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4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42화
#재회
“누구냐!!”
“뭐지……!?!?”
다가오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들의 앞에는 못 보던 사내가 자리해 있었다.
칼라반은 싸늘한 시선으로 제드록스의 수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대장격인 필렌글이 앞으로 나섰다.
“넌 누군데 끼어들려고 하는 거냐?”
“그러는 너희는 뭔데 감히 내가 초대한 손님을 죽이려 드는 것이냐?”
“손님…? 뭐야. 그럼 헤카르도와 선약이 있다는 게 바로 당신을 만나는 거였나?”
“그렇다. 내가 친절하게 수하까지 보내 저자를 이곳으로 불러냈건만… 도중에 이렇게 가로채는 것은 경우가 아니지 않나?”
칼라반의 말에 필렌글이 코웃음을 쳤다.
다른 수하들도 비릿한 조소를 흘리고 있었다.
“경우? 하! 지금 경우를 말한 거냐!?”
“우리가 누군지 모르나본데 이 일에 끼어든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곱게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버려. 이미 한 번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네놈은 빠져나갈 수 없을 테니까.”
필렌글을 비롯한 습격자들이 살벌한 경고장을 날렸다.
헤카르도는 말없이 칼라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가려놓은 바람에 누군지 알아볼 순 없었지만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어리게 들렸다.
“그대가 날 이곳으로 부른 자인가?”
“그렇다.”
“그럼 내게 그 많은 재화를 보낸 것도 그대겠군?”
“그것은 부탁한 대로 사용해주었나?”
“물론. 뭘 믿고 나한테 그런 많은 재화를 보냈는지 모르겠다만…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한 푼도 남김없이 왕국민들을 위해 사용해주었다. 그러니 이제와 후회한들 소용없을 거다.”
“다행이로군.”
“다행이다?”
칼라반의 답에 헤카르도가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좀 더 눈앞의 사내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지만, 당장 그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제드록스의 수하들이었다.
“좋아. 대화는 일단 나중으로 미뤄두자고.”
“좋은 생각이다.”
“나는 당장 저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은 놈들부터 처리해야겠다.”
헤카르도가 대검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섣불리 대검을 휘두르진 않았다.
대신 빠르게 시선을 돌려 주위에 인질들이 없을 만한 곳을 살폈다.
그때 칼라반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해라!! 수풀 사이에 죄 없는 사람들이 붙잡혀 있다.”
대답이 들려온 곳은 필렌글 쪽이었다.
“그래. 이곳 여기저기에 함정이 숨겨져 있다. 너희들이 잘못 검을 휘둘렀다간 숨겨둔 인간들만 죽어나갈 것이다.”
필렌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렇게 협박을 가했으니 저 사내도 헤카르도와 마찬가지로 움직임에 신중을 기할 터였다.
헤카르도는 이미 애꿎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함부로 검을 휘두르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그는 많아지는 생각에 섣부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말과 다르게 검을 들어 위협만 가할 뿐이었다.
제드록스의 수하들은 칼라반 또한 헤카르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기사란 것들은 모두 단순하다니까…….”
그는 들릴 듯 말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칼라반은 헤카르도와 달랐다.
그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음?”
뿐만 아니라 허리춤의 검을 망설임 없이 뽑아들었다.
이를 본 헤카르도가 오히려 황급히 그를 말렸다.
“이봐 못 들었어!? 여기 죄 없는 사람들이 붙잡혀 있다잖아! 수풀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그런가.”
그 순간 칼라반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스킬 수라월령보를 펼칩니다.]잔상을 그린 검날이 순식간에 적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 화려한 솜씨에 헤카르도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헤카르도로선 흉내 내기 어려운 검술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군…….”
감탄도 잠시, 아차 싶었던 헤카르도가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이 당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안도하는 헤카르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칼라반의 검이 대지를 훑고 지나갔다.
“크아악!!”
“크헉!!”
고통에 찬 비명이 허공에 울려 펴졌다.
그와 동시에 붉은 핏물이 하늘 높이 튀어 올랐다.
칼라반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기가 빗발칠 때마다 고통의 비명은 계속되었다.
마주섰던 제드록스의 수하들도 빠른 검기에 속수무책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뭐냐 저 녀석은?”
“아예 신경조차 쓰고 있질 않는 눈치야.”
“서슴없이 죽이고 있다. 이거 냄새가 나는데… 제국 쪽 인물보다는 이쪽인가?”
필렌글의 수하들이 물러서서 칼라반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는 처음과 같은 무심한 얼굴로 검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봐 멈추라고!!”
그때 헤카르도가 검을 들어 칼라반의 움직임을 막았다.
카앙!!!
거친 쇳소리와 함께 칼라반이 멈춰 섰다.
“라그나로크의 녀석들은 전부 다 이런 거냐!?”
잔뜩 흥분한 헤카르도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며 소리쳤다.
덕분에 필렌글의 수하들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라그나로크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라그나로크라… 라그나로크의 인물이었나? 그렇다면 더더욱 말이 통했겠는걸!”
필렌글이 수하들의 공격을 중단시켰다.
상대가 정말 라그나로크의 인물이라면 더 이상 그와 싸울 필요가 없었다.
그는 조금 수그러든 자세로 물어왔다.
“정말 라그나로크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 우리들은 라그나로크의 블레이드이신 제드록스님의 수하들이다.”
“그런가.”
“하아? 그으런가? 지금 반응이 그게 다야?”
“그럼 어떤 반응을 더 해줘야 하지?”
필렌글이 인상을 찌푸리자 칼라반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필렌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지금 라그나로크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감히 제드록스님의 계획을 방해하려 하고 있는 거다.”
“그렇군.”
“그렇군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야. 제드록스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너는 뼈도 못 추릴 거다. 그러니 비켜라. 그러면 특별히 네 목숨만은 살려줄 테니. 이번 일도 없던 것으로 하고 넘어가 주겠다.”
“거절한다. 너희는 물론이고 설사 제드록스가 이곳에 찾아와도 나는 자리를 비켜줄 마음이 없거든.”
“뭐야……?”
필렌글이 인상을 구겼다.
제드록스의 이름이라면 당연히 순순하게 물러날 줄 알았건만 상대가 이토록 고집스럽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직 우리 제드록스님이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군…….”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감히 우리 앞을 막아서겠단 말이냐? 네가 뭐 블레이드라도 되는 거냐?”
그들의 물음에 칼라반이 피식 웃었다.
그의 반응에 그때서야 필렌글은 칼라반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보니 라그나로크의 블레이드였군?”
“알아차리는 것이 늦군.”
“그래서 제드록스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였어.”
“제드록스의 뒤에 숨는 꼬라지들이라니.”
“하?”
칼라반의 말에 필렌글과 수하들이 발끈했다.
그렇지만 조금 전처럼 함부로 행동하진 않았다.
“그래도 블레이드라면 어쨌거나 우리와 함께 하는 자인데…….”
“지금이라도 손을 잡고 헤카르도를 죽이는 것이 어떻겠어?”
“맞아. 어차피 우리는 헤카르도의 목만 가져가면 돼. 죽이는 것쯤은…….”
“거절한다.”
이번에도 칼라반의 단호한 거절이 이어졌다.
그러자 참다못한 필렌글의 수하들도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일제히 몸을 움직였다.
“그럼 함께 죽어라!!”
“말이 통하는 놈인 줄 알았더니……!”
“블레이드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이 허공에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러왔다.
칼라반은 자신의 검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스킬 반월참을 시전합니다.]휘리리링―!!!
스각!!
반월을 그린 칼라반의 검이 단숨에 적들을 베어 넘겼다.
그의 일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몇몇 사람들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촤라락―!!!
솨아아―――!
한꺼번에 튀어 오른 붉은 피가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멈추라고 하질 않았나!?”
헤카르도가 다시 한 번 칼라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칼라반의 일격에 휩쓸린 사람들을 보며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멍청하긴.”
“뭐야!?”
“아직까지도 모르겠는 건가?”
“뭘?”
“이곳 근처에는 이렇다 할 작은 마을도 없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지?”
“게다가 나는 훨씬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쪽으로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것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어.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묶여서 움직였더라면 분명 내 눈에 띄었을 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붙잡혀 온 왕국민들은 없었다. 놈들은 자신들의 수하를 이용해 거짓말을 한 거다.”
“허어…….”
헤카르도는 반신반의 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자신들의 수하들을 이용해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필렌글과 다른 수하들의 얼굴을 보니, 이내 칼라반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쳇!”
함정의 정체를 칼라반이 정확히 꿰뚫어보자 그들도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순순히 수풀에 묶여 함정 노릇을 자처하던 수하들도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그것이 곧 아주 확실한 대답이 되어주었다.
“제정신이 아닌 놈들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거 완전 상상 그 이상이로군……!!”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어진 헤카르도가 대검을 한껏 들어올렸다.
그가 대검을 휘두르자 강렬한 기운이 뻗어나갔다.
휘리링――!!
콰라랑―!!!
십 수 명의 사람들이 헤카르도의 일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상황이 단번에 역전되어버리자 필렌글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우리가 제드록스님의 수하들임에도!! 우리와 원수를 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 거냐?”
“전혀.”
“후회할 짓을 하는 거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을 죽이지 않는 것이 더욱 후회될 것 같다만.”
스가강―!!
칼라반의 검이 빠르게 적들의 목을 베었다.
헤카르도의 대검이 도망가는 적들을 쫓았다.
이제 살아 숨 쉬는 자는 필렌글뿐이었다.
그는 도망치기보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쪽을 택했다.
“순순히 죽어줄까 보냐!!”
필렌글이 검을 들고 대지를 박찼다.
그는 헤카르도보다 칼라반 쪽을 택했다.
카앙!!!
거친 쇳소리와 함께 필렌글의 검이 허무하게 막혀버렸다.
칼라반은 검끝을 돌려 필렌글의 어깻죽지를 베어버렸다.
이어 순식간에 중단과 하단을 베어 넘겼다.
“크읍!”
귀신같은 검 솜씨에 필렌글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고통을 참아내며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
텁썩.
칼라반의 손이 검날을 붙잡았다.
손끝에 내기가 맺히자 검날이 우수수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미친…….”
피렌글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칼라반의 검이 그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버린 것이다.
“너희는 같은 라그나로크면서도 이렇게 싸우는가 보군. 세력다툼이라도 하고 있는 거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헤카르도가 물어왔다.
그의 대검에서도 붉은 선혈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침내 칼라반과 헤카르도가 마주섰다.
두 사람은 말없이 눈빛을 마주하고 있었다.
“닮았어.”
“무슨 말이지?”
“내가 아는 녀석과 똑 닮은 눈빛을 하고 있다.”
헤카르도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실없는 소리였다.
“그래서.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뭐냐? 설마 나더러 너희들의 세력 싸움에 힘을 실어달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그것도 좋겠군.”
“아서라. 나에게 너희는 모두 똑같은 놈들일 뿐이다.”
“아니. 그렇진 않을 거다.”
칼라반은 이만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것을 걷어버렸다.
그의 맨얼굴이 드러나자 헤카르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날 알아보겠나? 헤카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