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30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30화
#패전
“대패로군요.”
“게트라 왕국군이 그동안 많은 힘을 키워왔나 봅니다.”
“마법사들의 활약도 대단했어요. 고써클의 마법사들을 저렇게 많이 보유하다니. 마탑 덕분인가…….”
멀리서 전쟁을 지켜보던 유운량과 쥬피로스, 폰투랑이 한마디씩 했다.
그들은 아래의 참혹한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평야의 대부분이 바빌레니아 왕국군의 시체로 덮여 있었다.
반면 게트라 왕국군의 피해는 훨씬 적었다.
“60만 병력 대 20만 병력. 겉으로 보기엔 시작부터 우세에 있는 듯하지만… 전쟁은 숫자놀음이 아니지.”
제국군의 참패를 보며 칼라반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군의 기강이 해이해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명장 테오스가 이끌었던 군대답게 저들은 훌륭한 실력들을 갖추고 있었다.
허나 사공을 잘못 만난 배는 아무리 좋은 성능을 지니고 있어도 올바른 길을 갈 수 없다.
결국 이 전쟁은 그 차이였던 것이다.
“지휘관들의 경험이 너무 미숙하다.”
“아까 보니 새롭게 젊은 지휘관들을 많이 배치해두었더군요.”
“그래, 아마 그것이 패인이겠지. 저기 보아라. 실전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과 기사들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들의 살길을 마련하고 있다. 거기다 몇몇 지휘관들은 전장의 상황을 읽으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내고 있다. 일례로 마법사들을 향해 별동대를 꾸려간 지휘관들을 들 수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 지휘관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지휘관이 쉽게 감정을 드러내면 그것은 곧 병사들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다. 치명적인 실수로 남게 되는 거지…….”
칼라반의 말을 증명하듯 호기롭게 싸우던 군사들도 주춤하기 시작했다.
제국군이 자랑하는 중무장 보병대도 제 실력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날아드는 마법들에 병력들이 혼비백산 흩어졌다.
각 지휘관들이 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했지만 아비규환의 전장 속에서 그들의 말이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게트라 왕국군이 이대로 바빌레니아 왕국까지 밀어닥치는 것은 아닐지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테오스의 군대를 크게 격파했으니… 게트라 왕국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테고 반대로 로페 왕의 군대는 곤두박질치고 있을 테니…….”
“흐음…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대로 두고 보실 생각이십니까?”
“이 난관을 극복하는 것은 로페 왕의 몫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럴 만한 재목일 때의 얘기지요.”
“그렇다. 안타깝게도 로페 왕은 그럴 만한 재목이 아니야.”
그들은 로페 왕의 진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때 더욱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로페 왕의 진영에선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콰앙!!!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잔뜩 분노한 로페 왕이 주먹을 내리쳤다.
가까이 있는 귀족들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세 배나 되는 병력 차이를 두고 있었으면서도 어이없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아군의 손실에 비해 게트라 왕국군은 이렇다 할 피해도 입지 않았다.
덕분에 하늘 높이 솟아 있던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제길… 비겁한 놈들. 그딴 속임수나 쓰다니…….”
“이런 대규모 전쟁에서 마법사들의 존재는 무시무시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마법사들부터 처리했어야 했는데… 측면의 기사들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쉽지… 마법사들의 위치는 놈들의 가장 뒤편에 자리해 있는데 무슨 수로 뚫고 들어가 놈들을 처리한단 말입니까!? 거기다 마법사들을 지키고 있는 적군 기사들의 숫자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요! 애초에 중진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었더라면 놈들의 시선이 제대로 쏠렸을 텐데…….”
“뭐야?! 지금 우리들의 탓을 하겠단 말인가!?”
“그럼 아닙니까!? 그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뭐한 겁니까!? 땅이나 파고 있었습니까!?”
“근데 이 건방진 자식이……!!”
“모두 그만!”
귀족들의 언쟁이 커지자 로페 왕이 이들을 막았다.
그의 얼굴엔 오만가지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로페 왕의 눈치를 살핀 젊은 귀족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 이 빌어먹을 게트라 왕국군놈들. 감히 로페 왕께서 친히 이곳까지 행차하셨는데 그 보답을 이 따위로…….”
“걱정 마십시오! 비록 이번 회전이 잘 풀리진 않았지만 아직 우리들에게는 적의 배나 되는 군사들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어쩌면 오늘 일은 운이 나빴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놈들의 계획이 우연찮게 들어맞았을 수도 있고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면 놈들을 쓸어버리고 오겠습니다!!!”
귀족들이 결의를 다지며 말했다.
로페 왕도 그들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로페 왕의 군대가 겨우 이런 수준의 전쟁을 보였다는 것은 지나치게 창피한 일이다. 그러니 설욕전에 들어간다. 이번엔 지난번과 다를 것이다.”
로페 왕이 눈빛을 빛내며 지도를 살폈다.
그의 기분이 풀린 듯하자 귀족들도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들은 곧바로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이번엔 배운 것들을 토대로 군사들을 배치시켰다.
몇몇 지휘관들이 이번 배치에 의문을 품었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새로운 회전이 시작되면서 게트라 왕국군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저게 뭐야……?”
“정석인 군사 배치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지휘관이 누군지는 몰라도… 전쟁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군…….”
“병사들의 사기가 많이 꺾였을 텐데… 저렇듯 한데 뭉친 진을 짠 거 보면… 자신감인 건가?”
“우리 중진을 파괴하면 된다는 생각이겠지.”
“어림없는 얘길…….”
위에서 전장을 지켜보던 테르사카 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또한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고작 테오스 한 명이 빠진 것뿐인데… 군대가 저리 바뀐단 말인가!?”
“그것이 군주의 역량입니다.”
“테오스가 키워낸 저 강군을 저렇게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니…….”
“우리는 저 오만한 로페 왕에게 참혹한 결말을 이끌어내 주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리하여 체케로의 영혼을 달래줄 것이다.”
테르사카 왕이 진격을 알렸다.
그의 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바빌레니아 왕국군도 움직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회전은 이번에도 게트라 왕국군에게 승리가 돌아가고 말았다.
바빌레니아 왕국군은 뼈아픈 손실을 입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라도링 후작과 몇몇 귀족들은 통탄을 금치 못했다.
“아아… 어찌 이런 일이…….”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로페 왕을 말려야 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겨우 두 번의 전쟁에서 잃은 병력의 숫자만 30만 명이 넘어요…….”
“참혹하기 그지없군…….”
입가에서 쓰디쓴 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접근을 허락조차 하지 않는 로페 왕 덕분에 그들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사병들을 이용해 어떻게든 로페 왕의 보조를 맞춰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아… 바빌레니아의 영광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말조심하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제와 말하지만… 로페 왕은 너무나도 역량이 부족하네…….”
“말은 안 해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러니 우리가 잘 보필해야지 않겠는가?”
“기회조자 주질 않는데 어떻게!! 애초에 본인이 듣기 싫은 말은 모두 귀를 막아버리시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쯧… 테오스님의 반만 닮았어도…….”
그들이 한데 모여 한탄만 하고 있는데 기사 한 명이 찾아왔다.
기사는 라도링 후작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로페 왕께서 찾으십니다.”
“으음…….”
무거운 신음성과 함께 라도링 후작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옮기며 로페 왕이 있는 막사로 향했다.
역시나 그곳의 분위기는 숨 막힐 듯 얼어붙어 있었다.
잔뜩 분노한 로페 왕이 젊은 귀족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스운 것은 그 젊은 귀족들 중 어느 하나 미안한 기색을 품고 있는 이가 없었다.
겉으로는 반성하는 척, 미안한 척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눈빛엔 강한 불만을 담고 있었다.
이를 한눈에 파악한 라도링 후작이 속으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어서오게 라도링 후작.”
로페 왕이 처음으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그대도 알다시피… 두 번의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번 다…….”
“참패를 겪으셨지요.”
“끄응… 그렇지…….”
“허면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당연히 복수를 해야지! 이렇게 당하고 물러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놈들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주려고 한다.”
“마지막… 자비요……?”
라도링 후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젊은 왕이 또 무슨 소리를 해 자신을 놀라게 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역시나 라도링 후작을 충격에 빠트리고 말았다.
“놈들에게 지금이라도 항복을 하고 물러난다면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죄송합니다만 왕께선 조금 전… 복수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거다! 저들이 이제라도 자신들의 실책을 깨닫고 물러난다면 우리는 그 뒤를 치는 거다!”
로페 왕이 신나 말하자 젊은 귀족들이 맞장구들을 쳐주었다.
그런 모습에 라도링 후작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왕께선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계시는 듯하군요.”
“그게 무슨 말이지?”
“현재 우리 군사들은 최악의 상황입니다. 사기는 바닥을 기고 있으며 두 번의 전투로 수많은 사상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거기다 부상을 입은 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전쟁을 하려 한다면… 지휘관들과 병사들도 왕의 역량을 의심하려 들 것입니다.”
“뭐야!?!?”
라도링 후작의 직언에 로페 왕이 발끈했다.
그는 두 눈을 부라리며 라도링 후작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 나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나의 명령에 따라오지 못하는 군사들과 다른 녀석들이 문제지!! 내 말이 틀린가!? 어디 다시 한 번 말해봐라 라도링 후작!”
“얼마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왕께선 큰 착각을 하고 계십니다. 저들은 왕의 군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테오스님의 강군입니다. 헌데 로페 왕께선 선왕이신 테오스님의 강군을 그대로 물려받으시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적들에게 참패를 겪으셨습니다. 이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며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부디 순간의 자존심에 자신과 이 상황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힘겨우시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반성하며 성장하셔야 할 때입니다. 다행히 아직 30만 명의 군사들이 있으니 이들을 이용해 왕국의 수비에 매진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말은 지금 나보고 도망치라는 얘기가 아닌가!?”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을 깨닫고 한 발자국 물러나는 것은 결코 비겁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한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닥쳐라!! 그대를 괜히 부른 것 같구나! 물러가라!!”
“주군!!”
“한 마디만 더 하면 그대 목을 벨 것이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주군께서 이대로…….”
스르릉―!
참지 못한 로페 왕이 옆에 서 있던 기사의 검을 빼들었다.
그는 곧바로 서늘한 칼날을 라도링 후작의 목에 겨누었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스겅!
촤락―!!
로페 왕은 단칼에 라도링 후작의 목을 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