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1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17화
#각성
한편 3차 각성 퀘스트 때문에 수련의 공간으로 들어온 칼라반은 눈앞의 광경에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눈을 뜬 그의 앞에는 과거의 자신이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자신에게 소환된 수많은 어둠의 정령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엔 안 나타나시는 겁니까!”
그는 애꿎은 허공을 향해 외쳤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금방이라도 아수라가 웃는 모습으로 나올 것 같았다.
“그때가 정말 마지막이었나…….”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때 그의 앞으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눈앞의 적들을 모두 섬멸하세요.]다른 설명은 없었다.
따로 나타나는 메시지도 없었다.
“간단해서 좋군.”
현재 몸의 상태는 최상이었다.
조금 전까지의 무겁고 답답하던 느낌.
계속해서 느껴지던 뜨거운 통증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칼라반의 발밑에서 어둠이 퍼져나갔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어둠 속에선 상대와 똑같은 어둠의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칼라반은 눈앞에 마주선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때 칠흑의 갑주를 입은 어둠의 정령이 자신의 앞을 막아섰다.
“카이사르인가…….”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검붉은 색의 창과 검을 들고 있는 녀석의 모습은 지켜보고만 있어도 위용이 대단했다.
카이사르는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장에서 매번 너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는데… 이렇게 마주하니 감회가 새롭구나.”
칼라반의 말에도 카이사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카이사르의 곁에 다른 정령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칼라반도 단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던 정령이었다.
“켈리움이었나……?”
켈리움은 황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덩치는 카이사르의 두 배쯤 되었는데 두 팔과 다리엔 커다란 사슬이 감겨 있었다.
“카이사르와 함께 최상급 정령에 있는 정령…….”
역시나 카이사르만큼이나 압도적인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녀석의 두 눈동자는 칼라반에게 머물러 있었다.
칼라반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곳에선 하나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로 내공의 고갈.
그 말은 즉 무한정으로 스킬을 난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마침 잘 되었어. 서둘러 스킬들에 익숙해지고 최대한 빨리 너희들을 처리하고 이곳에서 나간다.”
3차 각성 퀘스트의 보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마음이 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이곳에서의 시간이 바깥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현재는 전쟁 중이었다.
더군다나 전장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시점에서 어처구니없이 수련의 방으로 끌려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3차 각성 퀘스트라니…….”
3차 퀘스트가 발동된 이유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로제리아가 건네준 엘릭서 때문이었다.
“그것에 내공 증진의 효과라도 있었던 것인가? 어쨌거나 좋아해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 모르겠군…….”
더 이상 생각을 길게 가져갈 순 없었다.
그는 아공간을 열어 포르티나를 꺼내들었다.
다행이 포르티나는 이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제대로 가보자고…….”
칼라반의 곁에 있던 수많은 어둠의 정령들이 힘찬 괴성을 질렀다.
동시에 반대편에 있던 어둠의 정령들도 괴성을 질러대었다.
“그나저나 쉽지 않겠어… 저쪽엔 최상급 정령이 둘…….”
그때 칼라반의 곁에서 또 한 마리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난리났군……”
* * *
“주군의 상태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아직 그대로라는 말은?”
“정신이 돌아오진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다행이군.”
“다행이라니요?”
“숨은 붙어 있다는 말 아닌가!”
하데르가 피식 웃으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쥬피로스도 덩달아 웃음 짓고 말았다.
“그 말씀이 맞군요.”
“그나저나 아까부터 새어나오는 저 빛은 뭐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 같은데… 대장님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뭐… 그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고 생각해 보지.”
하데르가 두 눈을 빛내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오러 블레이드도 처음과 다르게 빛이 바래졌다.
그러나 그는 녹록지 않은 실력으로 병사들과 기사들을 빠르게 베어내었다.
질풍 같은 그의 검술에 병사들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에 더해 자르칸의 창이 기사들을 뚫어 버렸다.
그는 지치지 않는 야생마처럼 전장을 마구 질주하고 있었다.
“저 자는 위험하다……!”
“괴물 같은 자식…….”
비자르 후작과 테니움 후작이 동시에 말했다.
그들은 자르칸과 폰투랑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네가 어디 쪽을 맡겠나?”
“내가 폰투랑 만인대장을 맡겠다.”
“그럼 내가 저 귀신같은 자로군…….”
“무운을 빌겠다…….”
“그래… 살아서 보자고.”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비자르 후작은 곧바로 폰투랑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오랜만이로군 폰투랑.”
“비자르인가.”
“그대와 이렇게 검을 맞대게 될 줄은 몰랐군…….”
“크흐흐 그날 제국에서 열렸던 검투 대회 이후로 처음이겠지.”
“그렇군… 그것도 벌써 오래전 얘기야.”
비자르 후작이 검을 들어올렸다.
그의 검에선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면 폰투랑의 두 주먹에선 황금빛 물든 투기가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너 혼자 날 막아서려는 건가?”
“물론이다.”
“잊었나 비자르? 그날 내게 호되게 당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알고 있다. 그대의 실력은 정말 대단해… 시간이 엄청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덤비겠다는 건가?”
“할 수 없질 않나? 그것이 지휘관의 사명인 것을.”
“쯧… 그렇다면 와라. 목숨을 거는 승부다.”
폰투랑이 큼지막한 주먹을 내질렀다.
거센 바람과 함께 거친 투기가 비자르 후작을 덮쳤다.
콰앙!!!
그러나 비자르 후작 또한 쉽사리 당해주지 않았다.
그의 검이 투기를 막아내었다.
뿐만 아니라 비자르 후작은 폰투랑을 향해 반격까지 가했다.
폰투랑은 비자르 후작의 검을 살짝 피해내곤 곧바로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카아앙!!!
주먹과 검이 부딪혔음에도 비자르 후작이 뒤로 물러났다.
“크윽……!”
비자르 후작은 손목이 저릿해지는 통증에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괴물 같은 자식… 아직까지도 이런 힘이 남아 있는 거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분명 전쟁을 시작한지 한참이 지났다.
거기다 폰투랑은 한시도 쉬지 않고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 이런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은가?”
“그렇군… 조금은 지쳤을 줄 알았더니…….”
“크흐… 우리 칼라반 군단은 너희들이 거쳐 온 전장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 질이 다르단 말이다……!”
“다르긴 뭐가 다르단 말이냐! 우리 또한 목숨을 걸고 제국을 위해 싸워왔다!”
콰아앙!!!
폰투랑의 주먹이 거세게 비자르 후작의 복부에 꽂혔다.
묵직한 통증에 비자르 후작의 몸이 허공에 뜨고 말았다.
“커헉……!”
비자르 후작이 고통을 참아내며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폰투랑의 손이 그의 검을 쳐내고 말았다.
“다르지. 너희는 이기기 위한 싸움을 해왔지만 우리들은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해왔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말 같지도 않은 전장에 투입되었는 줄 아나?”
“너희들이 대단한 전쟁을 해온 것은 알지만…….”
“우리들은 죽음에 내몰리는 전쟁에 숱하게 투입되었다. 그때마다 우리들을 살아남게 해준 것이 바로 칼라반 대장님이고. 솔 기사단의 대부분은 죄를 짓고 수감되어 있던 자들이다. 제국은 우리들을 전쟁에서 죽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쓸모 있게 죽으라는 뜻에서 전쟁터로 내몰았다는 말이다.”
“뭐……?”
“그리고 그런 우리들을 말없이 거두어주신 분이 바로 칼라반 대장님이다. 솔 기사단이라는 멋진 이름과 함께…! 우리들을 새로 태어나게 해주신 분과 다름없다는 말이다!!”
콰아앙!!!!
매섭게 몰아친 폰투랑의 두 주먹이 비자르 후작의 전신에 꽂혔다.
비자르 후작이 들고 있던 검은 와장창 깨져 흩어졌다.
“크하악……!”
비자르 후작이 거친 비명을 토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폰투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목숨을 버리게 되더라도 이번만큼은 칼라반 대장님을 지킬 거다. 잘못은 한 번으로 충분해. 그동안은 칼라반 대장님의 뜻을 존중해주는 것이 최고라 여겼지만… 이번에도 모든 것을 짊어지고 죽음을 안으려 하신다면…….”
“엿 까라 그래. 멋있는 척은 그만하라지.”
어느새 그의 곁에 다가온 요쿠스가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그는 거친 말만큼이나 과격한 검술로 기사들의 몸을 난자했다.
“뭐 그딴 설교나 늘어놓고 있어? 너도 나이가 든 거냐?”
“시끄럽다 요쿠스,”
폰투랑은 이미 숨이 멎은 비자르 후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너의 주군을 원망해라 비자르.”
그는 허리를 굽혀 비자르 후작의 두 눈을 감겨주었다.
“비자르!!”
쓰러진 비자르 후작을 보며 테니움 후작이 크게 소리쳤다.
테니움 후작에게 비자르 후작은 오랫동안 함께 검을 익혀온 친구나 다름없는 자였다.
그런 비자르 후작의 죽음에 그는 분노하고 말았다.
“크아아아―!!!”
그는 더욱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검은 휘두르는 족족 자르칸의 창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커다란 벽.
테니움 후작에게 자르칸은 그런 존재였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즐기듯 테니움 후작을 죽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곤 더 검을 휘둘러보라는 듯 대놓고 도발을 가하기도 했다.
“크윽……!”
이를 꽉 깨문 테니움 후작이 검을 고쳐 잡았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나홀의 모든 마나를 끌어올렸다.
“얕보지 마라. 나 또한 제국의 기사이자… 카르마제 대기사장의 직속부관으로 지냈던 자이다!”
테니움 후작이 두 눈을 빛내며 자르칸에게 맹렬히 돌진했다.
자르칸도 처음으로 표정을 달리 했다.
“그거다.”
그가 홀로 미소를 지었다.
슈와아아―!!
자르칸의 창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넘실대었다.
그의 창이 한 차례 회전하자 가공할만한 기운이 밖으로 뻗어나갔다.
콰아아앙!!!
콰르릉!!!
커다란 굉음과 함께 테니움 후작이 바닥에 쓰러졌다.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상반신은 반쪽이 없었다.
“미친… 놈…….”
자르칸을 보며 그는 마지막으로 욕을 내뱉었다.
자르칸은 너덜해진 한쪽 팔을 내려다보았다.
“재밌는 승부였다.”
그는 한쪽 팔을 질끈 동여매었다.
그리곤 다시 한 쪽 손으로 창을 들어올렸다.
“그 몸으로 더 싸울 수 있겠냐?”
“문제없습니다 가르시아 대장.”
“어째서 피하지 않은 거냐? 너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죽기를 각오하고 내지른 일격입니다. 그렇다면 저 또한 그렇게 상대해줘야죠.”
“하여간… 너도 특이한 놈이다.”
가르시아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건 말건 자르칸은 다시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전투에 집중할 때 칼라반의 몸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빛무리가 일던 그의 몸이 껍질 벗겨지듯 갈라지기 시작했다.
뱀의 비늘처럼 벗겨지는 그의 몸에선 새하얀 속살이 돋아났다.
흉터 가득했던 곳도 아이의 속살처럼 부드러운 살이 가득해졌다.
후우웅―!!
허공으로 떠오른 칼라반의 몸은 남모르게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