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27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7화
하나 같이 허풍스러운 설명들이었다.
“하긴… 어디까지나 게임 내에서의 설명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군… 백프로 믿을 말은 못되겠지만 그만큼 강한 무공이라는 뜻이겠지.”
칼라반은 마지막으로 경공에 주목했다.
경공이라 함은 무림인들의 또 다른 꽃이었다.
몸을 가볍게 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많은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무공이었다.
[수라월령보(修羅月靈步)아수라가 걸음을 내딛으면 달빛 아래 귀신의 잔상이 보일 것입니다.]
허무하게도 이번 스킬에 대한 설명도 역시 이것이 전부였다.
“이건 너무… 대충 해놓은 것 아닌가……?”
단 한 줄짜리의 설명에 칼라반도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직접 사용해보는 수밖에 없나…….”
칼라반은 뻐근해진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어느새 바깥은 동이 트고 있었다.
그가 상쾌한 기분으로 햇빛을 받으며 동굴 밖으로 나가자 그를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경고 메시지였다.
띠링!
[보스 몬스터 괴조 카약스가 나타났습니다.]안내 메시지를 본 칼라반은 갑자기 드리운 어둠에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캬아아악―!!”
커다란 새가 하늘을 날며 칼라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번엔 새인가…….”
칼라반의 시선이 옆에 있는 카피오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빛을 읽은 카피오가 삼지창을 들어올렸다.
―시작하겠습니다. 제게 남은 힘이 부족하여 부득이하게 칼라반님의 힘을 빌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라.”
[하급 어둠의 정령 카피오가 어둠잡기 스킬을 발동했습니다.]메시지가 떠오른 것과 함께 자연스레 칼라반의 내공이 소모되는 것을 느꼈다.
“좋은 상대가 될 수 있겠군.”
칼라반은 고개를 들어 괴조 카약스를 바라보았다.
카약스의 옆에는 14000이라는 숫자가 써져 있었다.
그리고 현재 하급 무인이 된 칼라반의 전투력은 17000을 나타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피오도 칼라반과 함께 성장해 이제는 11000이 아닌 13500의 숫자가 떠올라 있었다.
#군주의 길
“흐음… 예상외로 오래 걸리셨군요.”
“생각지도 못한 녀석이 튀어나와서 말이지.”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칼라반이 근처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았다.
괴조 카약스뿐만 아니라 뒤따라 튀어나온 몬스터들까지 상대하느라 그는 지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한꺼번에 많은 내공을 소진한 탓인지 몸에 기력이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부탁도 있습니다만… 만약 이번에도 부탁을 거절하시겠다면 옆에 놓아둔 봉투를 들고 가시면 됩니다.”
유운량의 말에 칼라반이 옆에 놓인 봉투를 주워들었다.
전에 들었던 봉투보다 조금 더 두꺼워져 있었다.
“전보다 조금 더 상세히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아마 그것을 가지고 가시더라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만…….”
“됐고, 다음 부탁이 뭡니까?”
칼라반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봉투를 다시 내려놓았다.
미련 없이 봉투를 내려놓는 칼라반의 모습에 유운량의 눈빛에도 이채가 어렸다.
“다음 부탁은… 근래에 농민들의 가축을 사냥해가는 괴조 카약스라는 녀석이…….”
“카약스라면 이미 죽었습니다.”
“예……?”
“카약스까지 처치하고 오는 길입니다.”
“아아…….”
예상치 못했던 말에 유운량도 이번엔 놀라고 말았다.
사이클롭에 이어 카약스까지 처치하고 온 줄은 몰랐던 탓이다.
“다른 부탁은 없습니까?”
칼라반은 가부좌를 틀어 운기조식을 발동시킨 상태로 유운량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떤 부탁이든 무조건 들어줄 생각이었다.
이쯤 되면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던 데다 유운량의 부탁을 들어줄 때마다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으니, 어쩌면 유운량은 부탁이라는 핑계로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쨌거나 그가 유운량의 부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루어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한 번쯤은 유운량의 개인적인 부탁이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
곧바로 다른 부탁을 말할 줄 알았던 유운량은 오히려 뜸을 들이며 침묵을 지켰다.
그가 바로 입을 열지 않으니 칼라반은 운기조식을 하며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부탁이 아닌… 마지막 시험을 드리겠습니다.”
“시험?”
“그렇습니다. 칼라반님께서 저를 만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제가 감히 시험해보려 하는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유운량은 혹시나 칼라반이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 싶어 조심히 물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번 시험은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었기에, 만일 칼라반이 기분 나쁜 기색을 내비친다 해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칼라반은 유운량의 우려와는 다르게 전혀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담담한 얼굴로 가부좌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나를 시험하겠다라… 그렇다면 얼마든지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다르시군요…….”
확실히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렇기에 유운량이 더욱 칼라반에게 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여겨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당신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제가 있는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그것이 제가 드리는 마지막 부탁이자 시험입니다.”
유운량의 말에 칼라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들으면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말이나 칼라반에게는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
유운량과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은 마법진의 존재가 말이다.
유운량의 말은 결국 이 마법진을 뚫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보라는 의미였다.
“뭐… 본래 아쉬운 사람이 찾아가야 하는 법이니까.”
“미리 말씀드리지만 결코 쉽진 않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칼라반은 살며시 발을 내딛었다.
그가 마법진이라면 칼라반의 출입을 막아낼 터였다.
그러나 칼라반의 앞에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상 현상이 감지되었습니다.]그와 함께 칼라반의 주변 풍경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공간이 뒤틀리듯 갖가지의 환상들이 떠올랐다.
“그아아……!”
“끼리릭―!!”
여기저기 부서진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대지에서 몸을 일으켰고 뼈밖에 남겨지지 않은 말들이 그들을 태웠다.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상황에 칼라반의 몸도 얼어붙어 버렸다.
몇 명뿐이었던 갑옷 병사들이 순식간에 세를 불리더니 이내 수천 명의 숫자가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수풀이 우거졌던 주변 풍경은 어느새 암반이 가득한 황야로 변해 있었다.
“아… 이곳은…….”
그때야 칼라반은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전생에 마지막 전투를 치른 곳.
이곳에서 수많은 적들을 죽이고 수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흉흉한 기세를 드러내며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갖가지의 병장기를 치켜들고 금방이라도 칼라반을 죽일 것처럼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때 병사들의 갑옷을 본 칼라반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흑염의 문장…….”
가슴팍 정중앙을 수놓은 문장.
그것은 바로 칼라반이 이끌었던 솔 기사단을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역시나 너희들이었나…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냐?”
칼라반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병사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스킬 심안이 발동됩니다.] [심안의 영향으로 이상 현상을 해석합니다.]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나서야 칼라반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그래… 이것은 모두 환상… 죽은 너희들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그렇다면 나의 기억을 들춰내기라도 한 건가…….”
칼라반은 다시 한 번 눈앞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솔 기사단원들 뿐만 아니라 죽은 적국의 병사들까지도 칼라반을 마주보고 있었다.
“환상임에도 모든 것들이 선명하구나…….”
어찌된 일인지 칼라반의 마음은 무거워졌고 눈가엔 알 수 없는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라도 동료들을 마주했다고 생각하니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이상 현상을 모두 해독했습니다.] [마법진에서 빠져나가시겠습니까?]시스템의 질문에 칼라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칼라반의 눈앞으로 환한 빛무리가 보였다.
그 빛무리는 마치 칼라반이 이곳을 밟고 지나가길 원하는 것처럼 발자국을 형성해 내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놀랍게도 죽은 병사들이 즐비한 곳, 정중앙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면…….”
칼라반은 거침없이 발자국을 따라 정면으로 걸어나갔다.
눈앞에 선 병사들이 금방이라도 칼라반을 죽일 것처럼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칼라반의 손에 죽은 적국의 병사들은 더욱 흉포한 기세로 그를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칼라반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휘이잉―!!
뛰쳐나온 병사 한 명이 칼라반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칼라반은 그 도를 피하지도 막지도 않은 채 담담히 앞으로 걸어나갈 뿐이었다.
슈아아아―
칼라반에게 닿은 도는 먼지가 되듯 사라져버렸다.
뿐만 아니라 칼라반에게 도를 휘두른 병사도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늦게 돌아와 미안하다… 너희들 마음의 짐은 내가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
눈앞의 것들이 환상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말은 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의 한 맺힌 속도 조금은 풀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칼라반을 막아서려던 솔 기사단원들이 양옆으로 갈라져 오히려 그에게 길을 만들어주었다.
칼라반은 그들이 만들어 준 길로 담담히 걸음을 옮겼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의 걸음은 주변의 모든 병사들을 둘러보기에 충분했다.
쿠웅!
쿠우웅!!
여기저기서 병장기들이 땅에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솔 기사단원들은 칼라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칼라반이 이곳을 모두 지나가는 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군주가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칼라반이 그 길의 끝에 달했을 때 솔 기사단원들과 다른 병사들은 모두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져버렸다.
그들의 존재가 지워졌음을 눈치챈 칼라반이 굳은 얼굴로 눈을 감았다.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로군…….”
다시 칼라반이 눈을 떴을 땐 놀랍게도 그의 앞에 흑발의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