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9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92화
#헤이나의 고집
헤이나는 곧바로 로제리아와의 거리를 좁혔다.
콰라랑!!!
응집된 기운이 로제리아의 검신과 맞닿자 폭발했다.
그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회전력을 이용해 다른 주먹을 내질렀다.
금세 자세를 갖춘 로제리아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로제리아의 검을 흘려내었다.
“어랏!”
허공을 때린 헤이나가 앞으로 상체를 숙였다.
촤륵!
날카로운 검신이 헤이나의 옷을 베고 지나갔다.
로제리아는 그녀의 팔을 가볍게 베어낼 생각이었으나 놀랍게도 헤이나가 반응해낸 것이다.
덕분에 검은 옷자락만 스치고 지나갔다.
“긴장 좀 해야 될 걸?”
자신의 공격이 먹힌다 생각한 헤이나가 미소를 보였다.
그녀가 두 다리를 벌렸다.
기수식을 취하는 헤이나를 보며 로제리아도 눈을 빛냈다.
파아앙!!!
이번에 먼저 움직인 것은 로제리아 쪽이었다.
그녀의 푸른 검신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헤이나도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안쪽까지 파고들어 로제리아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힘들게 하려 했다.
하지만 로제리아도 만만치 않은 실력자였다.
헤이나가 거리를 좁히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같은 간격을 유지했다.
“하압―!!”
기합을 내지른 헤이나가 반발 빠른 움직임을 가져갔다.
그녀의 주먹이 그대로 로제리아의 복부에 꽂히는 듯했다.
그 순간 로제리아의 신형이 사라졌다.
“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 상대를 놓친 헤이나가 당황한 얼굴을 보이고 말았다.
스가각―!!
로제리아의 검이 헤이나의 팔뚝을 베었다.
이어 등에도 뜨거운 고통이 전해졌다.
“이익!”
입술을 질끈 깨문 헤이나가 몸을 돌렸다.
그녀의 손이 향한 곳은 로제리아의 검신이었다.
꽈악!
맨손으로 검신을 부여잡은 헤이나를 보며 모두가 경악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저런 미친 짓을……!”
“아니 검을 왜 맨손으로 잡는 거야!!”
“저러다 팔이 잘못 되기라도 하면…….”
그러나 헤이나는 거침없었다.
그녀는 검을 쥔 손을 잡아당겼다.
헤이나의 거칠 것 없는 움직임에 로제리아도 조금은 당황하고 말았다.
순간 움직임이 멈칫한 순간 헤이나가 검을 당겨버린 바람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이런!”
헤이나의 주먹이 그대로 로제리아의 얼굴을 가격했다.
파앙!!
강한 충격에 로제리아도 휘청이고 말았다.
헤이나가 다시 검을 흔들었다.
로제리아가 다시 자세를 갖추기 전에 사정없이 몰아칠 계획이었다.
헤이나의 주먹이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로제리아는 어떻게 해서든 헤이나의 주먹을 피해내었다.
그러면서도 팔과 다리를 이용해 헤이나를 뿌리치려 했다.
“어림없지.”
이런 육탄전은 로제리아가 아닌 헤이나의 전문이었다.
헤이나는 능숙하게 로제리아의 공격을 받아내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지켜보는 이들도 서서히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어쩌면 정말로…….”
“놀랍군. 헤이나님께서 저런 방식을 선택하실 줄은…….”
“그나저나 로제리아님이 쓰러지기 전에 헤이나님의 손이 먼저 망가지겠는데…….”
“엄청난 싸움이로군…….”
기대와 우려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칼라반은 말없이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레이블이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떻게 바라보고 있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대를 갖기 위해 두 여인이 싸우고 있다.”
“예…….”
“참으로 부러워.”
“후후 그런 것치고는 표정이 즐거워 보이십니다.”
칼라반이 레이블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이 부럽다 하지만 레이블은 전혀 그렇지 않아보였다.
“으하하하!!! 그대는 못 속이겠군. 사실 나는 황족으로 태어나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왔다. 다른 이들처럼 먹을 것이 떨어져 굶을 걱정을 한 적이 없었고 몸이 아파 죽으면 어떡하나 고민해본 적도 없지. 뿐만 아니라 돈이 떨어져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해본 적도 없다.”
“기본적인 것들이로군요.”
“그래. 하지만 이 기본적인 것들이 가장 중요하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전혀 당연한 것들이 아니거든. 우리 모두는 이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기 위해 노력하니까.”
레이블의 말에 칼라반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그러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하는 사내였다.
그렇기 때문에 커다란 것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블이라면 조금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황제가 된다면 우선 굶어죽는 자들이 없어야 한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몸이 아파 죽는 자들이 적어져야 한다. 아프면 신관들에게 치료를 받든 혹은 다른 방식으로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
“좋군요.”
“마지막으로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
칼라반은 말없이 레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청년은 자신이 내뱉는 말의 무게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때 레이블도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내가 라그나로크의 사람들을 보며 깨달은 것들이다. 물론 이 생각은 아직 날것에 불과하다. 조금 더 가다듬고 보듬어 나가야 해.”
“그렇군요.”
“그러니 그대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예?”
“내 곁에서 나를 도와달라는 말이다.”
“하지만 레이블님의 곁에는 저 말고도 훌륭한 인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에네르시아나 레케리드님, 헤카르도 등 훌륭한 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운량이나 쥬필로스에게도 일러두겠습니다.”
“하지만 내 목에 검을 겨눌 수 있는 것은 그대밖에 없겠지.”
“무슨 말씀을…….”
레이블의 말에 칼라반도 당황했는지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러나 레이블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축복받은 자다.”
그의 입에서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오자 칼라반도 두 눈을 껌뻑이고 말았다.
아크로이어 황제도 똑같은 얘기를 했었다.
언제든지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눌 수 있는 자.
목의 가시 같은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고.
그래서 아크로이어는 자신을 제거할 계획을 세워왔었다.
그런데 레이블은 같은 말을 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말하고 있었다.
“왜… 그것을 축복이라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자다. 그 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자신을 잃기 쉽겠지. 왜? 내 주변에는 나의 권력에 눈이 멀어 아첨을 하는 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내가 듣기 좋은 말들만 늘어놓는 자들이 말이야. 나도 사람인지라 달달한 것들이 좋다. 쓴 것들이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곧 달달한 것들을 삼키고 싶어 할 테지. 그뿐인가! 나중에는 그 쓴 것들이 사실은 나를 헤치는 독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총기가 퇴색되고 판단은 흐려지겠지. 어쩌면 지금의 아크로이어 황제처럼 말이야.”
칼라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블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 칼라반이 마음에 들었는지 레이블은 더욱 미소를 띠었다.
“그래서 내게는 그대와 같은 자가 필요하다. 내가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내가 스스로 흔들리지 않도록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자가!”
“…….”
“모든 것이 끝나고 내가 황제가 되었을 때 그대가 대기사장의 자리에 앉아주었으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리 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많은 것을 바라진 않겠다. 그저 제국에만 살아주었으면 한다. 내가 잘못된 길을 걸으면 언제든 나의 목을 치러 올 수 있도록 말이야.”
“무슨 그런 말씀을……!”
칼라반이 놀라 말했다.
그러나 레이블은 진심이었다.
그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야 내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대의 수하들은 충성심이 너무도 강해. 그건 아마 나를 향한 것이 아닌 그대를 향한 것이겠지. 그러니 나를 위해 남아 달라 할 수도 없을 것 같고…….”
“분명 몇몇은 레이블님의 곁에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런가? 후후 아무튼 나는 그대의 존재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대가 있음으로써 나도 성장해갈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레이블의 말에 칼라반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아크로이어와는 그릇이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마저 품으려 하고 있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이처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자신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때 관중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칼라반의 시선이 자연스레 결투가 벌어지는 쪽으로 향했다.
헤이나와 로제리아 모두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헤이나는 아직까지도 로제리아의 검을 놓지 않고 있었다.
“언제까지 잡고 있을 생각인가요?”
“당신을 이길 때까지.”
“어림없는 소리네요.”
로제리아가 검을 비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헤이나가 몸을 띄워 그녀의 움직임에 반응했다.
헤이나는 다시금 검신을 흔들었다.
확실히 순수한 힘으로만 따지자면 헤이나가 로제리아보다 우위였다.
헤이나의 힘은 로제리아의 예상을 훨씬 상회했다.
그녀는 검을 잡은 이점을 이용해 계속해서 공격을 쏟아부었다.
피가 말라붙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 승기를 잡아야 했다.
후우웅―!!
헤이나의 주먹에 투기가 응집되었다.
그녀의 주먹을 본 로제리아가 매섭게 눈을 빛냈다.
한쪽으로 발을 내딛은 로제리아가 검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헤이나가 더욱 주먹을 굳세게 말아 쥐었다.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음에도 헤이나는 검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어디 한 번 이것도 받아내보든가!”
헤이나의 주먹이 질풍처럼 날아들었다.
강렬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로제리아의 몸을 강타했다.
이를 본 몇몇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키고 말았다.
아무리 로제리아라고 해도 저런 기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상황을 지켜보던 폰투랑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끝났군…….”
“어… 이제 뚜껑 열렸겠다…….”
두 사람이 고개를 저을 때 광활한 기운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치지직―!!!
쩌저정――!!!!
내리친 전격이 대지를 갈라놓았다.
푸른 광채가 강렬한 빛을 띠었다.
“끄아아아―!!!”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헤이나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푸른 아지랑이를 전신에 두른 로제리아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저때의 로제리아님을 이겨내야 돼.”
“저땐 괴물인데 어떻게 이겨내냐?”
“하긴… 칼라반님도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으니. 그때 카이사르가 얼마나 불쌍해보이던지…….”
“엄청났지… 난 내 자신도 불쌍해보였다고…….”
과거를 떠올리던 만인대장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쓰러진 줄 알았던 헤이나가 몸을 일으킨 것이다.
로제리아도 놀란 듯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더 하실 생각인가요?”
“당…연하지…….”
“…….”
“다시 해보…자고…….”
헤이나가 부르르 떨리는 다리를 애써 붙잡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눈빛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를 확인한 로제리아도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검을 들었다.
“하…….”
로제리아와 마주선 헤이나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로제리아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는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기술을 전수해주던 아라카인도 로제리아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헤이나가 결코 로제리아를 이길 수 없음을 알고 경고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보니 헤이나도 온몸으로 아라카인의 말이 와닿고 있었다.
헤이나의 고집에 아라카인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고집하는 거지?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도 말이야.”
“가끔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바로 지금이에요. 그러니 이번에 모든 것을 털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