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06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06화
#돌아온 그들
“쯧… 제라미드도 당한 건가…….”
다른 곳을 살피던 바하트가 혀를 찼다.
그가 팔을 살며시 휘저으니 주변 일대에 있던 검투사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온 몸에 상처가 난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죽어라 괴물놈아!!”
“이제 저놈만 남았다!”
검투사들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듯 했다.
그들은 일시에 바하트를 향해 덤벼들었다.
“학습 능력이 없는 놈들이로군.”
쫘악!
바하트가 두 팔을 활짝 벌리자 주위를 에워쌌던 검투사들의 몸이 두부 썰리듯 잘려나갔다.
그 끔찍한 광경에 지켜보던 다른 이들이 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바하트가 두 팔을 다시 교차했다.
촤라락!!
스각! 스가각!!
또다시 열댓 명의 검투사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치잇…….”
순식간에 여러 명의 동료들을 잃었지만 상대가 어떤 수를 사용하는지 전혀 감조차 잡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바하트z 계속해서 주변의 인간들을 살육하고 있었다.
제라미드와는 차원이 다른 손속이었다.
그는 근처의 인간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죽이고 있었다.
대량 살상을 시작한 바하트의 몸이 삽시간에 인간들의 피로 물들었다.
“도… 도망가……!!”
“일단 뒤로 물러서라―! 저자를 어떻게 막을 지는…….”
“흐… 흐이익……!”
바하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바로 앞에서 보이는 공포에 질린 인간들의 모습.
그래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을 향한 인간들의 시선.
공포와 두려움, 절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눈동자.
굳어가는 움직임.
종국에는 자신의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몸만 부르르 떠는 한심한 인간들.
오랜만의 느낌에 바하트는 스스로 도취경에 이르렀다.
“축제의 시작이다.”
바하트가 또다시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거친 마력의 실들이 검투사들의 온 몸을 꿰뚫었다.
사방으로 뻗은 마력의 실은 갑옷조차 가볍게 뚫어버렸다.
몇몇 검투사들이 검으로 막아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쩌저정!!
검이 부서지고 그 사이를 지나간 마력의 실이 목을 관통했다.
마력의 실에 즉사한 인간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이 기괴한 광경이 더더욱 공포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하트는 웃고 있었다.
풍겨오는 비릿한 피내음에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어차피 모두 쓸모없는 놈들이었다. 이곳은 나 혼자서도 충분해.”
자신에게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던 레켄트도 요쿠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바하트는 이렇다 할 감흥이 없어 보였다.
“모두 주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로군. 이참에 내가 새로이 뽑아보는 것도…….”
그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젖어들 때 누군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바하트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에서 내게 맞서보겠다는 거냐?”
로제리아는 허공에 매달려 있는 인간들을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떨군 채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들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아 작게나마 살려 달라 외치고 있었다.
“어떤가 나의 작품들이.”
“뭐가 그렇게 웃기죠?”
“즐겁지 않나? 나는 인간들의 저런 모습이 너무도 즐겁다. 처음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자들도, 살기를 내비치던 자들도 저 모습이 되면 결국 똑같은 표정들을 하게 되지.”
바하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미약하게나마 숨이 붙어 있던 인간의 이마가 관통당했다.
마력의 실을 따라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로제리아가 더욱 얼굴을 굳혔다.
그녀의 두 눈엔 살기가 어리고 있었다.
“너무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라…….”
바하트가 양 손가락을 움직이자 허공에 매달려 있던 인간들의 몸이 조각조각 잘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있던 바하트와 로제리아 위로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욱 널 죽이고 싶어지지 않나.”
바하트가 움직이기도 전에 로제리아가 먼저 움직였다.
치지짓……!
그녀의 전신에서 전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본 바하트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슈가각!! 사가각!!
로제리아가 빠르게 검을 휘두르자 허공에 매달려 있던 인간들이 줄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검투사들이 그들을 보살피기 위해 몸을 내달렸다.
이미 죽어버린 자들도 있었지만 아직 살아 있는 이들도 분명 있었다.
“호오… 내 실을 끊어 버린 건가.”
마력이 담겨 있어 훨씬 단단한 실이었다.
이를 끊어내는 것조차 일반 검사들에게 쉽지 않은 일인데 눈앞의 여인은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지.”
그가 다시 팔을 까닥이자 여러 방향에서 마력의 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카가강!! 차라라랑!!
로제리아가 그 자리에서 몸을 회전했다.
쏟아지던 마력의 실이 검에 닿을 때마다 힘없이 잘려나가 버렸다.
바하트가 다시금 손을 움직였다.
이번엔 더욱 질기고 강한 마력의 실이 여러 뭉치로 로제리아를 공격해왔다.
촤라락!!
치지지직―!
그 자리에서 도약한 로제리아가 몸을 어지러이 움직이며 공격해 오는 실들을 모두 쳐내었다.
뿐만 아니라 검을 몸 안쪽으로 당긴 그녀가 한순간 눈을 빛냈다.
휘리링――!
쩌저정!!!
그녀가 수직으로 검을 들어 올리자 대지를 격한 번개가 순식간에 바하트를 덮쳤다.
탁.
땅에 착지한 로제리아가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바하트는 멀쩡한 모습으로 로제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회색빛의 실들이 자리해 있었다.
“이상한 검술을 쓰는군.”
로제리아의 검신이 계속해서 스파크를 터트렸다.
그녀가 마력을 흘려보내자 검신이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바하트가 다시 팔을 뻗었다.
그러자 여러 갈래로 갈라진 실들이 촘촘하게 공간을 메웠다.
로제리아는 검을 들어 강행돌파를 선택했다.
그녀가 무엇을 할지 눈치챈 바하트가 조소를 띠었다.
“어리석은 선택이로군.”
파밧!
로제리아가 힘차게 땅을 박찼다.
그녀의 검에서 뻗어 나온 번개가 맹렬히 질주했다.
촤좌좍――!!
쩌저정!!
회색실이 번개에 닿자 검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사리 끊어지진 않았다.
이에 로제리아도 여러 번 빠른 검격을 날렸다.
푸른빛이 번쩍일 때마다 회색실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대로 죽여주겠다.”
바하트가 손을 말아 쥐자 회색실이 거리를 좁혔다.
일시에 덮쳐온 회색실은 자그마한 감옥을 만들며 그대로 로제리아를 속박하려 했다.
치지짓!!
콰라라랑!!
그 순간 전신에 번개를 두른 로제리아가 회색실을 뚫고 나왔다.
그녀는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바하트의 앞에 다다랐다.
큼직하게 떠진 바하트의 두 눈이 로제리아를 응시했다.
촤라락!!
로제리아의 검이 바하트에게 닿으려는 찰나 바하트의 몸이 그대로 흩어졌다.
“위험했군…….”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당할 뻔했다.
그만큼 로제리아의 속도는 바하트마저 간담을 쓸어내리게 할 정도로 빨랐다.
콰지직!!
쩌저정―!!
로제리아의 주변으로 빗발치는 번개가 사방으로 떨어졌다.
“인간주제에……!”
바하트가 두 팔을 들어 선들을 잡았다.
그가 선을 직접 잡고 휘두르기 시작하니 선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휘리릭!!
휘잉――!!
빠른 속도로 회전한 선들이 로제리아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어느새 내리친 전격이 선들을 때렸다.
이 놀라운 광경에 바하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들을 여러 갈래로 펼쳐 다시금 공격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러 전격들이 실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건방지군…….”
하는 수 없이 그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로제리아도 그를 따라 움직였다.
콰가강!! 콰강!!
촤락!!
도저히 눈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공방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한 실타래가 로제리아를 압박하는가 하면 굉음과 함께 내리친 번개가 바하트를 덮치기도 했다.
천외천의 싸움에 주변의 모든 인간들이 그저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보다 저 싸움에 잘못 휘말리면 목숨 정도는 가볍게 날아갈 수 있다는 것쯤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끊어진 실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상처 입은 대지가 커다란 구멍들을 드러내었다.
그 속에서 환한 빛무리를 뿜어내는 두 사람이 멈췄을 땐.
계속해서 내리치던 번개도 깔끔히 모습을 감추었다.
“끄어… 인간이… 인간이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는 거냐……!”
바하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관통당한 부위에 손을 가져갔다.
검은 피가 손 사이를 헤집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로제리아는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 역시도 몸 여기저기 부상을 입었다.
이마와 뺨을 타고 흐른 붉은 핏물이 대지에 떨어졌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와 곳곳에 커다란 흠집이 난 갑옷의 모습은 이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우우웅―!!
푸른 아지랑이와 함께 로제리아의 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놀랍군… 그동안 인간이 이만큼이나 성장을 이루었는가…….”
바하트는 자신을 향해 내리쳐지는 검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가 팔을 비틀어 마력의 실을 소환하려 했으나 주위는 잠잠했다.
더 이상 느껴지는 마력이 없었다.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아쉽구나… 좀 더 즐겁게 놀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바하트는 마지막까지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그의 두 눈엔 아직 죽이지 못한 수많은 인간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본 마지막 광경이기도 했다.
로제리아의 검이 단숨에 바하트의 목을 잘라버렸다.
깔끔하게 잘린 바하트의 목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몸이 천천히 부식되어갔다.
“상대도 만만치 않았나보군요… 당신이 이만큼이나 부상을 입다니.”
“엄청나게 강했어요…….”
쥬피로스의 말에 로제리아가 담담히 답해주었다.
그녀는 이만 검을 거두어들였다.
이곳의 전쟁은 이미 끝이 나 있었다.
더 이상 살아 움직이는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칼라반 군단의 병사들이 부상당한 검투사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여전히 놀랍군.”
“간만에 당신과 싸웠을 때가 떠올랐다니까요. 정말… 오랜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네.”
어느새 폰투랑과 이아퀸드도 가까이 와있었다.
마지막으로 레켄트의 시신을 수습해준 요쿠스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뭐야? 내가 마지막으로 처리한 건가?”
“아니다. 그보다 상대는?”
“깔끔하게 죽여드렸지. 제법 세긴 했는데. 이 요쿠스님 앞에서는 뭐…….”
“나보다 오래 걸려놓곤. 말이 많군.”
“아 글쎄 나는 상황 다 따져가고 이것저것 보면서 맞춰주느라…….”
“핑계다.”
“뜨자 폰투랑! 한판 붙어!! 이제 서열 정리를 다시 할 때가 왔다!!”
요쿠스와 폰투랑이 투닥거리는 사이 쥬피로스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로제리아도 쥬피로스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뇨. 전쟁은 곧 끝날 거예요.”
“뭐… 그건 그렇겠죠.”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뭡니까?”
“어째서 칼라반은 카이사르를 소환하지 않는 거죠?”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카이사르를 소환하지 않았어.”
“뭐… 대장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그런가요… 아니면 우리 대장이 더 이상 카이사르를 소환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에이… 그럴 리가……”
“어쨌든… 간만에 우리 대장이 전쟁의 마무리를 하는 것을 보러 가보자고.”
“명령을 완벽히 수행해 냈으니 간만에 칭찬 좀 듣겠구만.”
“나는 다른 것보다 칼라반 대장의 실력 좀 보고 싶다. 그동안 엄청나게 달라졌던데?”
“맞아… 나도 처음 봤을 땐 진짜 깜짝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대장이 맞나 싶었다고.”
그들은 십 년 전 그때처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대장 칼라반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사이에 있는 로제리아도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완전히 돌아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