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69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69화
#동맹
“상황은?”
“아군이 조금 밀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클립스를 대적할 만한 자들이 있던가? 이 정도면 충분한 병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의외라는 생각입니다. 혹시 몰라 루시엔님이 이끄는 이클립스까지 합류를 부탁드렸는데 이런 결과라니요.”
운량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실 이곳의 전투가 시작되기 전 루시엔에게 먼저 연락을 취한 사람이 바로 운량이었다.
그리고 루시엔은 운량의 말을 기꺼이 따라주었다.
그녀 또한 새롭게 블레이드의 자리에 올라서면서 여러 가지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건만 흔쾌히 나서준 것이다.
걱정했던 아란다르조차 루시엔의 명령이라면 군말 없이 따라주었다.
그렇게 루시엔과 다른 이클립스까지 합류시키고 나서야 운량은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산악 민족들까지 합류시키기엔 이곳이 너무 먼데다, 제국의 동향까지 파악해야 했기에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루시엔님과 다른 이클립스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렇군.”
칼라반도 전세를 살폈다.
갑옷을 차려입은 이클립스와 다르게 자유분방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해적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제드록스의 수하들도 눈에 보였다.
“쯧. 저놈들은 알고 있을까? 자기들의 대장이라는 놈이 전쟁터에서 쏜살같이 내뺀걸…….”
“모르겠지. 그러니까 저렇게 미친 듯이 싸우고 있겠지.”
“저놈들 모두 억울해서 어쩌냐?”
“억울할 필요 뭐 있겠어? 모두 다 자기들의 선택에서 비롯된 건데.”
만인대장들이 그들을 바라보며 한 마디씩 해대었다.
좀 전에 격한 전투를 벌이고 왔건만 그들 모두 사기충천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군단병들도 날카로운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의 등장에 전장의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뭐야… 저자들은……?”
“나… 나는 봤어! 저자들!! 제드록스 대장이 있는 곳으로 갔던 이들이다!”
“그럼 공민 블레이드가 이끄는 자들이란 말인가?”
“맞아!! 맞아!! 저기 공민 블레이드가 보인다……!!”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말을 타고 있는 칼라반의 모습에 그들 모두 복잡한 얼굴을 보였다.
“저자가 이곳까지 왔다는 건 우리 대장이 당했다는 말인가?”
“아무리 봐도 패잔병들처럼 보이진 않는데…….”
“결국… 우리 대장이… 패했다는 건가?”
“아니 그럼 우리가 이곳에서 이렇게 싸울 필요가 있나?”
“그건 그래… 우리 대장까지 당한 마당에…….”
산적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몇 이들은 벌써부터 전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챈 리더급 인사들이 발 빠르게 소리쳤다.
“도망치지 마라!! 제드록스 대장이 졌을 것 같나!?”
“이대로 물러나면 내가 너희를 먼저 죽일 거다!!”
악에 받친 외침에도 불구하고 산적들은 전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하니 서서히 전선에도 공백이 생겨났다.
그 공백은 곧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일단은 내가 사는 게 먼저지!!”
“어차피 저놈들이 와서 우리들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없어졌잖아?”
“너무 불리한 싸움이라고! 이걸 어떻게 이겨? 지원군도 못 올 텐데.”
“게다가 애초에 해적놈들이랑 손을 잡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들은 불만을 토해내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계속된 싸움에 지쳐버린 이클립스도 굳이 그들을 뒤쫓지 않았다.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적들만 상대해내었다.
이클립스마저 그들을 뒤쫓지 않는 듯 보이자 산적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마이드로 샌드도 이제 결단을 내려야 했다.
희박한 확률을 믿고 계속해서 버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후자였다.
“설마 제드록스 대장이 당하진 않았겠지. 그럼 일단 살고 보자고.”
결단을 마친 마이드로 샌드가 수하들에게 물러나라는 명령을 전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언제나처럼 같았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을 것.”
그렇게 짧은 명령을 전달하고 마이드로 샌드는 몸을 돌리려 했다.
문득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가 있었다.
특이한 복장에 부채를 들고 있는 사내였다.
그가 갖고 있는 이질적인 분위기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로 한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마이드로 샌드를 필두로 제드록스의 수하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전선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이 공백을 어떻게든 메우려던 블랙맘바 해적단도 서서히 한계에 다다랐다.
그들이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이클립스와 칼라반 군단을 모두 막아낼 순 없었다.
병력의 수세에서도 밀렸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도 밀렸다.
특히나 이클립스와 다르게 칼라반의 군단병들은 숱한 전쟁 경험이 있었기에 전장의 전술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으음…….”
폰투스 알폰이 신음성을 삼켰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제드록스의 수하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의 수하들은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고자 했다.
이대로 두면 블랙맘바 해적단이 먼저 와해될 분위기였다.
“대선장. 우리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저 비겁한 새끼들은 이미 도망갔습니다.”
“제기랄! 이래서 내가 저딴 놈들이랑은 말도 안 섞으려 한다니까!”
“대선장이 저놈들에게 은혜를 입지만 않았어도 난 이곳의 땅은 밟지도 않았을 거다!”
그들은 폰투스 알폰의 곁에서 끊임없이 궁시렁거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폰투스 알폰을 두고 도망치거나 물러설 기미는 아니었다.
아마 폰투스 알폰이 계속해서 싸울 의지를 드러낸다면 그들은 그와 함께 끝까지 싸울 터였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폰투스 알폰도 수하들을 더는 사지로 내몰 수 없었다.
결국 그의 명령이 떨어지니 블랙맘바 해적단도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투도 차츰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상황은 대충 끝난 것 같군.”
아라카인이 폰투스 알폰을 바라보며 말했다.
폰투스 알폰은 말없이 수하들부터 살폈다.
이미 많은 동료들이 죽었다.
기껏 풀어놓은 몬스터들도 괴멸 상태였다.
“피해가 크군.”
“그래도 대단하구나 폰투스 알폰.”
“놀리려는 거면 집어치워라.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
“아니 진심으로 놀라서 하는 말이다. 그동안 네놈을 얕잡아 보았는데… 이번에 생각을 달리 했다. 너와 네 해적단은 자부심을 드러낼 만하다. 그럴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전투를 보여주었다.”
아라카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자신과 온전한 이클립스의 힘까지 막아낸 블랙맘바 해적단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쪽엔 새롭게 블레이드로 올라선 루시엔까지 함께 하고 있었다.
당연히 전세는 이쪽으로 기울 줄 알았건만 블랙맘바 해적단은 자신들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성공해내었다.
“그러면 뭐하나. 결국 패배해버리고 말았군.”
폰투스 알폰의 입에서 패배라는 단어가 나오자 다른 선장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는 아직 더 싸울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까짓 거 계속 싸워봅시다!! 블랙맘바 해적단이 얼마나 지독한 놈들인지 보여주자고요!!”
“크하하 거친 바다의 사나이들!! 좋다좋아!! 너희들의 마음 대선장에게 잘 전달되었을 거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호쾌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은 폰투스 알폰의 명령이 다시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검을 들고 달려들 기세였다.
이클립스뿐만 아니라 칼라반 군단 앞에서도 전혀 위축됨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폰투스 알폰은 수하들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한쪽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사내.
이전에 봤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이런 거물로 바뀔 줄이야…….”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블레이드들 중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었다.
초대 블레이드라 일컬어지는 이슈하르트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이클립스를 복속시키더니, 다른 블레이드인 하르스마이어와의 전쟁에서 승리해냈다.
뿐만 아니라 어느새 아라카인이라는 거물급 블레이드를 수하로 두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새로운 블레이드로 올라선 루시엔도 이클립스를 이끌고 그를 돕기 위해 나서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블레이드 중 가장 기피 대상으로 꼽히는 제드록스마저도 무너트리고 말았다.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로군…….”
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모두 눈앞의 사내가 만들어낸 일이었다.
더군다나 제국의 전설이라 칭송받는 군단까지 이끌고 눈앞에 나타나니 폰투스 알폰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마침내 칼라반이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칼라반의 등장에 모두가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조금 전까지 폰투스 알폰과 대화를 주고받던 아라카인도 칼라반을 향해 예를 차렸다.
이 장엄한 광경에 폰투스 알폰은 물론 블랙맘바 해적단까지도 알 수 없는 압박을 느꼈다.
“그대가 폰투스 알폰인가?”
“그렇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더 할 생각인가?”
칼라반의 물음에 폰투스 알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만한 태도로 비춰질 수 있었으나, 그를 위시하고 있는 병력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이클립스와 검투사들만으로도 벅찬데 수많은 군단병들까지 합류했다.
뿐만 아니라 칼라반의 뒤편에 자리한 만인대장들은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겨대고 있었다.
폰투스 알폰은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까지 괜찮은 기세들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미 자신의 수하들은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여기서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순 없었다.
“이쯤 했으면 제드록스에게 은혜는 갚은 셈이겠지. 우리는 돌아가겠다.”
“그런가.”
짧은 답과 함께 칼라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의아함을 느낀 폰투스 알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를 순순히 돌려보낼 셈인가? 너희들의 입장에서 이런 기회는 얼마 없을 텐데.”
“무슨 기회를 말하는 거지?”
“우리 블랙맘바 해적단을 이렇게 궁지로 몰 기회 말이다.”
“과연… 그럴 것 같나?”
슈와아아―!!!
칼라반의 전신에서 강한 내기가 폭사되어져 나왔다.
엄청난 기운에 주변 공기마저 무겁게 변하는 듯했다.
그때서야 폰투스 알폰은 자신의 앞에 누가 서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평범하게만 보였던 사내가 단숨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폰투스 알폰 자신조차 함부로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그동안 알려진 사실들은 모두 거짓이었나보군…….”
“…….”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말해라.”
“이렇게 움직이는 네 진정한 목적이 뭐냐?”
“하나 된 라그나로크다.”
칼라반의 말에 폰투스 알폰이 눈매를 좁혔다.
그 말은 즉 모든 블레이드를 자신의 아래에 두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오만한 말이로군…….”
“불가능할 것 같나?”
“크하하하!!!”
한바탕 웃어젖힌 폰투스 알폰이 다시금 돌아온 눈빛으로 칼라반을 응시했다.
그는 말없이 칼라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너는 내게도 할 말이 있겠구나.”
“그렇다. 그래서 그대에게 동맹을 제의할까 한다.”
“동맹?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이 아니라!? 이거 재밌구먼.”
칼라반에게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오자 폰투스 알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말해 현재 칼라반의 병력으로 자신들에게 압력을 가해온다고 해도 별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굴복이 아닌 동맹을 제안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