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75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75화
#진실
군단의 병력들이 지평선을 가득 메웠다.
현 대기사장들 중 가장 큰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데포르의 군단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슈라일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오신 건가……!”
“다행이야… 그래도 아주 희망이 없진 않구나.”
“하… 하하!! 데포르님의 군단이라니!!”
몇몇 이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막막했던 그들에게 데포르 군단은 그야말로 한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성벽 위로 에네르시아의 군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그들을 보며 슈라일과 아리사는 물론 다른 군사들까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불투명했던 것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게 움직일 수 있었다.
“저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낸다!”
“당연하지!”
슈라일과 아리사를 선두로 군사들이 진형을 갖추었다.
그들을 포위하던 포메아니아 왕국군도 먼발치서 다가오는 제국군을 발견하고 있었다.
“에네르시아님!!”
“무슨 일이지?”
“제국군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국군?”
에네르시아의 시선이 바깥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시선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군대가 보였다.
“데포르의 군대인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저들을 데려갈 생각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데포르 대기사장이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을 것 같군요.”
반도 에네르시아의 말에 동의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가장 중요한 전력 중 한 명인 데포르가 이곳에 왔다.
그 말은 그만큼 슈라일과 아리사가 그들에게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절대 데포르의 손에 빼앗겨선 안 돼.”
“흐음… 저들에게 많은 정보가 들어간 겁니까?”
“그렇기도 하지. 하지만 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야.”
“음? 정보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아… 저들의 실력입니까? 하긴… 저 나이에 저 정도 실력들을 지니고 있다면… 나중 우리 제국을 빛낼 훌륭한 기사들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반의 말에 에네르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군단의 가장 선두에 있는 데포르를 바라보았다.
“아마 데포르는 저들을 죽이려 할 거야.”
“예? 하지만 저들은 황제께서 심어놓은 자들이 아닙니까? 황제의 사람들을 왜 죽인단 말입니까?”
“알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게…….”
“황제는 간악하게도 자신을 헤치려는 사람들을 자신이 직접 모았다. 자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야. 그리곤 그 세력을 이용해 자신이 처리하고 싶은 자들을 처리했지.”
“아… 설마 그게…….”
“라그나로크야. 라그나로크의 원로라 불리는 자들… 그들 중 상당수 인원이 바로 황제가 심어놓은 귀족들이야. 그는 그 귀족들을 이용해 역으로 자신의 사람들을 감시해온 거야.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라그나로크의 힘을 이용해 처리해 왔던 거고. 아마 이번 전쟁도 라그나로크가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된 거겠지.”
“그럴 수가… 아무리 그래도 황제께서는…….”
“아크로이어는 그런 자야. 어떻게 보면 머리를 잘 사용하기도 했지… 자신을 적대하는 세력과 자신이 제거하고 싶은 세력이 전투를 치르면… 결국 그는 가만히 앉아서 이득을 취하는 거니까.”
“허어… 무서운 분이셨군요. 황제께서는…….”
반이 진심으로 감탄하여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에네르시아에게도 연달아 감탄했다.
“아무튼 저들이 데포르에게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 모두 데포르에게 제거될 거야.”
“하긴… 데포르님은 칼라반님마저 내치신 매정한 분이시니까요.”
반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또한 한 사람의 기사로서 칼라반을 흠모하던 자였다.
그런 칼라반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던 것은 반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반의 말에 에네르시아가 묘한 미소를 보였다.
“그러네. 그럼 이따가 표정 한 번 아주 볼만하겠어.”
“무슨 말씀이신지……?”
“아냐. 서둘러 움직여 반.”
“알겠습니다.”
반이 몸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기사단이 뒤를 따랐다.
그때 앞으로 나아가던 반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에네르시아님 그거 아십니까?”
“……?”
“사실 죽이는 것보다 생포하는 것이 더욱 힘든 일입니다.”
“아아… 알겠어. 맛있는 음식을 약속하지.”
“후후 감사합니다.”
한 차례 웃어젖힌 반이 다시 몸을 움직였다.
아직 데포르 군단은 이곳까지 진입해오지 못하고 있었다.
에네르시아의 수하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아무리 데포르라고 해도 이곳은 포메아니아 왕국의 영향권.
함부로 행동할 순 없었다.
그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승부를 봐야 했다.
“이것 참. 가뜩이나 힘든데 시간제한까지 걸려 있다니.”
반이 검을 들어올렸다.
에네르시아에게서 빛이 일었다.
환한 빛이 자신과 기사들을 감싸 안았다.
몸 안에서 강한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훨씬 가벼워진 몸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이로군. 대전쟁 시절 이후 처음인가?”
에네르시아의 마법을 받은 반은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때의 반은 대기사장인 헤카르도와도 호각을 겨룰 수 있었다.
팡!!
대지를 박찬 그가 단번에 성벽위로 뛰었다.
검을 든 그가 다시 나타나자 슈라일과 아리사가 마른 침을 삼켰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반의 존재는 그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래도 아까보단 상황이 낫잖아?”
“맞아. 데포르님께서 이곳으로 오실 때까지만 버티면 돼.”
“아니면 우리가 이곳을 뚫고 데포르님께 가거나!!”
슈라일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그의 창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반을 덮쳤다.
이어 아리사도 슈라일의 뒤를 따랐다.
아리사와 슈라일의 합격에 반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반은 슈라일의 창을 피해내며 아리사의 검도 막아내었다.
아리사는 이전에 반이 입었던 부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검술은 집요하게 반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뿐만 아니라 슈라일의 창이 사방에서 그를 덮쳐왔다.
이전 같았으면 반도 속절없이 무너졌을 테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는 전과는 다른 속도로 공격을 피해내며 반격을 이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슈라일과 아리사 모두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그 사이에 우리를 파악한 건가?”
“아니…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설마… 전에는 우리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뭐 그런 웃기는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들의 시선이 반에게로 향했다.
반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좀 전에 저는 당신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제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에네르시아님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반의 검이 바람을 갈랐다.
빠른 일격에 슈라일과 아리사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콰가각!!
둘로 갈라진 돌바닥을 보며 슈라일이 마른침을 삼켰다.
좀 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속도뿐만 아니라 위력도 상당해졌다.
“저런 일격을 계속해서 날릴 수 있단 말이지……?”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말았다.
아리사가 굳은 얼굴로 슈라일의 곁에 왔다.
“저 사내뿐만이 아니야. 다른 기사들도 전과는 달라…….”
그들은 반이 이끄는 기사단이 자신의 수하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기사들의 무기에 환한 빛이 일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마나소드와는 조금 다른 빛이었다.
“에네르시아님의 마법인가…….”
“이게 진짜 에네르시아님의 무서움…….”
단기간이지만 기사들의 능력을 상승시키는 마법.
많은 이들이 에네르시아를 탐낸 이유였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의 밑에도 들어가지 않고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왔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이미 숨겨진 황자 레이블의 사람이었다.
“어쨌거나 좋지 않아…….”
아리사가 인상을 굳히며 검을 들어올렸다.
슈라일이 그녀의 앞에 섰다.
“내가 길을 뚫을 테니 따라와. 저들이 이곳으로 도착할 때까지 버티진 못할 것 같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이곳을 벗어나는 게 답이겠어.”
“괜찮겠어? 차라리 내가…….”
“이럴 땐 남편 노릇 좀 하게 해줘.”
슈라일이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워낙 커 반도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는 슈라일과 아리사가 싫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황제의 밀명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제국민들이나 포메아니아 왕국민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불필요한 희생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때문에 반도 슈라일과 아리사를 좋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제국에 불만을 가진 라그나로크인들을 모아놓고도 그들의 불만을 잘 다스려왔던 것이다.
거기다 때로는 제국과 포메아니아 왕국을 위한 일들도 남모르게 해왔다.
그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었기에 밉진 않았던 것이다.
그런 반의 마음도 모르고 슈라일과 아리사는 또다시 검과 창을 겨눠왔다.
그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반의 방어를 뚫어내려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수하들도 일자로 좁히며 슈라일과 아리사를 뒤따랐다.
그 모습이 마치 하나의 창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
이를 가만히 지켜볼 반이 아니었다.
그는 기사들과 함께 움직여 슈라일과 아리사를 막았다.
이어 다른 군사들이 움직여 나머지를 포위했다.
금방이라도 뚫릴 것 같던 포위망이 다시 유지되었다.
슈라일과 아리사가 더욱 힘을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반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까지도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후욱… 후욱…….”
“하아… 후우우우…….”
슈라일과 아리사가 동시에 거친 숨을 토해내었다.
그들은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정면을 응시했다.
반은 마치 견고한 바위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버티고 있었다.
“저걸 어떻게 뚫냐…….”
“그러게…….”
그들의 눈빛을 바라보던 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흥분을 가라앉힌 듯하니 대화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대화를?”
“그렇습니다. 그대들도 봤을 테죠? 저기 있는 데포르님의 군단을 말이에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대놓고 등장한 데포르 군단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지금 어떻게 해서든 이 포위망을 뚫고 데포르님께 가시려는 거겠죠.”
“그렇다!”
슈라일의 답에 반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쓸쓸한 시선으로 데포르 쪽을 바라보았다.
“포기하십시오.”
“뭐?”
“아니.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당신들을 뚫고 데포르님께 갈 겁니다!”
“그 말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이곳에 있으면 살고, 데포르님께 가면 죽을 겁니다.”
반의 충격적인 말에 슈라일과 아리사가 동시에 굳은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들의 적.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ㅅ…….”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흥분해서 소리치는 슈라일과 다르게 아리사는 한 차례 감정을 추스르며 물었다.
그 모습에 반도 흐뭇한 얼굴을 보였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아크로이어 황제께는 치부와도 같은 것들입니다.”
“하?”
“그리고 이제 많은 원로들이 제거되었으니 당신들까지 정리된다면… 아크로이어 황제는 자신이 암암리에 행한 행동들이 조용히 묻히게 되는 겁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한 가지 잘못 알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요세푸스나 다른 원로들을 죽인 것은 저희가 아닌 아크로이어 황제입니다. 우리들의 포위망을 무리해서 빠져나가다 그를 뒤쫓은 나이트워커에게 당한 겁니다. 사실 우리가 그를 붙잡아 두었던 것은 황제가 풀어놓은 나이트워커로부터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