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28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28화
#체케로의 죽음
“…….”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순한 재미라고 느껴지는군요.”
격투장 안을 바라보던 운량이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어린아이들까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검투사들은 사람들의 목을 베어 한곳에 모아두었다.
차후 귀족들에게 확인을 받아 상금을 받아갈 목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한곳에 쌓이는 크고 작은 머리들을 보며 몇몇 사람들은 헛구역질을 해대었다.
보기 힘들어 시선을 외면하는 자들도 있었다.
“정말 단순한 재미일까요…….”
로제리아의 시선이 로페 왕에게로 향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흥분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명씩 목이 베일 때마다 소리치고 환호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일국의 왕이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하기엔 꽤나 거리감이 있었다.
그의 곁에 있는 귀족들마저 불편한 기색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페 왕은 그들의 반응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체케로의 목은 치지 않는 거지? 많은 상금이 걸려 있으니 나는 가장 먼저 죽일 줄 알았는데…….”
로페 왕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인지 몇몇 검투사들이 체케로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체케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처럼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무기를 들어 반격을 가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꿋꿋이 서서 로페 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국의 왕이란 자가… 단순한 쾌락에 빠져 너무나도 작은 그릇을 지니고 있구나…….”
그는 고개를 들어 한탄하듯 말했다.
검투사들은 검을 들고 체케로를 둘러쌌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섣불리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뭐야!? 다들 뭣들하고 있어?”
“그게… 왠지 모르게 좀 께름칙해…….”
“무슨 말이야?”
“다가가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그들의 말에 젠티거스가 콧방귀를 끼며 앞으로 나섰다.
큼지막한 박도를 들어 어깨 위에 걸쳐놓았다.
“그딴 게 어디 있어?”
하지만 막상 그도 체케로와 마주서니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강한 기세나 진득한 살기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보면 그저 힘없어 보이는 체구 작은 노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체케로와 시선을 마주했을 때 젠티거스는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옥죄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무겁게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고 대지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슨…….”
생각지도 못한 일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체케로가 젠티거스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니 그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젠티거스의 등줄기에 식은땀마저 흘러내렸다.
‘무슨 눈빛이… 살면서 저런 눈빛은 처음 보는구만…….’
험악하게 생긴 것도 아니었고 다부진 근육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겨우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노인일 뿐이건만 젠티거스가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대들 중에는 나의 목을 취할 인재가 없구만.”
체케로가 고개를 돌렸다.
이미 그와 함께 왔던 식솔들은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목 잃은 몸뚱이들을 보며 그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검투사들은 감히 그의 사색을 방해할 수 없다는 듯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어서 저 노인네의 목을 치지 않고……!”
로페 왕이 눈썹을 역팔자로 휘며 짜증을 내었다.
그러나 검투사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몇몇 검투사들은 체케로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게트라 왕국의 체케로님이라면 저희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일생을 왕국민들을 위해 살아온 분이시라고… 또한 학식도 높아 오만한 마탑의 마법사들조차 체케로님 앞에서는 격식을 차린다 들었습니다.”
“호오… 젊은이는 나를 알고 있는가?”
“예… 저는 체케로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껏 잠자코 있던 검투사 한 명이 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체케로 가문 사람들을 처형하듯 죽인 다른 검투사들에 대한 원망이 섞여 있었다.
이를 알아차렸는지 체케로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을 원망하지 말게. 저들 역시도 각자의 사정 속에 움직였을 뿐일 걸세. 차라리 명령이라는 강제된 힘이 있었더라면 마음속의 고통이 덜했을 건만… 저 잔인한 왕은 그마저도 허락지 않았네. 오히려 달콤한 꿀을 들이밀어 본능에, 욕심에 움직이는 것처럼 꾸며놓았어. 참으로 잔인하고 지독한 왕이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허허 그대가 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가?”
“저희를… 원망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조금 전 나도 귀가 있어 들었네. 그대들은 우리가 이곳으로 잡혀오는지도 모르고 격투장에 자원했을 테지. 모든 것은 저 포악한 로페 왕이 꾸민 것이지… 그러니 나의 원한은 오직 로페 왕에게만 있을 뿐이네.”
체케로의 말에 검투사들이 고개를 떨구었다.
계속해서 수급을 거두던 젠티거스조차 이번엔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 해도 그 또한 인간이었다.
마음속에 감춰두고 외면해왔던 것을 체케로가 들춰내자 그도 무거워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그대가 나를 죽여주었으면 좋겠군.”
체케로가 자신을 향해 먼저 다가와준 검투사를 향해 말했다.
“예? 하지만…….”
“어차피 이 지옥은 내가 죽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걸세. 거기다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대들의 입장도 곧 난처해질 것이고. 나를 향한 로페 왕의 분노가 그대들에게까지 미칠지 모르네.”
“체케로님…….”
“모든 것은 나의 불찰이네. 내가 좀 더 로페 왕의 사람 됨됨이를 알아보았다면 이런 사달이 나진 않았을 테지…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네. 후회에 대한 대가는 때론 이처럼 참혹한 법이지.”
나긋하면서도 잔잔한 말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목소리는 격투장 모두에게 선명히 들렸다.
귀족들은 체케로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더는 저런 개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저자가 스스로를 죽여달라 했으니 서둘러 죽여라! 너에게 100골드를 주겠다.”
로페 왕의 말에 검투사가 하는 수 없이 검을 들어올렸다.
체케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목이 없는 노파의 시체가 있었다.
“미안하게 되었소. 한평생 나를 따라 게트라 왕국에만 있었기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데려왔건만. 그것이 당신을 지옥으로 인도하게 될 줄은 몰랐구려…….”
그는 노파의 손을 감싸 안았다.
그리곤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물결처럼 잔잔한 그의 눈동자가 검투사에게로 향했다.
“체케로님…….”
체케로는 죽은 식솔들을 모두 둘러보곤 로페 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불쌍한 로페 왕이여… 선왕의 빛에 그대의 빛이 가려진 것이 아니었구나… 그대는 그저 간악한 어둠이었다. 선왕의 빛에 가려진 것이 아닌 네놈이 숨어든 것이었구나…….”
“또 뭐라고 말하는 거냐 늙은이.”
“이곳에서 원통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대 또한 결코 평범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를 군주로 모신 바빌레니아 왕국 또한… 그대의 손에 무너지게 되겠지.”
체케로의 마지막 말에 왕국민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그들은 손에 있는 것들을 체케로를 향해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돌맹이와 잡기들에 맞으면서도 체케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바빌레니아 왕국의 국민들이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이곳은 곧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왕국의 부흥은 3대에 걸쳐 이뤄낼 수 있으나 망국으로 접어드는 길은 단 한 명의 왕으로 충분한 법이다.”
퍼벅!! 퍽!!
날아드는 돌멩이들에 체케로의 몸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검투사들이 방패를 들어 얼떨결에 그를 보호해주었다.
체케로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강렬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칼라반은 체케로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연인가 싶었지만 체케로의 시선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머물러 있었다.
‘말도 안 된다. 환골탈태를 겪으며 나는 완전히 기를 감출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눈엔 내가 그저 평범한 청년쯤으로 보일 텐데… 저 노인은 어떻게…….’
칼라반의 두 눈이 동그래지는 동안 체케로가 입을 열었다.
“어느 귀인이신지 모르겠으나… 이 늙은이의 두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봐오며 지식에 정통했다 자만한 적도 있었으니… 그러나 저 역시도 세월을 이겨낼 지혜 따윈 익혀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세월에 무르익어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원치 않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군요. 나의 가족들이 죽어갈 때 당신이 로페 왕에게 강한 살기를 드러내는 것을 우연치 않게 보았습니다. 아주 잠시였지만… 형용할 수 없는 강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내 오랜 벗의 아들이었던 이슈하르트 이후로 처음 접하는 전율이 제 몸에 오갔습니다. 그대에게 제 말이 들릴 리 없겠지만 늙은이의 주책으로 이렇게 한풀이를 하게 되는군요. 곁에 마법사들이 있다면 확성 마법이라도 부탁해보겠건만…….”
그는 씁쓸한 얼굴로 한 글자씩 한 글자씩 내뱉었다.
체케로는 저 멀리 있는 칼라반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을 리 없다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 칼라반은 천리지청술을 펼쳐 그의 목소리를 모두 듣고 있었다.
“부디 로페 왕을 용서치 말아주십시오. 바빌레니아 왕국의 국민들이 로페 왕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칼라반에게서 시선을 거둔 체케로가 하늘을 향해 말했다.
그가 모든 것이 준비되었음을 알리자 검투사 한 명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의 곁에 섰다.
“고통 없도록 단칼에 베겠습니다.”
“고맙네.”
체케로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초연했다.
검투사가 하늘 높이 검을 치켜들어 체케로의 목을 베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체케로의 목이 바닥을 뒹굴었다.
왕국민들의 반응도 저마다 다양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커다란 환호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로페 왕의 이름을 연신 외쳐대고 있었다.
로페 왕도 이들의 반응에 만족했는지 두 팔을 들어 화답했다.
“체케로는 게트라 왕국 내에서도 가장 덕망 높은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을 이런 격투장에서 상금까지 내걸어 처형해버렸으니…….”
“바빌레니아 왕국은 게트라 왕국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입니다.”
“흐음… 체케로는 전쟁을 원치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큰 전쟁을 치르지 않고 게트라 왕국이 바빌레니아 왕국의 속국을 자처했던 것도 그의 설득이 있었을 테지요… 그런 체케로를 저렇게 죽여버렸으니…….”
“게트라 왕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맞습니다. 테오스가 있는 바빌레니아 왕국은 저희들이 손을 쓰지 않아도 무너지겠군요…….”
“우스운 일이로군… 그 테오스에게서 저런 아들이 태어나다니…….”
“실제로 보니 더욱 놀라울 뿐입니다.”
“테오스를 찾아왔는데 뜻하지 않은 장면들을 보고 가는군…….”
칼라반은 두 눈을 감은 체케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은 그는 살아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신의 원한은 제가 풀어드리겠습니다.”
칼라반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더는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로페 왕의 폭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