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08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08화
#늘어나는 세력
칼라반이 내지른 주먹에서 웅혼한 빛이 발했다.
주위로 뻗은 수많은 내기의 덩어리가 사방을 격했다.
그를 향해 날아오던 화염들조차 내기에 닿으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아…….”
꺼져가는 불꽃들 속에서 다키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콰과가가강――!!
빛을 발한 내기가 어지러이 회전하니 마침내 칼라반의 주변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크윽…….”
공격에 휘말린 다키드가 핏물을 토해내었다.
그의 전신을 불태우던 화염도 어느새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공격이란 말이냐…….”
다키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혼신의 힘을 불어넣은 불꽃들이었다.
적어도 자신과 함께 저 인간을 데려갈 생각이었다.
허나 보기 좋게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다키드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허공에 무수히 많은 주먹질을 하던 칼라반의 모습을 말이다.
그의 주먹에서 용솟음 친 광활한 기운이 사방의 모든 것들을 없애버린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환한 빛줄기들은 마치 드래곤의 비늘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휘황찬란한 아름다움 속에 다키드의 몸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불씨까지 꺼져버리자 다키드는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끝났군.”
상승 무공의 여파는 대단했다.
칼라반이 서 있는 대지를 제외하고 사방에 커다란 흉터들로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소모되는 내공의 양도 엄청났다.
“후우…….”
칼라반이 처음으로 호흡을 골랐다.
어둠의 정령들도 어느새 어둠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그들의 소환을 유지할 내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게 상승 무공인가.”
터무니없는 무공의 위력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고 말았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도 할 말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아라카인이었다.
“저 괴물 같은 자식… 저런 비장의 기술을 숨겨놓고 있었나…….”
“그나저나 그냥 일반적인 검사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정령술사로서의 힘을 드러내시더니… 이제는 어지간한 무투가 저리가라 수준의 힘을 보여주시니… 대체 저분은…….”
“그래… 그냥 미친놈이다. 완전히 미친 자식이야.”
“그렇군요. 솔직히 말해 적으로 두기 싫은 인물입니다. 공민… 아니 칼라반님은…….”
“크큭. 그러냐? 나는 저 녀석과 시원하게 싸워보고 싶다 생각하던 참인데.”
“칼라반님의 힘도 힘이지만 당장 저분을 따르는 세력들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켜보니 곁에 있는 저자들도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실력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나 대단하더냐?”
“예… 특히나 맨손으로 싸운 저 사내랑 번개를 다루는 여검사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으니까요.”
“흐흐 그렇단 말이지…….”
아라카인은 부하에게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우두커니 서 있던 바티투스도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형님.”
“뭘 말이냐?”
“복수는 끝났다. 블레이드 하르스마이어의 완벽한 패배다.”
“후, 당연한 일. 다른 것보다 블레이드 두 명이 힘을 합쳤으니 놈도 별 수 없었겠지.”
“그래도 블레이드 하르스마이어… 적이지만 대단한 자였다. 불완전하긴 하지만 두 명의 블레이드를 상대하다니…….”
“네 눈엔 저게 불완전하다 보이나?”
“실언했군…….”
바티투스의 말에 아라카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칼라반의 군단을 살펴보았다.
“어떠냐 바티투스.”
“뭘 말인가?”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며 확실히 느꼈다. 나 혼자서는 너희들을 모두 살피지 못해. 사실 나는 내 자신도 제대로 못 가누는 놈이야. 그런데도 너희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지금껏 노력해왔다.”
“그런 형님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아까도 말했지만 마음 쓰지 마라.”
“아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다.”
“그럼?”
바티투스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라카인의 시선은 만인대장을 지나 로제리아 그리고 칼라반에게로 향했다.
“현재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었다. 우리 스스로 그 많은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
“그래서 블레이드 칼라반님이 도와주고 계시지 않은가?”
“훗. 그렇지. 이러나저러나 녀석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인데. 주저 말고 해라. 형님답지 않아.”
“그러냐.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칼라반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나?”
아라카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바티투스는 물론 다른 검투사들까지 놀란 얼굴을 했다.
설마하니 자존심 강한 아라카인이 저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탓이다.
“그게… 그게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다. 칼라반의 밑으로 들어가는 거다.”
“아니… 다른 것보다 우리는 형님이 걱정인데… 자존심 강한 형님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밑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다. 바티투스. 너는 칼라반과 붙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음…….”
“내가 만약 칼라반과 싸워 이긴다 해도… 아니 그럴 일은 애초에 없겠지.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칼라반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건…….”
“당장 이 상태가 아니라 우리 바그라드가 온전한 상태였어도 우린 녀석의 상대가 안 돼. 싸웠으면 전멸을 면치 못했겠지. 거기다 하르스마이어도,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아마 칼라반의 세력만 왔어도 충분히 하르스마이어와 싸워 이겼을 거다.”
“그런 말을…! 이건 우리 가족들의 희생이 있어ㅅ…….”
“그래 안다. 네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불가능하지 않아. 하르스마이어가 우리 때문에 병력을 많이 잃긴 했지만 설사 녀석이 최고의 힘을 보존했더라도 칼라반을 상대로 힘들었을 거다. 지금 저 녀석이 끌고 온 자들은 제국군 시절 이름을 날리던 제 13 군단. 거기다 놈에게는 이슈하르트의 수하들이었던 이클립스와 어나니머스까지 있다.”
“…….”
“그러니 나는 이만 블레이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아라카인의 담담한 말에 아무도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닌 그가 결정한 일에 토를 달 만한 검투사는 그 누구도 없었다.
“무엇보다 오늘 일로 블레이드 간의 균형도 무너졌다.”
“그렇군…….”
“다른 녀석들이 우리를 노리지 않는 다는 보장도 없어. 힘을 잃은 우리는 보기 좋은 먹잇감이 될 거다.”
“쳇… 같은 라그나로크이면서도 이딴 거나 걱정해야 한다니…….”
“하는 수 없지. 세상은 약육강식이니까. 나는 놈들에게 끝까지 저항할 자신이 있지만 그 일에 너희들까지 희생시킬 수는 없다.”
“그러니까 결론은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 칼라반님의 밑으로 들어가겠다는 말 아닌가?”
“그래. 그런 얘기다 바티투스.”
“미안하게 되었소, 형님.”
“뭐가 말이냐?”
“우리들이 좀 더 강했더라면… 형님께서 이런 모습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너희들은 충분히 강하다. 이 지독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것만 봐도 그것은 증명되었어. 그냥 세상에 더욱 강한 놈들이 많을 뿐이다. 그러니 자책하지 마라.”
아라카인의 말엔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의 감정이 전달되는 것 같아 검투사들도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한편 다키드와의 싸움을 마친 칼라반은 서서히 하르스마이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척.
어느새 그의 뒤로는 로제리아와 만인대장들이 따르고 있었다.
군단병들도 자신들의 대장을 위해 길을 만들어주었다.
저벅저벅.
칼라반이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그만큼 사위는 고요했다.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은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칼라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거두어가기 위해 오는 사신.
그들에게 칼라반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일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바로 아래에 있었다.
“하르스마이어님…….”
딱딱하게 굳어져가는 몸뚱이.
뜨거웠던 체온은 어느덧 미지근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하르스마이어는 두 눈을 감은 채로 누워 있었다.
수하의 무르팍을 벤 그의 얼굴은 평온해보였다.
칼라반이 자신의 앞에 놓아진 커다란 계단을 오를 동안 그 누구도 그의 걸음을 막아서지 못했다.
하르스마이어가 소환해낸 마수들조차 칼라반의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주인을 잃은 녀석들은 더 이상 칼라반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저벅. 저벅.
마침내 계단 끝에 오른 칼라반이 하르스마이어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죽은 것인가.”
“그, 그렇습니다…….”
“전투 중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칼라반의 앞에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이 절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적인 기세 앞에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
죽은 하르스마이어에게 무릎을 빌려준 사내만이 칼라반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하르스마이어님을… 하르스마이어님을 어쩌실 생각입니까?”
“이미 죽은 자다. 죽음의 강을 건넌 자에게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렇군요… 혹시라도 제 주군을 향한 분노가 남아계신다면, 죽은 주군의 시체 대신 살아 있는 제게 분노를 풀어주십시오.”
사내의 말에 칼라반이 시선을 옮겼다.
나름대로 각오가 선 사내의 눈에 칼라반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마음은 알겠으나 내겐 가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아마 저쪽도 마찬가지겠지.”
칼라반의 시선이 향한 곳엔 아라카인이 서 있었다.
그 또한 하르스마이어의 죽음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시체까지 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칼라반과 아라카인의 뜻이 잘 전달되었는지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대의 이름은 뭐지?”
“하르스마이어님의 곁을 지켜왔던 세이바스라고 합니다.”
“세이바스.”
“예.”
“하르스마이어의 장례를 잘 치러주도록 해라.”
“예……?”
칼라반의 말에 세이바스가 놀란 눈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많이 놀란 눈치였다.
“하르스마이어도 라그나로크의 블레이드다.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적장에 대한 예의는 갖추어 줘야겠지.”
칼라반의 말에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하르스마이어를 끝까지 모실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를 연거푸 전했다.
칼라반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하르스마이어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허무하긴 했지만 이것으로 되었다.
“편하게 가라.”
마지막 말을 남겨둔 칼라반이 이만 몸을 돌렸다.
그가 계단을 차례로 내려서는 동안 세이바스가 그를 불렀다.
“공민님!”
그의 외침에 칼라반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완전히 내려서기 전에 세이바스가 몇몇 수하들과 함께 칼라반의 앞에 엎드렸다.
“이게 뭐하는 거지?”
“부디 저희들을 거두어주십시오.”
“흠? 나는 너희들의 주인이었던 하르스마이어를 죽였다. 그런데 그게 무슨…….”
“하르스마이어님은 당신과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신 겁니다. 블레이드 간의 싸움으로 전사한 것이니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입니다.”
“…….”
“무엇보다 라그나로크는 더욱 강한 자를 섬기는 법이니까요.”
세이바스의 말에 칼라반이 인상을 찌푸릴 무렵 아라카인도 그의 앞에 섰다.
쿵!
아라카인도 칼라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런… 갑자기 아라카인님은 왜…….”
“우리들 또한 받아줬으면 한다!”
“……!”
“나 아라카인을 비롯한 휘하 검투사들은 오늘부터 블레이드 칼라반! 당신을 대장으로 섬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