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70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70화
#동맹 (2)
“어째서 동맹을 제안하는 거냐?”
“그대 같은 자를 굴복시키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내겐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그러니 동등한 입장으로서 동맹을 제안한다.”
“동등한 입장이라…….”
폰투스 알폰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눈앞의 칼라반을 살폈다.
무표정한 그에게서 읽어낼 수 있는 정보는 없어 보였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명목상으로만 동맹이고 사실은 네놈의 수하 노릇이나 하라는 것 아니냐?”
“아니. 말 그대로 동맹이다. 원한다면 우리도 그대 쪽에 도움을 주도록 하겠다.”
“하!? 우리에게 도움을!?!?”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음… 우리가 뭐 딱히 필요할 만한 것이 있겠냐마는… 그럼 우리는 뭘 해줘야 하지? 마찬가지로 너희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달려가 줘야 하나?”
폰투스 알폰이 미심쩍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칼라반이 고개를 저었다.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대들에게 연락을 취하겠지만 선택은 그대들의 몫이다. 원치 않는 상황이라면 오지 않아도 좋다.”
“그럼 무엇을 위한 동맹인가?”
“그대들이 우리를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동맹인 블랙맘바 해적단을 적으로 여기지 않겠다.”
“흐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군…….”
“그리고 우리와 뜻을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조금 전에 말한 하나 된 라그나로크 말인가?”
“그렇다.”
“흠, 이런 식으로 라그나로크를 통일시킬 생각이었나?”
폰투스 알폰이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는 칼라반의 가까이로 몸을 가져갔다.
그러자 이클립스의 대장들과 만인대장들이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건 말건 폰투스 알폰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칼라반의 두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만약 우리가 이 동맹을 거절한다면? 그땐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떻게 할 것 같나?”
칼라반의 목소리에 폰투스 알폰의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오싹함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눈동자는 한없이 깊어보였다.
계속해서 보고 있으니 무심한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넌…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폰투스 알폰은 자신 또한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어오며 살아왔다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런 자신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온 것만 같았다.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척 보기에도 젊어 보이는 상대의 모습에 괜한 멋쩍음이 밀려오기도 했다.
“결국 동맹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와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소리겠지.”
“되도록 좋은 쪽으로 선택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 좋다! 우리는 공민 네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시원하게 결정을 내려버리는 폰투스 알폰의 모습에 오히려 뒤의 해적들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들은 당연히 폰투스 알폰이 화를 내고 들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칼라반의 말은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바다의 제왕이라 불리는 폰투스 알폰의 앞에서 그런 협박을 가한다는 것이 과연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폰투스 알폰이 분노를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폰투스 알폰은 순순히 칼라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해적들도 김이 샌 기분이었다.
“대선장… 어째서…….”
“아무리 봐도 이건 우리가 지고 들어가는 것 같잖아?”
“싸우려면 싸울 수 있다니까요? 명령만 내려주십쇼!!!”
“그래!! 평소의 폰투스 알폰답게 하라고요!”
뒤에서 여러 소리가 튀어나왔다.
확실히 해적들이라 그런지 거친 소리도 아낌없이 내뱉고 있었다.
그러나 폰투스 알폰은 미소와 함께 그들의 말을 모두 잠재워버렸다.
“됐다. 이쯤 했으면 됐어. 너희들은 이미 이번 전투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더 이상 네놈들을 죽게 하고 싶지 않아.”
“아니 그런…….”
“죽는 것 정도는 괜찮으니까…! 그러지 말ㄱ…….”
“시끄럽다!! 너희들에게도 내가 늘 말하지 않았나!? 죽지 말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목숨은 가볍게 여기지 마라. 그리고! 내가 이렇게 결정하겠다는데 더 이상 불만 있는 놈 있으면 내 앞으로 나와 봐라!! 내가 직접 상대해주도록 하겠다!”
폰투스 알폰이 직접 나서서 으름장을 놓으니 해적들도 한풀 꺾이고 말았다.
이들의 모습에 칼라반도 이채를 띠었다.
한눈에 봐도 해적들의 성정은 거칠었다.
그런 해적들을 저렇게 다룰 수 있는 폰투스 알폰의 능력에 새삼 감탄한 것이다.
해적들이 조용해지자 폰투스 알폰이 다시 몸을 돌렸다.
“자 이제 조용해졌군.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너희들과 동맹을 맺겠다.”
“고맙군.”
“그런데… 너희는 제드록스와 싸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어떻게 되었지?”
“제드록스는 도망쳤다.”
“뭐라? 도망쳤다고?”
“싸움이 끝나고 보니 사라져 있었다.”
“크하하하―!!! 녀석다운 짓이로군. 이제부터 너도 피곤해지겠구나.”
“무슨 뜻이지?”
“제드록스는 무서워서 도망가거나 할 놈이 아니야. 아마도 그 전투에서는 당장 승리하지 못할 것을 알고 몸을 피한 거겠지. 제드록스는 원한만큼은 절대 잊지 않는 놈이다. 녀석이 살아 있는 한 너를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일 거다.”
“그거 재밌겠군.”
칼라반의 답에 폰투스 알폰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의외의 반응에 흥미가 생긴 것이다.
“재밌겠다니? 두렵지 않은 거냐?”
“늘 있던 일이다.”
“늘 있던 일……?”
“아… 그러고 보니 말하지 않았군. 내가 누군지 말이야.”
“네가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다. 블레이드 공민 아니냐? 아니면 혹시… 위장된 신분이었나?”
칼라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 이상 정체를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내 본래 이름은 칼라반이다.”
“칼라반… 칼라반… 뭐?!? 칼라반!?!?”
연신 이름을 중얼거리던 폰투스 알폰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 또한 칼라반이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제국의 유명한 대기사장은 바다까지도 그 위명을 떨쳤던 것이다.
“네놈이 그 칼라반이라는 말이냐!?”
“그렇다.”
“거짓말하지 마라!! 칼라반은 10년 전에 활동했던 기사다. 근데 넌 아무리 봐도…….”
“사정이 있어 이런 모습이 되었다.”
“하!? 대체 어떤 사정이길래 모습이 젊어지는 거냐? 나도 그런 사정 좀 있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폰투스 알폰이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는 다른 해적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칼라반에 관해서는 몇 차례 들어 알고 있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정작 칼라반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평온했다.
그들의 반응에 폰투스 알폰도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정말 네가 그 유명한 칼라반이냐?”
“믿기 어렵다면 직접 보여주지.”
칼라반이 팔을 들어올리자 어둠이 뿌리내리며 주변으로 불이 번졌다.
어두운 불꽃이 삽시간에 퍼지자 폰투스 알폰이 뒤로 물러섰다.
이어 그곳에서 하그라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그라트는 칼라반을 향해 예를 차렸다.
“저게 바로 그 어둠의 정령……?”
처음 보는 어둠의 정령에 폰투스 알폰은 두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그의 수하들도 신기한 눈빛들을 했다.
“이제 믿겠나?”
“크… 크흠… 그 유명한 칼라반을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다니… 그래서 늘 있던 일이라고 했군. 제국의 대기사장이었으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을 테니 말이야…….”
“사방이 적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야 그대의 뒤에 어째서 칼라반 군단병들이 자리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검은 불꽃 문양의 깃발을 들고 있는 군단은 단 하나밖에 없으니… 알아보는 것도 어렵진 않았어.”
폰투스 알폰이 입맛을 다셨다.
설마하니 라그나로크에 나타난 신예가 제국의 대기사장 출신이라니.
“가만… 그럼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설마 제국에서 그대를 보낸 건가?”
칼라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폰투스 알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나는 제국에 복수를 하기 위해 라그나로크에 몸을 담은 거다.”
“하!? 하긴. 제국에 버림받은 그대라면 충분히…….”
“그리고 이미 복수는 진행 중에 있다.”
“그렇군. 요즘 제국에 뒤숭숭한 소문들이 들린다 했더니… 그대가 연관이 있었던 건가?”
칼라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폰투스 알폰도 미소를 보였다.
“이거 재밌구만. 제국의 전설이나 다름없던 자가 지금은 제국을 노리는 창이 되어 있다니…….”
폰투스 알폰이 말끝을 흐리며 칼라반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저 많은 이들이 눈앞의 사내를 따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칼라반이라는 위명은 거짓이 아니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만 해도 아라카인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옆에 있는 어둠의 정령만 해도 알 수 없는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저런 정령들을 떼거지로 소환한다고? 크흐흐 일인군단이라더니… 가능한 얘기였어.”
잠시 턱을 매만지던 폰투스 알폰이 이내 결정을 내린 듯 수하에게 손짓했다.
그가 수하에게 무언가를 말하자, 수하는 곧바로 종이 하나를 가져왔다.
“이게 뭐지?”
“받아라.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인근 해적들은 모두다 배를 빌려 줄 거다.”
“흠…….”
“나 폰투스 알폰의 친구라는 증명서다. 그것을 알아보는 해적들은 모두 그대에게 예를 갖출 거다.”
“고맙군.”
“고마우면 나중에 우리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폰투스 알폰이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해적들도 더는 경계심을 품지 않았다.
폰투스 알폰이 저렇게 말한 이상 그들도 더는 적대감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폰투스 알폰이 먼저 나서서 칼라반에게 손을 내밀었다.
칼라반은 주저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블랙맘바 해적단과의 동맹이 완전하게 체결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폰투스 알폰은 칼라반과 여러 얘기들을 나눴다.
얘기를 들을 때마다 폰투스 알폰의 표정도 시시각각 변화했다.
그러다 문득 폰투스 알폰이 진지해진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말 제드록스 녀석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녀석은 엄청나게 집요한데… 원한다면 나의 수하들을 풀어서라도…….”
“아니 괜찮다.”
“흠… 제드록스를 너무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난 누구도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제드록스라면 이미 녀석에 걸맞은 상대를 붙여두었다.”
“걸맞은 상대? 그게 누군데?”
“하르스마이어가 죽을 때 우리에게 충성을 맹세한 녀석들이 또 있지.”
“하르스마이어라. 설마…….”
“그가 직접 만들어낸 하운드. 지금쯤 그 자들이 녀석을 쫓고 있을 거다.”
“하운드라니… 미쳤구만… 정말 미쳤어. 어디까지 날 놀라게 할 셈이냐? 설마 더 놀라야 할 것들이 있다면 지금 얘기해라.”
“어나니머스에 대해 알고 있나?”
“물론! 어나니머스를 모르는 자들도 있나?”
“그럼 되었다. 어나니머스도 제드록스를 쫓고 있다.”
칼라반의 말에 오히려 폰투스 알폰이 인상을 굳혔다.
만약 자신이 그 입장이었다면…….
“끔찍하군… 어나니머스에 하운드라니…….”
“제드록스는 어나니머스의 무대에 올라간 자다. 결코 살아 돌아올 수 없어.”
“정말… 그렇겠군. 하운드도 한 번 물어뜯은 먹잇감은 결코 놓치지 않으니…….”
폰투스 알폰은 자신의 앞에 앉은 칼라반이라는 사내를 새삼 다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