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83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83화
#구름을 벗어난 해
아크로이어가 진중해진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귀족들의 표정이 보였다.
대기사장들은 잠자코 아크로이어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대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나의 동생. 레이블이 반역을 일으키려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크로이어가 황제가 되고 난 후, 레이블 황자의 이름을 이렇게 공식석상에서 거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충격으로 얼얼해진 여러 귀족들이 그저 입만 벌린 채 서있었다.
이들 중 가장 높은 권력을 자랑하는 중년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레이블 황자는 후성에 갇혀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네 베르무트. 하지만 얼마 전 레이블 황자가 그곳을 빠져나갔다는 보고를 들었다.”
“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곳은 삼엄한 경비로 가득한 곳입니다!”
“레이블이 그들을 죽이고 달아났다. 그를 도운 것은 당연히 레케리드겠지.”
레케리드의 이름을 알고 있는 몇몇 기사들이 안색을 굳혔다.
그들 중 몇몇은 레케리드에게 직접 검술을 배운 자들이었다.
“레케리드라… 하지만 그자 혼자서는 벌일 수 없는 일입니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만도 몇 백이 되는데… 만일을 대비해 레이블 황자에게는 그 어떠한 사병도 허락지 않으시지 않았습니까?”
“후후 그대의 말이 맞다. 나는 레이블에게 그 어떤 사병도 허락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 발칙한 동생은 다른 곳에서 이미 힘을 키워놨었다.”
“다른 곳이라니… 레이블 황자가 저희들의 시선을 피해 힘을 키웠다는 말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희는 단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레이블 황자를 감시해 왔습니다.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다면 곧바로 눈치 챘을 겁니다.”
“말했잖나? 이미 힘을 키워놨었다고… 녀석은 잠자코 후성에 들어가기 전부터 본인의 힘을 키워놨던 거다.”
믿을 수 없는 말에 몇몇 귀족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황실을 비롯한 곳곳의 모든 병력들이 황제의 사람들이었다.
다른 곳의 병력들도 그것은 마찬가지.
그들의 머릿속엔 선뜻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그대들도 예상치 못한 곳이겠지. 현재 레이블을 돕고 있는 것은 에네르시아 왕이다.”
“에네르시아! 그 여자가 레이블 황자를 돕고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 알아본 결과 에네르시아는 오래 전부터 레이블에게 충성을 맹세해 온 자다.”
“허어… 이럴 수가. 모든 일에 중립을 유지하던 그녀가 레이블 황자의 사람이었다니…….”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중립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건가?”
“하긴…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지…….”
귀족들이 다시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에네르시아에 관한 얘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아크로이어가 말할 내용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한 가지 더. 그동안 우리 제국을 조금씩 잠식해왔던 라그나로크. 그 라그나로크가 바로 레이블 황자가 숨겨놓은 또 다른 세력이었다.”
“……!!!”
“!!!”
또다시 흐르는 정적.
이번만은 에비테르 공작 베르무트마저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레이블 황자가 라그나로크의 뒤에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다.
그러나 베르무트는 곧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가 알고 있는 레이블은 라그나로크 같은 집단을 움직일 인물이 아니었다.
“레이블 황자가 그들을 움직ㅇ…….”
“그리고 그 라그나로크를 이끄는 자가 바로 칼라반이다.”
아크로이어는 베르무트의 말을 가볍게 자르며 더욱 충격적인 내용을 내뱉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를 보며 귀족들이 순간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황제께서 많이 피곤하셨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칼라반이라니요! 칼라반은 이미 과거에 죽은 인물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아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허어… 대체 어떤 자가 황제의 총명을…….”
“아무래도 휴식을 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번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황제께서도 헛것이 들리고 보이나 봅니다.”
“데포르 대기사장!! 그렇게 가만히 있지만 말고 다른 어떤 말이라도 하는 것이 어떻겠나!?”
한 귀족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데포르에게 쏠렸다.
그녀는 칼라반의 이름이 아크로이어의 입에서 들렸을 때도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칼라반의 이름이라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그녀였기에, 귀족들의 관심이 그녀에게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침 동료 대기사장들도 데포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크로이어 황제가 칼라반의 이름을 거론했는데도 그녀는 전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었다.
이것을 가벼운 일로 치부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궁금함을 내비치는 그때 데포르가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아크로이어 황제를 등지고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무심한 그녀의 두 눈동자가 좌중을 훑었다.
“황제께 칼라반이 살아 있다고 보고드린 사람이 바로 접니다.”
“!!!!”
“뭣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귀족들이 크게 소리쳤다.
칼라반의 죽음을 지켜본 이가 수천수만 명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칼라반이 죽음을 맞이할 때 당장 그 앞에 있던 사람도 바로 데포르였다.
“정말입니다. 저는 얼마 전 칼라반을 보았습니다.”
“칼라반은 이미 죽은 사람이질 않습니까? 심지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직접 죽인 이가 카르마제님과…….”
말을 이어가려던 귀족이 그만 말끝을 흐렸다.
데포르를 거론하려다 참은 것이다.
어쨌거나 이들이 말하려는 것은 데포르와 모두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예. 저도 처음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도 그를 직접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담담하게 말을 잇는 데포르를 보며 반테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제야 데포르에게 한 방 먹인 라그나로크의 인물이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기사장 칼라반.
그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데포르가 칼라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칼라반도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더군다나 어둠의 정령이라는 무시무시한 군단을 혼자서 소환해낼 수도 있는 사내였다.
“칼라반…….”
로제리아와 함께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들어온 이름.
모두가 쉬쉬하면서도 항상 들려온 이름이었다.
데포르가 좌중을 둘러보며 마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살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걸 확신하시는 겁니까?”
“어둠의 정령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데포르였다.
칼라반과 함께 싸워온 대기사장인 데포르가 한 말이었다.
그녀만큼 어둠의 정령들에 잘 알고 있는 인물도 없었다.
그래도 믿을 수 없어 귀족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정말… 정말 어둠의 정령이었습니까?”
“모두들 이번 제 병사들의 상태를 봤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고 죽었습니다. 그들 모두 어둠의 정령들에게 당한 겁니다.”
“거짓말! 그동안 당신이 많은 임무들을 완수해내었다가 처음으로 실패하게 되자 황급히 지어낸 거짓말이 아니오?”
“제가 그런 거짓말을 굳이 왜 해야 하죠? 제가 실패한 일이면 다른 누가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자신감에 가득 찬 말이었다.
그녀의 태도에서부터 이미 자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데포르가 한 말이 맞았기 때문에 귀족 사내는 함부로 반박할 수 없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정말로 칼라반이 살아 있다면… 그는 분노의 화신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 그렇지…….”
“허… 그동안 수도 없이 괴롭혀 왔던 그 소문들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정말로 칼라반이 살아 있다고!? 그자는 죽지도 않는 것인가!!”
귀족들 사이에서 커다란 동요가 일었다.
반면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칼라반이 살아 있는 것이 뭐가 어때서 그런 얼굴들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도 결국 한낱 인간일 뿐입니다. 칼라반이 우리 제국 전체를 상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살아 돌아왔으면 다시 죽이면 그만입니다.”
“맞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우리 제국도 훨씬 더 발전했습니다. 반테일 대기사장님을 비롯한 걸출한 인재들도 많이 배출해내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칼라반이 유명했던 것은 그를 따르는 솔 기사단과 군단병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솔 기사단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고 많은 기사들이 우리들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군단병들도 제국에 투항한 자들이 많습니다. 거기다 만인대장 중 한 명인 레처드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오히려 잘 된 일입니다. 칼라반을 죽임으로써 명예를 드높이고 이제 그만 그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신진 귀족들이 강하게 외쳤다.
새롭게 대기사장에 올라선 이들도 비슷한 생각들이었다.
“우릴 너무 못 믿으시는 것 같군요. 우리 또한 대전쟁 시대에 활동했다면 충분히 이름을 떨치고도 남았을 인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릴 믿어주십시오!!”
대기사장들의 외침에도 몇몇 귀족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과거 그들과 똑같은 말을 한 자들이 여럿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바트로였다.
그는 크로이드 제전에서 칼라반 군단의 오천인장이었던 고르아를 상대하겠다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한 패배.
그 일 때문에 더더욱 칼라반 군단이 기억 속에 각인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과거 그러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몇몇 귀족들의 반응은 영 좋지 못했다.
“내가 그대들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는가?”
그때 아크로이어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승리 한다. 레이블 황자든 칼라반이든… 감히 내게 대적하는 자는 누구든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크로이어 황제의 외침에 귀족들과 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를 시작으로 그들은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귀족들뿐만 아니라 대기사장들까지 함께해 마음껏 의견을 개진했다.
그들이 한창 회의를 나누고 있는 동안 칼라반은 레이블과 함께 제국 후성을 벗어나고 있었다.
운량이 미리 준비해둔 진법 덕분에 레이블 황자를 데리고 벗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더군다나 마주치는 병력들은 칼라반이 나설 새도 없이 로제리아가 처리해버렸다.
그녀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검솜씨로 적들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과연 대단하군…….”
로제리아의 검술을 본 레이블은 순수한 감탄을 터트렸다.
그가 보기에도 로제리아는 심상치 않은 실력을 지닌 기사였다.
레케리드를 늘 곁에 두었기 때문에 레이블도 검술을 보는 눈은 꽤나 좋았다.
레이블도 직접 검을 익히긴 했지만 크게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체력을 증진시키는 용도로만 활용하였다.
그렇게 레이블은 칼라반과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손쉽게 아크로이어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맡는 바깥 공기로군.”
레이블 황자가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레케리드가 그의 옆에 섰다.
“바깥 공기는 늘…….”
“레케리드.”
“예 레이블님.”
“이제 시작이다.”
레이블 황자가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는 하늘을 움켜쥘 것처럼 주먹을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