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8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82화
#기적과 같은 만남
“안 쫓을 겁니까?”
“굳이 쫓아야 하나요?”
“흐음…….”
“거기다 그쪽 부상도 심하잖아요? 애써 무리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폰투랑이 투기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곤 바닥에 주저앉아 부상을 살폈다.
사실 말을 안 했다 뿐이지 그의 몸 상태는 결코 좋지 않았다.
레처드의 사정없이 몰아친 창날이 온몸을 난도질해놓았다.
“인정머리 없는 놈…….”
그는 돌아선 레처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친구 사이로 지내왔건만 이렇게 보내려니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여러 감정들이 스치고 있었다.
“감히 위로의 말을 전해요.”
그때 곁에 있던 로제리아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녀 또한 레처드와 폰투랑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폰투랑이 느끼고 있을 심정을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별수 있겠습니까. 애초에 저 녀석과 전 그 길이 달랐던 겁니다. 잠시나마 동행하며 걸었던 것뿐이겠죠.”
“생각보다 차분하시네요.”
“저도 의외입니다. 짐작만 하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을 땐 좀 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머리가 하얘질 줄 알았더니… 생각만큼 그러지도 않더군요.”
“그럼요?”
“그냥 녀석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놈은 그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은근히 정 많은 놈이니. 아마 저런 행동을 택하면서도 속으론 많은 고민들을 하며 괴로워했을지도 모르죠.”
“그럼 좀 더 속 시원하게 화라도 내주지 그랬어요?”
“그럴 수야 없죠. 겨우 저놈 편하자고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괘씸한 것은 맞는데.”
“참… 두 분도 여전하시네요.”
로제리아가 못 말리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제국군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발을 묶어놓기 위해 병력을 두고 간 모양이군요.”
그들을 먼저 살핀 폰투랑이 입을 열었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러자 로제리아가 한 발 앞서 그를 말렸다.
“제가 말씀드렸죠? 가만히 계세요. 저들은 제가 처리할게요.”
말을 마친 로제리아가 뒤편을 바라보았다.
폰투랑의 수하들도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수하들도 자신들의 대장 따라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 억척스럽게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하아, 이런 점은 정말 칼라반님을 닮았네요. 모두.”
“흐흐 원래 끼리끼리 모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그래서 제가 칼라반님의 군단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 거겠죠.”
“아직까지 우리 대장님을 마음에 두고 계신 겁니까?”
“네.”
로제리아의 짧고 단호한 대답에 폰투랑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칼라반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이를 근래에 언제 봤는지 가물가물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담하게 칼라반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니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당신도 정말 미련하군요.”
“알아요 저도 미련한 것 정도는… 그런데 어떡하겠어요. 이미 죽은 사람인 것을 머리는 이해해도 마음은 그렇지 못하고 있는 걸.”
로제리아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폰투랑은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에 멜라트니를 투영해 보았다.
“아닙니다. 그래서 감사한걸요. 그리고 여자 보는 눈 없는 우리 대장님은 그곳에서도 반성 좀 해야 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시는군요. 그 당시 누구보다도 절 반대했던 것이 폰투랑 당신 아닌가요?”
“크흠. 저만이 아닙니다. 이아퀸드 녀석도…….”
“아아 알고 있어요. 아무튼 잠시 쉬고 있어요.”
휘리링―!
캉!!
로제리아는 대기를 가르며 날아온 화살을 가볍게 튕겨냈다.
그녀가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날아오던 화살들이 단숨에 가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크윽…! 겁먹지 말고 계속해서 활을 쏴라!”
자리에 남은 기사의 외침에 궁병들이 다시금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섬전과도 같이 몸을 날린 로제리아가 단숨에 그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후웅!
콰가각!!!
그녀의 검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릴 때마다 궁수들이 들고 있던 활이 반절로 잘려나갔다.
귀신같은 그녀의 검술 솜씨에 병사들은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로제리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궁수들의 곁을 지키던 기사들에게로 향했다.
“온다!”
그녀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푸른 곡선이 함께 넘실거렸다.
언제 당한지도 모르는 병사들과 기사들이 거친 비명을 토해낼 때면 붉은 핏물이 허공에 튀어 올랐다.
“크아악!!!”
“끄아!!”
그들의 고통 어린 신음을 뒤로하고 로제리아가 멈춰 섰을 땐 이미 전투를 치를 수 있는 병사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 10분.
로제리아가 백여 명이 넘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전투불능에 빠트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괴… 괴물…….”
그녀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단어는 이것뿐이었다.
그들은 그녀 앞에서 잠깐의 시간벌이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들에게 크게 원한을 갖고 있진 않아요. 그러니 이대로 물러나주신다면 저 또한 당신들을 쫓지 않을 겁니다.”
로제리아는 쓰러진 제국군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로제리아의 말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단 한 명도 죽질 않았잖아?”
이제야 주변을 살피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로제리아는 그들 중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그저 신체의 일부를 베어 당장 전투를 치르기 어렵게 만들어놓았을 뿐이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보니 제국군으로선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들 모두를 데리고 남았던 히드로겐 남작이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저희들의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이대로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 그리고 이곳 성도 비워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자할 후작님도 성을 비우고 도망가신 마당에…….”
“그래요. 앞서 말했듯이 이대로 조용히 물러나주신다면 저 또한 당신들을 쫓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일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으면 해요.”
로제리아가 스산한 살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녀의 살기에 당장 근처에 있던 기사들이 반응했다.
그들은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부르르 떨며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제리아도 이들에게 가한 협박이 크게 먹혀들 것이란 생각은 안 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얘기해두는 것이 한 명이라도 덜 얘기하고 좋을 것 같았다.
그녀가 정말로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니 쓰러져 있던 제국군들도 하나둘 몸을 돌렸다.
그들은 부상당한 동료들을 부축해주며 천천히 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폰투랑은 물론 그의 수하들까지 제국군을 쫓을 여력이 안 되었기 때문에 로제리아의 말이 따로 없더라도 그들 역시 제국군을 순순히 보내주어야만 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이제 계획이 무엇입니까?”
“아…….”
폰투랑이 되묻자 로제리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 역시도 혹시나 칼라반이 이곳으로 오진 않을까 싶어 우선은 다급하게 찾아와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도착해보니 칼라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러니 그가 모습을 비추지 못할 것이란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밀려오는 실망감은 어쩔 수 없었다.
혹시나 싶었던 마음에 은근한 아픔이 묻어난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온 뮴에서 칼라반의 수하인 폰투랑의 목숨을 살렸으니, 이것은 이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 여겼다.
“어쩌면 당신이 절 이곳으로 안내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죽음의 세계에 있는 칼라반이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해준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강하게 밀려오기도 했다.
이는 마치 자신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파헤쳐 대신 복수해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실없는 생각 같기도 하고.”
“로제리아?”
여러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쯤 어디선가 그녀의 상념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제리아의 곁에 있던 폰투랑이 가장 먼저 두 눈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폰투랑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 있던 수하들마저 두 눈을 계속해서 비비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말도 안 돼…….”
“야… 아니지……?”
“우리 지금 같은 걸 보고 있는 것 맞냐?”
“어… 아마 그런 것 같다만… 그런데 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혹시 누가 장난치는 것 아냐?”
“그게 정말이면 지금 당장은 감사한다. 덕분에 반가운 얼굴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은 결코 용서 못한다. 놈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분을 건드렸어.”
“동감이다. 감히 우리들의 대장님을…….”
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해대며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작 폰투랑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두 눈을 꿈뻑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 마침내 그가 자신의 앞에 당도했다.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구나 폰투랑.”
“거짓말 치지 마십시오.”
“뭘 말이냐.”
“어떻게 당신이 이곳에 있는 겁니까?”
“그럼 어디에 있어야 하지?”
“그야 당연히… 후우… 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다.”
폰투랑이 삼엄한 기세를 드러내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주변에선 아무런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폰투랑의 두 눈이 더욱 동그랗게 떠지고 있었다.
이 믿을 수 없는 기적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놀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여기.
다른 한 명도 마찬가지였다.
폰투랑의 곁에 있던 로제리아 역시도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는 사내를 확인하자마자 그 순간부터 전신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마치 말을 잃은 사람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같은 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반가움에 대한 말도.
그리움에 대한 말도.
원망에 대한 말도.
혹시나 기대했던 상황에 마음속으로 수많은 말들을 새겨 넣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한 문장도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지금 이 순간 그저 머리는 하얘지고 심장은 먹먹함만 밀려오고 있었다.
로제리아의 두 손은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입술을 가렸다.
“오랜만이다 로제리아. 이곳에서 그대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정말… 정말 칼라반 당신인가요?”
“보다시피.”
“아아… 살아…계셨군요…….”
“말하자면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결과적으론 이렇게 살아 있다.”
칼라반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는 폰투랑과 다른 이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믿을 수 없는 일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그때 칼라반의 뒤에서 누군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음에도 당장 어제 들은 것처럼 생생한 목소리였다.
“요쿠스!?”
“이야 잘 지냈냐? 아니 근데 왜 그 따위 모습을 하고 있어? 레처드는?”
요쿠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척보니 이미 그는 술 한 잔 기울인 상태였다.
“그나저나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꿈이 아니라면…….”
“꿈 아냐. 살아 있었어 우리 대장. 참 정신 나간 일이지? 근데 그게 가능하더라고.”
요쿠스가 코를 찡긋 거리며 말했다.
이에 폰투랑이 힘겹게 몸을 추슬렀다.
쿵!!
쿠웅!!!
그를 시작으로 남은 그의 수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어찌나 세게 꿇었는지 커다란 소리가 멀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만인대장 폰투랑! 대장님을 뵙습니다!!!”
그의 포효에 가까운 외침에 요쿠스는 물론 칼라반도 알 수 없는 뜨거움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