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9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94화
#아발티움 수성전
“뭐야. 빨리 길을 열라고 해라.”
“그게… 지나갈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우리 제국군이 속국인 포메아니아 왕국을 지나지 못할 이유가 뭐지?”
“자세한 사정은 내부의 일 때문에 말해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답답할 노릇이군요…….”
“답답할 게 뭐 있어!? 화끈하게 일을 벌이면 되는 거지.”
대기사장 비스트로겐이 피식 웃어보였다.
상대도 아마 이쪽이 벌이려는 일을 눈치챈 듯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방식대로 나아가면 그만이었다.
“가자!!”
비스트로겐이 앞으로 나섰다.
덕분에 제국군 병사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따라나섰다.
포메아니아 왕국군이 비스트로겐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까지입니다.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비켜라. 제국군이 나가려는 길을 막으려 하는 거냐?”
“아무리 제국군이라고 해도 이곳은 왕국의 권위를 인정받은 포메아니아입니다. 제국군도 왕의 명을 따라주셔야 합니다.”
“크하하하!!! 닫혀 있는 왕국이라더니 제국군의 길마저 닫으려 하는가!”
비스트로겐이 검을 빼들었다.
그가 돌연 검을 뽑자 앞을 막아섰던 왕국군도 긴장하는 낯빛이 되었다.
상대는 제국 최고 기사 중 한 명인 비스트로겐이었다.
대기사장인 그가 이곳에서 검을 휘두르기로 마음먹는다면 골치 아파질 터였다.
애석하게도 이곳엔 비스트로겐을 막아설만한 병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겁 먹지마라. 너희들이 나를 막지 않는다면 너희의 목은 그대로 붙어 있을 거다.”
“막무가내로군요.”
“내가 원래 이런 놈이다.”
비스트로겐이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왕국군 병사들은 감히 그를 막아설 수 없었다.
압도적인 죽음의 공포.
그것이 그들의 몸을 옥죄어버렸다.
“흥!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비스트로겐은 코웃음과 함께 간단히 그곳을 통과해버렸다.
10만의 병력.
이 엄청난 병력이 관문을 통과하는 동안 아무도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크윽… 안에 알려라. 우리로선 저들을 막을 수 없었다고…….”
그들의 대장격인 기사가 옆에 있던 전령에게 전했다.
전령은 곧바로 말을 달렸다.
비스트로겐의 군단이 국경의 관문을 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전해졌다.
“역시나. 강행돌파를 선택할 줄 알았습니다.”
“이제 정말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군요. 지금쯤 로택 경이 아발티움에 도착했을 겁니다.”
“아발티움은 대규모 병력을 막아내기에 훌륭한 지형을 갖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비스트로겐 군단의 발을 붙잡기만 해도 좋습니다.”
“장기전을 벌이려 하시는 겁니까?”
“알아보니 비스트로겐이라는 대기사장은 전쟁 경험이 많이 없더군요. 소규모 전투에만 능한 인물이었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하지만 이미 실력은 입증된 자가 아닙니까? 그러니 대기사장에…….”
“제국은 내부에서부터 썩었다고 했죠? 비스트로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어떻게 전쟁 경험이 많지 않은 자가 단지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대기사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어요?”
“아… 설마 황실 귀족들의…….”
“맞아요. 그러니 세상 물정 모르고 높은 위치를 받아들인 애송이에게 세상이 마음만큼 뜻대로 되진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어야겠죠. 그렇지 않나요?”
에네르시아가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서 있었다.
“…….”
사내는 대답 대신 에네르시아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귀족들이 그런 사내를 탐탁지 않게 쳐다보았다.
사내가 빠져나가자마자 에네르시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에네르시아님… 저자를 정말 믿을 수 있는 겁니까?”
“이미 우리와 함께 하기로 한 자들이에요.”
“그렇지만 라그나로크는 제국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아닙니까?”
“그 제국을 우리의 황제께서 변화시키려는 거고요. 황제께서 저들에게 말씀하셨다더군요. 저들이 꿈꾸는 제국을 만들어주겠다고.”
“흐음…….”
“음… 그보다 능력 면에서도… 과연 저들이 제국군을 막아낼 수 있을지…….”
“물론 가능해요. 제가 아는 그 사람은 불가능 따윈 없었으니까요.”
에네르시아의 확언에 귀족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누구기에 에네르시아가 저런 말들을 한단 말인가?
에네르시아만 저들의 정체를 제대로 알고 있으니 조금은 갑갑한 노릇이었다.
“조금만 힌트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과거 제국을 떠돌아다니며 강자들과 싸운 기사가 있었습니다. 여러 명가에 찾아가 검을 겨루었던 사내가.”
“그런 특이한 행보를 가진 자라면 몇몇 기억나는 이가 있습니다.”
“이슈하르트. 이렇게 말하면 기억하실까요?”
이슈하르트라는 이름에 몇몇 귀족들이 반응했다.
바로 이슈하르트와 검을 나눠본 적이 있는 자들이었다.
“기억합니다! 방랑 기사치고 워낙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라.”
“우직하기도 해서 그를 끌어들이려 해도 쉽지 않았지요.”
“후후 그래도 우리 가문에서는 밥이라도 얻어먹고 갔었는데…….”
“그 이슈하르트의 수하들이 움직일 겁니다.”
“이슈하르트에게 수하들이 있었습니까? 홀로 다니는 고독한 검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슈하르트가 라그나로크에 속해 있는 기사였군요… 수하들 또한…….”
“맞아요. 물론 그들은 제국에 대한 불만보다는 이슈하르트의 강함에 반해 모여든 자들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직접 움직일 겁니다.”
에네르시아의 말에 귀족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이슈하르트의 수하들이라면 믿어볼 만했다.
그만큼 귀족들에게 이슈하르트의 이미지는 좋았다.
거기다 그의 실력이 아직까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어쩐지… 실력이 이상하게 좋다 했더니 라그나로크의 검사였나…….”
“그럼 에네르시아님께서 말씀하신 ‘그 사람’이 바로 이슈하르트입니까?”
귀족들의 물음에 에네르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말하는 이는 이슈하르트가 아니었다.
아리송함에 귀족들이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있어요. 제 옛 동료가.”
에네르시아가 조금 전 사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스스로 빛을 삼키는 존재.
에네르시아가 본 칼라반은 그러했다.
한편 곧바로 아발티움까지 도착한 로택은 기사들과 병사들을 포진했다.
그가 있는 곳은 높은 성벽으로 유명한 아발티움 성.
거기다 견고하기까지 해 적들이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불가침의 성이라 불리기도 했다.
“로택 경!”
“오오 시마리우스 경!!”
“그대가 갑자기 이곳으로 오다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생겼지!! 그것도 아주 큰 일이 생겼어!!”
“그게 뭐지!? 혹여 안쪽의 일이 잘못 된 것은…….”
“아니! 나도 잘은 모르지만 에네르시아님께서 그쪽은 걱정 없다고 하셨네!”
“그런가!? 다행이구만! 헌데 그럼 자네는 어째서 이곳에?”
“시마리우스 경 자네도 들었을 걸세. 이곳으로 오고 있는 햇병아리들을 말이야.”
“아아… 들었지. 우리 왕국군이 경고를 보냈음에도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왔다지?”
“그럴 줄 알고 미리 교전을 벌이지 말라고 명령을 전해두었다더군! 덕분에 소중한 기사들과 병사들을 잃지 않았어.”
“흐음… 비스트로겐 대기사장을 어찌할 셈인가? 그들과 전쟁이라도 벌인다면 돌이킬 수 없을 걸세.”
시마리우스가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로택이 걱정 말라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가 하는 것은 막는 것이다. 공격은 저들이 해올 거야.”
“흐음? 그게 무슨 말이지?”
“비스트로겐 대기사장이 공격해오는 것을 우리는 받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야.”
“장기전을 생각하는 건가?”
“글쎄… 아마 그렇게는 안 될 거다.”
로택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성벽에 올라섰다.
저 먼발치서부터 다가오는 군대가 보였다.
흙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는 그들을 보며 로택이 턱을 매만졌다.
“확실히 10만이라는 숫자는 많은 숫자야.”
“그렇지. 저들을 상대하려면 우리도 꽤나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거야. 이곳에 있는 병력은 채 3만도 되지 않으니까. 더군다나 기사들의 실력도 저쪽이 한 수 위…….”
“그거라면 걱정 없을 것 같다.”
로택의 말에 시마리우스는 이번에도 그저 멍한 얼굴을 보일 뿐이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을 로택이 정확히 인지하고는 있는 건지 의심조차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곧 로택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일단의 병력들이 이곳에 찾아온 것이다.
“저들은 누구인가?”
“우리를 도와줄 병력들이라고 하더군.”
“하더군? 그 말은 자네도 정확히 모르는 것 아닌가?”
“나도 잘 모른다. 에네르시아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뿐.”
“그럼 에네르시아님이 보낸 병력들이로군.”
“그렇지.”
도착한 병력들은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때 전신에 갑옷을 걸쳐 입은 자가 가까이로 다가왔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갑옷이 화려하고 여러 문장들이 수놓아진 것을 보니, 이들의 대장격 인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곳의 책임자이신가요?”
“아?”
예상외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로택과 시마리우스가 두 눈만 끔뻑이고 말았다.
여인은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성벽을 둘러봐도 될까요?”
“아… 아 예 그러시지요!”
시마리우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안내해주었다.
성벽을 한참 둘러보던 여인이 수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그녀와 함께 온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를 본 로택이 두 눈을 빛냈다.
“왜 그러나?”
“훈련을 잘 받은 군사들이다.”
“그걸 어떻게 알아?”
“단지 수신호밖에 보내지 않았는데 움직임이 거침이 없고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움직이고 있어. 더군다나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부터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흐음…….”
“수동적인 군대보다 능동적인 군대가 더 무서운 법이지… 그것도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면 더더욱!”
로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런 병력을 어디서 데려왔단 말인가?
“알면 알수록 대단한 분이시라니까.”
로택이 감탄할 사이도 없이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곧 있으면 적이 움직임을 보일 겁니다.”
“아아… 그러려면 아직 시간이…….”
시마리우스가 말을 꺼내다 멈추었다.
정말로 상대측에서 일단의 무리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모를 준비를 갖춰두긴 했지만, 제국 쪽에서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시마리우스와 로택이 성벽 위에 올랐다.
두 사람이 보이자마자 비스트로겐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이곳 성의 성주인가?”
“그렇습니다만.”
“나는 제국의 대기사장 비스트로겐이다! 길을 열어라.”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왕께서는 길을 열어주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왕 위에 황제가 있다. 황제께서 이곳을 지나가라 말씀하셨으니 그대들은 문만 열어주면 될 일이다.”
“그렇다 해도 거절하겠습니다. 이 나라의 왕은 아크로이어님이 아닌 에네르시아님입니다. 우리는 왕의 명령만 듣는 자들입니다.”
로택이 단호한 태도로 거절했다.
그러자 비스트로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단 말이지… 그럼 힘으로 돌파해주마.”
“얼마든지요.”
인상을 구긴 비스트로겐이 몸을 돌렸다.
그는 함께 온 기사들과 당장 진영으로 돌아갔다.
“이제 저들이 들이닥칠 걸세.”
“후우…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고. 작전은?”
“물론 있지. 헌데 저들은…….”
시마리우스의 시선이 새로 온 병력 쪽으로 향했다.
저들은 그가 짜놓은 판에 있는 말들이 아니었다.
잠자코 있던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전략에 맞추어 움직일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