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76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76화
#뜻밖의 소식
“저더러 카르마제님에게 검을 겨누라는 말씀이십니까?”
“안 될 이유는 없잖아요?”
“제가 당장 이곳에서 당신과 남은 일행들을 모두 붙잡아 카르마제님에게 넘길 수도 있습니다만.”
“어디 한번 그렇게 해보시든지요.”
벨제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포르노아 공작의 눈에도 이채가 어렸다.
이어 그의 시선이 칼라반에게로 향했다.
“혹시 저 사내를 믿고 있는 것입니까?”
“뭐…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저는 저를 제일 믿어요. 당신이 이곳에서 저를 붙잡으려 한다면… 장담하건데 포르노아 공작도 큰 희생을 치르게 될 거예요.”
“우리 포르노아 공작가를 너무 만만하게 보시는군요.”
“당신이야말로 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요? 피차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에요.”
“…….”
“거기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 아녜요? 히리엘 공주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면 당장 카르마제가 군을 돌려 여기까지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허허… 이것 참…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일선에서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보내길 바랐는데.”
포르노아 공작이 털털한 웃음을 보였다.
그는 벨제인을 위협하던 기운을 차츰 거두어들였다.
“할아버지…….”
“레비오스 너의 생각은 어떠냐?”
“예……?”
“어차피 장차 우리 가문을 이끌어 갈 것은 너다. 거기다 이미 우리 가문의 가주는 네가 맡기로 하였으니 너의 생각을 말해 보거라.”
“할아버지 저는…….”
잠시 말을 망설이던 레비오스가 이내 결심을 굳혔다.
그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확인한 포르노아 공작이 눈을 빛냈다.
“솔직히 말해서 포르노아 공작가는 현재 카르마제님의 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히알독 후작에게 많은 권력이 몰리고 있는 상태고요. 우리는 그동안 카르마제님을 모셔왔던 기간이 무색하리만치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런 주군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지금까지 목숨을 바쳐 싸워왔는가 하는…….”
“흐음… 그랬느냐.”
“거기다 저는 히리엘 공주님에 대한 제 마음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카르마제님은 현재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 여인을 취할 때가 많았습니다. 히리엘 공주님도 마찬가지로 그분에게 있어 하나의 권력의 상징으로밖에 취급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공주님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히리엘 공주님을 제 곁에 두어 평생을 행복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느냐?”
“물론입니다.”
레비오스의 단호한 말에 포르노아 공작도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독 손자의 말에는 유한 모습을 보이는 포르노아 공작이었다.
이는 그의 아들인 이란트로모아가 이국 전장에서 전사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레비오스의 앞에서 포르노아 공작도 마음이 약해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카르마제님을 적대한다는 것은 말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제국을 등지게 될 수도 있다.”
“그거라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두 사람의 대화에 벨제인이 나섰다.
포르노아 공작이 한층 가라앉은 시선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도와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제 능력을 잊으신 것은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벨제인님 당신의 능력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정신을 파괴시키는 마법이 특기인 마법사는 지금까지도 제 기억 속엔 당신이 유일합니다.”
“기억해주셔서 고마워요. 아무튼 제 마법의 힘을 조금 빌려서 그 부분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혹시나 구시대의 귀족들을 이용할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그리고 필요하다면 민심까지도 이용할 생각이에요.”
포르노아 공작이 벨제인을 살폈다.
그녀가 손바닥을 펴 보이며 허공에 휘둘렀다.
확신에 찼을 때면 나오는 그녀의 버릇이었다.
“허어… 당신의 그 손짓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보아하니 이미 계획은 다 갖추신 모양이로군요. 하지만 잘못되면 제국 중앙의 인물들까지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들의 움직임은 여기 있는 분이 처리해줄 테니까요.”
그녀는 한쪽에 자리한 칼라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벨제인은 결코 아무나 신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포르노아 공작은 칼라반에 대해 따로 묻거나 하진 않았다.
그의 정체가 당장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천천히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흐음… 좋습니다. 아직 완전하게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히리엘 공주님을 이곳으로 모셔온 덕분에 우리도 꽤나 곤란하게 되었으니… 어디 한번 마음을 맞춰볼 수 있으면 맞춰보도록 하지요.”
“그러고 보니 히리엘 공주님의 생각은요? 공주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벨제인이 살며시 웃으며 히리엘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히리엘 공주는 손을 모으며 벨제인과 칼라반, 레비오스의 눈치를 살폈다.
“저는… 약소국의 공주일 뿐… 늘 제게는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요?”
“그저 제 행보에 따라 우리 코치나 왕국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길 바랄 뿐이에요.”
“다른 것 따지지 말고 공주님 본인한테 솔직해져 보세요. 당신은 카르마제의 곁에 있길 바라시나요. 아니면 레비오스의 곁에 있길 바라시는 건가요?”
“그야…….”
히리엘 공주의 시선이 자연스레 레비오스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레비오스도 내심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의 반응에 히리엘 공주가 얼굴을 붉히면서도 연신 칼라반 쪽을 살폈다.
다른 이들은 그녀의 잠깐 스쳐지나가는 시선을 제대로 읽지 못했으나 칼라반과 벨제인은 달랐다.
‘재밌는 공주네.’
그녀의 행동을 살핀 벨제인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순간 그녀의 심리가 훤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구태여 꺼내진 않았다.
그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칼라반은 문득 외부의 기척을 느꼈다.
[기척이 감지되었습니다.] [어나니머스 조장 페슬로니아의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어나니머스의 조장급 중 한 명이 그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다가온 것이다.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
벨제인에게 귀띔을 하고 칼라반은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바깥으로 나서자마자 페슬로니아가 그의 앞에 부복했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확인 되었나?”
“예. 확인결과 체르피히의 말대로 솔 기사단의 만인대장으로 의심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레처드와 폰투랑이 맞나?”
“그런 것 같습니다.”
페슬로니아의 말에 칼라반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졌다.
설마 싶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녀석들은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얼마 전 오천인 대장 멜라트니가 처형되었습니다. 처형식이 거행된 장소는 바로 뮴. 자할 후작이 다스리는 영지입니다.”
“뭐!? 멜라트니가 처형이 돼!? 자할이라면 데포르의 부관이었던 자인데…….”
좀처럼 감정을 보이지 않던 칼라반도 순간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제국의 대기사장인 데포르가 향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데포르가?”
“예. 나름대로 은밀히 움직이긴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깐 모습을 드러냈었습니다.”
“뭐 때문인지 알아내었나?”
“근처 영지에서 라파엘 교단과 전쟁을 치르는 영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누군가 나타나 전쟁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사람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페슬로니아의 설명에도 칼라반은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일에 자신의 수하들과 데포르가 엮여 있다고 하니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멜라트니의 복수를 위해 병력을 모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폰투랑…….”
“멜라트니라는 자가 그렇게 대단한 자입니까? 그동안 움직이지 않던 만인대장들마저 움직이게 만들다니.”
“폰투랑과 멜라트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전장에서 만나 사랑의 꽃을 피운 두 사람이다. 무뚝뚝한 폰투랑의 곁에 밝고 명랑한 멜라트니가 있어 모두들 안심했는데… 폰투랑 녀석…….”
칼라반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폰투랑과 레처드도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온 친구였기에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발걸음을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뮴으로 가봐야겠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래 알고 있다.”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그럼 뭐지?”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합니다. 마치 잘 파놓은 함정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두 분이 병력을 모으기 시작한 때에 데포르도 마치 짜놓은 것처럼 각 지역의 병력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 추측입니다만… 저들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가.”
칼라반과 페슬로니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때 안에 있던 일행들이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포르노아 공작가랑 얘기를 마친 벨제인도 함께였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다.”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보네요.”
“내 수하들과 관련된 일이다.”
“솔 기사단이랑요? 그럼 당장 가보셔야죠. 여긴 걱정 마세요. 제가 있으니까.”
“레기온과 연락은 취해봤나?”
“물론이에요. 그 사람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닌 덕분에 저도 편했으니까요.”
“그래. 몇몇 이들을 남겨두고 떠나겠다.”
“사양하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알겠다.”
칼라반이 발걸음을 재촉하려는 때 먼발치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히리엘 공주가 슬쩍 발을 내밀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길을 막은 그녀를 보며 칼라반이 한쪽 눈을 찌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어디 가시는 건가요?”
“개인적인 일이 생겼습니다.”
“어떤…….”
“제가 그것까지 공주님에게 말씀드려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군요.”
“매정하시네요.”
“그럼 이만.”
칼라반은 그대로 그녀를 지나치려 했다.
그러자 히리엘 공주가 다시금 그를 붙잡다시피 했다.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칼라반이 그대로 멀어졌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히리엘 공주가 복잡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레비오스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많이 친해지신 모양이군요.”
“아녜요. 그냥…….”
히리엘은 말끝을 흐리며 이만 몸을 돌렸다.
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벨제인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것 봐라… 자신의 무기가 뭔지 잘 안다는 얘기인가?”
그러나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건 그것은 히리엘 공주의 자유.
자신이 무어라 간섭할 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래 뭐 상관없지. 나는 복수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칼라반과 몇몇 일행이 포르노아 공작가를 떠나고, 이나쿠스 왕국은 점점 더 혼란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었다.
특히나 포르노아 공작가에 히리엘 공주가 있다는 사실이 급속도로 알려지면서 왕국의 분위기는 더더욱 뒤숭숭해지고 있었다.
“지금 그 말이 사실이냐?”
“예. 확인해보니 정말로 히리엘 공주님은 포르노아 공작가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사라졌다는 공주가 어째서 그곳에 있는 거지? 설마 놈들이 데려간 건가?”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들어보니 레비오스가 히리엘 공주님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던데…….”
콰앙!!
분노한 카르마제가 주먹으로 벽을 때렸다.
쌍심지를 켠 그의 두 눈은 손에 들고 있는 보고서를 뚫어버릴 듯 노려보고 있었다.
“감히… 내 것에 욕심을 냈단 말이냐?”
“놈들의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하실 겁니까? 카르마제님.”
“전군을 돌린다. 히알독.”
“알겠습니다. 목적지는 역시…….”
“포르노아 가문이 있는 곳이다.”
분노한 카르마제를 보며 히알독 후작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