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7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74화
포위망
서로 일격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대치하고 섰다.
슈라일보다는 반의 갑옷이 더 부서져 나갔다.
“흐음…….”
상대의 실력을 얕본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반도 예상치 못했다.
그는 더욱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몸을 풀었다.
슈라일도 창을 비스듬히 잡았다.
특이한 자세와 함께 그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십시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다.”
팟!!
대지를 박찬 슈라일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의 창이 어지러운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에 반이 인상을 찌푸렸다.
카가강!!
캉―!! 촤라락!!
검과 창이 여러 번 부딪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고 불꽃이 튀었다.
슈라일의 변칙적인 공격에 반의 움직임이 꼬였다. 슈라일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빈틈이 들어난 곳에 곧바로 창을 찔러 넣었다.
슈콰아앙―!!
매섭게 날아간 창이 오러를 머금었다.
강한 충격파와 함께 반의 몸이 뒤로 물러났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이 크게 진동했다.
반이 호흡을 골랐다.
그러자 그의 검에서 웅혼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한껏 들어 올린 검을 수직으로 내리치자 빛이 화력을 더했다.
콰르릉!!!
창을 회전시켜 공격을 막아낸 슈라일이 눈매를 좁혔다.
강한 일격을 내지르고도 그는 흔들림 없이 앞으로 쇄도했다.
이어진 일격들에 슈라일이 바쁘게 창을 움직였다.
“하! 겨우 이 정도인가?”
모든 공격을 막아낸 슈라일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나 반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한 차례 검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자세를 고쳐 잡았다.
“몇 번을 해도 소용없을 거다. 당신의 공격은 너무 단조로워. 막는 내가 하품이 날 정도라고.”
“…….”
슈라일의 도발에도 이 무거운 사내는 움찔거림조차 없었다.
그의 검이 다시금 허공을 갈랐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사선으로.
다시 중앙으로.
반의 검로는 오직 직선이었다.
그에 반해 슈라일은 화려한 몸놀림으로 여기저기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들을 막으면서도 반은 똑같은 움직임만 반복할 뿐이었다.
“기본 밖에 배우지 못한 거냐!?”
“말이 많군요.”
콰직!!
그 순간 반의 검이 슈라일의 어깨를 베었다.
자신도 모르게 당한 일격에 슈라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황급히 반과의 거리를 벌리려 했다.
그러나 반은 착실한 보폭으로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되기라도 한 것처럼 반은 끊임없이 슈라일과 같은 간격을 유지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거리가 슈라일로선 창을 휘두르기 까다로운 간격이었다는 점이다.
“이익……!”
슈라일이 어떻게 해서든 거리를 벌리기 위해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창은 반의 가까이에도 닿지 못했다.
오히려 사각에서 날아온 반의 검이 그의 갑옷을 베었다.
“단조롭다고 하지 않았나요?”
묵묵히 검을 휘두르던 반이 입을 열었다.
그의 연속된 공격에 슈라일의 몸에서 핏물이 흘렀다.
이상하게 막아서기가 쉽지 않은 공격들이었다.
검로가 보여 창을 가져가도 어느새 자신의 몸엔 뜨거운 고통이 일었다.
“당신의 실력이 좋은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처음엔 저도 애먹었으니까요.”
순식간에 세 번의 검격을 넣은 반이 슈라일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전세가 역전되었다.
반을 압박하던 슈라일이 오히려 그의 검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의 창은 화려함에만 치중되어 있습니다. 기본이 부족한 자들은 당신의 창에 맥없이 당했겠죠. 화려함에 시선을 빼앗긴 나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뭐…!? 그럼 지금 내 창이…….”
“화려할 뿐 실속이 없습니다. 그 예로 당신의 창은 몇 번씩이나 제게 닿았으면서도 이렇다 할 데미지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가볍게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하하…!! 나 슈라일의 창을 지금 평가하고 있는 거냐?”
“글쎄요… 그저 제 느낀 점일 뿐입니다.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이렇게 흔들리는 당신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안쓰러워서요.”
“웃…웃기지 마라!! 기본이라면 나도……!!!!”
발끈한 슈라일이 창을 고쳐 잡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슈라일의 몸이 두 개로 분산되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 개로 나뉜 창들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이를 지켜보던 반이 몸을 움직였다.
그는 창을 피하는 것이 아닌 창격의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반의 검이 몇 차례 움직이자 다가오던 창들이 모조리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계속해서 창격을 날리던 슈라일조차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상대는 자신의 창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크게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말했지 않습니까. 당신의 창은 그저 화려함뿐이라고.”
단단한 바위처럼 쏟아지는 창격 속을 뚫고 나온 반이 검을 들어올렸다.
슈라일은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그때 그를 잡아당긴 것은 멀리 간 줄 알았던 아리사였다.
휘이잉―!!
콰가강!!!
반의 참격이 대지를 때렸다.
슈라일이 서 있던 곳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만약 이 일격을 제대로 맞았더라면 슈라일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뭐하고 있는 거야!?”
“아리사…….”
“뭘 멍 때리고 있느냐고!!”
“아…아니…….”
찰싹!
아리사가 손을 올렸다.
그녀에게 세차게 뺨을 맞은 슈라일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정신 차려 슈라일. 겨우 이런 곳에서 죽으려고 그동안 그 생고생을 해 온 거야?”
“아니… 그게…….”
“아니면 정신 차리라고!”
“어… 으응… 그런데 넌 어떻게 이곳에…….”
“틀렸어. 이미 이곳 주변 전부가 포위되었어. 나 혼자의 힘으로 여길 뚫고 나가는 것은 역부족이야.”
“그랬나…….”
정신을 차린 슈라일이 창을 들어올렸다.
반은 우두커니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위처럼 단단한 사내. 슈라일이 느낀 반은 그랬다.
그래서 저 바위를 부술만한 강한 일격이 없다면 무너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네가 이 지경이 될 정도라니… 역시 저 사람 엄청난 실력자구나?”
“인정하기 싫지만… 솔직히 무서울 정도로 강한 사내다.”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의외네.”
“직접 부딪혀 봤으니까 하는 말이야. 조심해야 돼.”
“걱정 마. 둘이 함께 싸우면 어떻게든 되겠지.”
아리사가 검을 들어올렸다.
한 손으로는 뒷짐을 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반이 턱을 매만졌다.
“그 자세는…….”
“알아보시나 봐요?”
“이것 참…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까다로운 상대를 만난 것 같군요.”
“우리 가문 검술에 대해 알고 계시는 걸 보니…….”
“피인센트 가문. 대단한 가문이지요. 대대로 대기사장들을 배출해 내었을 만큼. 하지만 과거 좋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그만. 거기까지예요.”
아리사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검이 매섭게 쇄도했다.
반도 슈라일의 창격을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얼굴이었다.
피인센트 가문의 검은 작은 균열을 일으켜 그곳을 파고드는 검이었다. 그 특징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 치의 방심도 허락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잠자코 있을 슈라일이 아니었다.
그는 아리사를 보조하기 위해 창을 찔러 넣었다.
“헙!!”
헛바람을 집어삼킨 반이 몸을 억지로 뒤틀었다.
창격이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아리사의 검이 그의 허벅지를 쓸었다.
“이런……!”
검격을 허용하자마자 아리사의 검이 그곳을 파고들었다.
반도 아리사의 검을 막아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캉!!
뚫으려는 자와 막아내는 자의 불꽃 튀는 공방전이 펼쳐졌다.
그러는 와중에 반은 창격까지 피해내야 했다.
슈라일의 창이 비교적 가볍다고는 하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두 사람을 상대하며 반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상처가 늘어나고 핏물이 여기저기 튀었다.
아리사와 슈라일은 그동안 많은 합을 맞춰봤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합격을 이어나갔다.
덕분에 힘들어진 것은 반이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두 사람을 모두 상대해 내기엔 힘든 모양이죠?”
“아… 죄송합니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반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그녀가 왔으니 이런 모습을 계속해서 보일 수는 없었다.
파쾅!!!
억지로 검에 힘을 실은 반이 두 사람을 밀어내었다.
강한 힘에 아리사와 슈라일 모두 밀려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그때서야 목소리의 주인을 쫓았다.
한 여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네르시아… 마침내 이곳으로 온 건가.”
“두 분이시죠? 그동안 제 사람들을 괴롭혀 온 것이.”
“그러는 당신이 요세푸스를 죽였나?”
“음… 그건 의도하지 않은 일이에요. 저는 그저 잡아두고 설득하려 했을 뿐이랍니다. 다만… 그분께서 그것을 원치 않으셨을 뿐.”
“그래서 죽였다는 거냐?”
“그분께서 저희들의 포위망을 무리해서 빠져나가려 하시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에네르시아가 시선을 돌렸다.
이미 슈라일이 주둔하고 있는 곳은 자신의 병력들로 가득했다.
슈라일을 따르는 수하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포기하시는 것이 어떤가요?”
“뭘 말이냐?”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죽음뿐입니다.”
“흐흐… 그건 해보지 않고선 모를 일이지.”
“참… 그래도 그런 모습은 나쁘지 않아요. 제국의 기사라면 그래야죠.”
에네르시아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하얀 손에서 불길이 일었다.
“조심해. 에네르시아는 마법사야.”
“알고 있다.”
“기분 나쁜 여자야, 하여간.”
“동감한다.”
아리사와 슈라일이 에네르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서 어떤 마법이 캐스팅될지 몰랐다.
게다가 에네르시아만 신경 쓸 수도 없었다. 그녀의 곁에 있는 반도 문제였다.
“일단은 내가 길을 뚫겠다.”
“뒤따를게.”
“후우…….”
한 차례 숨을 몰아쉰 슈라일이 창을 꼬나 잡았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 아지랑이가 흘러나왔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반이 앞으로 나섰다.
“잊지 않겠어, 당신.”
반을 바라보던 슈라일이 돌연 몸을 돌렸다.
그는 비교적 포위망이 약해 보이는 곳으로 돌진했다.
창이 하늘을 가르자 수십 명의 병사들이 비명을 토해내었다.
슈라일과 아리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에네르시아가 마법을 캐스팅했다.
허공에 불길이 치솟았다.
슈라일은 창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불길을 걷어내었다.
아리사도 검을 휘두르며 불길 속을 뛰어들었다.
“멋지네요.”
에네르시아가 다시 손을 들자 녹색 빛이 일었다.
성벽에 붙어 있던 나무줄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기는 계속 뻗어나가며 슈라일과 아리사, 그의 수하들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슈라일은 멈추지 않았다.
아리사와 함께 그는 단숨에 성벽 외곽에 다다랐다.
“이제 여기만 벗어나면……!”
아리사의 손을 붙잡은 슈라일이 성벽 위에 올라섰다.
눈앞에는 대지를 꽉 채운 병사들이 서 있었다.
“어디서 이 많은 병력들이…….”
“에네르시아… 그동안 많은 힘을 숨겨왔었구나.”
둘은 잔뜩 굳은 얼굴을 했다.
그때 누군가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슈라일님!! 아리사님!! 저기!!”
그의 외침에 두 사람 모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한쪽에서 일단의 군사들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푸른 날개… 데포르님의 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