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70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70화
#복수의 시작
이나쿠스 왕국을 발칵 뒤집어놓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제국 심판관의 존재였다.
딩푸르 성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심판관은 이후 세 개의 도시에 연달아 모습을 드러내며 귀족들을 숙청했다.
그의 과감한 행보에 이나쿠스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반면 귀족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들은 이나쿠스 왕국에서 설치고 다니는 심판관의 존재가 서서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 심판관을 죽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심판관은 제국 황실 직속의 기관입니다. 잘못 건드렸다간… 제국 황실을 건드리는 꼴이 되고 말 겁니다.”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까. 거기다 놈은 마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쪽 사람들만 쳐내고 있습니다.”
“하긴… 그건 그렇군. 카르마제님께 다리를 놓았던 귀족들만…….”
“이거 혹시… 반대쪽 놈들이 심판관을 사주한 것은 아닐까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 심판관의 정체는 제국 황실의 몇몇밖에 몰라. 그런데 무슨 수로 심판관을 사주해? 거기다 그런 것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해당 심판관은 물론 그와 관련된 가문까지 풍비박산 날 텐데.”
“으으… 하지만 답답해서 그럽니다. 그럼 어떻게 알고 이렇게 거침없이 행동한단 말입니까?”
이곳에 모인 귀족들이 머리를 쥐어짰다.
그들은 최근 이나쿠스 왕국을 뒤집어놓은 심판관의 존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그 심판관을 죽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까 뭘 들었어?”
“심판관 하나쯤은 죽여도 카르마제님께서 무마시켜주시지 않겠습니까?”
“카르마제님은 어떻게 설득시키게?”
“지금 심판관이 벌이고 있는 일 때문에 카르마제님께서도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러니 충분히 저희들의 손을 들어주실 만할 것 같습니다만…….”
“하긴 손해 보는 것이라면 누구보다 싫어하시는 분이니. 거기다 우리에겐 오랫동안 카르마제님의 곁을 지켜온 몽페르 후작님이 계시질 않은가!”
귀족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한눈에 봐도 외골수처럼 생긴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허어, 갑자기 내 쪽으로 화살을 돌려도 무리네. 나는 그만한 힘이 없어.”
“하지만 저희들보다 오랫동안 카르마제님을 알고 계셨으니 뭔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저희들보다도 카르마제님을 뵙기가 훨씬 수월하시니…….”
“그저 오랫동안 모셔온 덕에 얻은 작은 혜택일 뿐이야. 그러니 내게 너무 큰 기대는 말게.”
몽페르 후작의 말에 귀족들이 내심 실망한 눈치를 보였다.
이들의 불편한 분위기를 감지한 몽페르 후작이 냉큼 몸을 일으켰다.
“오늘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을 깜빡했군. 나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보겠네.”
나름대로 후작의 지위에 앉은 인물이건만, 몽페르 후작이 이곳을 벗어나는데도 누구 하나 일어서서 마중해주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몽페르 후작이 이곳을 벗어나자마자 험담부터 시작 하느라 바빴다.
“저 정도 능력밖에 안 되니… 그렇게 초창기부터 카르마제님을 모셔놓고도 저 모양 저 꼴로 살고 있지…….”
“나는 아직도 저렇게 능력 없는 인간을 곁에 두고 있는 카르마제님이 신기할 따름이야.”
“다들 모르는 소리 말게. 이런 쪽에서나 능력이 부족한 거지 전장에 서면 몽페르 후작님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 들었네.”
“저 몽페르 후작이? 뭐 고양이라도 되는 건가? 카르마제님의 곁에서 애교라도 부리나보지?”
조롱 섞인 말에 여러 귀족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한바탕 웃는 동안 일전에 말을 꺼냈던 귀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때는 전장에서 견고의 기사라 불렸던 인물일세. 그런 몽페르 후작님에게 이토록 함부로 말하는 것은 썩 듣기 좋은 것은 아닌 것 같군.”
“그것도 과거일 뿐 아닌가? 언제까지 대전쟁 시대를 운운하며 얽매여 살 건가? 지금은 이렇게 시대가 바뀌었는데 말이야!”
“맞는 말이야. 바뀐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은 곧 도태되었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그러니 그때라면 몰라도 작금의 시대에 몽페르 후작은 그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쯧. 그래도 그리 대하면 안 되네. 그대들이 이곳에 편안히 발붙여 살 수 있도록 이 땅을 지켜준 분이 바로 몽페르 후작님이신데.”
“마치 몽페르 후작님 혼자서 다 싸운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저분 말고도 함께 전장에 나선 기사들과 병사들이 수없이 많은데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
그들은 몽페르 후작을 향한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몽페르 후작을 옹호하던 귀족도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만 자리를 벗어났다.
다른 몇몇 귀족들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이만 자리에서 떠났다.
“이래서 몸 쓰는 귀족들이란…….”
“천박하니 멀리하는 것이 낫습니다.”
“큭큭 그렇게 대단하면 하루 종일 전쟁이나 하지 그러나? 우리들은 애초에 그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쓰는데 말이야.”
“맞는 말씀입니다 후앙투 후작님.”
“그렇지!?”
그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먼저 자리를 벗어났던 몽페르 후작은 곧바로 자신의 가문이 있는 도시로 말을 돌렸다.
다행이 모인 장소가 자신의 영지와 가까웠기 때문에 본성까지 돌아가는 데엔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그래. 별일은 없었나?”
“똑같은 일상입니다.”
“병사들과 기사들은 여전히 훈련을 잘 받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좋다.”
“저어… 그런데… 말입니다.”
“무슨 일이지?”
“병사들과 기사들 사이에서 불평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이전과 같으냐?”
“예. 전란의 시대가 아닌 지금 굳이 이렇게까지 훈련을 할 필요가 있느냐며…….”
“기사와 병사들은 언제나 전시의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법이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전시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한시라도 단련하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막상 전쟁이 벌어져도 제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말씀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그럼 봉급을 좀 더 올려줄 테니 열심히 하라 일러라.”
“예…!? 재정 상황이 좋지도 않은데 또 올리시려는 겁니까?”
“나는 다른 것보다 이 도시를 지키는 기사들과 병사들에게만큼은 돈을 아끼고 싶진 않다.”
“후우… 알겠습니다.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내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이런 때엔 워낙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서 어차피 자신이 설득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아버님께서도 카르마제님께 잘 보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매번 별다른 능력이 없는 것처럼 그러시지 않아도… 이제 저희도 다른 귀족들처럼 배불리 먹고 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소리 말아라.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나 또한 뒤가 구린 일들을 저지른다면, 그것이 과연 없던 일이 되겠느냐? 세상이 알고 땅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러니 그딴 생각은 당장 접어두거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아버지는 분명 뛰어난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째서 세간에는 그토록…….”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삶을 유지해온 비결이다.”
“예?”
“잘 새겨두어라. 섣불리 잘나가려고 했다간… 오히려 위험만 불러일으키는 꼴이 되고 만다.”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과거에… 아니. 아니 되었다. 다음에 얘기하자꾸나. 아무튼 특히나 카르마제님의 앞에선 자신을 함부로 드러내려 해선 안 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어차피 네가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카르마제님은 귀신같이 너의 씀씀이를 알아볼 것이다.”
몽페르 후작이 한층 무거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누군가 안쪽으로 들어섰다.
“음? 저들은 누구냐?”
“아, 그러고 보니 말씀드리는 것이 늦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을 뵙겠다며 찾아온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손님?”
“예. 들어보니 오래 전부터 아버님을 알고 계셨던 분들 같아서.”
“호오, 나를? 글쎄 누구지…….”
선뜻 떠오르는 이가 없어 몽페르 후작이 그들의 곁으로 먼저 다가갔다.
다른 귀족들이라면 체면치레를 한다며 손님들이 먼저 이곳으로 오게 했겠지만 몽페르 후작에겐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대들은 누구… 흡……!”
면면들을 살펴보던 몽페르 후작이 진심으로 놀라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의 이런 반응을 처음 보는 린바르드는 덩달아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마음가짐들을 유지하시다니.”
“당신이 여길 어떻게… 아니… 그보다 당신은 분명 죽었을 텐데…….”
“죽길 바랐던 것은 아니고요?”
“이런…….”
몽페르 후작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대번에 여인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이 굳어지자 린바르드는 덩달아 눈앞에 선 여인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 여인이 누구시길래 그러시는 겁니까?”
“살아 있어선 안 될 여인이지…….”
“닮았군요. 그때 그 아들이 이렇게 자랐나보군요.”
벨제인이 린바르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을 가리고 있는데도 정확히 자신 쪽을 바라보는 벨제인을 보며 린바르드가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린바르드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몽페르 후작이 검을 뽑아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함부로 제 아들에게 다가오지 마십시오.”
“너무하군요 린바르드. 이렇게 굴 것까지는.”
“당신이 어째서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을 죽이고…….”
“예? 아버지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마라 린바르드!”
린바르드가 앞으로 나서며 말리려는 때 몽페르 후작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큰 소리를 듣고 근처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 여자는 위험하다. 그러니 물러서 있어라 아들아.”
“왜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겁니까?”
“저 여인이 바로 현혹의 마녀 벨제인이기 때문이다.”
“예…? 설마 대학살의 주범이었던 그 현혹의 마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그 여자는 분명 잡혀서 처형당했다고…….”
“아… 그거? 그거 그냥 단체로 일루전 마법을 걸어두었을 뿐이란다.”
벨제인이 일부러 린바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몽페르 후작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내 아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 했습니다.”
“후후, 너무 매정하시네요.”
“아무튼 당신은 실수하신 겁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결코 온전히 돌아가실 순 없을 겁니다.”
“저라고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이곳까지 왔겠어요. 몽페르 후작님.”
벨제인이 뒤쪽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그녀와 함께 서 있는 일단의 무리가 시선에 들어왔다.
“으음……!!”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몽페르 후작이 무거운 침음성을 흘렸다.
한 명 한 명이 다 강인한 기세를 띠는 가운데 유독 그의 눈에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이럴 수가… 설마 그대는… 전 칼라반 대기사장님의 직속 수하였던 만인대장 요쿠스…….”
“몽페르. 단단한 기사. 우직한 놈. 오랜만.”
요쿠스가 슬쩍 손을 들어 인사를 전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의 존재를 확인한 몽페르 후작이 처음으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설마 칼라반님의 솔 기사단과 손을 잡기라도 한 겁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솔 기사단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에요. 나를 버린 카르마제에게 복수하기 위해 칼라반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거짓말 마십시오. 칼라반님은 그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당신과 다르게 그분의 죽음은 제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그럼 이 뒤에 계신 분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벨제인이 뒤편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것을 서서히 걷어 올렸다.
“오랜만이로군, 몽페르.”
“아… 아아… 이런 말도 안 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한 몽페르의 두 눈동자가 서서히 절망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