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89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89화
#제전 (3)
요쿠스가 승리하면서 이클립스 인원들에게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멍한 상태로 있던 요쿠스만 바라보다가 저렇듯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니 신기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만인대장이라더니… 생각보다 훨씬 강하잖아?”
“그러게. 샤푸아님이 저렇듯 당해버리다니…….”
“저런 사람이 우리들의 동료라… 괜찮네. 언제든 등을 맡길 수 있겠어.”
“그런데 이제 슬슬 우리 쪽에서도 뭔가를 보여줘야 할 텐데.”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쪽으로 향했다.
이클립스 쪽에서 준비하고 있는 인물은 바로 자르칸이었다.
그는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몸 상태는?”
“아주 좋다.”
“마음껏 싸워봐. 네 상태는 걱정하지 말고.”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나 못 믿어?”
벨제인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자르칸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뭐야? 왜 그렇게 웃어?”
“그냥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짧은 말과 함께 자르칸이 몸을 돌렸다.
싸우다 그가 이성을 붙잡기 힘들어진다면 아마 벨제인이 나서줄 터였다.
자르칸이 창을 짊어지고 격투장 한가운데로 나섰다.
맞은편에는 문이 열려 있었지만 밖으로 나오는 이가 없었다.
이를 본 운량이 자르칸에게 물었다.
“도전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도전하고자 하는 상대는 누구입니까?”
“블레이드 슈라일 렌.”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모두가 격한 환호를 보냈다.
드디어 블레이드급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물론 훌륭했지만 라그나로크를 이끌어가는 블레이드의 싸움은 훨씬 더 대단할 터였다.
사실상 현재 블레이드들은 칼라반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앞으로 칼라반의 명령을 직접 듣고 수행하게 될 터였다.
그러니만큼 블레이드급의 지각 변동은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뜨거운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슈라일 렌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있던 곳엔 블레이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폰투스 알폰이 슈라일 렌을 바라보았다.
“괜찮겠나?”
“무슨 말이지?”
“내가 알기로 저 사내는 꽤나 위험한 실력을 지닌 걸로 아는데…….”
“후후 창이라면 결코 질 수 없다.”
슈라일 렌이 자신의 창을 꼬나 잡았다.
블레이드 중 유일하게 창을 사용하는 자신이었다.
이곳에서 블레이드의 칭호를 처음 받을 때도 그는 한 자루의 창을 쥐고 있었다.
물론 자르칸에 대한 소문은 계속해서 들어왔었다.
이클립스의 숨은 맹수.
그를 그렇게 부르는 자들이 많았다.
자르칸의 창은 적의 목을 끝까지 노렸고 끝내 파고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르칸의 창엔 피가 마를 날이 없다 했다.
“재밌겠어.”
슈라일 렌과 자르칸이 마주선 것을 보며 아라카인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켜보던 아리사가 말문을 열었다.
“아라카인님께서 보시기에 두 사람 중 누가 승리할 것 같나요?”
“반반이다.”
“네……?”
“슈라일 렌의 창 실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자르칸 또한 그동안 숱한 실전을 거치며 다듬어온 창술을 가지고 있다. 검을 주로 사용하는 기사들만 있는 시대에 저렇듯 창을 수련해온 자들이 흔치는 않으니 나도 정확히 장담할 순 없지만. 내 본능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먼저 긴장의 끊을 놓는 자가 패배할 것이다.”
“그런…….”
아리사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슈라일 렌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아라카인이 하는 얘기였으니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폰투스 알폰이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저 자르칸이라는 사내가 그렇게나 대단한 실력을 지녔나?”
“물론이다. 단언컨대 하데르와 어깨를 견줄 만하다.”
아라카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슈라일 렌과 자르칸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기다란 창을 이용해 엄청난 공세를 보여주었다.
빠르게 뒤엉키는 창날을 보며 관중의 눈이 어지러이 돌았다.
검술만큼이나 화려하고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더군다나 자르칸과 슈라일 렌 모두 일생을 창술에 바쳐온 사내들이었다.
그들의 인생이 담긴 창끝에 모두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리사는 괜히 뿌듯해 하면서도 속으론 슈라일 렌을 응원했다.
슈라일 렌은 블레이드였기에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와 함께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는 자르칸을 보며 모두가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이클립스의 대장 중 저렇게 강한 자가 있었나?”
“이건 단순히 창술의 대결이라고 말하기엔…….”
“자존심 싸움 같잖나 저건.”
엄청난 광경들에 모두가 그저 입만 벌리고 있었다.
자르칸의 창이 슈라일 렌의 어깨를 찢었다.
이어 슈라일의 창이 자르칸의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막상막하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침착하게 호흡을 고르는 슈라일 렌과 다르게 자르칸의 호흡은 점차 거칠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시작되겠군.”
자르칸을 잘 알고 있는 인원들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르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어 그의 전신에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음?”
잠시 거리를 벌렸던 슈라일 렌은 갑자기 자르칸의 분위기가 바뀌자 눈매를 좁혔다.
자르칸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는 조금 다를 겁니다.”
피의 향을 한껏 들이켠 자르칸이 창을 고쳐 잡았다.
“느낌상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몸이 한층 커진 것 같은데?”
“그럼 갑니다.”
파앙!!!
대지를 박찬 자르칸이 슈라일 렌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대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창이 섬전과도 같이 뻗어나갔다.
엄청난 속도에 슈라일 렌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콰가가강―!!!
창과 창이 부딪히며 커다란 굉음을 일으켰다.
순간 스산한 기운이 슈라일 렌을 감싸 안았다.
“헙!”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자 슈라일의 머리 위로 창이 지나갔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군……!?”
다시 균형을 잡은 슈라일 렌이 창을 들어올렸다.
비상하는 창끝이 자르칸의 상단부를 노렸다.
쾅!!
어느새 돌아온 창대가 슈라일의 창을 막아내었다.
그 순간 몸을 회전시킨 슈라일이 창격을 이어갔다.
자르칸은 이를 모두 막아내는 한 편 다른 창끝을 이용해 반격을 가했다.
이 수준 높은 싸움에 모두가 숨을 죽이며 쳐다보았다.
창이 움직일 때마다 핏물이 튀기 시작했다.
자르칸의 창과 슈라일의 창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느 시합보다 치열하고 뜨거운 싸움이었다.
피의 향이 짙어질수록 자르칸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아아… 이제 기억났다. 피의 향기에 자신을 잡아먹혀버리는 창술사. 그게 너구나?”
슈라일 렌이 자르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반쯤 이성을 잃은 자르칸은 괴이한 소리와 함께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지금의 자르칸은 슈라일 렌마저 벅찰 지경이었다.
훨씬 더 높아진 신체능력 덕분에 슈라일 렌이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슈라일 렌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자 이클립스 인원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슈라일 렌도 블레이드의 자리에 오른 사내였다.
그 또한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쳐왔다.
이를 악문 슈라일 렌이 창끝을 돌렸다.
창에서 시작된 강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자르칸을 덮쳤다.
자르칸의 붉은 오러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아아아!!!”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자르칸이 더욱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눈마저 점차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슈라일 렌도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 또한 블레이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내.
더군다나 상대는 자신과 같은 창술사였다.
콰라라랑―!!!!
커다란 폭발과 함께 슈라일 렌과 자르칸이 밀려났다.
그 사이에 난입한 것은 칼라반이었다.
“벨제인!!”
칼라반의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벨제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곧바로 마법 술식을 펼쳐내며 자르칸에게 다가갔다.
슈라일 렌은 핏물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무승부인가.”
“뭐야… 둘 다 쓰러진 거야?”
자르칸도 슈라일 렌과 마찬가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이성을 잃은 그가 언제다시 튀어나갈진 모르는 일이었다.
“둘 모두 고생 많았다. 이 승부는 슈라일 렌의 승리다.”
칼라반의 말에 모두가 웅성거렸다.
그러나 몇몇 이들은 칼라반의 말에 동의했다.
자르칸이 분명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는 자신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능력을 끌어올렸다.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죽일 뻔한 그와 다르게 슈라일 렌은 자르칸에게 닿기 전 방향을 틀어버렸다.
이 때문에 칼라반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 큰 일이 벌어질 뻔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너무 과열된 나머지…….”
“아니. 덕분에 너희들의 시합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슈라일 렌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칼라반은 자르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벨제인의 마법이 그를 잠재우고 있었다.
이성을 잃어 기괴한 소리를 내던 자르칸이 점차 편안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어 다시 눈을 뜬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사이 정신을 잃었던 겁니까?”
“그렇다.”
“그렇군요… 확실히… 슈라일 렌이라는 남자는 블레이드의 자리에 앉아 있을 만합니다. 엄청난 실력이었습니다. 제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그대 또한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칼라반의 말에 자르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함과 안도감 등 복잡한 감정들이 섞인 얼굴이었다.
“정말로 그대의 창술은 훌륭했다. 나 또한 간신히 이겼어.”
“별말씀을…….”
슈라일 렌이 자르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자르칸이 그의 손을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 날 이 후로 이 두 명의 창술사에게 뜨거운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사이.
“우오와아아―!!!”
“우오오!!!”
함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둘 모두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승자와 패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보여준 엄청난 대결에 그저 감탄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하데르조차 자르칸의 창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 그동안 놀고만 있진 않았구나. 많은 것들을 고민해 온 흔적이 보인다.”
“후후후 동료들의 성장은 늘 기쁜 법이지.”
아란다르도 흐뭇해했다.
그보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쪽으로 갔다.
“이제 자네 차례 아닌가?”
“맞다.”
“괜찮겠나? 상대는 무지막지한 괴물이다.”
“후후 언젠가는 한 번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다.”
“그래. 그렇다면 잘 하고 와라. 나는 이곳에서 친구의 건승을 응원하겠다.”
아란다르가 살며시 물러났다.
하데르가 옆에 놓아두었던 검을 집어 들었다.
그가 나서자 특히나 이클립스의 인원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슈하르트의 뒤를 이어온 명실상부 이클립스의 2인자.
늘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던 그가 나선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하데르님.”
운량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데르도 운량에게 마주 인사를 건넸다.
마찬가지로 그의 맞은편에서도 상대는 나오지 않았다.
“하데르님께서도 도전하시려는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원하시는 상대는?”
“블레이드 아라카인.”
하데르의 말에 정적이 흘렀다.
반면 이쪽을 내려다보던 아라카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내게 도전하겠다는 건가?”
“예전부터 당신과는 싸워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본래부터 그런 놈들이었지. 오랫동안 참아왔겠어.”
휘릭―!
파앙!!!
공중에 몸을 날린 아라카인이 단숨에 하데르의 앞으로 착지했다.
거구의 두 사람이 마주하자 또다시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