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7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74화
#히리엘과 레비오스
“주군. 아라카인님께서 카르마제의 발을 잘 묶어준 모양입니다.”
“그런가.”
“예. 덕분에 카르마제 군의 진격도 많이 늦춰졌습니다.”
“그곳의 전황은?”
“카르마제 군이 조금 우세한 듯 하나 크게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아라카인님께서 여러 가지 역할을 톡톡히 해주신 덕분에 카르마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양입니다.”
“다행이로군.”
“그리고 이나쿠스 왕국의 귀족들도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벨제인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결과겠지.”
“예. 왕국 곳곳에서 소규모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나 벨제인님과 접촉했던 귀족들은 더더욱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들의 감정을 흔든 거다.”
칼라반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다음으로 향한 행선지는 카르마제의 밑에서 오랫동안 2인자를 자처해 온 포르노아 공작 쪽이었다.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세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장 카르마제의 곁에서 싸우는 테니움 후작만 해도 본래는 포르노아 공작의 부관 출신이었다.
“포르노아 공작은 가만히 두기엔 몽페르 후작만큼이나 껄끄러운 존재다.”
“흐음… 몽페르 후작 때처럼 주군께서 직접 나서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만…….”
“어나니머스를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포르노아 공작가의 방비는 철저한 편이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카르마제와 대립 구도를 만든다.”
“카르마제 왕과 말입니까? 그와 대립구도를 만들려면…….”
“현재 카르마제가 가장 관심 있는 곳은 히리엘 공주다. 그런데 재밌는 소식이 들려오더군.”
“재밌는 소식이라 함은…….”
“포르노아 공작의 손자인 레비오스가 히리엘 공주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후문이다. 아마 카르마제 왕과 함께 코치나 왕국을 방문했을 때부터였겠지.”
“허어… 그럼 그런 점을 이용하실 생각이신 겁니까?”
“그렇다. 거기다 포르노아 공작 또한 카르마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카르마제는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해 온 포르노아 공작 대신 히알독 후작을 곁에 두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대단한 분이로군요 카르마제란 사람은… 듣기와 달리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카르마제의 옆에 영원한 2인자는 없다. 놈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은 언제든 잘라내니까. 몽페르도 그걸 잘 알았기에 본신의 능력을 모두 드러내진 않았다. 포르노아 공작도 마찬가지였지만… 결국 그도 이미 카르마제에게 내쳐진 인물 중 하나다.”
칼라반의 말에 운량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 어나니머스의 어쌔신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찾았습니다.”
“어디에 있나?”
“현재 히리엘 공주는 젠보르크 지역에 있으며, 주변에는 카르마제 왕이 붙여둔 수하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아마 그녀를 감시 및 보호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젠보르크라면 다행이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군.”
칼라반은 그대로 어나니머스가 말한 지역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를 따라 이클립스의 대장들이 함께 나서려 했지만 칼라반이 이를 말렸다.
혼자 다녀오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걱정마라.”
“그동안 저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포르노아 공작의 손자인 레비오스를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해둬라.”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칼라반이 몸을 돌렸다.
[경공 스킬을 발동합니다.]팡!!
그가 발을 뗌과 동시에 경공 스킬이 발동되었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순식간에 멀어진 칼라반을 보며 여러 대장들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신기하군…….”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마법의 일종인가?”
하지만 지금 그 누구보다 신기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요쿠스였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칼라반은 그저 평범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사내였다.
물론 다른 것들은 결코 평범하진 않았지만, 그의 몸만큼은 일반 성인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조금 전 칼라반이 보여준 움직임은 요쿠스마저 눈을 꿈뻑거리게 만들었다.
“되었어… 괴물이…….”
그가 연신 중얼거리는 동안 칼라반은 계속해서 경공을 펼쳤다.
이제는 호흡을 가다듬는 것만으로도 수라윤회심공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경공을 펼치는 동안 소모 되는 마나의 양도 대폭 줄어들었다.
마치 세상이 접히는 것 같은 빠른 공간 속에서 그는 좀 더 힘차게 발을 내달렸다.
그가 수풀을 밟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초상비(草上飛)를 발동합니다.]빠르게 내달리는 그의 몸은 놀랍게도 수풀의 위에 떠있었다.
땅을 딛지 않는 그의 움직임에 어나니머스조차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현재 칼라반이 전력으로 내딛는 경공 속도를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놀랍군… 우리들조차 따라가기 힘들 속도라니…….’
나름대로 일급 어쌔신들로 구성되어 있건만 칼라반의 속도는 그들에게도 버거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고된 훈련을 거쳐 온 자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묵묵히 칼라반을 쫓았다.
반면 칼라반은 새롭게 익힌 경공 수준에 대해 새삼 놀라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어지는 상쾌함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달음에 내달린 결과 칼라반은 금세 젠보르크에 도달했다.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속도였다.
“빠르긴 하군.”
젠보르크의 앞에 멈춰선 칼라반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뒤에선 어나니머스의 어쌔신들이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대들을 신경 쓰지 못했군… 미안하다.”
“아닙니다.”
“저희들은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마스터.”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어쌔신들은 또박또박 말을 전했다.
칼라반이 젠보르크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어쌔신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셨습니까 마스터.”
“히리엘 공주는?”
“근처 커다란 주점에서 숙박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그녀를 만나보겠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어쌔신들은 히리엘 공주가 있는 곳으로 칼라반을 안내해 주었다.
젠보르크도 꽤나 큰 도시였기에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거기다 히리엘 공주가 머무르는 곳은 젠보르크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점원이 칼라반을 반기며 다가왔다.
칼라반은 곧바로 히리엘 공주가 있는 곳을 찾았다. 그녀는 3층의 창가에 일행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칼라반의 시선을 눈치챈 점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행이 있으신 겁니까?”
“저기 있습니다.”
“아아…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점원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한 칼라반은 천천히 계단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가까이 다가갈 때 동안 히리엘 공주 일행은 조용히 식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누구… 아…….”
칼라반의 얼굴을 기억한 히리엘 공주가 놀란 눈을 했다. 잠깐이었지만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 있던 사내였다.
“당신은 그때 그…….”
“기억하고 계신 모양이로군요.”
“예… 그런데 이곳엔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당신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칼라반의 거침없는 말에 히리엘 공주를 호위하던 자들이 경계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들은 식사를 하던 손을 놓고 칼라반을 찬찬히 훑었다.
반면 히리엘 공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칼라반을 마주하고 있었다.
“저를요?”
“그렇습니다.”
“제게 무슨 볼일이…….”
“제가 레비오스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의 입에서 ‘레비오스’라는 이름이 거론되자 히리엘 공주의 얼굴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작은 얼굴이 미세한 떨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꽉 말아 쥔 두 손은 옷매무새를 붙잡았다.
“레비오스님을요……?”
“그렇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당신은 누구신데…….”
“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히리엘님께서 레비오스님을 만나러 가시는가 아닌가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는 레비오스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주저했다.
딱 잘라 거절하는 것이 아닌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칼라반은 역시 레비오스와 히리엘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라 직감했다.
“히리엘님께서 결정만 내려주신다면 레비오스님과의 만남을 성사시켜드리겠습니다.”
“하아… 어차피 저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요. 당장 제 주변만 해도 카르마제님의 사람들이 깔려 있으니까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떼어놓고 오직 히리엘 공주님의 마음만 생각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칼라반의 단호한 말에 히리엘 공주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장 눈앞에 있는 사내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몰랐지만 만약 자신에게 이러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마침내 그녀가 결정을 내렸다.
“만약… 당신이 그래주실 수만 있다면 저는 레비오스님을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어요. 그러나…….”
“그럼 됐습니다.”
“네…? 아니, 이봐요. 사람 말을 끝까지 듣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칼라반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그런 칼라반을 바라보며 히리엘 공주도 넋 나간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운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대체 뭘까요? 저 사람…….”
“잘은 모르겠으나… 제국 쪽 사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네? 제국 쪽 사람이 아니에요?”
“예. 그때 들어보니 그런 듯 했습니다. 거기다 제국을 상대로도 거침없이 행동을 했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때 저희에게 시비를 걸었던 기사단이… 사실은 저 사내의 일행 손에 모두 당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그게 정말 사실이에요?”
“예. 그때 루안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맙소사…….”
그들이 칼라반에 대한 얘기로 한창일 때, 암중에서 히리엘 공주 일행을 감시하던 어쌔신은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조금 전 히리엘 일행과 대화를 나누던 사내가 어느새 그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어쌔신은 빠르게 몸을 돌려 사내를 마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잘 되었군. 너에 대해 조사를 하려던 참인데.”
“그럴 필요 없다.”
사내, 칼라반이 손아귀를 펼치자 무형의 기운이 퍼졌다.
[마검 포르티나를 소환합니다.]칼라반이 포르티나를 쥐자 서늘한 한기가 주변으로 퍼졌다.
께름칙한 기운에 어쌔신은 순간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결국 그는 칼라반을 상대하기보다 우선 자리를 피하는 것을 택했다.
현명한 판단이었지만 그의 몸이 생각만큼 따라주진 못했다.
팟!!
자리를 박차자마자 칼라반이 단숨에 그를 따라잡았다.
“치잇……!”
어쌔신이 그를 돌파하기 위해 검을 역수로 쥐었으나 이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어라……?”
검을 쥔 팔이 눈앞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어쌔신이 자신의 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 헙……!!”
팔의 상태를 확인한 그가 절로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본래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깔끔한 절단면 위로 차가운 서리가 맺혀 있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팔이 잘려나갔음에도 이렇다 할 고통도 없었다.
“미안하지만 이곳에서 너희들 모두 죽어줘야겠다.”
스걱!
칼라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은 한 팔마저 잘려나가고 말았다.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당해버린 것이다.
압도적인 실력 차 앞에 어쌔신은 점점 몸이 얼어붙어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