정령술사라던…….”
“그보다 저 사람은 제국의 대기사장이 아닌가요?”
“지금은 아냐. 제국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아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일 뿐이지.”
벨제인은 그런 칼라반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