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48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48화
#레기온의 최후
“당연한 걸 묻는군.”
“호오……?”
“너 따위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 정도란 말이냐? 그 블레이드가? 이것 참 자존심이 상하는구만 그래.”
그러나 말과 다르게 제드록스의 얼굴은 신난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그가 다시 검을 휘두르자 레기온의 몸에 상처가 생겼다.
“이래도?”
제드록스의 검이 또 한 번 움직이자 이번엔 반대편에 상처가 벌어졌다.
“이래도?”
제드록스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레기온이 최선을 다해 반응했지만 온전히 막아내진 못했다.
‘저자의 검이 빠른 건가? 아냐… 이건 나의 움직임이 둔해진 거다!’
이를 악물었다.
레기온은 조금 더 조심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있었다.
“쳇. 잠시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것을… 누굴 탓하겠나.”
핏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레기온은 제드록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뒤편에 있는 수하들까지 하면 어림잡아 삼십여 명.
자신이 모두 상대해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상태가 좋지 않은 벨제인과 로제리아가 나서게 둘 수도 없었다.
로제리아가 슬쩍 앞으로 나섰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힘을 합쳐야 할 때인 것 같군요.”
“제대로 움직일 수나 있겠습니까?”
“얕보지 말아요. 이래봬도 발키리들의 대장까지 지낸 몸이에요.”
“후후. 그렇습니까.”
하지만 레기온의 두 눈엔 똑똑히 보였다.
평소답지 않게 거칠어진 숨소리.
쉽사리 모여들지 않는 그녀의 마력들.
거기다 그녀의 안색은 어느새 백짓장처럼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로제리아가 무리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할 레기온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벨제인도 이미 많은 피를 흘렸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벨제인은 뜨거운 숨을 연신 토해내고 있었다.
검사도 아닌 마법사인 그녀가 오랜 시간을 버텨줄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 상태가 문제였다.
한계라면 이미 한계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흐음…….”
레기온이 천장 쪽을 올려다보았다.
“칼라반님을 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뜬금없는 레기온의 말에 벨제인과 로제리아가 토끼눈처럼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녀들의 시선에 레기온이 피식 웃어보였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대답을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칼라반님을 잘 부탁드린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래도 여기서 전부 살아나가긴 이미 글러버린 것 같으니…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생각입니다.”
그때서야 로제리아는 레기온이 천장을 바라본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당신 설마…….”
“살 사람은 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기다려요. 그게 최선의 선택이 아닐…….”
“안타깝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후르릉―!!
콰가가강――!!
레기온이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끝이 향한 곳은 제드록스 일행이 있는 곳이 아닌 천장이었다.
격렬한 소리와 함께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어 바스러진 돌무더기들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신…….”
“빨리 여길 벗어나십시오. 놈들은 제가 막아서고 있을 테니.”
“레기온…….”
“어서!”
그러나 쉽사리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벨제인은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관통당한 상처의 고통이 점차 잊혀졌다.
그녀가 무언가 말하려는 때 로제리아가 벨제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 로제리아…….”
“서둘러요. 저 사람의 희생이 헛되기 전에.”
“하지만…….”
“저도 다른 방법을 찾고 싶지만… 지금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없어요. 그러니 저 분의 선택을 존중해줄 수밖에요.”
“아아…….”
벨제인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움직였다.
그동안 카르마제의 곁에 있으면서 누군가 자신을 위해 움직여준 적이 없었다.
늘 카르마제를 위해 움직여봤을 뿐 다른 사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준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작금의 상황이 너무도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녀의 발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로제리아의 손은 억척스러웠다.
결국 벨제인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움직이고 말았다.
로제리아는 떠나가기 전 레기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디 칼라반님의 검이 되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안해요.”
“인사는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나은 죽음이니까요.”
“그럼…….”
마지막 대화를 나눈 로제리아가 서둘러 벨제인을 데리고 떠났다.
그녀들이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제드록스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의 수하들이 일제히 몸을 날리려 했다.
휘릭――!
슈콰아앙!!!
레기온의 검이 그들을 막았다.
이어 그는 한 번 더 검을 휘둘러 천장을 격했다.
그러자 이번엔 더욱 많은 돌무더기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덕분에 금방이라도 천장은 무너질 것 같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레기온의 돌발적인 행동에 제드록스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누군가 재빠르게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나 레기온의 검이 더욱 빨랐다.
검붉은 오러가 천장을 격했다.
거친 타격음과 함께 천장의 돌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놈…….”
“이러면 너희들도 별수 없겠지.”
“정신 나간 거냐? 그렇게 하면 너희들도…….”
“어차피 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 믿을 뿐.”
“하!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거냐?”
“당연한 소릴. 한때는 죽기 위해 죽을 자리를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쓴웃음을 짓는 레기온의 머릿속에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문득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얼굴이 눈에 선했지만 이제는 보러갈 수 없을 터였다.
“쿨럭!”
역류한 피가 레기온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파랗게 변한 팔뚝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하… 다 죽어가는 놈이… 제정신이 아니라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후후. 나는 내 손으로 가족들까지 죽인 놈이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아.”
“그러냐? 별난 놈이로군. 우리들도 그 정도까지는…….”
“케드록스 도적단…….”
레기온의 말에 제드록스 일행 모두가 얼굴을 굳혔다.
그들이 어느 도적단 출신인지는 밝힌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상대는 이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케드록스 도적단인 것은 어떻게 알고 있지?”
“이쪽의 정보력을 얕보면 곤란하지…….”
“호오… ‘이쪽’이라면 공민 블레이드 쪽을 말하는 건가?”
레기온이 대답 대신 웃음을 보였다.
제드록스도 마주 웃었다.
무엇이 저자를 저렇듯 자신 있는 웃음을 짓게 만들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케드록스 도적단. 한때는 유명한 집단이었지. 한 번 문 사냥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고. 무자비한 것으로 유명했고. 또 잔인하고 잔혹한 것으로 유명했지.”
“뭐 옛날 일이긴 하지.”
“세상에 공포로 군림한 적도 있었다지?”
“한때는 그랬었지.”
“그런데 이번엔 다를 거다.”
“호오…….”
“이번에 사냥감이 되는 것은 너희다.”
레기온의 싸늘한 말투가 제드록스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카앙!!!
용케도 방어해내는 레기온을 보며 제드록스도 눈을 빛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재밌는 놈이로군.”
“이번엔 너희들이 그 분의 사냥감이 되는 거다.”
“으하하하!!! 그 분이라면 공민을 말하는 거겠지? 얼마든지 와보라고 해라! 과연 누가 더 끈질기게 먹잇감을 물어뜯을지 겨뤄보자고.”
“기대되는군.”
레기온이 두 손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라 제드록스의 수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여러 화살들이 날아오고 오러가 빗발쳤다.
그들의 공격에 모두 레기온을 향해 집중되었다.
“마지막까지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후우웅――!!!
레기온의 전신에 아지랑이가 흘러나왔다.
검붉은 오러가 거친 굉음과 함께 허공으로 쏘아져나갔다.
콰가강!!!
콰릉―!! 콰르릉!!!
검붉은 오러가 천장을 격하고 동시에 여러 화살이 레기온의 몸을 꿰뚫었다.
이어 흘러들어온 형형색색의 오러가 레기온의 몸을 난자했다.
콰광!!!
콰앙!!!
마침내 천장의 돌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천장은 빠른 속도로 무너지며 통로를 메웠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가는 것은 무리였기에 제드록스가 수신호를 보냈다.
“모두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대장!!”
“입 닥쳐. 지금 누구보다 짜증나는 것은 나니까.”
“아… 알겠어…….”
거대한 돌들이 떨어져 내리는 와중에 제드록스의 시선이 레기온에게로 향했다.
온 몸이 피로 뒤덮여 붉은색이 아닌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그의 모습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레기온은 타오르는 눈빛으로 제드록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는 그를 보며 제드록스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웃어?”
무너져 내리는 돌무더기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레기온은 끝까지 제드록스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몇몇 사람들이 혀를 찼다.
“지독한 놈이네…….”
“그러게. 재미없어.”
“마지막까지 살려달라고 빌고 애원하는 게 원래 맛인데…….”
그들은 돌무더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천장이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으니 언제 그들이 있는 곳을 덮칠지 몰랐다.
“이쪽으로… 저기만 가면… 안전해요…….”
카드밀라가 앞장서서 그들을 안내했다.
모두가 떠나가고 있는데도 제드록스는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 갈 거야 대장?”
휘리링!!
말없이 휘두른 제드록스의 검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큼지막한 바위를 베었다.
두 조각으로 나뉜 바위가 제드록스와 수하를 피해 떨어졌다.
“갈 거다.”
“다른 놈들을 놓쳐서 아쉬운 거야? 하긴. 걔네들 다 예쁘긴 하더라. 잡아서 노예로 팔았더라면…….”
“아니 그 여자들은 이미 흥미 밖이다. 그보다…….”
제드록스의 시선은 여전히 레기온 쪽을 향해 있었다.
이미 그는 돌무더기에 깔려 찾을 수 없는 상태였다.
“무엇이 저놈을 저렇게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
“엥?”
“너희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냐?”
“뭘?”
“나를 위해 저렇게 죽을 수 있냐는 말이다.”
“에이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도망쳐야지.”
“너 말고 다른 녀석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당연하지! 게다가 언제는 대장이 그러라며? 대장이 죽더라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살아서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며.”
“크흐흐흐 그래. 내가 그랬지. 그랬었어.”
알 수 없는 웃음과 함께 제드록스도 발걸음을 떼었다.
곁에 있던 수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제드록스의 얼굴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나저나… 공민이란 놈은 어떤 놈일까?”
“그건 왜? 어차피 죽여 버릴 것 아냐?”
“그냥 흥미가 생겨서 말이다.”
“에에… 다른 건 모르겠고. 절대 가만둘 수 없는 놈이지. 그놈 때문에 우리들의 동료가 죽었으니까.”
곁에 있던 수하가 살기를 드러내었다.
몰살당한 독나방 조엔 자신의 애인이 있었던 것이다.
제드록스는 수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와중에 그의 귓가엔 레기온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우리가 사냥을 당한다고? 재밌군.”
“개소리지. 이미 우리 동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사냥당하는 것은 저쪽이야.”
“그래 그게 맞다. 원래 지킬게 많은 녀석들이 불리한 싸움을 많이 하지.”
“그렇지! 나도 빨리 제국놈들 사냥하러 갈래.”
“좋다. 그보다… 저 돌무더기 안에서 시체를 수습할 수 있겠냐?”
“뭐… 불가능할 것 같진 않은데?”
“뭐든 좋다. 녀석의 신체 일부만 건질 수 있다면.”
“근데 그건 왜?”
“놈에게 선물이나 보낼까 해서. 감히 우리들을 건드린 것에 대한…….”
“아아 알겠어. 나중에 애들 시킬게.”
계속해서 무너질 줄 알았던 동굴 천장은 서서히 잠잠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