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56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56화
#드러나는 어둠
“오랜만이다 리케르로돈. 아직도 이런 곳에 썩어 있는 거냐?”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로군.”
“지난번에 나한테 패한 것 때문에 그러냐?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어?”
“빌어먹을… 네놈만 아니었어도 나 또한 이곳에 박혀 있을 일은 없었다!”
리케르로돈이 분노를 표했다.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는지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떠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 아래로 들어와라.”
“개같은 소리 작작하시지. 개새끼 밑에는 들어가도 네 밑으로는 안 들어간다 아라카인!”
“그것 참 아쉽군.”
콰아앙!!!
잔뜩 흥분한 리케르로돈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아라카인의 앞에서 막혀버리고 말았다.
“너는 어떻게 나보다도 더 다혈질인 것 같냐?”
“뭐라는 거야!!”
콰앙!
파콰앙!!
두 주먹이 어지러이 오갔다.
엄청난 기운들을 머금은 만큼 주먹이 격돌할 때마다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갑자기 시작된 싸움에 수하들이 거리를 벌렸다.
“이거 어떻게 하지? 우리가 도와드려야 하나?”
“아서라… 괜히 끼어들었다간 뼈도 못 추린다…….”
“그나저나 이번엔 끝을 보시려나?”
“그래야지!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우리 대장도 블레이드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는 거다!”
조금 전 어쌔신들이 자신들을 습격해왔던 것은 까맣게 잊은 채 그들은 아라카인과 리케르로돈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곁으로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봐들. 너희 뭐 잊은 것 없어?”
“……!! 너희는…….”
“우리들도 신나게 한바탕 붙어봐야지!?”
“아라카인의…….”
채재쟁!!
차랑!
여기저기서 병장기가 부딪혔다.
그들의 싸움은 갑자기 찾아온 열풍처럼 불어 닥쳤다.
한바탕 벌어진 싸움터의 중앙에서 아라카인과 리케르로돈이 한데 어우러졌다.
“이봐 아라카인! 그동안 싸움질 좀 제대로 못 했나봐? 어째 몸이 무거워진 것 같다?”
“너야말로 무뎌진 것 아니냐 리케르로돈!”
“뭐야!? 나는 너한테 복수하려고 매일같이 검을 갈고 닦았다!!”
“그럼 넌 재능이 없는 거다! 날 이길 만한 재능이!”
파콰앙!!
아라카인의 주먹이 리케르로돈의 얼굴에 꽂혔다.
리케르로돈의 주먹도 마주 날아와 아라카인의 턱을 때렸다.
아라카인은 물러서지 않고 다시 주먹을 날렸다.
이에 질세라 리케르로돈도 주먹을 날렸다.
두 사람에게 방어 따위는 없었다.
상대방의 주먹을 따로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굳건히 서서 계속 주먹을 휘두를 뿐이었다.
이 피 터지는 싸움이 전장의 분위기를 더욱 들끓게 만들었다.
“으라아! 질 수 없지 않겠나!!”
“누가 할 소릴!!”
리케르로돈과 아라카인의 싸움을 따라 하듯 그들의 수하들도 패도적인 싸움을 보였다.
아마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기가 질렸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싸움의 형태는 거칠고 지독했다.
“그런 물렁한 주먹으로 날 죽일 수나 있겠냐 아라카인!!”
“누가 할 소릴!”
파앙!!
파라랑!!!
거친 투기의 부딪힘 속에서 아라카인과 리케르로돈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공격을 거듭할수록 데미지가 쌓여가고 있건만 두 사람은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다.
“이제 그만 쓰러져라!!”
리케르로돈의 두 주먹에 황금빛 아지랑이가 맺혔다.
이를 본 아라카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주먹에도 붉은 아지랑이가 맺혔다.
콰라라아앙!!!
혼신의 일격이 부딪히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속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아라카인과 리케르로돈이 두 다리를 대지에 딛고 버텨 섰다.
엄청난 기운이 금방이라도 압살해버릴 것 같았지만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견뎌내었다.
“크흐… 이래서 너랑 싸우는 것은 재밌다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너는 다른 놈들과 다르게 잔대가리를 굴리지 않아서 좋아. 어째서 그런 네가 제드록스 같은 족제비 밑에 있는지 모르겠군.”
“우리 형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제드록스는 누구보다 사내다운 사람이다.”
“하!? 지나가던 개가 웃겠구나.”
“그래도 이 자식이!!”
다시 한 번 주먹을 들어올리던 리케르로돈이 순간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자신의 두 무릎을 짚고 섰다.
“호오, 힘들면 그대로 쉬어도 좋다.”
“뭐!? 나 리케르로돈은 힘들다는 것을 모르는 남자다.”
“오글거리기는… 뭐 그래도 싫지 않구나. 아니. 오히려 아주 마음에 들어.”
“크흐흐… 늘 느끼는 거지만 아마 널 이렇게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건 동감이다.”
잠깐 호흡을 고른 리케르로돈이 다시 주먹을 들어올렸다.
이를 거절할 아라카인이 아니었다.
그 또한 다시금 주먹을 들어올렸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재밌어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다.
“역시 널 직접 만나러 온 것은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파콰앙!!!
아라카인의 주먹이 그대로 리케르로돈의 얼굴에 꽂혔다.
마침내 굳건히 버티던 리케르로돈이 무너지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크아아……!”
두 팔까지 완전히 뻗어버린 리케르로돈이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완전한 패배였다.
“나는 널 이길 수 없는 거냐.”
“네놈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지는 거다.”
“뭐야!?”
“어째서 검을 쓰지 않는 거냐? 네가 검을 쓴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만.”
“웃기는 소리 마라. 그런 얼굴로 그런 말을 해봤자 안 믿어.”
“하?”
아라카인의 표정을 살핀 리케르로돈이 곧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다.
“제기랄… 어쨌든 너는 맨손으로 싸우는데 나는 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무리 그대로 검사란 놈이…….”
“시끄러. 내 마음이다.”
“하여간 특이한 놈이라니까.”
“아무튼 죽이든 살리든 네 마음대로 해라. 이번에도 깨끗하게 패했으니까. 변명의 여지는 없다.”
리케르로돈이 두 눈을 감았다.
그때서야 아라카인은 주변을 살폈다.
리케르로돈이 쓰러진 순간부터 승세는 기울었다.
그의 수하들이 고군분투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나저나 앞서 보낸 떨거지들은 네가 보낸 놈들이냐?”
“그랬을 것 같나?”
“그래. 네가 보냈을 리 없지. 이런 건 네 방식이 아니거든. 그럼 대체 누굴까?”
“누굴 것 같냐?”
“글쎄… 한 명 정도는 생각나네.”
“누구?”
“슈라일 렌.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을 놈이지.”
“크흐흐 안 됐지만 이번엔 틀렸다.”
“호오, 그럼 누구란 말이냐? 너는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군?”
“당연하지. 네놈에게 어쌔신들을 보낸 자의 밑에 내가 있으니까.”
이번엔 리케르로돈조차 많이 놀란 듯했다.
그는 감았던 두 눈을 부릅떴다.
“거짓말 하지 마라!! 너 정도의 남자가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말이 되는 얘기냐!?”
“말이 안 될 건 또 뭐냐.”
“내가 아는 아라카인은 고고하고 또 외로운 늑대 같은 남자다. 그런 아라카인이…….”
“녀석은 나보다도 더 뛰어난 사내다. 충분히 나를 품고도 남을 그릇이야.”
“그게 누군데?”
“공민.”
“공민? 흐음…….”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리케르로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최근에 블레이드가 되었던 그 녀석을 말하는 거냐?”
“맞다.”
“에이… 아라카인 네가 그런 애송이 밑으로 들어갔다고?”
“놈은 애송이가 아니야.”
“그럼?”
“녀석은 맹수다.”
“크하하하―!!! 천하의 아라카인이 그렇게까지 인정한다고? 대체 어떤 놈인데?”
“너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뭘?”
“칼라반.”
“어? 칼라반……?”
이번엔 다른 반응이었다.
공민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머릿속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볼 필요조차 없었다.
리케르로돈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제국의 전 대기사장이었던 칼라반 말이냐!?”
“그래. 그 칼라반 말이다.”
“하… 하하!! 하하하하!!! 어쩐지 심상치 않다 했더니 공민 블레이드가 바로 칼라반이었다고!?”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냐?”
“내가 잠깐이지만 우리 도적단을 버리고 제국의 기사가 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은 칼라반 때문이니까! 정확히는 칼라반의 밑에 있는 폰투랑 만인대장한테 반해서였지만!”
“호오, 그랬었나?”
“어쨌거나 제드록스 형님도 큰일났구만… 이번 상대가 그 유명한 칼라반이라니…….”
“아마 이번엔 제드록스도 힘들 거다.”
“그래 보이네… 어나니머스까지 끌어들이다니… 역시 칼라반!!”
“잘못 알고 있군. 어나니머스도 칼라반을 따르고 있다.”
“어나니머스도? 역시 칼라반!!!!”
“넌 대체 누구 편이냐?”
즐거워하는 리케르로돈을 보며 아라카인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건 말건 리케르로돈이 두 눈을 반짝였다.
“네 밑으로는 못 들어가도. 그 사람 밑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음?”
“어떠냐? 칼라반은 강하냐? 아니지. 폰투랑은? 실제로 어떤 것 같냐?”
“두 사람 모두 강하다.”
“역시!! 역시 역시!!! 그럼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제안? 이봐. 지금 네 처지가 어떤 줄은 알고나 그런 얘기를 하는 거냐?”
“물론! 네놈은 날 끌어들이고 싶어 했잖아? 실제로 내가 그쪽에 붙으면 제드록스 형님도 많은 힘을 잃을 걸?”
“그래서 이제와 우리 쪽에 붙겠다는 거냐? 진짜 이해할 수 없는 놈이로군.”
“크흐흐 원래 우리 도적단 놈들이 그래. 나라고 다를 것도 없고. 어쨌든 이런 놈들만 득실거리기 때문에 제드록스 형님도 공포로써 우리를 다루려 하는 거지. 그게 제일 쉽잖아? 의리 없는 놈들을 가둬두기엔.”
잠시 말을 멈췄던 리케르로돈이 수하들을 멈춰 세웠다.
그러자 수하들도 리케르로돈의 명령에 따라 순순히 물러나주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칼라반이 일대일로 나와 싸워 이긴다면. 나는 군말 않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겠다.”
“호오… 정말이냐?”
“그래.”
리케르로돈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져 있었다.
목숨을 내줄지언정 자존심은 굽히지 않는 사내가 처음으로 이렇듯 말해왔다.
덕분에 아라카인조차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좋다. 칼라반을 직접 만나게 해주겠다.”
“그거 고맙군.”
“혹시나 말하는 거지만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 녀석 옆에는 다른 괴물도 있으니까.”
“허튼 생각은 무슨. 만약 만나봤는데 칼라반이라는 인물이 내 생각보다 훨씬 못하다면. 나는 주저 않고 돌아설 생각이다.”
“그건 네 맘대로 해라.”
아라카인의 말에 리케르로돈이 피식 웃었다.
그는 아직까지 부르르 떨리고 있는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화끈하게 붙긴 했지만 역시나 아라카인은 괴물 같은 사내였다.
자신과 다르게 그는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런 아라카인이 고개를 숙인 남자다… 이거지…….”
“뭐?”
“아냐. 아니다. 혼잣말을 했을 뿐이야. 그보다 칼라반은 어떻게 제드록스 형님을 상대하려는 거지?”
“이미 시작되었다.”
“음?”
“어나니머스의 어쌔신들이 과연 네게만 찾아왔을 것 같나?”
“그럼 다른 지부에도 갔다는 말이냐?”
“물론이다. 칼라반의 명령에 따라 어나니머스가 본격적으로 너희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것 참… 서늘한 얘기구만.”
리케르로돈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제드록스의 수많은 수하들이 어나니머스의 손에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일시에 시작된 어나니머스의 공격 때문에 제드록스의 수하들도 당황하고 말았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수하들은 무작정 제드록스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런 제드록스 일당을 보며 오만이 미소 짓고 있었다.
“제법 무대가 갖춰졌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