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3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34화
#재회
로페는 이마에서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느낌에 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따로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감히…!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그냥… 좀 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뿐이야.”
“뭐……!?”
“아무튼 좀 더 힘내주길 바랄게. 그래야 바빌레니아 왕국을 지켜낼 수 있지 않겠어?”
“이익……!”
말과 다르게 로페는 함부로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몸이 굳어서 말을 듣질 않았다.
“그렇게 두려워하지 마. 우리가 널 죽이려 했다면 벌써 죽이지 않았을까?”
“아버지를 노리는 건가?”
“굳이?”
“그럼 원하는 것이 뭐냐. 돈을 원하는 건가? 아니면…….”
“없어 그런 것. 단지 내 주군께 잘 보이기 위해서야.”
“주군?”
“내가 모시는 분 말이야.”
벨제인의 말에 로페가 눈을 빛냈다.
그 말은 여인의 배후에 누군가가 또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너희들의 목적이 무엇이지?”
“많은 것들을 알 필요 없고. 너는 그냥 지금처럼 지내주기만 하면 돼. 참 쉽지?”
“빌어먹게도 너무 쉬워서 너무 이해가 잘되는군.”
“어머? 왕이라는 사람이 그런 표현을 써도 돼?”
벨제인의 말에 로페가 본인이 말해놓고도 놀란 얼굴을 보였다.
충동적이긴 해도 본래 생각 속의 말들을 그대로 내뱉는 편은 아니었다.
자신을 감추는데 익숙했기에 이러한 실수들은 하지 않았다.
“후후 이제 시작일 거야. 아무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나서 즐거웠어 어린 왕.”
벨제인은 의미 모를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로페가 그녀를 붙잡기 위해 애타게 다른 누군가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주변을 정리해두기라도 한 것인지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제길!! 몸도 움직이질 않잖아!!”
굳어버린 몸은 그녀가 떠나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몸이 얼음 녹듯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이시여!!”
“로페님!!”
그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씻으러 간 그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으니 걱정돼서 들어와 본 것이다.
그들은 탕 위에 서 있는 로페를 보며 두 눈을 가렸다.
“로페님!!”
“아…….”
여인들이 황급히 다가가 그의 몸에 옷을 걸쳐주었다.
“어째서 이러고 계신 겁니까?”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
귀족들의 물음에도 로페는 입을 닫고 있었다.
빨개진 얼굴을 애써 감추며 몸을 추스렸다.
“제길… 혹시 장발의 금발 머리에… 아니… 아니다…….”
벨제인에 대해 물으려던 로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곳까지 들어오는데 변장을 안 했을 리 없었다.
그러니 자신의 눈앞에서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으리라.
“으하하하하하―!!”
돌연 로페가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그가 웃기 시작하니 귀족들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로페님……?”
“왕께서 많이 피곤하신 듯하다…….”
아직 전쟁의 여파가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한 귀족들이 서둘러 그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로페는 방에 들어와서도 많은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해도 이 답답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이나 그는 두문불출하며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귀족들은 그가 전쟁에서 대패하여 상심이 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첫 출전이었으니…….”
“그래도 상대가 나쁘질 않았는가. 테르카사 왕은 노련한 자인데… 이제 겨우 첫 출전한 로페 왕께서 상대하기엔 조금 버거운 감이 없지 않지…….”
“그래… 테오스님에게 묻혀서 그렇지. 그 또한 훌륭한 왕으로 칭송받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오스님께서 일찌감치 우리 쪽으로 끌어들였던 것인데… 이제 게트라 왕국과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뭐… 지나간 일이니… 이제와 이렇게 말한들 별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지금으로선 로페님이 하루빨리 기운을 차리시길 바랄 뿐입니다.”
“근래 들어 더욱 예민해지셨다고 하던데…….”
귀족들이 말속엔 걱정과 우려가 가득했다.
하루는 로페 왕의 방에 들어갔던 시녀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온 적도 있었고 보고하러 들어갔던 기사 한 명이 죽임을 당한 적도 있었다.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십니다…….”
“맞아요… 지금의 고통을 잘 이겨내셔야 할 텐데…….”
그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페 왕은 그날 이후로도 끊임없이 망나니짓을 해대었다.
한 번씩 찾아갔던 테오스의 병실에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다.
때문에 테오스와 로페 왕 사이에 불화가 번졌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던 벨제인은 만족스런 미소를 보였다.
“아주 잘하고 있네 풋내기 왕.”
“그날. 로페 왕에게 찾아갔었나?”
“네 맞아요.”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지?”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들로 괴로워하는 것 같길래. 조금 도와줬을 뿐이에요.”
“그랬나.”
“그나저나 테오스는 만나보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만나러 갈 생각이다.”
“순간 울컥해서 테오스 왕을 죽이는 것은 아니겠죠?”
“글세…….”
“하긴… 지금의 당신이라면 병든 테오스 따위 문제도 안 되겠죠.”
“……….”
“그래도 지금 당장 죽이진 말아주세요. 힘겹게 살아 숨 쉬는 동안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아들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니까.”
칼라반은 말없이 눈앞에 놓인 술을 마셨다.
씁쓰름한 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곧 뜨거운 목넘김이 있었으나 술기운은 몸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기운을 다했다.
[스킬 만독지체가 발동되었습니다.]메시지와 함께 술기운이 중화되어버린 것이다.
만독지체는 칼라반의 의지로 발동시키는 스킬도 아니어서 술기운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
괜히 입맛을 다신 칼라반이 이만 몸을 일으켰다.
“이제 가시게요?”
“만나봐야겠군.”
“그럼 잠시 이목을 돌려놓겠습니다.”
“부탁한다.”
칼라반이 밖으로 나가고 운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쥬피로스가 몸을 일으켰다.
“도와드릴까요?”
“흐음… 감사한 마음이지만 저 혼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가요.”
“이런 정도는 제게 맡겨주셔도 됩니다.”
운량이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섰다.
쥬피로스와 다른 이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때 로제리아가 밖으로 나섰다.
“어디 가십니까?”
“여기는 바빌레니아 왕국 안이에요. 아무래도 혼자 두긴 좀 그래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전의 대장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대장은 이전과 다릅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제 몸을 건사하실 겁니다.”
“그래도…….”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제국에 대장님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자가 몇 명이나 될까 싶긴 해.”
“맞아…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렸어. 바뀐 건 분위기만이 아니라고.”
“흐흐 그러니 더 멋지지 않나? 나는 우리 대장을 따른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사람… 무서운…….”
만인대장들이 한데 모여 한마디씩 해대었다.
쥬피로스가 로제리아에게 다가갔다.
“게다가 적이지만… 오랜 벗과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방해는 받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럴까요…….”
로제리아는 아직 걱정되는 눈을 하면서도 이내 뜻을 굽혔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는 대신 잡아둔 숙소로 돌아가길 청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로제리아는 고집스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 순간 다른 누군가가 떠올랐지만 쥬피로스는 더 이상 생각하길 관두었다.
“그나저나 서두르지 않으면 사상자가 발생할지 모르겠네.”
“쩝… 귀찮은 일들을 떠맡았어…….”
“화끈하게 일 좀 벌리는 건데 조금 죽을 수도 있지…….”
“그래도 최대한 피해를 줄여달라고 하셨잖아.”
“움직이자… 서둘러… 귀찮지만… 움직여…….”
그들이 하나둘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먼저 자리를 나선 운량은 조용히 마을 어귀를 돌아다녔다.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함이었다.
잠시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닌 운량이 마침내 걸음을 멈춰 섰다.
“이곳이 좋겠군.”
운량은 곧바로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마을 이곳저곳에 가져온 물건들을 배치해 두었다.
하늘의 날씨를 보니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다.
습기 찬 공기가 운량의 코끝을 간질였다.
“이제 곧 비가 오겠군요. 그럼… 시작해 볼까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 앞에서 그가 발을 굴렀다.
쿠릉!!
거친 소리와 함께 거센 화마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운량은 손에 들고 있던 파초선을 슬쩍 들어올렸다.
휘릭―
후우우웅――!!
파초선의 강한 바람에 불길이 더욱 빠르게 번졌다.
그가 일으킨 불길에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기하고 있던 칼라반의 수하들이 그들을 불길로부터 먼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성에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불길을 잡기 위해 헐레벌떡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본 운량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경공을 펼치며 이동하던 칼라반은 치솟아 오르는 불길에 고개를 돌렸다.
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불길을 잡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마법사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운량 녀석… 너무 화끈하게 벌인 것 아닌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치솟는 불길에 칼라반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미리 수하들에게 부탁해두었으니 인명피해는 많지 않을 터였다.
불길로 인해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칼라반은 손쉽게 성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저들이 경계를 삼엄하게 한다 해도 충분히 뚫고 들어갈 자신이 있었지만 만에 하나를 위함이었다.
“테오스는 어디 있지.”
칼라반의 물음에 어나니머스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미리 알아두었던 테오스의 처소로 칼라반을 안내해주었다.
턱.
문 앞에 멈춰선 칼라반이 손을 들어올렸다.
“누군가?”
안에서 테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라반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테오스가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칼라반과 테오스가 시선을 마주했다.
“왔는가.”
칼라반을 마주한 테오스는 의외로 침착한 모습이었다.
조금 더 놀란 모습을 할 줄 알았건만 의외였다.
테오스는 다시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도 바깥의 불길이 훤히 보였다.
물감 번지듯 퍼지는 붉은 빛이 어두운 밤하늘을 덮으려드는 것 같았다.
“저 불길은 자네가 한 건가?”
“그다지 놀란 기색이 아니로군.”
“언젠가… 언젠가 그대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랬나.”
“그나저나… 자네가 이런 방법을 택할 줄은 몰랐는걸…….”
“…….”
“제국민들까지 죽이기로 작정한 건가?”
테오스가 칼라반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너희들의 목숨이면 족하다.”
“그런가… 그렇다면 안심이로군…….”
“두렵지 않은 거냐.”
“후후 그대를 배신했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다… 물론 자네가 정말 죽음으로부터 살아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자네는 정말 불사신이라도 되는 건가?”
테오스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소식으로 들은 것도 아니고 칼라반이 죽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기까지 했건만, 꿈에서나 보던 장면을 현실로 마주하자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정면으로 걸어들어올 줄은 몰랐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어떻게 지냈을 것 같은가.”
“지옥 속에서 지냈겠지… 아니… 어쩌면 그렇게 지내온 건 나였는지도 모르겠군…….”
“나를 죽이고 속 편히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있겠나. 꿈속에서까지 찾아와 자네가 나를 괴롭혔는데.”
칼라반을 바라보는 테오스의 눈빛은 복잡함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