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299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299화
#로카르트 가문(2)
“그… 그건…….”
팬던트를 알아본 여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인의 반응을 살핀 칼라반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제가 늦었습니다.”
“아… 아아…….”
여인이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가 눈시울을 붉혔다.
시선은 계속해서 팬던트에 머물러 있었다.
“앗.”
로제리아가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가 도와주었다.
칼라반도 그녀가 잠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죄… 죄송합니다. 남편의 물건을 보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정말… 당신은 누구시죠?”
“그동안 많은 말들을 들었는데 이제야 찾아뵙는군요. 제 이름은 칼라반이라고 합니다.”
칼라반이 정중히 자신을 밝혔다.
그러자 여인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그녀는 넋이 나간 얼굴로 칼라반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당신이 칼라반님이었군요!”
여인이 하얀 손으로 칼라반의 어깨를 때렸다.
괴성을 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칼라반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죄송합니다.”
칼라반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여인은 원망 어린 눈빛으로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내 칼라반을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로제리아도 무슨 상황인지 얼추 알 수 있었기에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그녀는 잠자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흐느끼던 여인이 팬던트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숨죽여 울고 말았다.
“레클레이… 레클…….”
죽은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여인은 그 자리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버텨왔던 무언가가 끊어진 것만 같았다.
로제리아가 곁에서 그녀를 끌어안아주었다.
여인을 바라보고 있으니 과거의 자신이 떠오르고 말았다.
칼라반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난 후 오랜 시간을 상실감속에 살아왔던…….
그래서인지 여인의 마음이 훨씬 그녀에게 와 닿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인의 곡소리밖에 울려 퍼지지 않던 숲속이 이내 고요해졌다.
“그래서…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죠?”
“이것을 전해주러 왔습니다. 레클레이가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제게 부탁했던 일입니다.”
“그랬…군요…….”
여인은 팬던트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은 복잡한 감정에 젖어 있었다.
“그 사람은… 마지막 가는 길에 어떤 표정을…….”
“…….”
“하아… 그래요 아무 말씀도 하지 말아주세요. 그이가 어떤 표정을 지었든 들으면 더 괴롭기만 할 것 같네요…….”
눈물을 훔친 여인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떨어트렸던 나뭇가지들을 다시 주워 올렸다.
로제리아가 그것을 도와주려 하자 여인이 정중히 거절했다.
“괜찮아요.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아… 네…….”
무안해진 로제리아가 손을 뒤로 감추며 물러섰다.
여인은 말없이 나뭇가지들을 안쪽으로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라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서 살고 계신 겁니까?”
“그럼요?”
“그동안 레클레이가 부인께 보낸 돈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다고 한들 지킬 힘이 없으면 그것은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아요.”
“그 말씀은…….”
“탐욕스런 자들에게 이미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당신이 반란을 꾀하면서 그것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가문도 나락으로 떨어져버렸거든요.”
여인이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칼라반의 얼굴도 어두워지고 말았다.
“죄ㅅ…….”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사람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고들 하니까… 아마 당신께서도 무언가의 이유가 있었겠죠. 그리고 남편 또한…….”
여인이 말끝을 흐렸다.
그럼에도 원망 어린 얼굴은 지워지지 않았다.
잠시 정리를 마친 여인이 칼라반 쪽으로 돌아보았다.
과격해져 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좀 전엔 실례가 많았어요. 제 이름은 엔리아라고 합니다.”
“예. 레클레이에게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 남편과 함께 전사하신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그것도 말 못할 사정이 있으신 건가요?”
“아닙니다. 저는 본래 죽은 사람이었습니다만… 레클레이 덕분에 살아난 목숨입니다.”
“레클레이 덕분에…….”
“그렇습니다.”
“아둔한 사람… 살려면 같이 살아야지…….”
“제가… 레클레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살려 소중한 가족들에게 돌려보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최선을 다하셨겠죠. 종종 도착하는 그이의 손편지로 저 또한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칼라반님만큼 수하들을 끔찍이 아끼는 분이 없다고. 들어오세요. 누추하지만 그래도 남편의 상관이었던 분에게 조금의 식사는 대접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입맛에 맞으실진 모르겠지만.”
엔리아가 안쪽을 가리켰다.
칼라반은 순순히 그녀가 안내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로제리아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음식을 준비하는 엔리아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기품이 느껴지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고생한 흔적들 속에서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바래지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외진 곳에 살고 있는 겁니까?”
“사람들에게 도망치기 위해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반란에 가담한 가문으로 찍혀 도망 다니는 신세였어요. 저 혼자의 몸을 건사하지 못하니 도망칠 수밖에요… 그리고 이곳에 도착해서도 상황은 여전했고요…….”
“혹시 그래서 소문이 난 겁니까?”
“아… 역병에 관한 소문 말씀하시는 건가보군요. 네. 제가 일부러 만들어낸 소문입니다. 덕분에 다른 귀족들의 출입을 막을 수 있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로제리아와 칼라반은 엔리아가 삼킨 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를 귀족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더욱이 엔리아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어떤 일들을 겪어왔을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레클레이에게는 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플로제는 지금 이곳에 없습니다.”
“음? 그럼 어디에 있는 겁니까?”
“플로제는 지금…….”
* * *
“플로제.”
“예.”
“사인스.”
“네.”
“둘 모두 나와라.”
교관 벤카이더의 말에 두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한쪽은 고급진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허름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검마저도 차이가 컸다.
사인스라 불린 청년은 정성껏 제련된 검을 들고 있었지만 플로제란 청년은 달랐다.
그는 한눈에 봐도 이가 많이 상한 검을 들고 있었다.
그때 수련생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벤카이더 교관님.”
“무슨 일이지?”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흐음? 이것은 실전과도 같다. 실전에서 공평한 조건 속에서만 싸울 것 같은가? 몬스터가 습격해 와도 장비를 갖추지 못했으니 나중에 다시 싸우자고 말을 건네 볼 텐가?”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만…….”
“그것 봐라. 악조건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실전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플로제.”
“예. 교관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플로제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벤카이더가 그런 플로제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사인스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좋다. 시작하지!”
벤카이더 교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인스가 앞으로 내달렸다.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있음에도 그의 움직임은 빨랐다.
하지만 평범한 옷을 걸치고 있는 플로제와 비교할 순 없었다.
그는 고양이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사인스의 검을 피했다.
“호오……?”
“저 녀석이 검을 피할 줄 알아?”
“야야 이건 그냥 넘어지기만 해도 피하는 검이었다.”
지켜보던 수련생들이 한마디씩 해대었다.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기사수련생들뿐만이 아니었다.
교육을 마친 마법수련생들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놈들만 득실거리는 기사수련생들과 다르게 마법수련생들 중엔 여자들이 굉장히 많았다.
사인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사파이어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게 머리를 늘어트린 그녀, 아르말리아는 이곳 지역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가문의 자제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마나를 느끼고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이곳에 입학하게 되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마법수련생들 중에서도 엄청난 재능을 지녀 벌써 2서클의 마법을 캐스팅한다고 했다.
아름다운데다 능력까지 있는 그녀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도대체 왜냐?”
잔뜩 표정을 일그러트린 사인스가 플로제를 쳐다보았다.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지도 모를 가난뱅이.
몰락한 귀족 가문의 아들.
그래도 꼴에 귀족이라고 이곳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카데미의 교육을 받을 돈이 없어 늘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하며 부족한 돈을 메웠다.
때문에 아카데미 사람들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귀족들만 있는 이곳에 저런 거렁뱅이라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껏 사인스는 친구들과 함께 그를 괴롭혔다.
비겁한 놈이라 말했고 아둔한 놈이라 놀렸다.
권위 있는 귀족 가문의 아들이 그렇게 말하자 몇몇 귀족친구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플로제를 괴롭혔지만 녀석은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인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말이다.
“내가 모를 줄 아냐… 너… 모두가 잠드는 밤에 몰래 나와 검을 휘두르고 있지?”
그의 말에 플로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본래 그 시각에 움직이는 것은 교칙에 어긋난다.
그렇기 때문에 몰래 움직인 것인데 사인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네 교육비를 일부 내준다 들었다.”
“…….”
“하! 누군 참 좋겠어. 타고나지 못한 것들을 선량한 다른 사람이 메워주고 말이야. 쳇. 귀족 자제라는 놈이 노예들이나 할 법한 허드렛일이나 하고… 아카데미에서 가르치지도 않은 이상한 검술에 집착하고…! 게다가…….”
아르말리아의 관심.
언젠가부터 아르말리아가 이 괴상한 청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돈도 많고, 검술 실력도 뛰어나며 피지컬까지 타고난 자신을 두고 말이다.
처음 본 날부터 아르말리아에게 반했던 사인스였다.
그런데 정작 아르말리아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도도하게 자신을 지나쳤던 그녀가 어느새 플로제에게 시선을 두고 있다.
자신이 봐도 인정할 만큼 뛰어나거나 대단한 사내라면 모를까.
겨우 저 정도의 사내에게 그녀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참을 수 없었다.
그때 플로제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이상한 검술이 아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내게 남겨주신 검술이다.”
“하!! 보나마나 보잘 것 없는 검술이겠지.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 가문과 아버지의 이름을 말해 봐라!!”
“…….”
플로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가문과 아버지의 이름이 알려지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곳을 떠나야 했다.
최근 어머니인 엔리아의 건강도 좋지 않아졌다.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또다시 먼 길을 떠날 수 없었다.
결국 플로제는 입술을 질끈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의기양양해진 사인스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것 봐라. 말 못하겠지?”