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193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193화
#다시 만난 하이데
“상황은?”
“예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병력은 얼마나 되는 것 같나?”
“생각보다 많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 같습니다.”
“훗… 어지간히 눈이 뒤집힌 모양이군. 피해를 수습할 시간도 없이 이렇게 먼저 나서다니.”
사내는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만여 명의 군사들이 군기 가득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카르마제에게서 특별 명령을 받고 내려온 군사들이었다.
“그나저나 겨우 검투사들을 상대로 이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이럴 시간에 광신도 놈들을 처리하는 게…….”
“판단은 카르마제님의 몫이다. 우리는 그저 명령만 수행하면 돼. 감히 의심을 갖지 마라 트레본.”
“죄송합니다 테리파메님.”
테리파메라 불린 사내는 눈을 찡그리며 먼 곳을 응시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이 만약 사전에 전해들은 장소가 맞다면 분명 이 길목을 지날 터였다.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놈들이 언제 다가오는지 그것에만 집중해라.”
“옙!”
테리파메의 명령에 트레본이 말을 달렸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적들이 다가오는지 계속해서 살폈다.
그 사이에도 트리파메는 자신의 작전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꼼꼼함을 더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러 갔던 트레본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달려왔다.
“왔습니다! 트리파메 대장님!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냐. 드디어 때가 왔나보군.”
트리파메가 싱긋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군사들도 함께 준비를 마쳤다.
그들은 날 서린 눈빛으로 적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섰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먼발치서부터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들인가?”
“예 맞는 것 같습니다.”
“흐음… 상대는 검투사들이라지?”
“맞습니다. 금방 끝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놈들은 검투사들에 불과합니다. 귀족들의 눈요깃거리나 해주는 광대들인데…….”
“내 생각도 그러하다. 그러니 저들이 이곳을 지날 때쯤 급습한다.”
트리파메가 손을 들어올리자 모두가 숨을 죽이고 몸을 낮췄다.
그때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희는 여기서 뭐하냐?”
그들의 뒤편에서 들려온 굵은 목소리.
이 낯선 목소리에 제국군이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어느새 그들의 뒤를 점한 검투사들이 흉흉한 기세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그들이 제대로 놀랄 겨를도 없이 길목을 지나던 검투사들이 돌연 방향을 바꿨다.
그들은 제국군이 숨어 있는 곳을 정확히 찾아내어 돌진해왔다.
“기습은 이미 들켰다! 응전해라!”
상황파악을 빠르게 마친 트리파메가 힘껏 외쳤다.
그러자 제국의 군사들도 우렁찬 함성소리와 함께 전투를 시작했다.
콰라앙!!
그들 한 가운데에 떨어진 사내가 단숨에 기사 십 수 명을 박살내버렸다.
사내는 거친 살기를 드러내며 근처에 보이는 제국군이란 제국군은 모두 날려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내의 곁에선 검투사들도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제국군들을 도륙해내고 있었다.
“뭐야… 이건 들었던 얘기와 다르잖아……?”
그들이 전해 들었던 것은 분명 힘을 다 잃어가는 패잔병들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전투를 쉬지 않았던 데다 바그라드에서까지 큰 피해를 입었으니 잔당들을 처리하는 데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 이 꼴이 무엇인가!
누가 저들을 두고 감히 패잔병이라 말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트리파메는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아무리 빨리 깨달았다 한들 이미 상황은 늦어버린 뒤였다.
눈앞에 있는 것은 제국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검투사들이었다.
그들은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필사의 의지로 모든 제국군 군사들을 살육하고 있었다.
“아… 아아…….”
이렇다 할 방책이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트리파메가 그 자리에서 얼어 있는 동안 트레본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피하셔야 합니다 트리파메님! 아무래도 우리가 함정에 당한 것 같습니다.”
“함정?”
“예…! 이거 그 근본도 없는 놈이 반대로 우리를 함정에 빠트려…….”
트레본은 갑자기 전해져온 느낌에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쥔 사내.
붉은 머리칼의 거한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냐 너희들은.”
콰직!
단 한순간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데엔 그 짧은 찰나면 충분했다.
붉은 피를 토해낸 트레본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를 눈앞에서 지켜본 트리파메가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네가 이곳의 지휘관이냐?”
“예… 예에… 그렇습니다만…….”
“그럼 이곳 지리에도 훤한가?”
“아… 물론입니다. 물론이에요.”
“잘 되었구나. 하리티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어디냐?”
“그건… 저쪽 길로 가면…….”
이것이 곧 트리파메의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아라카인이 그에게 무언가를 더 묻기도 전에 눈먼 칼이 그의 등뒤에 꽂히고 말았던 것이다.
“쯧. 내가 한 놈쯤은 살려두라 했을 텐데…….”
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검투사들은 이미 제국군 모두를 죽여 놓은 상태였다.
그러고도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지 그들은 굳이 죽어 있는 제국군 시체에 검을 겨누었다.
“하아… 어쩔 수 없군. 계속해서 우릴 안내해주겠나?”
아라카인이 허공에 대고 말하자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칼라반이 아라카인 일행에게 붙여준 어나니머스의 어쌔신들이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모습을 감추는 그들을 보며 아라카인이 혀를 찼다.
“무서운 놈이야.”
“뭐가 말이요?”
“그 사이에 저런 수하들까지 거두다니…….”
“공민 블레이드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지금만 해도 저들 덕분에 이들이 숨어 있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잖냐.”
“그건 그렇습니다. 확실히 지켜보고 있으면 무서울 정도요. 벌써 이런 식으로 세 번의 기습을 막아내고 손쉽게 처리했으니…….”
“저놈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그건 저도 잘…….”
“기대도 안 했다. 그냥 혼잣말 좀 해본 것뿐이야.”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놈들… 결코 보통 놈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국 안에서의 일을 마치 손바닥 들여다보듯…….”
“그러니 무섭다는 것 아니겠냐. 이것 참. 그 사이에 괴물 같은 놈이 되어버렸어 공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블레이드 후보인 애송이였는데…….”
아라카인의 말에 글라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돌아와도 제국군이 도사리고 있는데… 공민 블레이드님이 가신 길목은 난리도 아니겠군요.”
“아마 그쪽은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이 있을 테지.”
“원래는 저희가 그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제국놈들보다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이 더 상대하기 까다로울 겁니다.”
“본인이 그쪽이 더 편하다는데 어쩌겠나. 그보다 서두르자. 공민보다 늦게 도착할 순 없다.”
“아아 이것은 또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죠.”
순식간에 제국군 만여 명을 몰살시킨 검투사들이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아라카인은 어나니머스의 어쌔신들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하르스마이어가 기다리고 있는 하리티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한편 아라카인과는 다른 길목을 선택한 칼라반도 잦은 전투를 이어가며 전진하고 있었다.
“대장님.”
“뭐냐.”
“앞쪽에서 이상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집니다만.”
“적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전혀 자연스럽지 못한 흐름이거든요.”
쥬피로스가 앞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칼라반도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함께 응시했다.
그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슬쩍 가까이로 가보았다.
띠링!
[이상 현상이 감지되었습니다.]칼라반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가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겨 마법진 안으로 들어서자, 다른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독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만독지체 스킬이 발동됩니다.]“독?”
딱히 몸에 느껴지는 통증이나 이상한 감각 같은 것은 없었다.
내부로 스며드는 탁한 기운은 느껴졌으나, 곧 단전에서 시작된 내기가 그것들을 모두 밀어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쪽으로 오지 마.”
“네?”
“독이다.”
칼라반의 뒤를 따라 다가온 로제리아가 토끼처럼 놀란 눈을 했다.
그녀는 칼라반을 향해 계속 손짓했다.
“그럼 거기서 뭐하고 있어요? 서둘러 나와요! 독이라면서요?”
“나는 괜찮다.”
“세상에 독에 중독되었는데 괜찮은 사람이 어딨어요?”
그녀는 강제로라도 끌고 오겠다는 듯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녀의 곁에 서 있던 쥬피로스가 그녀를 말려주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로제리아님. 침착하시고 대장님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아…….”
그때서야 로제리아도 칼라반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보랏빛 독무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는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로제리아는 물론 다른 이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쥬피로스.”
“예. 말씀하십시오, 대장.”
“이 마법진을 해체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별로 안 걸릴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조잡해보이거든요.”
쥬피로스는 고민도 필요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러자 뒤편에 있던 다른 만인대장들이 한마디씩 해대었다.
“여전히 재수 없는 놈이로군…….”
“어련하시겠어.”
“밥맛… 진짜…….”
그들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였다.
칼라반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너희들은 마법진을 해체한 뒤 들어와라. 내가 먼저 놈들과 놀고 있겠다.”
“음? 같이 가시지 않는 겁니까?”
“저 안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놈과는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천천히 따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쥬피로스를 포함한 칼라반의 군단 전체가 그의 명에 따랐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어엇……!?”
쥬피로스가 그녀를 말릴 새도 없이 로제리아가 독무가 가득한 마법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괜찮겠나?”
“네 괜찮아요.”
칼라반의 시선이 로제리아에게로 닿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의 마나로 독 기운을 밀어내고 있었다.
정확히는 마나를 전신에 둘러 독 기운이 자신에게로 침입하지 못하게 막아내는 형식이었다.
그녀가 갖고 있는 방대한 마나량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은 쉽게 시도조차 못할 방법이었다.
“대단하군.”
“어서 가요.”
“어차피 그대가 나설 일은 없겠지만… 무리하지는 마라.”
“알겠어요.”
결국 칼라반은 로제리아와 함께 독무의 안쪽 깊숙한 곳까지 발을 들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자 서서히 주변에서 많은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적들이에요.”
“…….”
로제리아가 주변을 경계하며 말했다.
그 사이 칼라반은 말없이 눈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높은 나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내.
그가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로구나 하이데.”
“호오… 이게 누구야.”
흉흉한 기세를 드러내며 하이데가 칼라반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하이데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형님의 명령을 받아 천박한 검투사놈들이나 사냥하려 했더니… 운 좋게 네놈이 제 발로 찾아왔구나. 다행이야… 언젠가 네놈을 꼭 죽여줄 생각이었는데… 여긴 어떻게 온 거냐? 크흐흐.”
하이데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그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칼라반도 스르륵 미소를 보였다.
“나도 네 목을 회수하러 왔다.”
슈와아아―!
칼라반의 전신에서 가공할 만한 내기가 폭사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