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17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7화
잠시 고민에 잠겼던 칼라반은 미련 없이 돌아서 버렸다.
“음? 그냥 가시려는 겁니까?”
칼라반의 돌발 행동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유운량쪽이었다.
그의 말에 칼라반이 고개를 돌렸다.
“그럼 별 수 있겠습니까. 이쪽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아무리 말해도 당신이 믿어줄 리는 없고… 따로 설득할 방법도 없는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려는 겁니다.”
“허어… 제게 도움을 바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 급한 사정이 아니었나보군요? 이렇게도 간단히 포기하실 정도라면 말입니다.”
유운량의 말에 칼라반이 피식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침내 상대방이 자신의 페이스에 말린 듯 보였다.
“이렇게 된 김에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칼라반이 다시 몸을 돌리자 유운량이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들 사이에 마법진이 펼쳐져 있는 탓에 칼라반은 유운량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칼라반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인지 칼라반은 유운량이 서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의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상하군… 저쪽에서는 내 모습이 보일 리 없을 텐데… 거기다 내 목소리도 이곳이 아닌 사방에서 들릴 터…….’
이렇게 마법진 밖에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 이는 눈앞의 칼라반이 처음이었다.
칼라반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유운량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저를 도와줄 인재들을 찾고 있습니다.”
“호오… 그 인재 중에 제가 포함되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당신은 내가 생각했던 사람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믿고 있는 사람이 당신을 추천해주었기에 찾아왔던 것뿐입니다.”
칼라반의 말에 유운량이 잠시 말이 없어졌다.
“당신이 믿고 있다는 사람이 누굽니까?”
“헤이홀즈입니다.”
“흐음… 헤이홀즈와는 무슨 관계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
칼라반은 대답 대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씀하실 수 없는 것입니까?”
“내 여동생의… 약혼자였습니다.”
칼라반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유운량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끔씩 제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던 보로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사람이지요.”
뜬금없는 얘기가 시작되자 칼라반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고 잠자코 유운량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보로스라는 분의 따님이 얼마 전 이곳 근처로 주둔지를 삼은 고블린들에게 납치되었다 들었습니다.”
“고블린들에게?”
칼라반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또한 고블린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녀석들은 인간들의 재물이나 가축들을 약탈해가는 것을 즐겼다.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에 들은 얘기지요.”
“그런데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그 보로스라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저는 이곳 밖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정이 못 됩니다. 사실 이 마법진은 저를 지키는 마법진이기도 하지만 저를 가두는 용도이기도 합니다.”
유운량은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조금은 씁쓸함이 배어있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보로스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꼭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유운량은 칼라반의 물음에 대해 단칼에 답했다.
“다만… 당신이 저를 도와주신다면 저 또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드리겠습니다. 보로스가 오늘 아침 알폰스 마을 용병관리소에 의뢰를 내겠다고 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의뢰서가 붙어 있을 겁니다. 물론 그 의뢰를 받고 안 받고의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유운량은 제 할 말만 끝내고 돌아서 버렸다.
“흐음…….”
칼라반은 홀로 남아 생각에 잠겼다.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칼라반과 유운량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메노포르가 조심히 물었다.
“도와야지.”
“예?”
“그 보로스라는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걸 도와준다고 해서 유운량 씨가 만나준다는 보장도 없고… 만약 이용하기만 하는 거라면…….”
“그래도 상관없다.”
칼라반은 다시 내려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굳이…….”
“메노로프. 그대는 고블린들이 인간을 왜 납치해 가는지 알고 있나?”
“글쎄요… 그러고 보니 그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군요…….”
메노로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에 고블린들에게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에?”
“고블린들이 인간을 납치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남자는 노예로 부리거나 방패막이로 쓰기 위해. 그리고 여자는 자신들의 번식을 위해서다.”
“으윽… 번식이라니… 설마…….”
메노로프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칼라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놈들은 인간여성을 통해서도 씨를 뿌릴 수 있다. 놈들이 보로스라는 사람의 딸을 납치해간 이유도 그런 이유일 거다. 그러니 서둘러 가지 않으면 안 돼. 고블린들에게 겁탈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그 여인에게 남기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아… 그러니까 유운량 씨를 만나기 위함이 아닌… 보로스라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였군요.”
“그렇다.”
“그렇다면 서둘러 제가 알폰스 마을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메노로프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칼라반은 말없이 그런 메노로프를 쫓았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저 방향은… 결국 알폰스 마을로 향하는 건가 보군요.”
유운량은 서 있던 바위에서 슬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는 유유히 마법진 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 * *
메노로프의 안내로 빠르게 알폰스 마을에 도착한 칼라반은 곧바로 용병관리소를 찾아가려 했다.
“후우… 이렇게까지 빨리 와본 것은 처음입니다.”
아무리 빨라봐야 1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30분도 채 안되어 알폰스 마을에 도착해버렸다.
마음이 급하다보니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 탓이다.
“고맙다. 용병관리소는 어디지?”
칼라반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작은 마을일줄 알았는데, 알폰스 마을은 어지간한 소도시만큼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 용병관리소라면 아마 저쪽으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메노로프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바로 안내해주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둑이에요!!!”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가려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억!
얼굴을 가린 사내와 메노로프가 거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으읍!”
힘에 밀린 메노로프가 뒷걸음질 쳤고 그와 부딪힌 사내는 인상을 쓰며 메노로프를 바라보았다.
“아이 씨, 재수없게!”
그는 두 눈을 부라리며 메노로프를 쏘아보곤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괜찮나?”
칼라반은 옷을 털고 있는 메노로프에게로 다가갔다.
“예에… 그냥 부딪힌 것뿐입니다.”
메노로프는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좀 전의 사내를 쫓았다.
“그나저나… 도둑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역시 붙잡고 있어야 했을까요?”
메노로프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한 여인이 그들의 곁으로 달려왔다.
“혹시… 갈색 옷에 얼굴은 손수건으로 가린 남자가 이곳으로 지나가지 않았나요?”
그녀는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물었다.
“조금 전에 저와 부딪히고 이쪽으로 가는 것을 봤습니다만…….”
메노로프가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키긴 했지만 이미 사내는 사라져버린 뒤였다.
여인은 아연실색하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흐윽…흑… 어떡해… 어떡하죠, 전…….”
그녀의 반응에 메노로프가 안절부절 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제가 그 자를 어떻게 해서든 붙잡아두었어야 했는데… 그 사람이 아가씨의 물품을 훔쳐간 모양이군요…….”
“흐윽… 아니에요… 제 잘못 인걸요… 제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그녀가 닭똥 같은 눈물을 닦아내는 사이 일단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아르엔! 어떻게 되었어?! 놈은 잡았나!?!?”
“그 자가 달아난 방향은 어디냐!? 어떻게 해서든 놈을 쫓아가서 찾아와야만 해!!”
그들의 물음에도 아르엔이라 불린 여자는 그저 주저앉아 훌쩍이고만 있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죄송한 마음은 알겠으니까 당장 놈을 찾아봐야 할 것 아닌 가……!”
반백머리의 중년인이 슬슬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크읍… 이런 제기랄…!! 이건 좀 골치 아픈 일이로군…….”
행방이 묘연해진 도둑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그 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제가 알 것 같습니다만…….”
그때 칼라반이 조용히 손을 들며 말했다.
“네……?”
눈물을 닦아내던 아르엔이 동그래진 눈으로 칼라반을 올려다보았다.
“예!? 정말 어디로 갔는지 아시는 겁니까? 만약 정말이라면 저희가 충분한 사례를 하겠습니다!! 제발 놈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반백머리의 중년인이 곧장 칼라반에게 달려와 그의 손을 붙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혹시 이곳의 지도가 있습니까?”
“지도… 아! 지도라면 여기 있습니다!”
뒤에서 봇짐을 들고 있던 통통한 체형의 사내가 지도를 꺼내들었다.
“정말 알 수 있는 겁니까?”
갑옷을 입은 경비병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잠시 보겠습니다.”
칼라반은 펼쳐진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곤 현재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의 손가락이 멈춘 곳은 마을 외곽의 부근이었다.
“그들은 지금 이곳에 있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경비 대장 말포츠가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곧바로 판단이 서질 않았다.
“만약… 당신이 그들과 한 패고 우리를 이쪽으로 유인하기 위함이라면…….”
“하긴… 뜬금없는 장소긴 하네요…….”
“그냥 따로 흩어져서 찾아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말포츠의 말에 경비병들이 동조했다.
“제가 바로 가볼게요!!”
아르엔은 칼라반이 가리킨 위치를 기억하고 먼저 움직였다.
“같이 가, 아르엔!”
반백머리의 중년인도 아르엔이라는 여성을 뒤따랐다.
“너희들은 각자 흩어져서 찾아봐라! 나도 저 두 사람을 따라가겠다.”
말포츠는 아직 칼라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진 않았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일이었다.
“가서 없으면 그때 추궁해도 될 일이지.”
도둑을 못 찾는다 해도 책임은 면할 수 있을 터였다.
“우리도 따라갈까요? 혹시나 그 도둑놈에게 한 패가 있을 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메노로프의 말에 칼라반이 잠시 시간을 살폈다.
“뭐…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칼라반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이 향한 곳으로 따라나섰다.
“아…! 저기인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