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00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00화
#블레이드의 싸움
콰라랑!!
콰르르릉――!!
한쪽에서 들리는 엄청난 굉음에 절로 레겐트의 고개가 돌아갔다.
소리가 들린 쪽은 하르스마이어가 향한 곳이었다.
“저쪽도 제대로 한바탕 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가 걸음을 옮기려는 때 검은 그림자가 발밑을 타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저건…….”
하르스마이어의 곁에 붙어 있던 그림자 중 하나였다.
여러 차례 봐왔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은 색깔에 진흙처럼 생긴 특이한 모습 때문에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하르스마이어님께선 저런걸 뭐 하러…….”
정확한 정체는 모르지만 저 괴상한 것도 하르스마이어가 소환해낸 마수들 중 하나라 여겼다.
어디에 쓸모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하르스마이어가 저 검은 그림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목격한 적은 있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저것들도 나름의 쓸모를 보여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만 있었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글라버드의 시체 앞에서 멈춰 섰다.
“뭘 하려는 거지?”
이를 본 레겐트가 절로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한 차례 글라버드의 몸을 살펴본 검은 그림자가 점차 몸의 부피를 늘리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것인지 몰라 레겐트는 그 자리에서 그림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흠이 있지만… 더 이상은 못 참겠군. 이 정도면 썩 나쁘지도 않으니…….
하르스마이어를 한 번 쳐다본 검은 그림자가 단숨에 글라버드의 시신을 덮었다.
“읍……!?”
그 모습을 본 레겐트가 곧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굳이 다음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결국 그는 말없이 바티투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려버렸다.
한편 다른 쪽에서 벌어진 하르스마이어와 아라카인의 싸움은 점점 더 절정에 치닫고 있었다.
수많은 마수들을 앞세워 하나의 대대를 만들어낸 하르스마이어와 다르게 아라카인은 단신으로 그들 모두를 상대해내고 있었다.
야차 같은 그의 모습에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도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대체 저 많은 마수들을 어떻게 혼자 다 상대해내는 거야……?”
“마수들의 공격도 제대로 안 먹혀. 저 투기라는 것… 생각보다 귀찮은 힘인 것 같은데…….”
“미친… 저게 인간이야 아니면 마수야.”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를 밟고 선 아라카인을 보며 모두가 한마디씩 해대었다.
그들 모두 아라카인의 싸움을 실제론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반면 일전에 아라카인과의 전투를 경험해봤던 이들은 굳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하르스마이어는 계속해서 마수들을 소환해내며 아라카인을 상대했다.
콰아앙!!!
아라카인의 주먹이 사정없이 꽂히자 마수의 머리가 그대로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멈추지 않고 팔과 다리를 허공에 휘둘렀다.
강렬한 투기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몇몇 마수들은 재빨리 피했지만, 그렇지 못한 마수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 해버리고 말았다.
워낙 강한 힘에 잠시도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역시나… 언제 봐도 대단한 실력이로군.”
하르스마이어조차 아라카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백 마리의 마수들이 덮쳐오는데도 아라카인은 아랑곳 않고 모두를 상대하고 있었다.
마수들의 수준도 낮지 않건만, 아라카인의 몸엔 이렇다 할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달려드는 마수들을 상대하며 아라카인의 시선이 하르스마이어에게로 향했다.
언제까지고 마수들만 상대할 순 없었다.
하지만 하르스마이어와 거리를 좁히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달려드는 마수들도 문제였지만 대기하고 있던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도 이따금씩 그를 막아섰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여볼까도 했지만, 마냥 무시하기엔 몇몇 마수들의 공격이 예사롭지 않았다.
“쳇……!”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마수들이 몇 있었지만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고 있었다.
철저히 자신을 숨기며 빈틈을 노렸다.
“이래서 지능형 마수들이 제일 귀찮다니까.”
본능에 움직이는 다른 마수들과 다르게, 놈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때문에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신중해지고 차분해지는 놈들이었다.
“그때는 몰라서 당했지만 이제는 다를 거다.”
아라카인이 크게 호흡을 골랐다.
그가 두 주먹을 부딪히자 강한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키야아아!!!”
“캬아악!!!”
주변에 있던 마수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대며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있던 몇몇 마수들의 몸은 수박 깨지듯 으스러져 버렸다.
삽시간에 주변을 정리한 아라카인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의 돌진을 막아서기 위해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쾅!!!
콰랑!!!
그러나 한두 번 휘둘러지는 주먹에 그들은 힘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하르스마이어는 자신을 향해 질주해오는 아라카인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하르스마이어님! 피하셔야 합니다!!”
“저자는 저희가 막아보겠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뒤로 물러가 계시면…….”
척!
하르스마이어가 손을 들자 수하들의 말도 멈추었다.
그가 피식 웃으며 손으로 반원을 그렸다.
후우웅!!
그러자 강한 바람과 함께 짐승의 팔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파앙!!
커다란 날개를 펼친 마수가 붉은 눈으로 아라카인을 찾았다.
“가라.”
하르스마이어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수가 아라카인을 향해 날았다.
녀석은 커다란 손톱으로 아라카인의 투기다발을 꿰뚫었다.
“호오?”
자신의 투기를 뚫고 들어온 마수를 보며 아라카인이 눈썹을 치켜떴다.
그는 곧바로 두 주먹을 말아 쥐며 마수를 향해 내질렀다.
파콰아앙!!!
놀랍게도 마수는 두 팔을 이용해 아라카인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었다.
녀석은 커다란 송곳니를 내밀며 아라카인의 살점을 물어뜯으려 했다.
그러나 아라카인의 두 손이 녀석의 아가리를 막았다.
“크라앙!!!”
“이건 뭐 생선 대가리도 아니고… 짜증나게도 생겼군.”
원숭이 같은 몸체와 다르게 얼굴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인상을 찌푸린 아라카인이 다시금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눈앞의 마수도 똑같이 주먹을 내지르며 응수했다.
파바바방!!
파방!!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화끈한 난타전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마치 자존심 대결이라도 하듯 아라카인과 마수는 뒤로 물러서지 않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해 버텨내었다.
빠르게 이어지는 공격들에 누구하나 섣불리 끼어들 수 없었다.
그들의 대결이 이어지는 동안 하르스마이어의 시선이 잠시 다른 쪽을 향했다.
“이미 시작되었나.”
글라버드의 몸에 잠식한 검은 그림자가 점차 모습을 불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하르스마이어에겐 충분히 느껴지고 있었다.
점점 커져가는 저 사이한 기운이 말이다.
이어 그의 시선이 하운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크레이서스가 이끄는 아라카인의 친위대와 하운드의 싸움은 놀랍게도 하운드가 밀리는 형국이었다.
그라이반드를 비롯한 하운드 모두가 전투에 미친 이들처럼 적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크레이서스와 친위대의 방어선을 뚫진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곧바로 돌아오는 반격에 당하며 피해만 늘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답답해진 그라이반드가 더욱 거세게 날뛰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적들의 창칼뿐이었다.
“이 비겁한 새끼들이……!”
두 눈에 쌍심지를 킨 그라이반드가 크레이서스를 노려보았으나, 크레이서스는 조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 모습에 더욱 악에 받힌 하운드가 크게 외쳤다.
“나와서 나랑 싸우자 크레이서스!! 그때처럼 실력을 보여 보란 말이다!!!”
“넌 내 상대가 못 된다 그라이반드.”
“웃기는 소리!! 자신 있으면 나와보라니까?”
“검투사였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너는 영원히 내 발밑이야.”
“크아아아!!! 이 빌어먹을 새끼가!!”
잔뜩 흥분한 그라이반드가 곁의 하운드들을 이끌고 다시금 폭주했다.
그는 메뚜기처럼 전장의 이곳저곳을 날뛰며 특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모두 준비해라!!”
크레이서스의 말에 검투사들이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들은 애써 하운드를 쫓지 않았다.
침착하게 자리를 지키고서 그들이 다가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놈들은 물어뜯는 사냥밖에 배우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니 놈들이 원하는 대로 난전을 펼칠 필요 없다. 차근차근 상대해주면 그만이야. 제국놈들처럼 말이야.”
크레이서스의 말에 친위대 모두가 눈빛을 달리했다.
그들은 이전의 전쟁에서 배웠던 제국군의 방식을 따라했다.
물론 전술적인 움직임을 완벽히 따라갈 순 없었지만, 그 본질을 파악하고 그들의 방식대로 인용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데엔 크레이서스의 능력이 숨어 있었다.
그는 그가 보았던 제국군의 전술들을 떠올리며 용케도 하운드를 상대할 수 있는 전법을 구사해내었다.
거기다 아라카인의 친위대 또한 나름대로의 고된 수련을 거쳐온 강한 검투사들로 이루어져 있어 크레이서스의 명령을 곧이 곧잘 따라줄 수 있었다.
이 모든 박자들이 한데 어우러지니 그런대로 괜찮은 군진이 완성되어 있었다.
하운드를 상대하는 친위대로서도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곧 난전이 펼쳐져 비등비등한 싸움을 이어갔을 테지만 확실히 이번 전투는 달랐다.
그들이 좀 더 하운드를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라이반드가 저토록 당황하는 것도 사실 무리는 아니었다.
“크아아아!!!”
분노한 그라이반드가 더욱 흉포하게 날뛰었다.
그의 검이 거세게 허공을 가르고 그 뒤를 하운드가 따랐다.
어떻게든 난전을 만들고 싶었지만 상황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때 그들의 사이로 누군가 떨어졌다.
“비켜라 인간들.”
이마에 양쪽 뿔이 작게 돋아난 괴상한 모습.
녀석이 양손을 들어올리자 검은빛이 쏘아져 나갔다.
“크아악!!”
“악!!”
“커헉!!”
빛에 닿은 검투사들의 몸이 손쉽게 꿰뚫리고 말았다.
“뭐야!!”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비명들에 크레이서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이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글라…버드……?”
이마에 돋아난 뿔과 검은 날개를 제외하면 분명 영락없는 글라버드의 모습이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크레이서스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흠… 생각보다 훨씬 불편한 몸이로군. 거기다 기대 이하의 수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가 씁쓸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 잿빛 색깔의 눈동자가 크레이서스에게로 향했다.
“글라버드…….”
“인간이여. 바하트가 널 원한다.”
“뭐……?”
글라버드의 몸을 빼앗은 제라미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라카인이 있는 곳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저 인간이겠지만… 저건 나로서도 좀 힘들 것 같군.”
제라미드가 아쉬운 대로 혀를 할짝대며 크레이서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등장으로 친위대의 분위기도 사뭇 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제라미드를 처치하기 위해 집중공격을 퍼부었다.
휘이잉―!!!
차라랑!! 차랑!!
쏟아지는 공격들 속에서 제라미드가 두 손을 들어 베리어를 펼쳤다.
튕겨나가는 공격들도 있었지만 베리어에게 흠집을 내며 파고드는 공격도 있었다.
이를 보며 제라미드도 조금은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인간들도 성장한 것인가… 은근 귀찮은 존재들이다.”
마치 유흥을 나온 것 같은 얼굴을 하던 제라미드가 단숨에 크레이서스에게로 달려들었다.
슈우우웅!!
그런 제라미드의 목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검이 있었다.
휘릭.
몸을 살짝 젖혀 공격을 피한 제라미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하르스마이어의 부하가 아니냐?”
“네가 뭐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미안하지만 이 자식은 내 거다.”
그의 앞을 막아선 그라이반드가 가슴 펴고 당당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