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18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18화
#환골탈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환한 빛을 머금고 있던 칼라반의 몸이 서서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허공에 떠올랐던 몸도 살포시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물들이 시큼하고 역한 냄새를 풍겼다.
“음…….”
굳게 감겨 있던 칼라반의 눈이 떠졌다.
마치 장시간의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온몸이 가볍고 개운했다.
정신 또한 이때까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느낌이었다.
“뭐지…….”
정신을 차린 그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주르륵.
몸을 뒤덮고 있던 검은 물들이 바닥에 흘러내렸다.
엄청나게 역한 냄새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말았다.
젖은 옷엔 이미 그 역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보다 그는 수련의 방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3차 각성 퀘스트.
그것은 자기 자신을 쓰러트리면 클리어 되는 것이었다.
수련의 방에서 마주한 또 다른 칼라반은 강했다.
어둠의 정령들만 부릴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수련의 방에서 연습했던 무공들까지 사용할 줄 알았다.
승부를 쉽게 장담할 수 없는 막상막하의 싸움.
카이사르와 켈리움의 힘은 칼라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녀석들… 엄청나게 강했어…….”
단 한 번도 카이사르와 검을 마주한 적이 없었기에 그동안은 녀석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 알지 못했다.
카이사르뿐만 아니라 어둠의 정령들 모두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퀘스트를 통해 칼라반은 그것들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직접 피부로 느끼며 말이다.
그렇게 모든 정령들과 싸우고 과거의 자신과도 싸웠다.
칼라반은 어떻게 싸웠는지도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을 만큼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 녀석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카이사르와 켈리움이 함께 덤벼들면서 전투는 극도로 불리하게 흘러갔었다.
하지만 중간에 나타났던 한 녀석.
칼라반조차 처음 보는 어둠의 정령이 등장하면서 전황은 바뀌었다.
녀석은 자신의 몸보다도 큰 커다란 낫을 휘두르며 카이사르와 켈리움을 동시에 상대해 내었다.
녀석 덕분에 칼라반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만만치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끝내 극복해 내고 말았다.
“결국… 이겨내었다……!”
자기 자신을 이겨낸다는 것.
말로만 숱하게 들어보았지 이렇게 경험하는 것은 전혀 색다른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눈을 뜬 지금.
그의 단전에선 용솟음치던 내기가 다시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3차 각성 퀘스트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상급 무인에서 최상급 무인으로 승급하셨습니다!] [상급 어둠의 정령술사에서 최상급 어둠의 정령술사로 진급에 성공하셨습니다.] [능력치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무인 칼라반의 환골탈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3차 각성으로 인해 보유 스킬들이……]…….
여러 메시지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눈에 띄는 것들이 몇 개 있었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하나였다.
[최상급 어둠의 정령 카이사르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드디어…….”
칼라반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카르마제와 싸웠던 것이 무색하리만치 최상의 몸상태였다.
온 몸에 가득했던 상처들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이게 바로 환골탈태…….”
작금의 모습이 어떨지는 나중에 확인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칼라반은 쥬피로스가 만들어 놓은 석벽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내기를 발끝에 모아 경공술을 펼쳤을 뿐인데 몸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한편 카르마제의 군사들과 전투를 이어가던 칼라반의 세력은 한층 기세가 꺾여 있었다.
그들은 끝없이 이어진 전투로 인해 상당히 지쳐있었다.
한 팔을 못 쓰는 자르칸을 비롯해 많은 인물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칼라반이 있는 곳으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악을 쓰고 방어해 내고 있었다.
비자르 후작과 테니움 후작이 죽었음에도 카르마제 군의 사기는 여전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카르마제의 존재였다.
그가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한, 카르마제의 군사들은 계속해서 투지를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제기랄… 이젠 한계인데…….”
“처음부터 너무 무모한 계획이었나…….”
“애초에 우리가 무모하지 않은 싸움을 한 적이 있었나?”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거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나홀의 마나가 점차 고갈되고 팔다리는 부르르 떨리고 있건만 그들은 이런 식으로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분은 진짜 미쳤군…….”
“어… 같은 편인 우리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반나절도 아니고 벌써 하루가 넘게 싸우고 있건만…….”
“그러니까 라카이 왕국 최고의 검사라 일컬어지는 거겠지.”
그들은 아직까지도 선두에서 싸우고 있는 로제리아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쉼 없이 검을 휘두르며 기사들과 병사들의 접근을 막아내고 있었다.
오랜 전투 탓에 이전처럼 화려한 검술들을 펼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적들을 끊임없이 베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그녀에게만큼은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때면 로제리아가 먼저 대지를 박차고 적들에게 몸을 날렸다.
“무서울 정도로군…….”
지켜보던 카르마제마저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라반과는 다른 의미로 위험한 존재였다.
“저 여자는 내가 죽여야겠어…….”
이 대군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카르마제라면 현재 저들의 정신적 지주는 바로 로제리아였다.
로제리아가 지금처럼 굳건히 싸우고 있는 한 저들의 투지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로제리아를 쓰러트려 저들의 사기를 한풀 꺾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카르마제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이미 하루 가까이 휴식을 취했다. 반면 녀석들은 단 한 차례의 휴식도 없이 지금까지 싸우고 있어. 그런데 너는 내가 질 것 같으냐?”
카르마제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수하를 향해 물었다.
그의 기세가 두려웠던 수하는 살며시 카르마제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창을!!”
카르마제가 손을 뻗어 창신을 쥐었다.
그를 치료하던 신관들도 이만 멈추고 물러났다.
“아직 완전한 몸 상태는 아니십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아주십시오.”
“걱정마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 죽어가는 시체들 처리하는 데엔 말이야.”
파앙!!
대지를 박찬 카르마제가 단숨에 로제리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빠르게 창을 내질러 로제리아를 공격했다.
“……!”
무아지경에 이르러 검을 휘두르던 로제리아도 갑자기 느껴지는 진득한 살기에 고개를 돌렸다.
카아앙!!!
그녀는 자신의 목을 향해 뻗어오던 창날을 가까스로 막아내었다.
“호오… 역시 제법이로군.”
카르마제가 두 눈을 빛내며 창격을 이어갔다.
그의 빠른 창격이 로제리아의 사방을 압박했다.
카라라랑!!
카앙! 캉!!!
거친 쇠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로제리아의 몸에 상처들이 생겨났다.
그녀 또한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반면 카르마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몸 상태였다.
아직 칼라반에게 입은 내상이 완치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로제리아나 다른 누구보다 훨씬 좋은 몸 상태였다.
더군다나 그를 모시기 위해 새로운 기사들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지휘관들이었다.
“최악이로군…….”
“정말 끝이 없는 건가…….”
새로 온 지원군들을 보며 하데르와 폰투랑도 한마디씩 내뱉었다.
다른 이들도 새로 나타난 군세를 보며 굳은 얼굴들을 보였다.
이를 확인한 카르마제만이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너희들에게 승산은 없다.”
콰아앙!!
카르마제의 창에서 흘러나온 오러 블레이드가 로제리아의 허벅지를 베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면서도 카르마제의 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창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로제리아를 향해 빠르게 쇄도하고 있었다.
슈와아아――!!
그때 무언가를 느낀 로제리아가 홀로 미소를 지었다.
“아뇨.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파아앙!!!
로제리아의 전신이 다시 푸른빛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카르마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직까지 그런 힘이 남아 있었던 거냐!?”
“그가 돌아올 때를 대비해 남겨두었을 뿐이에요.”
콰아아앙!!!
쩌저정―!! 치지지직!!!
로제리아의 검이 수십 개의 직선을 쏘아내니 전격이 어지러이 쏟아졌다.
카르마제는 하는 수 없이 로제리아와의 거리를 벌리고 말았다.
그녀의 전격을 방어하기 위해 계속해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크윽……!”
그러나 전에 입은 내상 때문인지 뜨거운 고통이 느껴졌다.
로제리아는 그런 카르마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왕의 귀환이에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라반이 석벽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카… 칼라반이다……!!”
“칼라반이 다시…….”
“어… 어떻게…….”
“그보다 저 모습은 뭐야!? 어떻게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는 거지……!?”
기사들과 군사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그들은 석벽 위로 올라선 칼라반을 보며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려 주었다.”
칼라반은 주변의 수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피를 전신에 뒤집어쓴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하아… 이제 오셨네…….”
“기다렸습니다 주군.”
“근데 뭐야 저 멀쩡한 모습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들은 사뭇 달라진 칼라반의 모습에 의아함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칼라반은 그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지 않았다.
“질문은 나중이다.”
칼라반의 시선이 카르마제에게로 향했다.
카르마제 또한 칼라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질긴 놈이로군… 너는 불사신이라도 되는 거냐?”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운 또한 실력이다… 뭐 그런 말이냐.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네놈이 돌아왔다 한들 이 많은 대군들 사이에서 너희들은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거다.”
카르마제가 자신감을 드러내며 외쳤다.
그러나 칼라반은 달랐다.
“정말 너는 우리가 아무 계획도 없이 이곳으로 들어왔을 거라 생각했나?”
“뭐……?”
“이미 아군은 도착해 있었다. 그저 나의 신호를 기다렸을 뿐.”
칼라반이 하늘 위로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환한 빛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그 순간 여기저기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자… 잠시만… 저건 대체…….”
“산악… 민족……?”
방벽을 타고 넘어오는 이들은 모두 산악 민족들이었다.
그들은 칼라반 일행 때문에 경계가 소홀해진 틈을 타 이미 외벽을 점령해두고 있었다.
“세키라드!”
산악 민족들의 왕인 세오나의 명령에 은빛 늑대들의 우두머리 세키라드가 은빛 털을 흩날리며 몸을 날렸다.
은빛 늑대들은 사나운 맹수들처럼 제국군 병사들과 기사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었다.
이어 다른 부족들도 맹습을 시작했다.
“산악 민족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 거냐!?”
카르마제의 질문에 헐레벌떡 달려온 병사가 급하게 보고를 올렸다.
“그… 그게… 얼마 전 근처로 이동했던 대군이 아마 저들인 것 같습니다! 모두 포르노아 공작가 영지에서 온…….”
“뭐라고……!?”
카르마제가 놀라 소리칠 새도 없이 칼라반이 몸을 날렸다.
“체크메이트다 카르마제.”
“웃기지 마라! 겨우 저깟 미개한 놈들이 합류했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이제부터 우리가 겪었던 그 지옥을 보여주겠다.”
칼라반이 팔을 들어올리자 짙은 어둠이 물감 번지듯 퍼져나갔다.
다시금 어둠의 정령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상급 어둠의 정령 ― 칠흑의 군단장 카이사르를 소환합니다.]이어 마지막으로 칠흑의 갑주를 입은 기사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올라와 모습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