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9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97화
#습격자들
후작 가문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기사 수업을 받아 탄탄대로를 걸어온 런터리로즈였다.
다른 귀족가의 자식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아왔다.
엄청나게 뛰어나진 않았지만 뒤처지지도 않아왔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엄청난 양의 물자를 대기사장의 군단에 전해주는 것.
그의 뒤에 일렬로 늘어선 보급들은 군단병들이 며칠을 보낼 수 있는 식량을 비롯해 옷가지와 여러 장비들도 함께 있었다.
몇몇 귀족들은 이게 무슨 큰 임무라도 되냐며 조소를 흘렸다.
친한 친구들도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런터리로즈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모두 이번 임무를 맡은 자신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떠한 형태든 황실이 준 임무를 착실히 수행해내면 그만큼 인정을 받게 되어있다.
때문에 가문의 사람들도 런터리로즈가 이번 임무를 맡은 것에 기쁨을 표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아직 젊은 런터리로즈에게는 생에 처음으로 막중한 임무가 맡겨진 셈이었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당연히 런터리로즈의 앞날도 달라질 터였다.
다행이 임무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런 임무가 처음인 런터리로즈에게 모든 것을 맡길 리도 없었다.
노련한 기사들이 그의 곁을 지켰다.
그의 곁엔 몇 차례 같은 임무를 수행했던 지라튼 백작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모두 런터리로즈의 아버지가 힘을 써준 덕분이었다.
그러니 이제 자신은 아버지가 깔아준 탄탄대로를 걷기만 하면 되었다.
그냥 걷기만 하면…….
“그러면 되는 건데… 어째서!”
런터리로즈가 한숨을 내쉬었다.
말 타고 유유히 길을 떠나오면 된다고 생각했건만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일행이 있었다.
아무리 보급을 옮긴다고 하지만 이곳에 병력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다.
지라튼 백작의 사병들도 함께하고 있는데다 제국군까지 보급품을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병력이 투입되었다는 건 그만큼 이 보급품이 중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흐음…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돌아왔는데 보급로를 간파하다니… 제법이로군.”
지라튼 백작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침착하게 앞길을 막아선 적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심판관?”
틀림없는 심판관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제국에서 만든 특수한 철로 이루어진 저 가면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판관이 왜… 혹시 제국에서 보낸 자들인가?”
그러기엔 저들에게서 느껴지는 살기가 너무도 적나라했다.
금방이라도 이쪽으로 덮쳐올 것 같아 보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저희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길을 떠났는데… 더군다나 길도 미리 예정해두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왔습니다.”
“두 가지겠지. 누군가 적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거나… 혹은 적들 중 우리들의 루트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자가 있거나…….”
“그럴 리가! 우리와 함께 한 자들은 모두 제국 황실에서 엄선한 자들입니다. 아버지께서도 특별히 힘을 써주셨는데…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내부에 첩자가 있는 일은…….”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첫 번째가 아니면 두 번째다. 적들은 이미 우리가 이곳을 통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보니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군.”
심판관의 존재였다.
제국의 심판관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라튼 백작도 심판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제국의 곳곳을 제집처럼 다니는 심판관이라면 이 길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심판관의 존재라… 저들이 심판관까지 꼬드긴 것인가. 이거 골치 아파졌군…….’
지라튼 백작이 남몰래 인상을 구겼다.
그래도 대화는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너희들은 누구지? 이 행렬은 제국군에게 보급을 전달하기 위한 행렬이다. 함부로 가로막는다면…….”
지라튼 백작이 말을 이어가는 중 심판관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것이 신호였는지 곳곳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휘우웅―!!
푸슉!! 푸슉!!!
“제길!! 대화는 필요 없다는 거냐!!”
지라튼 백작이 곧바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들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무언가 할 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시도해보려 했던 것인데 완전히 헛짚고 말았다.
“적들의 공격이다!!!”
“화살을 막아!!!”
“보급을 지켜라!!”
병사들과 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다행이 이런 임무가 처음이 아니었는지 그들의 움직임은 거침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를 찾고 할 일을 다 했다.
심판관은 그런 제국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오른편 앞쪽. 저곳에 있는 이들은 귀족들의 사병입니다.”
“알았다.”
그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루시엔이 움직였다.
그녀가 긴 머리를 흩날리며 움직이자 뒤에 시립해 있던 2번대가 움직였다.
아란다르가 서둘러 루시엔의 뒤를 따랐다.
“엄호해라 3번대.”
그의 명령에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인이 고개를 숙였다.
본격적으로 이클립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린 이쪽부터다.”
“크하하하!!! 이렇게 제국군 놈들을 상대하게 되다니 너무도 즐겁구만!!”
“어디 제국 중앙부 병력들은 얼마나 실력들이 좋은지 좀 볼까.”
가르시아와 첸슬러, 헤르번도가 움직였다.
그들은 전술적인 움직임보다 막무가내로 돌진해버렸다.
숨어 있던 세 개의 부대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제국군은 더더욱 바빠졌다.
“불태워.”
한편 식량이 있는 쪽으로 다가온 루미네와 5번대는 순식간에 적군을 제압해버렸다.
그들의 빠른 습격에 제국군 병사들과 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리고 말았다.
지원 오던 병사들은 다른 부대에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이럴 수가…….”
지라튼 백작은 너무 놀라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런터리로즈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대처할 틈도 없었다.
적들의 움직임을 저지해야겠다는 것도 그저 생각뿐이었다.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아군 기사들과 병사들이 비명을 토하며 쓰러졌다.
그만큼 눈앞의 상대가 강했다.
“뭐야 너희는. 명예롭고 드높은 제국의 기사들이라면서. 안 덤빌 거야?”
아름다운 여인이 눈앞에서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검술로 다가오는 적들을 모두 베어내고 있었다.
슈콰아앙!!!
붉은 십자 모양의 오러가 기사들을 덮쳤다.
“심판관들의 검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지라튼 백작이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 제국의 심판관이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인가!!! 제국 황실의 진노가 두렵지 않은 것인가!!”
“너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나?”
“뭐!?”
지라튼 백작이 두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이제야 그의 가면에 새겨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심판관에 대해 잘 모르는 런터리로즈는 그저 멍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크윽… 하필 용서받지 못한 심판관이었나…….”
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여전히 런터리로즈는 무슨 일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용서받지 못한 심판관이 뭡니까?”
“심판관이 어떤 놈들인지는 알거고. 한때 제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심판관이 있었다. 제국을 위해 하나의 가문을 몰살해버린 냉혈한 심판관…그것이 심판관, 자신의 가문이라는 것도 나중에 소문으로 들려왔지만…….”
“자… 자신의 가문을…….”
그때 심판관, 레기온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전신에서 진득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레기온을 본 루시엔이 검을 거두었다.
“음? 마저 처리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이쪽은 됐어. 다른 쪽으로 가자.”
그들이 떠나가고 레기온이 마침내 지라튼 백작과 런터리로즈의 앞에 섰다.
번뜩이는 그의 두 눈이 지라튼 백작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직도 내가 왜 이들과 함께 하는지 궁금한가?”
“그… 그렇다고 해도 당신은 심판관이오! 이런 짓을 벌였다간 제국 황실의 표적이 되어…….”
“상관없다. 그딴 게 두려웠다면 애초에 주군 곁에 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군? 심판관은 제국 황실을 모신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심판관은 나다. 심판관에 대해서라면 너희들보다 내가 더 질리도록 잘 알아.”
“그런데 어째서…….”
“너희들은 제국 아래서 살지만. 나는 칼라반님의 하늘 아래서 산다. 차이는 그뿐이야.”
“지…지금 뭐라고…….”
스강―!!
지라튼 백작이 두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갑자기 세상이 빙글 돌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했을 땐, 이미 그의 의식은 멀어지고 있었다.
“카… 칼라반이라니… 대… 대역적 칼라반을 말하는 건가!?”
런터리로즈가 놀라 말을 더듬거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째서… 어째서 이번 임무가 이렇게 되었지? 제국 영토 안에서 습격자들이 나타난 것도 모자라 칼라반의 이름이 거론되다니… 자…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
저벅. 저벅.
레기온이 다가오자 런터리로즈가 더욱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는 흘러나오는 비명을 참을 수 없었다.
나름 여러 임무를 수행해온 기사였건만 지금 마주하고 있는 공포는 지금까지와 차원이 달랐다.
“요즘 귀족들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도망치는 법부터 가르치나?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들이로군. 너무나 재미없을 정도야.”
“런터리로즈님!!!”
“모두 런터리로즈님을 지켜라!!”
뒤늦게 달려온 기사들이 레기온을 막아서려 했다.
그러나 이클립스가 그들을 순순히 보내줄리 없었다.
이어 레기온의 검이 단칼에 런터리로즈의 목을 베어버렸다.
자그마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런터리로즈는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간단하군.”
제국군이 조금 더 철저히 준비했더라면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저들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제국 영토 내에서 보급로를 습격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으리라.
“모두 불태웠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나저나 의외로군. 나는 이 정도면 제국 쪽에서 많은 병력을 투입한 거라 생각하는데.”
“10만 명입니다. 자그마치 10만 명을 먹여 살릴 식량과 물자들이 있는 보급 행렬이었습니다. 그런 중요한 행렬에 이 정도의 병력만 투입했다는 것은 저들이 우리를 완전히 얕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가? 음…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제국에 관해서는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이제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이유는?”
“곧 있으면 다른 제국군이 도착할겁니다. 주기적으로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근처의 제국군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다. 다른 곳은?”
“무리 없이 잘 해낼 것입니다. 특히나 해상 쪽은.”
“아… 거기엔 블레이드 폰투스 알폰이 있군. 그럼 뭐 걱정할 것 없겠어. 그나저나 우리에게 이런 임무들을 맡겨놓고 칼라반님은 어디로 가신 거지?”
“본격적으로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따로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로 할 일?”
“예. 그것이 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흐음… 이런 시기에 할 일이 있다고 가는 거라면 그만큼 중요한 거라는 거겠지.”
루시엔은 별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사실 루시엔에게는 잘 모른다고 했지만 레기온은 칼라반이 무엇을 하러 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길리고르 감옥… 그곳엔 또 다른 괴물이 존재합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주군.”
칼라반이 향한 곳은 제국 영토에서도 외곽의 섬에 있는 길리고르 감옥.
그곳은 제국에서도 제어하기 힘든 범죄자들이 갇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