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01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01화
#짙은 패색
“뭐야? 지금 뭐라고 했나?”
“저 자식은 내 거라고 했다!”
“이 하찮은 인간 따위가…! 감히 날 방해하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방해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하고 있다.”
제라미드의 역정에도 그라이반드가 지지 않고 답했다.
상황이 이리되니 제라미드가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하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저 건방진 인간을 죽일까도 싶었지만 하르스마이어의 사념이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제기랄… 알았다 알았다고……!”
제라미드는 하는 수 없이 그라이반드에게로 향하던 살기를 거두어들였다.
그는 곧 자신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크레이서스와 마주했다.
크레이서스는 두 눈을 크게 부라리고 있었다.
“너… 내 동생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을 하긴. 이미 죽은 놈의 몸을 빌린 것뿐이다.”
“뭐라고…!? 감히 내 동생을!!”
“어차피 죽은 놈인데 뭐 어떠냐? 썩어 문드러질 거 이 몸이 직접 거둬줬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딴 개소리를!!”
분노한 크레이서스가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의 검이 제라미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카아앙!!
그러나 크레이서스의 검을 막아낸 것은 제라미드가 아닌 그라이반드였다.
“어딜 가려는 거냐!?”
“비켜라. 너 따위를 상대할 때가 아니다.”
“나 따위!? 하! 나 따위이!?”
그라이반드가 씩씩거리며 검을 비스듬히 꺾었다.
그라이반드의 검이 크레이서스의 검을 타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단숨에 목까지 찌를 것 같았던 그라이반드의 검이 허공을 휘저었다.
“방해된다!”
몸을 한껏 낮춘 크레이서스의 검이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촤라락!
촤륵!!
크레이서스의 검이 간발의 차로 그라이반드의 옷깃을 베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격에 잠시 당황한 그라이반드가 곧 미소를 보였다.
“그래 이거다! 이런 것이 나의 즐거움이란 말이다아!! 좀 더 놀아보자!”
한껏 고조된 그라이반드가 더욱 거세게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공격들 틈에서 크레이서스는 침착하게 반격을 가했다.
그럴 때마다 그라이반드는, 수비보다 같이 공격을 하는 것을 택했다.
“정신 나간 놈이군.”
이 둘의 싸움을 보며 제라미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합이 거듭될수록 피투성이가 되고 있는 것은 그라이반드였다.
크레이서스도 데미지가 쌓이긴 했지만 무리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라이반드는 굽힘 없이 그에게 공격을 이어나갔다.
후우웅!!
그의 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빗발칠 때마다 주변을 격했다.
그 여파에 하운드와 친위대가 휩쓸리기 시작했다.
“네 동료들도 있다 이 멍청아!”
콰앙!!
보다 못한 크레이서스가 피하기보단 막아내는 쪽을 택했다.
그러자 걸려들었다는 듯 그라이반드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적들의 손에 죽나 내 손에 죽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뭐야!?”
“그보다 나의 즐거움에 더해 죽어갔으니 그거야말로 기쁜 일이 아니겠어?”
“생각보다 훨씬 미친놈이었구나 그라이반드.”
“이거 왜 이래? 난 검투사였을 때도 같은 검투사들을 이용했던 놈이다. 여기서라고 다를 것 같아? 하긴… 내 그런 모습을 네놈이 엄청나게 증오하긴 했지.”
“조금은 성장하고 달라졌을 줄 알았더니 그대로구나. 멍청한 놈!”
“크큭 그래 넌 나의 이런 모습들을 싫어했었지. 그래서 내 얼굴에 이딴 상처들도 남겨놓았고 말이야!”
그라이반드가 더욱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상하좌우 사방에서 어지러이 몰아치는 그의 공격들 속에서 크레이서스도 굳건히 버텨내고 있었다.
“좀 더 막아봐라! 좀 더 발악해봐!!”
그라이반드의 오러 블레이드가 강한 빛을 발했다.
크레이서스도 지지 않고 투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네놈은 상대할 가치조자 없는 놈이다 그라이반드.”
크레이서스가 크게 호흡을 골랐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그라이반드 너머의 제라미드에게로 향해 있었다.
당장 제라미드가 나설 것 같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그가 지켜보고만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만약 제라미드가 이 싸움에 개입하기 시작한다면 골치 아파지기 시작할 터였다.
그러니 차라리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단숨에 그라이반드를 제압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후웁……!”
크레이서스의 안광이 폭사하자 강대한 투기가 사방에 뻗어나갔다.
그의 검에서 흘러나온 투기가 곧 거대한 기둥을 만들었다.
“크하하 재밌겠구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
그라이반드가 광소를 지으며 최대한의 힘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내었다.
두 개의 강대한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히자 곧 엄청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콰라라랑――!!
“크학!”
승부는 의외로 간단하게 결정되었다.
그라이반드의 검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져 있었다.
반면 크레이서스의 투기는 선명한 모습으로 그라이반드의 몸을 꿰뚫었다.
“크학…! 제… 제기랄…….”
“너는 예전부터 기교와 잔기술에만 신경을 썼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야.”
피를 토해내는 그라이반드를 보며 크레이서스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라이반드의 두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붉게 충혈된 그의 두 눈이 크레이서스를 노려보았다.
“재수 없는 새끼… 이 순간까지도… !”
마지막까지 쓰러져가면서도 그라이반드는 입가에 고여 있던 핏물을 크레이서스에게 뱉어버렸다.
털썩.
숨이 멎은 그가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자신들의 대장이 죽었음에도 하운드는 그 누구도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신경조차 쓰지 않고 적들을 상대하는데 집중했다.
이 모습을 본 크레이서스도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징한 놈들…….”
짝짝짝!
난데없이 들린 박수 소리에 크레이서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글라버드의 모습을 한 제라미드가 서 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응? 괜찮다. 썩 지루하진 않은 싸움이었거든.”
“그랬나.”
스릉.
크레이서스가 검을 들어 제라미드를 향해 겨누었다.
그러자 제라미드가 피식 웃고 말았다.
파밧!
단숨에 거리를 좁힌 제라미드가 팔을 휘둘렀다.
크레이서스는 침착하게 검을 들어 방어해 내었다.
카아앙!!
그 순간.
크레이서스의 팔뚝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런 상황에 크레이서스의 두 눈도 크게 떠졌다.
“놀랍나?”
“…….”
“피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계속 피해 보거라.”
제라미드가 손을 뻗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크레이서스도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보고 피한다기 보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는 말이 옳았다.
피슛! 피슉!
그럼에도 그의 몸에선 핏물이 터져 나왔다.
“제기랄 대체 뭐…….”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크레이서스가 곧 놀란 눈을 하고 말았다.
제라미드의 몸에 돋아난 또 다른 두 팔.
이제 보니 이 두 개의 팔이 다른 공격들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눈치챘나?”
제라미드는 보란 듯이 네 개의 팔로 공격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크레이서스는 더욱 정신없는 공방전을 펼쳐야 했다.
막았다고 생각하면 다른 곳에서 공격이 이어졌고 또다시 다른 곳에서 팔이 튀어나왔다.
팔에 맺힌 날카로운 기운은 오러 블레이드처럼 강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촤라락!
붉은 빛깔의 기운이 크레이서스의 몸을 스쳤다.
“크읍……!”
강렬한 통증이 밀려와 크레이서스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는 검을 들어 제라미드의 몸에 꽂았다.
팍!
그러나 제라미드의 두 손이 크레이서스의 검을 붙잡았다.
이를 본 크레이서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 선택. 후회할 텐데.”
후우웅!
콰라랑―!
검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투기가 한꺼번에 제라미드를 덮쳤다.
제라미드도 순간적으로 크레이서스를 놓고 모든 손으로 공격을 막아내었다.
공격의 여파는 제라미드의 온몸에 고스란히 남았다.
여기저기 뜯어지고 찢겨나간 상처가 가득해 있었다.
“이야 이거 놀랍군…….”
제라미드가 두 눈을 붉히며 크레이서스를 내려다보았다.
여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아닌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쉽게 죽진 못할 거다.”
제라미드가 팔을 다시 휘젓자 놀랍게도 그의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마치 흑마법사가 소환한 언데드의 몸이 치유되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설상가상이로군…….”
이를 본 크레이서스의 얼굴에도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운드를 비롯해 그라이반드까지 상대해낸 상태였다.
도중에 무리하게 투기를 끌어올리는 바람에 그의 몸 상태도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저런 괴물까지 마주한 것이다.
“제길… 형님 아무래도 이거 완전 개같은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크레이서스의 시선이 아라카인에게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라카인은 홀로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마수들을 묶어놓고 있는 그의 모습은 가히 한 세력을 이끌어가는 블레이드라 칭할 만했다.
더군다나 그 어떤 마수도 아라카인에게 이렇다 할 치명상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아라카인은 간간히 하르스마이어를 위협하고 있었다.
콰과강!!
아라카인이 힘껏 내지른 주먹이 대지를 찍어 눌렀다.
그 사이에 있던 마수의 머리가 그대로 바스라지고 말았다.
아라카인이 호흡을 고르며 몸을 일으켰다.
“봐… 봐라… 저자도 서서히 지치고 있는 거다……!”
“그래… 아무리 강한 괴물이라고 해도…! 저 투기라는 것이 무한대로 생성될 리는 없어!”
“더군다나 조금씩 상처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저길 보십시오!”
하르스마이어의 곁에 있던 수하들이 한마디씩 해대었다.
반면 하르스마이어는 조용히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이미 전장의 상황은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검투사들이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객기일 뿐이었다.
애초 숫자부터 시작해 무엇 하나 이길 방법이 없는 싸움이었다.
대책 없이 곧바로 이곳까지 쳐들어온 것만 해도 그랬다.
“애초… 당신은 블레이드의 자격이 없었는지도 모르지.”
세력을 이끌어가는 것보다 홀로 싸우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 사내였다.
모든 마수들을 무릎 꿇린 아라카인이 하르스마이어를 올려다보았다.
“뭐하냐? 이제 네가 직접 내려와라.”
“포기하십시오. 아라카인.”
“뭐야?”
“당신들은 이미 패배했습니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멈출 순 없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냐? 지금껏 억울하게 죽어간 놈들을 위해서라도 난 끝까지 싸워야겠다.”
아라카인이 분노에 물든 얼굴로 말했다.
이에 하르스마이어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래서 당신은 블레이드란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단 겁니다. 평소에는 가족이니 뭐니 해도… 결국 이런 상황에서 정작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까?”
“뭐야……!?”
“지금 당신의 무모한 싸움을 위해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들을 보십시오. 그런데도 아무런 생각이 안 든단 말입니까?”
“놈들은 검투사다. 남들의 즐거움을 위해 광대처럼 싸우다 죽는 것보다… 자신의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싸움 속에서 죽어가길 희망했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각한 그 순간이 곧 지금이다. 동료들의 복수…! 충분히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싸움이지.”
“어리석긴… 그러나 앞뒤 대책 없이… 이미 끝났습니다. 당신의 곁을 지키던 크레이서스도, 글라버드도 이미 죽은 몸이 된 것 같으니. 남은 것은 다 무너져가는 바티투스와 당신뿐입니다. 아무리 당신이 강한다 한들 우리 모두를 상대해내지 못할 테죠. 거기다 당신을 죽이기 위해 따로 준비해둔 선물까지 있으니…….”
하르스마이어의 말에 아라카인이 고개를 돌렸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크레이서스가 제라미드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크레이서스… 너마저…….”
이를 본 아라카인이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어찌나 세게 말아 쥐었는지 그의 주먹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포기하십시오. 당신은 패배한 겁니다. 아라카인.”
“아니. 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렇지 않나? 공민. 아니, 블레이드 칼라반.”
아라카인의 시선이 짙은 어둠 쪽으로 향했다.
언제 와 있었는지 그곳엔 칼라반이 자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