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98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98화
#로카르트 가문(1)
제국 황실은 얼마 전 붙잡혀 있던 칼라반 군단의 병사과 기사들을 모두 길리고르 감옥으로 보냈다.
그곳은 한 번 갇히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 불리는 장소였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인 것도 한몫 했지만, 길리고르를 지키는 감옥대장 필버트의 존재 때문도 있었다.
필버트가 길리고르 감옥으로 자청해 가게 되면서 길리고르에선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죄수도 탈출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아크로이어 황제가 칼라반 군단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그곳으로 보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지. 길리고르 감옥은 삼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단 하나뿐이야. 주변 바다는 또 엄청나게 거칠지. 한 마디로 공략할 수 없는 요새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크로이어 황제가 만족감을 표현했다.
이미 그곳으로 보낸 범죄자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중엔 정말로 대역죄를 저지른 이들도 있었지만 황실의 눈 밖에 난 인사들도 존재했다.
어쨌거나 아크로이어 황제와 황실의 귀족들은 그 누구도 길리고르 감옥을 넘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거친 바다에 여러 마법이 걸려 있는 감옥성.
무엇보다 그곳에는 필버트와 그의 수족들이 있었으니까.
길리고르 감옥에서 필버트는 아크로이어 황제 그 이상의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파앙―!!!
“크헉!”
팔다리가 구속된 사내가 숨을 몰아쉬었다.
고통으로 얼룩진 표정은 필버트를 더욱 희열에 차게 만들었다.
“괴롭나?”
“크윽…….”
“조금 더 괴로워해라. 나는 네놈들이 괴로워하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
콰직!
필버트의 발이 사내의 손을 짓밟았다.
이 정도로는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는다.
짓누르고 있는 발을 지지듯 빙글 돌리자 고통스런 비명이 흘러나왔다.
“너는 어째서 이곳에 왔지?”
“윽……!!”
“나는 입에 고문을 가한 적이 없는데. 혓바닥도 멀쩡하게 놔두었고. 그런데도 대답하지 않을 셈이냐?”
“크으… 병ㅅ… 새끼…….”
“크하하하!!! 어렵게 입 밖으로 꺼낸 말이 병신 새끼라니!! 이것 참 재밌구만!!”
필버트가 크게 웃어젖히며 고문 기구에 손을 가져갔다.
날카로운 철제 가시들이 박힌 철퇴였다.
그는 철퇴를 이용해 사내의 허벅지를 때렸다.
피딱지가 말라가던 차에 다시 핏물이 새어나왔다.
“내가 몇 번이고 다시 알려줄까? 너희들은 감히 제국에 반기를 들었다. 너희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어땠나? 네놈들이 솜털 보송할 때 제국은 나약한 너희들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 커서 힘 좀 생겼다고 그런 제국을 배신하려 들어? 이런 은혜도 모르는!”
콰자작!!!
살점들이 떨어져나갔다.
사내가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간수들도 마른침을 삼켰다.
보통의 죄수라면 필버트가 직접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저기 누워 있는 사내는 달랐다.
테레사카.
칼라반의 직속 오천인장 중 한 명.
테레사카와 질리바인트 두 명의 오천인장이 있었다.
이들은 다른 만인대장들의 명령도 듣지 않는 인물들로 유명했다.
만인대장으로 충분히 올라설 수 있는 실력을 지녔음에도 불구 그들은 늘 칼라반의 밑에 남기를 원했다.
대다수 오천인장이 솔 기사단 출신이었던 것과 다르게 이들은 놀랍게도 제국 황실기사 출신이었다.
게다가 테레사카와 질리바인트는 높은 권력을 자랑하는 가문의 자제들이기도 했다.
때문에 황실에선 이들에게 그만 다른 자리를 수여하려 했다.
칼라반과 함께 숱한 임무들을 수행한데다 솔 기사단 출신도 아닌 제국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었으니 그간의 경험을 살려 충분히 다른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매번 칼라반의 군단에 남는 것을 희망했다.
그만큼 테레사카와 질리바인트는 칼라반에게 모든 충성을 다하는 인물들이었다.
“네 친구는 감히 제국에 반기를 들다 죽었다.”
“…….”
“이름이… 질리바인트였나?”
“그 입으로… 내 친구의 이름을 담지 마라.”
“호오.”
콰지직!!
쩌정!!!
다시 한 번 가해지는 고문에 테레사카가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그는 새어나오려는 비명을 끝까지 집어삼켰다.
“어째서냐. 아무리 칼라반 군단에 속해 있었다곤 하나. 너희들은 그동안 제국을 위해 싸워오던 자들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문의 자제들인 너희가 어째서 제국을 배신하려 한 것이냐.”
“크흐흐… 우리는 생각 따위 하지 않는다. 그저 명령에 따를 뿐.”
“그래. 하나같이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
필버트가 턱을 매만졌다.
손가락을 보니 어느새 핏물이 튀긴 모양이었다.
혀끝에 가져가니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단 말이지. 칼라반 대기사장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사내다. 나 또한 존경하는 사내이기도 하지. 그 사람만큼 제국을 위해 열심히 싸워온 자도 없으니까.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어려운 임무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올 때는 나마저도 가슴이 뛰었다.”
“…….”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째서!! 어째서 제국을 배반하려 한 것일까!!”
쾅!!!!
발끈한 필버트가 들고 있던 철퇴를 바닥에 찍었다.
커다란 소리에 간수들이 움찔했다.
그들은 테레사카의 상태를 살폈다.
장시간 가해진 고문 탓에 그는 이미 피곤죽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필버트님. 이 상태면 죄수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러냐. 그럼 안 되지.”
필버트가 이만 손을 털며 몸을 돌렸다.
테레사카는 이미 그의 눈앞에서 기절한 상태였다.
사실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아까운 남자야.”
테레사카를 보며 필버트가 진심으로 말했다.
그가 지금껏 여러 죄수들을 고문해 왔지만 테레사카 같은 죄수는 처음이었다.
숱한 고문을 가해도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았다.
끔찍한 고통에 한 번씩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이곳에 처음 온 그날과 항상 같았다.
이 엄청난 정신력에 필버트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보내진 이상. 저 자 또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치워라.”
필버트의 명령에 간수들이 황급히 움직였다.
생각보다 테레사카의 상태가 심각해보였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놈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 몇 명 보내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에케모스카라는 자가…….”
“죄질은?”
“상당히 지독합니다. 귀족 부인 몇몇을 강간한데다… 사기도 치고… 무엇보다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을 전장에 내버리고 여자들과 도망쳤다고 합니다.”
“여자들과?”
“예. 전장인데도 불구 사창가의 여인들을 데려갔나 봅니다. 그러다 질리면 수하들에게 여인들을…….”
“그만. 그만 말해도 된다.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알겠으니.”
“예…….”
“한마디로 구제 불가능한 쓰레기가 들어왔다는 것이 아닌가.”
필버트가 옆에 있던 너클을 꼈다.
주먹으로 죄수를 때리기에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곁에 있던 간수장은 묘한 흥분을 느꼈다.
밖에서 아무리 참혹한 짓을 벌이고 온 자들이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한낱 죄수에 불과했다.
거드름 잡던 죄수들도 결국 필버트 앞에서는 물 맞은 쥐새끼 꼴이 된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자그마한 희열을 안겨다주었다.
“넌 이제 죽었다.”
간수장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죄수를 끌어왔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죄수를 보며 필버트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인데… ‘그 군단’의 인원들은 다르단 말이지… 후후 재밌구만. 그런 놈들을 보다가 이런 놈을 보니 내 두 눈이 썩어가는 느낌이야. 악취마저 올라오는 것 같단 말이지. 후우… 난 이래서 이런 쓰레기들이 싫다.”
필버트가 팔을 들어올렸다.
이후 그곳에선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 * *
칼라반 일행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도심지가 아니었다.
몇몇 중소 귀족들이 있는 작은 영지였다.
그곳의 사람들은 평화로운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삶을 지켜주고 싶었던 건데…….”
그들을 바라보던 칼라반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곁에 있던 로제리아가 슬쩍 그의 팔목을 잡았다.
“칼라반…….”
“저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군.”
“빨리 내전을 끝내봐야죠…….”
“그래.”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칼라반이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운량과 로제리아가 그의 뒤를 따랐다.
안으로 들어가던 칼라반이 지나가던 아이를 붙잡았다.
“혹시 로카르트 사람들을 알고 있나?”
“……? 아저씨는 누구세요?”
꼬마 아이가 칼라반의 위아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칼라반이 무릎을 굽혀 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로카르트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란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찾아왔으니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아… 로카르트 가문의 집은 저쪽 산자락에 있어요.”
“음? 산자락에?”
“네.”
꼬마 아이의 대답에 칼라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로카르트 가문에 보내준 돈만 해도 이곳에 있는 호화 저택은 사고도 남을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저런 산자락에 살고 있는 것일까.
거기다 로카르트 가문을 가리키는 꼬마 아이의 표정도 좋지 않아보였다.
“그치만 저기는 가지 않는 게 좋아요.”
역시나 아이는 잊지 않고 한 마디 더 붙였다.
칼라반이 품속에 달달한 먹을거리를 꺼내며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이는 간식을 받은 것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아이의 반응은 투명했다.
칼라반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은 어느새 호감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어째서 저곳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거니?”
“엄마가 저곳으로 가면 안 좋은 병이 옮을 거라고 그랬어요.”
“그랬구나…….”
“아저씨도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가지 않는 것이 좋아요.”
“후후 알겠다.”
칼라반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는 손아귀에 쥐어진 먹을거리를 바라보더니 이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로카르트 가문?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로제리아가 운량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운량은 전혀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칼라반은 말없이 아이가 가리켰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이곳으로 찾아온 것은 헤이홀즈 덕분이었다.
헤이홀즈가 로카르트 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탐욕적인 아버지를 피해 자신만의 삶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아더만 영지에서 나와 독자적인 노선을 밟은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엔 체르피히의 도움이 컸다.
칼라반이 지나가는 말로 언급했던 헤이홀즈를 기억하고 체르피히가 나서주었다.
“여러 모로 고마운 자로군.”
체르피히가 헤이홀즈까지 신경써주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칼라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운량만큼이나 그의 수완에 여러 번 감탄하고 말았다.
그들이 산중턱에 다다랐을 때 허름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집엔 냉기가 가득했다.
“불을 사용한지도 오래 된 것 같습니다.”
운량이 불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엔 작은 불씨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스킬 기감이 발동됩니다.] [기척이 느껴집니다.] [스킬 천리지청술이 발동되었습니다.]칼라반의 눈앞에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환골탈태를 경험하면서 메시지들을 의식하지 않게 되다 보니 이렇게 다시 읽어 본 것이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다.
칼라반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그곳엔 한 여인이 힘겹게 나뭇가지를 메고 오고 있었다.
가냘픈 저 여인의 몸에 나뭇가지들은 너무도 버거워보였다.
칼라반이 나서기도 전에 로제리아가 움직였다.
그러나 여인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시죠?”
여인을 보자마자 칼라반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품속에서 펜던트를 꺼냈다.
이 세계에 와서 단 한 번도 품에서 놓아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인벤토리창에도 넣어놓지 않고 있었다.
그 펜던트를 본 여인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들을 와르르 떨어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