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8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87화
#제전
“크하하!!! 이런 제전에 참여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구만.”
“그러게. 그동안 이런 것들은 잊고 살아왔는데 말이야.”
“좋지 않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재밌지만 이렇게 순수한 실력을 다투는 것도 좋잖아.”
“말이라고!!”
이클립스의 대장들이 잔뜩 들뜬 얼굴로 말했다.
그들의 반대편에는 만인대장들과 블레이드가 서있었다.
아라카인은 팔짱을 낀 채로 누구보다 신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봐. 그러다 입에서 침이라도 새겠어.”
“크흐흐 상관 마라. 옛날 생각도 나서 즐거워하고 있으니.”
“쯧… 누가 검투사출신 아니랄까봐.”
“해적한테 그딴 말투로 듣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넌 왜 온 거냐? 이런 것에 관심도 없는 것 같더니.”
“나도 나름 라그나로크와 함께하기로 한 블레이드다. 이렇게 재밌는 자리에 빠질 수야 있나.”
“흥! 별일이로군.”
“그보다 이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제법 쟁쟁하다고 들었다.”
“이클립스의 대장들도 참여하고 제국 군단의 기사들도 참여한다.”
“너는 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만.”
“티났나? 물론! 내가 관심이 있는 쪽은 저쪽이다.”
아라카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폰투랑과 로제리아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몸을 회복한 레기온도 함께 있었다.
“설마 저 여자를 말하는 거냐?”
“그래. 이번에 저 여인과 싸워볼 생각이다.”
“하? 난 네가 나와 싸우고 싶어 할 줄 알았다만…….”
“그것도 좋지! 하지만 내 목표는 저 여인이다.”
“저 여자가 그렇게도 대단하냐?”
“그래. 너도 직접 마주하면 알게 될 거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폰투스 알폰이 턱을 매만지며 로제리아 쪽을 바라보았다.
한편 로제리아는 여러 시선을 느끼면서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은 다 회복된 건가요?”
“이제 걱정할 수준은 지났습니다.”
“다행이에요.”
“후후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어요? 그날 우릴 위해서 당신이 그토록 희생해주었는데.”
“운량님이 기적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그날 당신은 죽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요.”
“때마침 칼라반님이 절 구하러 와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레기온이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밝게 말하는 레기온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제전에 참여한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예. 저도 참여해보려고 합니다.”
“괜찮겠어요? 좀 더 휴식을 취하셔도 될 텐데.”
“오래 쉬었습니다. 몸도 꽤나 회복했고요. 그리고 이런 좋은 자리에 결코 빠질 수 없죠.”
“하긴…….”
로제리아가 주변을 살폈다.
아직 칼라반이 도착하지도 않았건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이 제전의 장소로 택한 곳은 커다란 경기장이 있는 곳이었다.
예전에 쓰던 건물이라 많이 낡아 있었는데, 체르피히가 귀신같은 솜씨로 더 좋은 건물로 탈바꿈해 놓았다.
본래 블레이드 후보들이 쓸 수 있도록 만들 목적이었으나, 이번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저벅저벅.
먼발치서 한 사내가 걸음을 옮겼다.
검은 무복을 걸친 칼라반이 좌중을 살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자리를 빼곡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카이사르가 섰다.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모이다니…….
“모두 우리와 함께 싸울 자들이다.”
―저는 그래도 인간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
―인간들은 필요에 의해 언제 또 왕을 배신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저희들은 인간을 믿지 않겠습니다.
“좋다. 나 또한 너희들에게 그것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너희들이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언제든 경계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야.”
칼라반의 답에 카이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용 있는 녀석의 모습에 여기저기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칼라반의 모습을 처음 본 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뭐야… 생각보다 평범하게 생기셨는데?”
“그럼 뭐 우락부락한 근육질이라도 생각하셨나?”
“아니 그런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풍기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잖아. 그냥 보기에 너무 평범해보여서 말이야.”
“하긴… 옆에 있는 어둠의 정령 때문에 그런 건가?”
여기저기 술렁이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칼라반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마침내 마련된 자리에 다가온 칼라반이 입을 열었다.
“모두 이 자리를 빛내주어 고마운 마음이다.”
다른 이들처럼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외친 것이 아니었다.
가만히 서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말하기라도 하는 듯 생생히 전달되었다.
이 신비한 일에 사람들의 표정이 얼떨떨해지고 있었다.
“뭐야…? 뭐지 이 기분은……?”
“괜히 가슴이 울리는 것 같은데…….”
“목소리만 들었는데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아… 긴장해서 그런 건가?”
그들이 여러 말들을 하는 와중에도 칼라반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이곳은 죽고 죽이는 전장이 아니다. 오로지 실력을 겨루는 자리다. 하지만 실전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쉽게 승리해낼 수 없을 것이다. 제전은 삼일 동안 진행될 것이며 제전의 결과를 통해 많은 변화를 얻어낼 수 있을 거다.”
칼라반의 말이 끝나자마자 뜨거운 환호가 터져나왔다.
대기석에 있는 자들도 환호를 보냈다.
잠시 뜨거운 열기를 지켜보던 칼라반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좌중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이어 칼라반의 손이 옆에 있는 레이블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분은 레이블 황자님이다.”
갑작스런 소개에 침묵이 지켜졌다.
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칼라반이 설명을 이었다.
레이블이 어떤 인물이고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짧은 설명을 붙이자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레이블님을 도와 제국의 변화를 꾀하려 한다!”
칼라반의 말이 끝나자 레이블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칼라반의 옆에 섰다.
처음 보는 황자의 모습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반응쯤은 익숙했기에 레이블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쥬피로스가 살며시 다가와 확성마법을 펼쳐주었다.
“그대들이 원하는 제국은 어떤 모습인가? 나는 그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내가 이끌어갈 제국이 그대들이 원하는 제국이었으면 한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는 누구처럼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검술을 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대들이 나를 도와주었으면 한다. 내가 그대들이 그리는 제국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야.”
레이블이 간단하게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그의 말을 들은 라그나로크인들의 표정도 복잡해졌다.
“우리들이 그리는 제국?”
“그게 무슨 말이야?”
“글쎄. 우리들이 바라는 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말인가?”
“으… 머리 아파. 누가 대신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 없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반면 이클립스의 대장들이나 다른 이들은 레이블의 말을 곱씹어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제국.
그런 제국의 모습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과연… 칼라반님이 따르는 분이라 이건가?”
“후후, 적어도 아크로이어보다는 나은 제국을 만들어주시겠지.”
“속단하지 마라. 난 아무도 믿지 않아.”
그들이 한마디씩 하는 사이 마침내 제전이 시작되었다.
첫 시합을 장식할 인물은 바로 한니발이었다.
그가 나서자 몇몇 이들이 아리송한 얼굴을 지었다.
“설마 어나니머스도 참전 가능했던 겁니까?”
“당연한 말을. 그들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주었다.”
오만의 아들인 한니발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숱한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해왔다.
이어 맞은 편에서 그의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엇!?”
“아……!!”
여기저기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니발의 상대.
그는 초창기 칼라반과 함께 해왔던 제르단이었다.
제르단이 검을 들어 한니발과 마주섰다.
한니발도 마주 검을 들어올렸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운량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진법을 발동시켰다.
다른 이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미리 진법을 설치해두었던 것이다.
거기다 혹시 몰라 쥬피로스나 다른 이들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한니발과 제르단의 시합은 한니발의 승으로 끝났다.
고군분투한 제르단에게 한니발이 다가갔다.
“훌륭한 실력이었습니다.”
“역시 어나니머스라 이건가… 그토록 노력했건만…….”
“아니요. 당신의 실력은 정말로 훌륭했습니다. 그저 제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한니발이 상처 입은 가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가면에 새겨진 커다란 검흔이 제르단의 일격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자 본격적으로 열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시작된 경기는 폰투랑과 가르시아였다.
가르시아는 자신의 상대를 보자마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당신과 겨뤄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잘 부탁하겠다.”
“흐흐 저야말로.”
가르시아가 검을 들어올렸다.
폰투랑도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의 전신에서 거친 투기가 폭사되었다.
이를 본 아라카인이 눈을 빛냈다.
“느껴지는 기세가… 제법이로군.”
“칼라반과 함께 오랫동안 싸워온 사내다.”
“호오, 저자도 만인대장이라는 거냐?”
“듣자하니 만인대장 중 최강이라고 하더군.”
“그으래? 이것 참 재밌구만.”
폰투스 알폰도 이번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솔직히 조금 전 경기는 그가 기대한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사람은 이클립스의 대장과 칼라반 군단의 만인대장이었다.
콰라랑―!!!
콰강―!!!!!
물러섬 없는 일격들.
두 사람은 진정한 사나이들의 싸움이 뭔지 보여주겠다는 듯 무지막지한 힘겨루기를 했다.
폰투랑은 가르시아의 검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는 투기를 이용해 가르시아의 일격을 모두 받아쳐냈다.
실제로 겪고도 어처구니 없는 이 상황에 가르시아조차 헛웃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진정으로 괴물이군요 당신은…….”
힘이라면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검을 내리치는 가르시아의 팔목이 시큰거렸다.
마치 단단한 광물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폰투랑은 우직하게 앞으로 걸어나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가르시아도 힘껏 응전했지만 결국 폰투랑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그가 바닥에 주저앉자 시합 종료의 말이 울렸다.
폰투랑이 그에게 다가가 몸을 일으켜주었다.
“역시나… 대단합니다.”
“그대 또한 훌륭한 검술이었다.”
“하하하!!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그런 칭찬을 들으니 정말로 기쁘군요. 패배하고도 속이 후련합니다.”
가르시아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었다.
칼라반에게 가려지긴 했지만 폰투랑 또한 엄청난 사내였다.
그의 실력에 몇몇 사람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폰투랑의 실력을 처음 본 루시엔 쪽 이클립스 대장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무식한 신체로군…….”
“가르시아의 검이 흠집조차 내질 못했단 말인가!?”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이 제전의 수준이 높을지도…….”
이어 몇몇 시합들이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다.
혼을 빼앗긴 듯 시합을 지켜보던 그들이 돌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클립스 인원들이 열과 성을 다했다.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이는 바로 이슈하르트의 딸 루시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