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21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21화
#시작되는 바람
테오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둠의 정령들을 봤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설마 칼라반 대기사장님이 다시 돌아오신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는 죽었다. 그것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일이야.”
“그럼 새로운 어둠의 정령술사가 나타난 것일까요……?”
“가능성이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 제 2의 칼라반이 또다시 나오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이번 일에 어둠의 정령술사가 나타났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브루게린의 말에 테오스도 동의했다.
그 또한 그 점이 신경 쓰였다.
“설마 새로운 어둠의 정령술사가 라그나로크라는 세력에 넘어간 것일까요?”
“혹시 칼라반에게 남모를 자식이 있었을지도…….”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칼라반 대기사장님이 살아계실 때 유일하게 관심을 드러내었던 분이 바로 데포르님 아니십니까? 다른 여성 분들은 거들떠도 안 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흠…….”
테오스도 순순히 브루게린의 말을 인정했다.
그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생각이었다.
나름대로 칼라반의 곁에 오래 붙어 있었기에 그가 얼마나 다른 여인들에게 관심이 없었는지는 테오스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알고 있는 칼라반이란 녀석은… 결코 데포르를 두고 다른 여인과 정을 통할 인물이 아니야.”
“그럼 새로운 어둠의 정령술사가 등장했거나 혹은 칼라반 대기사장님이 정말…….”
“전자든 후자든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로군… 어둠의 정령들은 위험한 존재들이다. 그런 어둠의 정령들을 부리는 자가 또다시 세상에 나타났다는 것은…….”
“예… 솔직히 칼라반님은 어둠의 정령들을 부릴 수 있으면서도 곧은 길을 가셨…….”
브루게린은 황급히 말을 멈추었다.
더 이상 말하는 것은 테오스에게도 불편한 사실들일 터였다.
그러나 테오스는 이미 브루게린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래 맞다. 그대의 말이 맞아. 솔직한 마음으로 우리 제국은 그날 뛰어난 인물을 잃었던 거다. 그 당시의 칼라반처럼 제국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이가 작금에 몇이나 있을 것 같나?”
“…….”
브루게린은 감히 답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의 내 선택이 과연 잘한 것인가 생각한다네…….”
“테오스님…….”
“그 당시에는 아크로이어 황제의 꼬임에 넘어갔지만… 칼라반 녀석은 결코 제국에 반(叛)할 만한 인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도 결국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크로이어 황제의 뜻에 못 이기는 척 따랐던 거겠지…….”
“당시의 일을 후회하십니까?”
“못났던 나를 반성하는 거다.”
“아닙니다 테오스님. 칼라반 대기사장님도 분명 대단한 분이셨지만 제게는 테오스님이 가장 훌륭한 주군이십니다. 다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습니다.”
“그리 위로해주니 정말 고맙군.”
테오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고통에 신음하며 다시 몸을 뉘였다.
“로페에게는 이 사실을 알렸나?”
“이나쿠스 왕국에서의 일은 보고 드렸습니다. 하지만 어둠의 정령에 관한 일은…….”
“잘했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이야. 공연히 녀석에게 알릴 필요는 없겠지…….”
“제가 따로 사람을 꾸려 조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게. 어둠의 정령과 라그나로크… 그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진 모르겠으나 로페를 잘 부탁한다 브루게린…….”
“염려마십시오. 주군께서도 병을 다스리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주십시오. 어서 병상에서 일어나 로페님의 훌륭한 모습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대의 말이 맞다. 이만 물러나주겠나? 쉬고 싶군.”
“알겠습니다.”
브루게린은 고개를 숙여보이곤 그대로 문을 나섰다.
그가 밖으로 나서니 고요한 적만만이 흘렀다.
테오스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칼라반… 죽어서도 편치 않은 것이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너는 우리를 괴롭히는구나…….”
씁쓸한 미소와 함께 테오스는 잠을 청했다.
* * *
“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나쿠스 왕국에서도 높은 권력을 자랑하는 포르노아 공작가가 한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의 곁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자리해 있었다.
레비오스는 눈앞에 있는 사내를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전에 봤던 모습보다 더…….’
분명 일전에 봤을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외형이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젊어진 모습에 절로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사내, 칼라반의 물음에 레비오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그저…….”
“잘 해주었다.”
“예……?”
“그대가 맡은 성들을 잘 사수해주었다 들었다. 훌륭히 해냈다더군.”
칼라반이 유운량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연스레 레비오스의 시선도 유운량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운량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레비오스는 그 뜻을 알아차렸다.
실제로 자신이 한 것은 많지 않았다.
모두 유운량이 낸 계책들이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들까지도 레비오스에게 공을 돌린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별 상관없는지 운량은 그저 미소만 보일 뿐 별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모두 운량님 덕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이제 이나쿠스 왕국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와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이제는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과거 제국의 영광을 누렸던 칼라반님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곳 이나쿠스 왕국을 기점으로 제국을 ‘전복’시킬… 생각이십니까……?”
레비오스가 일부러 전복이란 두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는 칼라반의 반응을 살피며 마른침을 삼켰다.
칼라반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포르노아 공작도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저 또한 궁금합니다. 칼라반님께선… 반란을 꾀하시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대들은 나와 함께 할 수 있겠나?”
칼라반의 물음에 포르노아 공작이 무거운 침음성을 삼켰다.
레비오스는 살며시 포르노아 공작의 눈치를 살폈다.
히리엘 공주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조용히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포르노아 공작이 고개를 돌려 레비오스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에게 가문의 모든 결정권을 넘겨주었다.
앞으로 포르노아 공작가의 운명이 레비오스의 어깨에 달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하고 싶으냐? 앞으로 포르노아 가문을 이끌어갈 사람은 너다. 네가 판단하도록 해라.”
“물어볼 것이 뭐 있겠습니까? 저는 칼라반님을 따를 겁니다.”
레비오스는 일말의 생각조차 않고 답했다.
그의 말에 포르노아 공작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는군요. 가문의 가주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희는 따를 수밖에요.”
“그런가.”
칼라반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제국을 뒤집으려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내 동료들을 죽이고 배신한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그간의 일은 전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칼라반님의 최종 목표는 역시…….”
“아크로이어 황제의 목이다.”
제국 내에서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이건만 의외로 포르노아 공작의 반응은 담담했다.
그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곳 이나쿠스 왕국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카르마제 왕이 당했다는 것을 알면…….”
“제국뿐만 아니라 여러 왕국의 시선도 이곳으로 향하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전의 승자는 그대들이 아닌가?”
“예……?”
“어차피 카르마제는 그간의 이기적인 행보 탓에 제국과 여러 왕국들의 눈밖에 난 지 오래였다. 그러니 오히려 그들은 카르마제의 죽음을 반기고 있을지 모르지. 뿐만 아니라 그대나 레비오스가 카르마제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해도, 여전히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크게 문제로 삼지 않을 거다.”
“그럼 칼라반님께선…….”
“난 이곳을 떠날 거다. 그러니 이나쿠스 왕국은 그대 가문에게 맡기겠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포르노아 공작도, 레비오스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히리엘 공주도 새삼스런 시선으로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저… 그런데 벨제인님은…….”
“카르마제를 묻어둔 곳에 있다.”
“아직도 그곳에 계시는 겁니까?”
“복잡한 마음이겠지. 당분간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거다.”
칼라반은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이나쿠스 왕국에서의 일은 끝이 났다.
카르마제를 향한 복수에 성공했고 이나쿠스 왕국도 좋은 이들에게 맡겼다.
사실 그동안 카르마제는 벨제인과 레기온을 통해 포르노아 공작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포르노아 공작가는 히알독 후작이나 다른 신흥 세력들에 의해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꾸준히 왕국민들을 위해 움직여왔다.
썩어가고 있는 이나쿠스 왕국 안에서 몇 안 되는 청렴한 귀족 가문들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포르노아 공작 또한 왕국민들 사이에서 인심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 손자인 레비오스도 삐딱함 없이 영지를 잘 운영해 왔다하니 믿고 맡겨도 될 터였다.
다음날 오랫동안 카르마제의 무덤을 지키던 벨제인이 뒤늦게 칼라반이 있는 곳으로 왔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나쿠스 왕국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빌레니아 왕국이 있다.”
“바빌레니아 왕국이라면 테오스 왕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그렇다.”
“그럼 다음 목표는 테오스 왕이로군요.”
“그래. 그대는 어떻게 하겠나?”
“무엇을요?”
“무엇을 택하든 강요하지 않겠다. 어차피 그대의 목적은 카르마제를 죽이는 것 아니었나? 그것을 이루었으니 이나쿠스 왕국에서 계속 살아가도…….”
“아니요. 저는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런가.”
벨제인의 답에 칼라반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칼라반은 이후에도 곧바로 바빌레니아 왕국으로 향하지 않고 잠시 동안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나쿠스 왕국의 내전은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러니만큼 주변국들도 이나쿠스 왕국과 제국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이 왕위에 오른 포르노아 레비오스는 곧바로 제국에 서신을 보냈다.
카르마제의 폭정과 제국에 반하려 한 행동들을 낱낱이 보고하며 자신들은 제국을 위해 움직일 것을 다시 한 번 맹세하였다.
제국 또한 아래 왕국들과 함께 전쟁에 나선 상태였기 때문에 이나쿠스 왕국의 일을 어느 정도 덮어주었다.
게다가 제국 중앙의 귀족들은 평소 카르마제를 좋지 않게 보고 있었다.
그런 카르마제가 죽고 훨씬 더 부리기 쉬울 법한 포르노아 레비오스가 이나쿠스의 왕이 되었으니 그들로서는 사실 반길 만한 일이었다.
제국이 먼저 축하 사절단을 보내니 다른 왕국에서도 새로운 왕의 즉위를 축하해주었다.
히리엘 공주의 본국인 코치나 왕국에선 국왕인 히츨라가 직접 이나쿠스 왕국을 방문했다.
레비오스는 직접 마중 나와 히츨라 국왕을 맞이해주었다.
그러나 히츨라 국왕은 히리엘 공주의 시선이 줄곧 다른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히리엘.”
“예. 아버님.”
“어째 너의 시선은 다른 곳에 향해 있는 것 같구나…….”
“그건…….”
“말해봐라. 설마 네 마음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히리엘 공주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레비오스가 아닌 칼라반이었다.
그녀는 곁에 있는 레비오스를 두고 계속해서 칼라반을 흠칫흠칫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